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메세나

문화관련글발 2010/03/10 18:50
 

기업 메세나(mecenat)


1. 개념


메세나(mecenat)는 ‘예술, 문화, 과학에 대한 보호와 원조’를 의미하며 현재는 주로 문화예술후원활동에 대한 기업의 모든 형태의 후원을 광의적으로 지칭한다.(소병희, 2004)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을 통칭하는 용어로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한국에서 이 용어가 통용되게 된 계기는 기업과 문화예술의 협력 창구적 기능을 하려는 취지에서 1994년 출범한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Korea Business for the Arts)의 설립으로 인해서이다.


2. 기업메세나 활동 개요


문화예술계의 만성적인 재정문제는 근본적으로 산업사회내의 예술의 위치와 관련이 있는데 이 결과 고급문화로서 모더니즘 예술은 한정된 관객층에 의존하는 예술시장에 기반하게 됨으로써 고질적인 재정 적자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1994년 한국메세나협의회 창립, 167개 기업 회원등록, 기업메세나 지원은 총72,797백만 원으로 집계되었고 10년이 지난 2004년은 총227개 기업이 문화예술지원을 하였으며 회원수는 183개 기업으로 나타났다. 지원방식별로 살펴보면 기업재단을 통한 직접지원, 문예진흥원 조건부 기부금을 통한 기부금 순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메세나협의회 2004년도 연차보고서), 2009년 현재 회원수는 192개 기업, 2008년도 기준 지원기업은 102개, 기업당평균지원금액은 1,824백만원, 건당 평균지원금액은 82,7백만원, 한국메세나협의회 홈페이지 참조)

기업메세나는 점차 기업의 마케팅 관점이나 계몽적 실리에 입각한 메세나의 특성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기업은 신규고객창출, 기업의 이미지 재고, 종업원의 문화적 욕구충족, 새로운 사업 분야 개척, 사회공헌 및 사회적 병리현상 치유 등의 기대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국의 기업메세나는 대기업이 기업 재단을 통해 지원하는 방식이 선호되는데 이는 기업재단의 설립 및 운영에 따른 각종 세재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기업 메세나는 특히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경기침체나 정치적인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단점이 있다.

기업메세나 참여 업종별로는 은행금융업, 출판인쇄업, 전자전기 관련업이 기업메세나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국내기업이 선호하는 장르는 미술/전시, 종합, 음악, 문학, 영화, 연극, 무용 순이고 영화를 제외하면 순수예술에 집중되고 있다. 미술/전시분야에 대한 지원 액수가 많은 이유는 기업재단 중 목적 사업장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운영하는 기업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행사 지원만 따로 살펴보면 공연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이 더 많다.<표1 참조>


3. 한국 기업메세나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메세나의 중요성에 대한 홍보가 우선 되어야 한다. 단순히 기업의 실리와 이미지 재고만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인 사회적 공헌의 일환으로 메세나의 필요성을 알리고 홍보하는 전문기구 설치도 간과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현재까지 소수의 대기업과 이들의 기업 재단에 메세나 활동이 집중되어 있으며 중소기업의 메세나 활동이 개발되지 않고 있고 메세나 활동이 전문화되어 있지 못하다. 기업메세나와 관련된 조세지출에 대한 편의와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메리트 부족과 불명확성으로 실제 문화예술 지원을 하고 있는 기업들 중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고 있는 기업들을 회원화시키고, 회원가입을 망설이고 있는 기업들을 끌어내기 위한 상담기구 등을 설치하여야 한다.

