마흔 한 번째 마당- 길고 긴 나라 칠레
(푸에르토 몬트, 앙쿧 칠로에, 발디비아, 산티아고,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 편 2011. 1/13- 1/26)
48시간에 한 번씩 손 톱 만 한 참치로 연명하며 17일 동안 깊은 어둠에 갇힌 채 33명의 광부가 인간 한계를 극복하고 전원이 새 삶을 찾은 소식은 지난 한해 세계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 드라마 같은 뉴스였다. 인간 승리 이 광부들의 나라 칠레는 길고 긴 땅 덩어리 만큼이나 풍부한 농수산 광물과 황량한 사막, 태평양, 남극해 등 길다란 영토 속에 다양한 모든 것이 공존하고 있는 나라이다.

16세기 초까지는 잉카제국의 영토였던 칠레에 대해 세계적으로 딱히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서태지 음악에도 영감을 주었다는 불가사의한 모아이 석상의 이스트 섬과 197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반전 가수 빅토르 하라 등 문화 예술과 수 많은 광물자원 등 세계적으로 손색 없는 보물들이 많이 있었다.

칠레는 우리나라와는 1962년 국교를 수립하였으며, 최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상대국이며, 현재 포도와 와인, 구리 등
농수광산물과 목재 등을 수입하고 있는 나라이다. 칠레를 말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또 하나는 세계 최초로 선거에 의한 사회주의 정권을 탄생시킨 것이다. 1970년 급진사회당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당선되어 미국계 구리 광산을 보상금 안주고 국유화 시킨다. 이에 대한 미국의 보복으로 구리시장이 조작되고 칠레 구리시장이 파산상태에 이른다. 미국의 묵인 하에 군부의 피노체트에 의해 아옌데 대통령이 피살 되는 등 극도로 사회가 불안해지며 피노체트의 무자비한 독재 정치가 오랜 기간 칠레 국민들을 괴롭힌다. 지금도 피노체트 이름만 들어도 머리를 내저으며 부끄러운 과거라며 말문을 돌린다.

2011년 1월 13일 아침 7시 30분, 아르헨티나의 휴양지 바릴로체에서
칠레의 푸에르토 몬트(Puerto Montt)로 향하는 국경 심사대에서 꽤나 까다로운 짐 검사가 실시 되었다. 일일이 짐들을 하나씩 다 조사하고 마약 단속에 대한 남미 국가들의 철저함이 여행자들에게는 큰 불편함을 주고는 있지만
지속적인 안전성과 사회 안녕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두가 괜찮다는 표정들이다. 짐을 버스에서 오르내리고 다시 체크하는 와중에 애지중지 숨겨 두었던
카라의 담배 3갑이 사라졌다.(그거 깨소금이다 메롱~) 아저씨 한 사람이 올라와서는 짐을 부리고 내리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동전이라도 달라고 모자를 돌린다. 독일 커플의 야멸찬 거부 말고는 너나 할 것 없이 기꺼이 건넨다. 이것도 작은 일자리 창출 차원으로 상생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도 얼른 모자에 돈을 넣었다.

물가가 너무 비싸서 칠레 입국을 포기하고 아르헨티나로 얼른 들어왔다는 한국인 두 여행객의 푸념처럼 교통비도 장난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바릴로체에서 여기 푸에르토 몬트까지 7시간이 걸리는 이 거리의 버스 비용이 두 사람 240 아르헨티나 페소 (약 7만 2천원 정도)이다.

이 지역 공중 보건 의사인 에스페란티스토 호세 안토니오( Jose Antonio)의 배려로 칠레의 전원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그의 집은 도심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꽃과 나무가 무성하고 인형들이 거실에 가득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목조 주택이었다.
이상한 신음소리와 괴성을 내며 벅찬 만남의 기쁨에 콧물에다 침 까지 줄줄 흘리는 짝퉁 퍼그 멍멍이 아만다의 열띤 환영식이 피로에 절여진 우리를 원기 회복 웃음바다에 빠트려 준다.^*^

쪽쪽 두 번이면 배웅과 환송 인사가 다 마무리 되는 인간들의 방법과는 비교가 안 되게 환장 발광하며 반겨주는 아만다는 사람만 보면 심하게 흥분을 해서 주인 호세로 하여금 민망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껄껄 댄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집의 멍멍이 세 마리가 모두가 짝퉁이다. 아만다는 물론이며, 야로가는 셰펴드 짝퉁인데
이 녀석 또한 인간 친화력이 끝내준다. 우리를 바라 볼 때 마다 오른쪽에 번쩍 서 있는 귀가 90도 각도로 꺾이면서 왼쪽으로 벌렁 드러눕는다.
순박하게 아래로 쳐진 큰 눈동자와 자존심 죽인 귀하며, 뭐라 한마디만 하면 두 발을 번쩍 들어 올리며 덩치에 맞지 않게 손잡아 달라고 애교를 살살 부린다. 가장 막내 샐리는 달마시안 짝퉁으로 얼렁뚱땅 대강 붙어있는 검은 얼룩 반점만큼이나 수줍음이 많아서 3박 4일 호세네 집에 머무는 동안 한 번도 우리에게 선뜻 다가오지 않고 그저 멀리서만 지그시 바라본다.

