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세 번째 마당- 원주민의 저력 볼리비아 (우유니, 라파쓰, 코파카바나 편 2011. 1/28-2/4)
2박 3일간 우유니사막 체험 후 세계 상 거지 경연대회를 벌인다면, 아마도 일본인 여행객 커플이 단연 으뜸이라는 것이 로자의 생각이다. 일단 그들은 이목구비도 그저 그런 대다가, 대충 아무렇게나 걸친 히피 의상하며, 개발 세발 산발한 머리가 세계 왕 거지로 손색이 없다.^^
로자는 선크림, 비비크림에 차양이 넓은 모자에 덕지덕지 바르고 안간힘을 다해 얼굴을 가려 최강거지 형상은 면했지만, 카라는 머리에 두건을 뒤집어쓰고, 선글라스로 안면의 반을 가려 보아도 수염은 거뭇거뭇 제멋대로 자라고, 흙탕친 바지에 운동화에
일본인 커플과 오십 보 백 보이다. 늘씬, 수려하게 잘 빠진 하얀 청년들의 모습도 거기서 거기~ 불그죽죽 타들어간 피부에, 튀김기름에 뻥 하고 한 번 튀겨 낸 듯 삐죽빼죽 삐친 머리에 흰옷인지 검은 옷인지 구분이 안가는 거무죽죽한 옷차림에... 2박 3일 우유니 사막 체험 끝나는 날, 누가 누가 왕창 망가졌는지 세계 글로벌 걸인 축제라도 벌이는 것 같다.^*^

뭐니 뭐니 해도 평생 잊을 수 없이 즐겁고 아팠던 우유니 소금 사막 여행을 뒤로 하고 헤어지는 날, 그새 정들었다고,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고, 다시 만날 날 고대하면서 동으로 서로, 남으로 각자의 행복한 발길을 돌린다.

남미대륙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입국 비자를 요구하는 몇 나라 중 하나인 볼리비아에 불법체류하며 희희낙낙 사막 여행을 즐긴 것이 바로 엊그제인데, 수도 라파쓰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미국인들에게는 비자 발급 비용으로 100달러를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얼마를 요구하는지 정확히 몰라, 여행자들 각자가
서로 다른 정보를 전해준다. 2011년 1월 28일 오후2시 30분, 우유니에 있는 출입국 사무실 문이 열렸다.
강력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그곳에서 친절(?)하게도 별다른 조건 없이 입국비자 비용으로 1인당 380볼리비아 페소를 요구한다. 황열병 주사 접종에, 콜레라 예방 검사표에 이것저것 복잡한 조건을 일시에 마무리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출입국 사무소에서 직접 입국 비자 비용을 현금으로(카드는 안 된대요...) 건네는 초간편 시스템이 이 나라 곳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나서서 돈 벌기로 작정한 것인지, 7-9살 애들도, 무뚝뚝한 표정의 어른들도 여행객들을 상대로 물 한모금도, 화장실 사용료도 모두가 그들에게는 외지인이 건네주는 푼돈이 되고, 쌓이고 쌓여 종자돈이 될 것이라 기대하면서... 관광지라서 어련히 그러려니 생각하려해도, 원주민들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여행객들과 관광객들이 오고가며 이들의 정체성을 훼손시켜 놓았다고 하더라도,
어린 아이들마저도 모두다 경제 전선에서 한몫 하는 것을 보니
기특하다 해야 할지, 너무하다 해야 할지, 자본의 횡포를 이미 알아 버린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2011년 1월 28일 저녁 8시, 우유니에서 출발한 버스가 1월 29일 아침 7시에,
볼리비아 수도 라파쓰까지 11시간이 걸려 힘겹게 도착하였다. 어둠의 산길을 굽이굽이 돌고, 출렁 출렁 쏟아질 것 같은 무수한 별들과 벗 하면서, 울퉁불퉁 비포장도로에 엉덩이만 무수히 난타당하는 아픔에 쓰라리게 왔다. 어느 여행객 왈, 볼리비아로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치마를 입으래요... 눈치가 삼치인 로자 왈, 난 없는데 왜요? 버스에 화장실이 없어서, 소변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으면 운전수에게 달려가 하소연을 해야 한대요... 아저씨...쉬야 마려 죽겠어요..제발 차 좀 세워주세요..흑흑
원주민 운전수, 머쓱한 얼굴로 군말 없이 급정차를 해준대요... 그러면 쉬야가 급한 남녀들은 버스에서 후딱 내려, 여기저기서, 바지를, 치마를 울타리삼아 시원한 배설의 기쁨을 누린대요.