조세관련 개선방향으로는 지정 기부금의 기부대상 제한을 대폭 완화하고 공제한도를 높여주어야 한다. 비영리단체가 수익 사업에서 발생한 소득을 다음해의 목적사업 준비금으로 손금 계산한 경우 손금 산입 한도에 제한두지 말고 문화시설의 취득, 운영에 대한 지방세 감면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것을 과감히 완화시켜 주어야 한다. 또한 기업 메세나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시상부문도 마련하야야 한다. 공기업의 메세나 활동의 의무화를 통해 공기업, 중소기업의 참여를 촉구하고 기업의 재단들이 문화예술 지원 사업을 채택하도록 촉구하고, 기업이 문화시설을 운영할 경우 세재 혜택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다.(한국문화경제학회,2004)

전 세계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지원의 지속적인 감소, 다국적 기업의 국제적 메세나 활동의 확대 등의 변화가 예상되는데 앞으로 다가올 시기에 국내 기업메세나는 사회공헌활동으로서의 공익성과 마케팅 방법으로서의 실리를 조화시켜야 한다. 기업메세나 지원 방식만큼 기업의 문화사업 참여가 중요한 가운데 예술창작 진흥과 일반대중의 문화 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사회공헌 차원의 기업메세나 활동이 전개 되어야 한다.


<표 1> 2004년도 기업의 분야별 문화예술 지원 현황

(단위:백만원, %)

지원분야

금액

비율

인프라

25,181

14.72

영상/미디어

428

0.25

공연예술

26,775

15.66

미술/전시

96,549

56.45

문학

2,276

1.33

축제/행사

9,917

5.80

문화교육

3,693

2.16

전통/민속

448

0.26

기타

5,755

3.37

총계

17,022

100.00

자료:한국메세나협의회(2005) 2004년도 연차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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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정책의 흐름과 역사

문화관련 글들(ktp) 2007/07/02 02:18
 

문화예술정책의 흐름과 역사


박인배

민예총 이사

함께하는 삶과예술 대표





1. 문화예술정책의 여러 갈래


문화정책이라 하면 먼저 국가의 문화정책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민간 차원의 사회운동을 벌이는 단체들의 문화예술운동과 관련된 정책방향이 있다.


7,80년대 상황으로 보자면 이 두 흐름은 서로 대립관계에 있었다.

1961년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와 남북분단의 냉전이데올로기로 독재정치의 정당성을 유지하였다.

민주화운동세력은 70년대부터 조직화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 광주항쟁이 유혈진압당하자 훨씬 치밀한 운동론을 수립하였고, 대중적으로 더 큰 설득력을 획득하기 위해 대동놀이와 노래운동 같은 문예운동의 방법들을 활용하였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였으며, 그 이후로는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여 갔다.

그 민주화운동의 전(全) 기간 동안에 한국의 문예운동은 독자적인 조직과 정책을 유지하여왔다. 전체운동이나 부문운동의 문선대적 역할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문화예술운동의 고유한 영역에서의 정책방향을 수립하였다. 


물론 문예운동 내부의 정책방향들도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여러 분파들이 존재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입장을 가지는 것조차도 거부하고 예술의 장르 내적인 발전만을 고집하는 경향들도 있었다.


이와 같은 문화예술정책의 다양한 갈래들은 국가 문화예술정책과의 조응 또는 갈등 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정책노선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국가문화예술정책 또한 단일한 방향으로 유지될 수는 없으며,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정치권력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세계화 환경의 영향으로 여러 갈래의 엉킴이 더욱 복잡하게 되어 있다.


2. 정부 내 문화부의 설치


한국 정부내 문화부 출범은 1990년도이다. 그 이전에는 문화공보부로 문화정책의 중심이 정부시책의 홍보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실제는 독재정권의 안위를 위한 우민화정책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한 정책의 후유증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문화부의 출범은 87년 6월 항쟁 이후 드러난 사회적 제 갈등을 문화적으로 수용(민주화운동세력을 체제내화)할 필요에 의해서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88년도에 발표되었던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발전 기본계획’을 모델로 ‘복지문화’, ‘화합문화’, ‘민족문화’, ‘개방문화’, ‘통일문화’ 등의 목표를 설정하고 출범하였다. 이후 김영삼 정부 시절(1993-1997)에는 체육과 청소년부를 통합하여 문화체육부가 되었고, 위 기본방향 중의 하나인 ‘문화복지국가’가 국정의 목표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이 기본방향이 잘 못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계획들은 올바른 실천으로 실재화되지 못하였다. 빠른 성과를 과시할 수 있는 이벤트성 사업들을 확장시켰을 뿐이었다. 문화복지국가를 경제성장과 같이 고도성장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 잘못된 것이었다.