신록이 우거지고 개소리 새소리가 조화로운 이곳은 우리의 봄 날씨 처럼
시샘이 많아서 낮에는 햇님이 활짝 웃다가도 어느새 주룩주룩 비가 쏟아지고,
그늘에 있으면 도톰한 겉옷이 필요한 곳이다. 아내도 의사, 큰 딸도 예비 의사인 이 집 식구들, 다이어트와 음식 조절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우리가 머무는 동안 고기 냄새 한번 맡지 못했다. 그러나 정성껏 장만 해준 채식 식사와 과일, 쥬스 등 바쁜 와중에도 우리의 잠자리를 편하게 마련해준 고마운 가족들이다.

호세네 집에서 멀지 않는 푸에르토 바라스(Puerto Varas)는 해수욕장과 만년설산이 함께 둥그렇게 모여 있는 해변 마을이다. 거리 악사의 낭랑한 바이올린 연주와 까만 삼륜차의 예쁜 카페에서 풍겨 나오는 향긋함이 작고 소박한 해수욕장의 낭만을 더해준다.

호세와의 마지막을 비린내가 정겹게 다가오는 안헬모(Angelmo)란 곳으로 향했다. 마치 부산의 자갈치 시장 같은 싱싱한 해산물과 생선, 다양한 요리 등으로 오고가는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덤으로 얹어주는 인정과 떠들썩한 발걸음, 살짝살짝 스치는 옷깃으로 재미를 더해주는 곳이다.

칠로에 섬(Isla de Chiloe‘)에 있는 앙쿧(Ancud)으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은
오직 펭귄 보러 간다. 말로만 듣고 TV나 사진으로만 보던 펭귄을 볼 수 있다는 설레임에
아침 일찍 서둘렀다. 버스를 한 시간 타고, 다시 배를 약 30분 타고 또 다시 버스로 약 40분 후에 도착하였다.
가는 날이 장날, 주룩 주룩 쏟아지던 비가 더욱 세차게 뿌린다. 펭귄은 고사하고 걔네들 동네 근처도 못 간다고 한다. 세상에나..저기 저 작은 쪽배가 무슨 용빼는 재주 있다고... 무슨 수로 이 비바람을 헤치고 항해한다는 말인가... 그럼 호세라도 가지 말라고 우릴 말려야 되는 것 아니야...(궁시렁 궁시렁) 정말 짜증 지대로다...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호세 미워이~ 
이리저리 배회 하면서 바라보는 이 마을이 정말 평화로워 보인다.
작고 아담한 나무집들이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마저 편안함을 준다. 이렇게 비가 자주 오는 지역에 웬 나무집이냐고 물었더니 습기를 예방하고 물도 잘 내려가게끔 나무 문양과 디자인이 잘 되어 있어 전혀 걱정이 없다고 한다. 꿩 대신 닭 집이라고, 펭귄 대신 예쁜 나무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늑함과 고등어 행님 닮은 쫄깃한 생선 구이를 맛보지 못했다면 더더욱 서러웠을 펭귄과의 미팅은 이렇게 허탕치고 말았다.(c c)

2011년 1월 16일, 푸에르토 몬트에서 3시간 걸리는
발디비아(Valdivia)에 밤 늦게 도착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남서쪽으로 840km 떨어진 이곳은
1552년 2월 9일, 에스파냐의 정복자 돈 페드로(Don Pedro)에 의해 세워졌다.

19세기에는 독일의 전문직 이주자들로 구성된 투자자들의 원조로 무역과 고급 문화 예술이 꽃피던 곳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 5월 22일 진도 8.5의 지진이 3분간 지속되면서 이 지역의 왼쪽 부분이 다 파괴되어 버렸다. 그 후 독일 이주자들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고, 남아있는 원주민들의 친환경적인 생활과 보존으로 바다늑대(sea wolf)도 강으로 올라오고 세 개의 강(Rio Valdivia, Cruces, Calle Calle)과 바다가 만나는 풍요로운 해산물과 생선 유통으로 칠레인들의 영양을 책임지고, 또한 해변 휴양지로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1955년에 세워진 11만 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식물원(Botanical Garden)은 내외국인 모두에게 무료입장을 허용하고 있으며 다양한 토종과 외래종이 한데 어우러져 광활한 녹색의 벌판을 펼친다.
이 지역의 유일한 에스페란티스토이며 보트 제작과 디자인을 대학에서 가르치는
마르코스(Marcos)는 업무상 남쪽 지역 푼타아레스(Pta Ares)로 가고 없었지만, 그의 아내 타티아나와 예쁜 두 딸 파올라, 칼라의 정성스런 배려로 배! 째라 부부는 하루하루 피로의 찌꺼기가 남을 새도 없다.