허나, 걱정도 팔자였다. 비좁고 물도 잘 안내려가는 화장실이었지만, 쏟아지는 별님들 부끄럽게
사막위에 쪼그리고 앉아야 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마시고 싶은 쥬스도 시원한 물도 마다하고 버스에 올랐다는 생각에 아쉬웠지만, 덜덜 거리는 버스 안에서 생리 현상을 해결 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욱 컸다.
 평화를 상징하는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쓰는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많은 고통과 쓰라림이 지금 이 도시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꽉 들어찬 낡은 차량 행렬에다, 식전 댓바람부터 거리마다 가득한 초라한 사람들,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의 초록이 너무도 아쉬운 곳곳, 눈도 코도 매연으로 쓰라린 라파쓰의 첫 인상은 우리나라 70년대의 달동네를 연상 시킨다.

고산지대에 빽빽하게 모여 있는 붉은 벽돌집 들, 저 꼭대기에서 어떻게 사람이 오고 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잠시, 시커먼 연기를 흩날리며 거침없이 들이미는 낡은 오토바이와 칙칙한 자동차들마다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로 그득하다.
에스페란티스토 단테(Dante)와 레안드라(Leandra)는 척박한 볼리비아 에스페란토의 세상에 한 줄기 희망이었다. 이 기특한 오누이는 에스페란토의 정신에 감화를 받으며 독학으로 배움을 이어갔다고 한다. 두 사람의 안내로 라파쓰 시내 관광에 카라만 홀로 나섰다. 로자는 계속되는 고산증의 두통으로 휴식을 취했고, 아쉬운 대로 저녁 식사를 자연식 레스토랑에서 함께 하면서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레안드라 그녀 자신도 작년 쿠바 세계 에스페란토 청년대회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며칠간 고산증에 시달렸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므로 로자의 두통은 당연한 것이라고 위로한다. 이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라파쓰의 북쪽에 있는 코파카바나(Copacabana)로 향한다. 하늘아래 가장 가까운 호수
티티카카를 사이에 두고 페루와 둘로 나누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곳은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에 있는 코파카바나와 같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의 재탄생에 대한 바람으로 이름을 지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2011년 1월 31일 오후 2시, 라파쓰에서 출발한 버스를 2시간 넘게 타고, 이제 코파카바나에 다 왔나 싶더니, 비틀거리는 보트를 타고 San Pedro de Taquina라는 곳까지 출렁 출렁 가야 한 대요. 허술하게 나무로 잇대어 만든 바지선 위에 올려 진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엉덩이는 하늘 향한 채로 폼도 엉성하게 넘실넘실 호수 타고 넘어온다.

하늘나라 약수터가 이 보다 더 신비할까? 해발 3.000여 미터 높이의 경이로운 티티카카호수를 보려고 몰려드는 전 세계의 관광객들로 연신 코파카바나가 들썩거린다.

때맞추어 매년 2월 2일에 시작하는 축제(Virgen de Candelaria) 시작을 알리는 축포 소리에 온 동네가 흥겹다. 덩달아 함께 울려 퍼지는 수자폰, 트럼펫 등 관악기의 웅장한 소리가 지축을 흔들며 신명을 돋운다. 하늘빛, 은빛, 연보라 등 원색적인 색깔이라기보다는 옅은 파스텔 계열의 세련된 색채가 원주민들의 오색 찬란한 전통의상과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해준다. 이곳 주민들도, 관광객들도 하루 종일 울려 퍼지는 몽환적인 음악소리에 취해 덩실 덩실 춤추고, 맥주 회사의 협찬으로 거리마다 푸짐하게 술 인심이 넘친다. 원래, 이틀 축제라고 하던데 못다 푼 흥이 아직도 남았는지 3일째 되는 날에도 연신 거리는 흥청거린다.

2011년 2월 3일, 매일 아침 손님처럼 오는 비는 오늘도 변함없이 바람과 함께 거세게 들이닥쳤다. 티티카카호수를 타고 태양의 섬(Isla del Sul)을 한 바퀴 돌고 오는 일정이 아무래도 순탄치 않을 것 같다. 잠시도 가만히 서 있지 못하는 조그마한 보트는 밤새 축제 놀음에 취한 사람 마냥, 이리 비틀 저리 비척 아슬아슬하다. 약 5분도 채 지나기 전에 속이 울렁거리며 함께 탄 20여 명 얼굴들의 명암이 갈린다.
이곳 주민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다로 이 출렁거림을 이겨내지만,
로자를 비롯한 관광객 6-7명은 눈이 감기며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휘청 거린다.