3. 문화부 문화정책의 기본방향은 왜 실재화되지 못하였나?


  문화정책에서 잔존문화의 영향


한국은 1945년, 40년에 걸친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 긴 식민지배를 겪었던 나라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그 강압의 정도는 매우 심각하였다. 

해방 이후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수립하였으나 한반도는 전쟁과 분단을 겪었다.  민주사회는 민주헌법의 선언이나 정치제도의 구성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현대정치사에서 너무나 뼈저리게 느껴왔다.


  문화예술에서 ‘탈식민주의’의 과제


민주주의의 내용을 담을 ‘근대예술’도 다만 형식에 치우쳐 있었다. 한국의 근대예술은 일제의 식민지 문화정책에 의해서 전통문화를 단절시킨 자리에 서구의 근대문화를 이식시킨 것이었다.  여기에 문화적 사대주의가 함께 심어졌다.

  해방 이후, 남한에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1948년-1960년)은 이러한 일제잔재의 청산을 외면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제가 조선 지배를 위해 활용하였던 반(半)봉건적 질서를 그대로 온존시켜 민주주의 문화가 깊게 뿌리 내릴 수 없게 하였다. 분단으로 비롯된 냉전체제의 반공이데올로기와 친미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문화제국주의 노력도 만만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대체된 신식민문화가 자리잡았다. 지식인사회 전반에 대미 사대주의가 지금까지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군사문화의 잔재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1961-1979)에서는 ‘산업근대화’라는 명분 속에 민주주의도, 문화적 가치도 모두 팽개쳐졌다. 문화예술은 산업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그리고 독재권력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도구’로 활용되었다.

이와 같이 개개인의 창의적 발상을 꽉 막아놓은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여타의 불만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퇴폐적 대중문화가 조장되었다. 사회적 비판을 수렴시킬 수 있는 민주주의문화는 각종 검열제도에 의해서 봉쇄당하였고, 일제시대 이래의 감상주의(感傷主義)가 확장되었다. 독재정치에서 흔히 사용하는 3S(Sex, Sport, Screen) 문화정책이 국가적 시책으로 활용되었다. 광주항쟁의 희생 위에 집권한 전두환 정권(1980-1987)은 중화학공업의 토대를 확장하고 고도성장의 신화를 계속 이어갔다. 국가독점자본으로 비대해진 재벌구조는 정경유착․관치금융의 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얽어갔다. 향락산업도 동반성장하였다. 이와 같은 부조리에 대한 비판은 ‘경제위기’와 ‘빨갱이’라는 단어에 의해서 가로막혔다.


위 신식민문화와 군사문화의 발생 근원은 힘을 많이 잃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잔존문화로서의 영향력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한반도의 평화가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고, 6자회담의 결과 남북당국자간의 대화가 재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월말의 어느 여론조사에 의하면) 70%의 국민들은 북에 대한 지원을 줄여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는 북의 실상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과거냉전시대의 향수(鄕愁 - 또다른 감상주의)를 부추기는 독과점 언론매체들의 영향이 크고, 그들 지식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해묵은 사대주의가 근원이라고 볼 수 있다.