대문 없는 집들이 죽 늘어선 마르코스의 동네는 이 살벌한 세상에 정말 보기 드문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나무문도 돌담도 없는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살고 있는 이 지역 주민들 모두가 선하게 보인다.
2011년 1월 19일 발디비아에서 배를 타고 코랄(Corral)을 거쳐
만쎄라(Mancera)를 돌아오는 보트 여행에 나섰다. 동그란 식탁마다 의자3-4개가 놓여있고 점심과 커피, 간식 들이 제공되는 이 짧은 여행 코스에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에스파냐의 침략을 칠레의 원주민들이 단결하여 막아내는 연극을 열띠게 펼치는 이곳 코랄은 바다로부터 건너오는 외적들을 막아내는 요새였다.

실제 퍽퍽 치고 박는 전투 장면에다, 빵빵 터지는 대포소리, 울부짖는 아녀자들의 통곡소리, 온몸을 다 바쳐 열연하는 이들은 오직 자신의 마을 홍보를 위해 기꺼이 노력하는 무료 자원 봉사자들이라고 한다. 
우리가 타고 있는 배 보다 10분 먼저 출발한 배가 우리 눈앞에서
기우뚱하면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려 한다. 뱃머리에 앉아 울부짖는 아이들과 겁을 잔뜩 먹은 어른들 할 것 없이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배 침몰 사고는 발디비아로 돌아오는 내내 로자의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다. 다행히 바지선이 잽싸게 배의 넘어지는 부분을 지탱해주어 심각한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작은 배에 무리하게 많은 인원을 태운 것이 분명해 보인다.

마르코스 가족들의 염려 덕택에 무사히 수도 산티아고(Santiago)행
버스에 늦지 않게 탔다. 12시간 정도 걸리는 버스 여행은 이제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게 생각하는 배! 째라 부부도 이번만큼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Cruz del Sur 버스가 겉만 번지르르 했지 발도 뻗기도 힘들고 게다가 저녁도 간식도 생략한 채 야속하게 다음날 아침 빵 1개에 커피 한잔 겨우 준다.
2011년 1월 20일 아침 9시 30분 ,
타로점에 도통하고 요즘은 점성술 공부에 여념이 없는 스페인어 교사이며 에스페란티스토인 리카르도가 검은 곱슬머리 날리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아한 샴 고양이 오시리스가 조용히 반겨준 그의 집은 마치 네팔 무당 친구라도 살고 있는 집처럼 정체모를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신비한 인체 댓생 그림들이 벽에 걸려 있고, 여기저기 고양이털이 몽실몽실 떠다니고 있었다.

지하철 Patronato역에 한인 타운이 있다는 말에 얼른 그의 집을 빠져나왔다.
‘인심 좋은 숙이네’ 한국식당에서 비빔밥에 김치찌개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으로 향한다. 1647년 지진으로 무너져 1748년에 재건한 산티아고 성당(Catedral Metropolitiana de Santiago) 앞에서 펼쳐지는 공연과 춤판, 놀이판이 땡볕아래에서도 아랑곳 않고 펼쳐진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선조들의 흘린 피와
인디오를 상징하는 빨간색, 맑고 깨끗한 하늘을 상징하는 파란색, 그리고 안데스 산맥의 눈을 상징하는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칠레의 국기가 여기저기 펄럭인다.

지하철 라모네다(La Moneda)역에서 가까운 대통령궁은 그 옆에 위치한 중앙문화플라자(Centro Cultural Plaza de La Moneda)와 함께 산티아고 관광의 명소로 꼽힌다. 염소 가죽을 이용한 신발과 모자,
말꼬리를 이용한 귀걸이, 돌을 갈아 만든 보온병, 구리를 이용한 세련된 장식품 등 각 지역의 특산품들만 보아도 칠레가 얼마나 다양한 나라인지 가늠케 한다. 에스페란티스토 이반( Ivan)과 함께 한 중앙시장에서의 식사는 칠레산의 향긋한 백포주가 곁들여진 맛난 점심이었다.

세계 각국의 우표와 엽서를 수집하는 이반은 건강한 여행을 바라는
덕담과 함께 볼리비아로 향한다는 우리에게 볼리비아 직인이 찍힌 엽서를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30여 년 간 89개국의 우표와 엽서를 해마다 전시하는 그의 꿈은 오직 하나 칠레에도 풍성한 에스페란토의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틈만 나면 여자 친구와 연신 쪽쪽 거리는 리카르도와 빈곳만 있으면
얌전하게 엉덩이를 들이대는 고양이 오시리스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의 하나라는 칠레 북부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로 발길을 부지런히 돌려야 한다.
그전에 칼라마에서 잠시 내려 다시 버스를 타야한다. 소금 사막 우유니를 가기 위한 멀고 험한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무신경의 극치 배! 째라 부부는 산티아고에서 칼라마를 거쳐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를 가는 것이 더욱 저렴한 방법이라는 사실에 그냥 감격해 헤헤 거린다. 
내일 어떤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 지라도
잠자고 보자는 잠돌이와 잠순이도 내일 우유니를 만난다는 기쁨에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