심한 입덧을 하는 사람처럼, 냉수에 제육볶음밥이라도 말아 먹은 것처럼 심한 불협화음으로 분출하려는 어제 먹은 음식들을 꾹꾹 눌러 삼키며, 안간힘을 다해 오랜만에 만나는 배 멀미와 싸워본다. 아~ 속 뒤집혀 미칠 것 같아... 이 양반아..c..c. 다음에 또 한번 배 타고 관광만 해봐라...바로 이혼이야... 옆에 앉아 훌쩍이는 로자를 위로하는 죄 없는 카라에게 괜히 퍼부어대며 이 괴로움을 면해 보려 해도, 이겨낼 방법이 없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거센 비바람에 시달린 로자 같은 약골 관광객들이 비실비실 새 하얗게 모래 사장에 쓰러진다.

햇님이고 달님이고 다 싫다고... 당신이나 열심히 구경하라고...나, 돌아갈래...찡얼찡얼 (두 사람이 관광비용으로 50 볼리비아 페소 지불한 것이 아깝지만...) 그러나 되돌아 갈 일도 끔찍, 앞으로 4시간 후인 오후 3시 반이 되어야 코파카바나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단다. 태양의 최고로 아름답다는 이 섬을 여러 각도로 돌아보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얻은 것은 여러 섬들과 어깨동무하며 펼쳐진 티티카카호수가 대서양과 형님 아우 할 만큼 수정같이 맑고 망망대해의 광활함을 간직한 신비한 곳이라는 것이다. 이미 2주일간 대서양 뱃길 여행을 경험한 우리에게는 호수도 큰 바다도 모두가 대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안식이며 함께 가꾸며 지켜나가야 할 가족이라 생각한다. 훼손 말고 있는 그대로를 고이고이 소중하게...

2011년 2월 4일 금요일, 오늘은 일반 버스로 페루의 마추피추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 푸노(Puno)로 향하는 날이다. 근데 호텔 관리인의 근심스런 얼굴로 문제가 생겼다고 알려준다. 로카(Loca)라는 국경지역에서 급감하는 학생들로 인해 지방 정부의 폐교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페루로 향하는 도로를 봉쇄하고 차량 출입을 막고 있다한다. 페루로 오늘 기어이 가야 한다면 코파카바나에서 쉼 없이 걸어서 한 시간은 가야 페루 국경에 도착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골 분들이 말하는 한 시간은 절대 한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 프랑스 커플과 배! 째라 부부 터벅거리며 울퉁불퉁 시골길 도전에 나섰다. 사막체험도 했는데 이 까이꺼 하면서... 오고 가는 여행객들이 등짐 가득 짊어지고 물 한 병에 의지하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흙탕길을 휘어 휘어 간다. 가도 가도 국경이 안 보인다. 산이 바로 저 앞 인줄 알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네... 점점 휘어지는 허리, 헥헥 거리느라 입도 못 다물고, 날리는 흙먼지 다 마시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약골 체력, 다리는 천근만근, 프랑스 청년들은 저 만치 앞서가고... 이대로 가다가는 그냥 볼리비아 시골 바닥에서 폭삭하고 부서질 것만 같다. 아악~

그러나 아직은 쓰러지지 말라는 신의 뜻^^ 거짓말처럼 말라비틀어진 노새 한 마리와 두 어린이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10페소에 우리 짐을 날라 주겠다는 깜찍한 흥정을 제안한다. 마지막 남아있는 9페소로 결정하고 앙상한 노새 등짝에 세 개의 짐 가방을 올려놓았다. 이제야 시골 들판이 정겹게 보인다. 콧노래가 절로 나고, 얼룩 아기 돼지도 한가로이 풀을 뜯는 재미있는 광경에 웃음 지으며 여행이 고문수단이란 원뜻을 새삼 되 새겨본다.

스페인 제국 식민지 독립 투쟁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의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볼리비아는 원주민 출신 대통령 모랄레스(Evo Morales)를 2005년에 이어 2010년 재선에 성공케 함으로써 남미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모랄레스는 2000년 고차밤바라는 지역에서 물 민영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민중 시위를 주도함으로써 그의 지도력을 입증 하였다. 남미 대륙 제2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고, 수도 라파쓰는 1991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받는 등 그동안 세계인의 관심 밖에 있던 나라에서 원주민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는 자존심 있는 국가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포제라’라는 굵은 주름치마와 챙이 좁은 모자를 머리위에 살짝 얹어 놓고 등 짐 가득 짊어지고 가는 검은 원주민들의 행렬을 보면서 지금은 비록 고단한 일상이지만 볼리비아 내일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원주민들의 강인하고도 건강한 근면함을 볼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