“(위에서) 까(하)라면 깐(한)다”식의 군사문화 또한 그것을 생산하던 군인출신들은 국가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잔존문화로서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인맥으로서의 잔존 정치세력도 거대할 뿐만 아니라 과거 군대를 다녀온 대다수 남성들의 의식구조 속에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 결과 민주화운동이 일상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을 강력하게 저지하여 왔다. 중앙정치에서의 풍향계가 지역 차원의 선거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최근 몇차례의 선거가 이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실제적인 문화의식의 흐름으로 볼 때,  87년 6월 항쟁 이후 유네스코로부터 도입된  문화정책의 기본방향은 실재화될 수 없는 문화적 지형 위에 놓여 있었다. 특히 그를 집행해야 했던 당시의 문화부 관료들 또한 잔존문화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있었기에 ‘표리가 부동’ 혹은 ‘복지부동’하고 있었다. 그 결과 문화부 문화정책의 기본방향은 그저 화려한 말잔치에 다름없는 것이 되었고, 표상으로서의 기본방향일 뿐이었다.






4. 문화산업의 국가 기간산업화


김영삼 정권(1993-1997)의 말기에 IMF를 맞이하여야 했다.

김영삼대통령은 군인출신 대통령의 연속을 단절시켰고, 이전의 민주화운동에서도 일정한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였었다.  이때부터 민주화운동세력의 일부가 제도권 정치 속으로 결합되어 들어갔다.

그러나 이 새로운 문민정권은 1990년대의 세계화 조류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였다. 1997년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외환위기와 더불어 한국경제는 IMF 관리체제 아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정권(1998-2002) 시절, IMF관리체계 아래에서 신자유주의의 기조에 따라  강도 높은 산업구조조정이 강행되었고, 이 구조조정 가운데서 많은 실업자가 생겨났다. 이 실업자들을 새로이 흡수할 곳은 어디인가? 그것은 21세기형 ‘지식기반산업’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였다. 이 지식기반산업은 공장의 설비를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창의력을 더 필요로 하는 산업이다. 문화․관광산업이 그중의 중요한 부분이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경제발전논리에 밀려 문화정책 따위에는 관심을 기울일 여지가 없었는데 사정이 바뀌어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면서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그 실제는 ‘문화산업의 세기’로 해석되고 있었다.

문화산업을 21세기의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애니메이션․영화 등 영상산업 △게임산업 △음반산업 △방송영상산업 △출판․인쇄산업 △패션 및 디자인산업 △도자기 등 공예산업 등이 7대 전략부문으로 설정되어 집중지원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문화관광부의 예산은 국가예산의 1%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화산업의 기반이 되는 문화예술의 진흥 없이는 결코 창의력이 계발되지 않으며, 창의력이 없는 문화산업은 경쟁력 또한 없다. 그 결과 김대중정권 말기에 문화산업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기초예술’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문화산업과 기초에술에 대한 지원의 균형을 갖추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5. 문화참여를 통한 문화기본권의 확보


21세기에 들어선 한국사회는 대중의 자기 발현욕구가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의해서 빠른 시간 안에 조직되어 집단적으로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그 배경에는 90년대 이후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 따른 한국사회의 문화소비사회로의 진입, 정보화 인프라의 급속한 확장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물질적 힘 중심의 ‘근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정보화’의 시대가 실제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라는 이름의 한국 축구 응원단의 모습에서 이러한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인터넷에 의해 수백만 명이 자발적으로 동원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적 잇슈에 대해서도 ‘촛불집회’라는 형식으로 이어졌고, 그해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인터넷 대중의 힘에 의해 역전승하였다.


이러한 배경 하에 등장한 노무현 정권은 ‘자율․참여․분권’을 국정지표로 내세웠으며, 문화정책의 방향도 이에 맞추어 재구성되어, 『창의한국』이라는 제목의 책자로 발표되었다. 『창의한국』은 ‘창의적인 문화시민’, ‘다원적인 문화사회’, ‘역동적인 문화국가’라는 3대 추진목표를 두고, ‘문화참여를 통한 창의성 제고’, ‘문화의 정체성과 창조적 다양성 제고’, ‘문화를 국가발전의 신성장동력화’, ‘국가균형발전의 문화적 토대구축’, 평화와 번영을 위한 문화교류협력 증진‘이라는 5대 기본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탈근대의 과제

