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만남에도 역사의 불가결성은 있다!!

책 리뷰 2009/12/10 17:34

"하찮은 만남에도 역사의 불가결성은 있다."

<전작시 만인보1  고은 지음, 창작과 비평사, 1986>

만인보 1
글자 그대로 만 명의 사람들과 함께 걸어간다는 전작시  만인보는 시로 쓰는 인물사전이다.

해바라기의 화가 고호와 문둥이 시인 한하운을 동경했던 저자 고은의 본명은 고은태, 1933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생의 환멸로 이어진 출가와 자살기도, 해방 전후와 전쟁 등 극심한 정체성의 혼돈과 갈등으로 파행적 일타행위를 일삼았던 걸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청년기의 방황은 1958년 조지훈 등의 천거로 현대시에 '폐결핵'으로 문단에 데뷔함으로써 일단락된다.

첫 시집 '피안감성'(1960)과 '신 언어의 마을'(1970) 등 초기시에서는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다. 그러나 1962년 환속, 1970년 삼선개헌 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정치적 현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1974년 '문의 마을에 가서'를 발표한 이후부터는 어두운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재야운동가로서, 현실 참여시인으로서 치열한 저항의식과 역사의식으로 시 세계가 바뀌어간다.

만인보 시리즈는 우리시대에 흔치 않은 연작 시집으로서 1986년 '만인보1'이 세상에 나온 이래 26권이나 나오기까지는 21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며 이 연작시집을 통하여 3000명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혼란스러웠던 80년대 벽두 남한산성 근처에 살면서 구상하였다는 만인보는 무지랭이 농투산이부터 일제시대 노동투사 강주룡, 역사속의 정여립까지 불러낸다. 시대와 인물을 종횡으로 아우르는 해원굿판을 펼쳐주는 오지랖이로 수많은 사람들의 소리를 찬찬이 듣게 해준다.  또한 만인보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단숨에 한 장의 시로 읽어낼 수 있는 알찬 전기문이면서 친근한 사투리와 운율이 아무나 흥얼거려도 될 편안한 노래이고 한 페이지의 자서전이다.

만인보1은 저자 고은의 어린 시절 기초 환경을 만들어준 100인에 대한 고백이다.

조부모, 부모 형제, 친가와 외가를 넘나들고 동네방네 사람들, 아버지 보다 더 좋았던 '엿장수 아저씨' 심지어는 '내시 처선', '고대 혜공', '곽낙원' 등 역사책 속에서나 보았음직한 인물들까지도 할 말 있다며 등장한다.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단연 수 많은 인연 중 으뜸이다. 가갸거겨 글을 가르쳐주어 주룩주룩 책을 읽게 해주고, 자다깨어도 그대로 켜져 있는 불빛 같은 동네 아저씨이며 저자 고은의 어린세상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이다. 등짐장수 딱한 사정 듣고 세경 뚝 떼어서 돈을 꿔주는 배포 두둑한 의리파 사나이는 어린 마음에도 한없는 존경으로 닮고 싶은 인물이다.

인간사 진선미로 표현되는 것 자체가 위선일지도 모르는 '만인보1'의 주인공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없는 사람들이지만 역사의 불가결성은 하찮은 만남에도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만인보1'은 시인이 가장 맑은 눈동자로 바라다 본 어린 세상이었으며 닥쳐올 어두운 세상을 향해 내미는 부적과도 같은 액맥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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