『창의한국』의 기본방향과 15년 전 문화부 출범 당시의 문화정책 기본방향을 비교해보면 용어상에서는 별반 달라진 바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의 문화정책의 중심은 크게 바뀌어 왔음을 살필 수 있다. 그것은 정권의 의지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시대상황의 변화가 더 큰 몫을 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문화정책이 시대상황의 변화에 대응하려 하여도 잔존이데올로기에 의해 발목을 잡히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참여정부의 출범과정에서 잔존문화의 영향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던 이유 중의 하나는 정보화시대의 위력이 더 크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은 경제성장 중심의 근대적 발전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고, 지식인들의 사대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수용 이외에 다른 대안을 가지지 못하였다. 『창의한국』조차도 다른 부처의 ‘완강함’을 뛰어넘기가 힘들었다.




<『창의한국』의 기본방향>


문화와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문화교류협력 증진


문화와 지역

국가균형발전의

문화적 토대 구축

문화와 사회

문화의 정체성과

창조적 다양성 제고

                                 

문화와 경제

문화를 국가발전의

신성장동력화

 

문화와 개인

문화참여를 통한

창의성 제고


  ο 정보기술의 발달은 방송과 통신을 융합시키고 있으며, 채널의 무한한 확장이 기술적, 상업적 양 측면에서 가능해지고 있다. (정보화의 진전과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 증대)

   - 정보기술이 표준화되고, 기업경영, 생활영역, 공공서비스 등의 각 분야에 적용되어 효율성을 높이는 단계에서 ‘지식’이 제4의 생산요소로 중요하게 자리잡았다.

   - 소비자의 취향이 생산에 바로 영향을 미침에 따라 생산자와 소비자의 결합(Prosumer)이 이루어지고, 소비자의 다양한 선호가 반영되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확대된다.

   - 물질적 필요의 최소기준을 넘어섬에 따라 문화적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분위기와 함께 다양한 문화적 가치에 대한 중요성이 증대한다.

   - 기존의 고전적 예술장르체계가 뉴미디어의 영향으로 상호 융합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근대적 특성에 의해 1-2백년 내에 갑자기 융성하였던 특정 소장르들의 경우 쇠퇴가 불가피할 경우도 있다.


  ο 경제, 문화 분야에서 국가 간의 경계는 약화되고, 정치적으로도 국가주권이나 영향력은 약화되는 추세이다. (세계화와 다문화사회의 도래)

   - 정보화에 의해서 촉발된 자유무역의 확대는 재화와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집단의 경계를 허물어 각국의 노동자들이 직업을 찾아 이주하게 되고, 국제관광의 수요도 문화체험 위주로 활성화되어 서로 다른 문화의 접촉 빈도가 높아진다. 

   - 문화의 상품화는 문화산업자본의 이윤추구에 따라 미국중심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의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의 편재현상을 초래한다. 

   - 한편 미국중심의 세계문화의 확산은 문화다양성협약과 같은 대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문화블럭화 경향을 부추기기도 한다.

   - 국내적으로는 미국중심의 세계문화 추종과 동아시아적 문화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병존하고 있으며, 민족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각성도 높아지게 된다.

   - 그러한 민족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각성은 국수적 민족주의에 의해서는 이미 국내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여러 다른 민족문화와의 공존이 불가능하게 되므로 다문화사회의 공존양식을 찾게 된다.


  ο ‘고용없는 성장’과 사회적 효율성을 위해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여파로 자본(지식문화자본도 포함될 수 있음)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소득 격차가 커지게 된다.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화와 문화적 충돌의 위험)

   - 소득의 격차는 사회 계층화를 부추기어 생활양식, 소비행태, 문화향유방식 등에서도 양극화를 뚜렷이 드러나게 한다.

   - 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화는 프랑스에서 이슬람계 이주민 자녀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와 같이 문화적 충돌이 폭발의 계기가 될 수 있다.

   - 또한 부모세대의 문화향유의 양극화에 의해 그 자식들이 문화적 감수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적절한 문화예술교육을 받지 못하게 될 경우, 창조성이라는 문화자본을 축적시키지 못해 ‘가난의 대물림’이 진행된다.


  ο 세계화의 지배적 추세가 강화 될수록 이에 대응하는 지역화 요구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때의 지역화는 단순히 공간적으로 흩어져 있는 지역만이 아니라 ‘세계화와 지역화의 공존(glocalization)’, '밑으로부터의 세계화‘등의 개념을 포함한다. (지역화 요구의 증대와 미래지향 생활양식의 추구)

   - 지역문화의 뿌리에 입각한 문화다양성의 확산과 이를 위한 범세계적 교류, 특히 세계화의 선두에 선 국가들에서조차 생태적 각성과 같은 성찰적 문화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 기술적으로도 정보의 민주화, 정보커뮤니티의 활동 등은 질 높은 문화콘텐츠의 창조로 이어질 것임.

   - 자연에의 연계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예술활동에 대한 참여의 욕구가 높아질 것이며, 생활권 차원의 예술동아리활동에 대한 추구가 강해질 것이다. 


6. 문화정책의 생태계적 패러다임


참여정부 문화정책의 현황과 한계


  ㅇ 문화예술정책 추진의 통합적 관점의 부족

    - 『창의한국』은 광의의 문화개념에 입각하여 그  정책영역으로 민족적 정체성, 문화유산과 예술, 교육과 학습, 자연적이고 인공적인 경관, 대중매체와 문화산업, 관광, 스포츠와 레저활동 등을 설정하고, 이들 영역간의 상호연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 정부내 상호연계성의 필요를 설명하기 위해 타부처와 협력이 요구되는 사업들을 예시하고 있다. 타 부처에서도 문화분야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확산되고 있으나, 독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을 뿐, 실제 사업으로서 문화부와의 연계 실적은 미약하다. 

   - 문화부내에서도 문화예술교육과, 지역문화과, 공간문화과 등이 신설되어 정책영역의 재편을 편제화하였으나 이전의 실국, 과단위 정책추진의 관행이 강하게 남아 있다.


  ㅇ 기존의 문화기반시설은 대부분 개발 우선 정책에 의해 건설되어, 문화적 필요와 프로그램 관리 운영 체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어진 경우가 많아 현재 이용률이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 (공간문화의 난삽함)


  ㅇ 2006년 문화향수실태조사의 결과는 고급예술에 대한 향수율이 6년 연속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공급형 지원정책을 중심으로 하였던 예술정책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제고를 요구하고 있다. (기초예술의 위축과 공급형 지원정책의 한계)

   - 예술현장에서 새로운 장르와 경향의 출현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비해 예술위원회의 장르 소위원회 구성은 ‘고전적’이어서 새로운 비전을 발빠르게 구체화하지 못함.

   - 미래에의 전망을 이끌어줄 수 있는 예술인 정책의 부재는 기초예술 창작역량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ㅇ 일제의 지배 이래 전통문화의 원만한 계승이 단절된 채 외래문화의 급속한 유입은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극도로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민족문화 정체성의 위기).


ㅇ 2006년 문화향수실태조사에 의하면 대도시와 중소도시, 학력간, 소득격차간 문화향유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사회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경험률도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소득격차에 따른 경험률의 편차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100만원 미만의 경우에는 평균치의 1/5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수준으로 드러나 있다. (문화향유의 양극화 심화와 대물림)


문화예술의 생태계적 구조 확립


ㅇ 왜 생태계적 접근인가

   - 분야를 가로지르는 이슈(cross-cutting issues)에 대응하는 통합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의 각 분야별 연관관계를 생태계의 먹이그물과 같은 관점에서 그려보아야 한다.

   - 초기의 문화예술생태계 논의에서는 문화산업의 토대로서의 역할을 하는 기초예술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어 양자의 순환구조가 원활해야 상호발전을 이루는 모형으로 제시되었으나, 이 양자 순환구조의 모형(아래 그림의 기초예술과 문화산업의 관계)은 문화산업의 실질적인 수용에 해당하는 생활권의 문화소비활동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일반국민의 일상적인 문화활동을 정책 영역으로 설정하지 못하였다.


  ㅇ 자생적 토대의 구축을 위한 저변확대

   - 기초예술의 고사(枯死) 위기는 그 자체만으로는 시장의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창작활동을 직접 지원하는 공급형정책으로는 지금까지 별 실효가 없었다.

   - 문화예술의 생태계적 구조를 그리면 기초예술은 원래 수용자로서의 대중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해왔으며, 현재 문화산업과 대중매체와의 시장경쟁에서 밀려난 상태이지만, 직접 참여하는 예술체험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리라는 전망에 의해  대중 속에서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화된 생활권을 토대로 하는 문화예술생태계 모형


   - ‘작은 단위로 지역화된 생활권’은 일반 국민들의 일상적 삶의 영역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문화소비행태는 하나의 ‘대박’ 영화에 천만 이상의 관객이 몰리는 ‘문화적 쏠림현상’이 심각하다. 대중매체에 대한  ‘일방적 수용’의 경향이 이러한 현상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 그 결과 문화예술생태계의 순환이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어 기초예술이 고사위기에 놓여 있는 바, 이는 자연생태계에서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한 농업이 토양을 황폐하게 만든 것에 비교될 수 있다.

   - 생활권에서의 문화소비가 ‘문화적 쏠림’ 현상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문화상품이 비판적으로 수용되어야한다. 이러한 비판적 수용역량은 생활예술동아리의 활성화와 그 활동경험으로 길러질 수 있다. 창조활동의 경험이 풍부할수록 문화상품의 질적 수준을 올바로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 창조역량을 가진 소비자들에 의해서 문화적 생비자(Pro-sumer), 즉 UMC(User Made Culure)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경향이 자리 잡을 때 문화산업의 제작구조도 단일품종의 대량판매(대박, Block-buster)에 목매달지 않고, ‘다품종 소량판매’로 수익을 올리려는 건실한 제작방향을 가지게 될 것이다.


  ㅇ 국민의 문화감수성 증진(확대된 개념의 문화복지 실현)

   - IMF 이후 문화정책의 새로운 과제는 ‘창의성교육’이었다. 국민의 창의적 역량이 새로운 세기 국가경쟁력과 사회발전의 핵심적 동력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2004년 6월 발표된 ‘창의한국’과 ‘예술의 힘’도 이러한 과제의 추진이 핵심적 내용이었다. (‘창의한국’ P25-35).

   - 그 결과 문화예술교육진흥법이 마련되어 문화예술교육 관련 사업이 급속히 확대되기는 하였으나 교육시행의 양적 확대에 대한 통계만 있을 뿐 문화감수성의 증진에 대한 성과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 그 이유로는,  학교에서의 교육이 여전히 근대적 교육의 산물인 입시위주의 틀에 갇혀 있고, 둘째 문화예술교육의 양적 확대 수준이 전체 국민을 포함할 정도의 공급량을 절대로 가질 수 없고, 마지막으로 문화예술교육의 성과가 그리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는 본질적인 측면도 있다.

   - 공급형 문화예술교육정책의 급속한 확대는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특히 질적인 측면에서)를 가져올 수 있고, 이는 자생적 시장구조 내에서의 수요의 양적 확대를 선도할 촉매로서의  공공정책이 오히려 자생성의 모델을 지체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 국민 스스로가 ‘문화참여를 통한 창의성 제고’를 이루어내어 ‘창의적인 문화시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그러한 수요가 생겨나도록 사회문화예술교육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한 통합적인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생활권의 자생성에 기반한 선순환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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