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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체제를 넘어,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에 맞서서 (김명인)
문화관련 글들(ktp) | 2007/06/12 23:49
 

6월민주항쟁20년기념 대토론회



주최 및 주관 :

공동 기획 및 진행 : 문화단체



            다시 민중을 부른다

     - 87년 체제를 넘어,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에 맞서서


  김명인 (인하대 교수, 「황해문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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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이후 20년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저 20년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주최측에서도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각별한 토론의 장’이라고 했듯이 지난 20년이라는 시간이 그 20년 전의 뜨거웠던 기억에 비추어 볼 때, 본질적으로 ‘불만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지금보다 분명히 더 가난했고 더 억압받았지만 지금보다는 행복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도 행복하지 않다. 우리가 함께 지향했던 아름다운 민주적 공동체는 간데없고 대신 상품물신과 악무한의 경쟁과 승자독식의 이데올로기와 삶 전체의 자본화/식민화로 들끓는 시장의 정글만이 눈앞에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프라이팬에서 탈출했다 싶었더니 화덕 속으로 뛰어든 셈이다. 이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의 시대에도 희망은 있는가? 이 글은 그것을 묻는 글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나의 전공분야인 문학의 문제이고 나아가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 글은 지난 20년이 어떻게 이런 오늘날의 삶의 황폐화를 낳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고, 지금과 다른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모색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거칠게 묻고 대답하는 글이 될 것이다.



1. 그 2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1) 작은 혁명 뒤의 큰 반동


1987년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이 혁명적 변화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해를 계기로 해서 권위주의가 혁파되고 정권교체의 길이 열렸으며 반민주악법들이 개폐되고 과거청산이 시작되는 등 정치적 민주화가 획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물론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적 문화가 자리 잡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계급계층운동들이 시민권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것을 우리는 ‘민주화 혹은 문민화의 성취’로서 드높이 기렸고 이제 한국사회는 비로서 근대적 민주국가로서의 기본 골격을 갖추었다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일국적 감각에 익숙해 있던 우리는 그 배후에 작동하고 있던 더 큰 세계사적 반동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정착과정으로 알고 있던 지난 20년은 사실은 ‘신자유주의 세계체제’가 남한사회에 관철된 과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70년대 오일쇼크 이후로 자기운동의 결정적 위협을 감지한 세계자본은 자본의 유동성을 전 세계적 규모에서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이제까지 자본의 논리가 가 닿지 않던 공공부문 등 사회 전 영역을 상품화하는 새로운 노선을 개발하고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그것이 80년대의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며 제3세계의 민주화 도미노이고 남한에서 독재자 박정희의 퇴출이었다.

결국 박정희의 죽음과 1980년 신군부의 집권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가 수행한 남한 사회의 재편성과정이었으며 6월항쟁의 ‘성공’과 곧 이은 1987년 대선에서의 신군부잔재의 집권과정은 곧 군부독재의 형식으로는 자기 논리를 관철할 수 없었던 지배블록의 2차 재편성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로써 지배블록은 민주주의를 정치영역으로 제한하고 민주세력을 분열시켰으며 헤게모니적 지배를 확립하여 기득권을 보다 공고히 할 수 있었다.

6공 정권의 뒤를 이어 등장한 문민정부는 민주개혁을 강도 높게 진행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OECD와 WTO에 가입하고, 국내적으로는 세계화-경쟁력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고 공동체주의의 해체와 시장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확산을 몰고 와 신자유주의 체제 정착을 위한 지반을 다졌다고 할 수 있다. 뒤 이은 국민의 정부는 IMF비상정권으로 출발하여 결국 경제민주주의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결국 정치적 민주주의조차도 불구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햇볕정책의 정착을 최대치적으로 삼고 있지만 이미 남북관계는 군사적 긴장을 통한 적대적 의존관계에서 교류협력을 통한 비적대적 의존관계 단계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현 참여정부는 국가사회발전의 장기적 전망 수립에 실패하고 지배블록과 구조적 타협과 표면적 갈등을 왕복하는 동안, 시장독재체제를 완성시키고 한미 FTA를 체결하는 등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밀어붙인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난 20년 한국사회는 부르주아민주혁명의 성취과정을 겪었다고 할 수 있으며 1987년은 부르주아민주혁명으로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형성된 부르주아민족국가는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에 의해 그 자주성과 자기결정력을 심각하게 상실하고 있어 사실상 해체될 운명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2)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6월항쟁의 준혁명적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급진주의자들이 기대한 것은 노동자계급의 본격적 변혁세력화였고 그해 7~8월에 전국에서 터져 나왔던 노동자들의 전면적인 투쟁은 그 기대를 현실로 만들어 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7~8월 투쟁은 혁명적 계급투쟁이 아니라 오랜 동안 최소한의 시민적 권리에서조차 소외되어 왔던 우리 노동자들의 기본권 요구투쟁이었고 성장한 한국자본은 호황이었던 데다가 그 정도의 요구를 들어줄 여유는 있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은 결국 부르주아 민주혁명에 포섭된 셈이었고 그것은 곧 한국 노동자계급의 자본에 대한 비적대적 의존관계의 본격화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6월항쟁의 함성이 잦아들고 그해 대선의 뼈아픈 좌절과 더불어 ‘운동권’이라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그 말은 곧 변혁운동 혹은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사람들이 대중으로부터 분리되어 타자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1988년부터 1991년 이른바 강경대정국에 이르기까지 우리 중의 일부는 극좌적 경향에 빠져 대중과 유리되고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은 그 반대로 과잉접수되어 청산주의의 유행을 몰고 온다. 그것은 명백한 하강기의 피로감이었다.

1990년대의 시대정신이라고 할만한 ‘개인’의 발견은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의미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70년대까지의 ‘국민’과 ‘80년대의 ’민중‘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으로부터의 이중의 탈출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 개인은 국민됨을 충분히 극복한 결과도 아니고 민중됨을 충분히 실현한 결과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과잉결정된 개인은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 속에서 단자화된 소비주체, 혹은 고독한 경쟁주체로서만 남게 된다.

그리고 90년대 이후 운동주체의 성격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민중운동, 변혁운동이 퇴조한 자리에 다양한 시민운동이 자리 잡았지만 그것은 변화된 헤게모니도 뒤흔들지 못했고 사회전체의 신자유주의적 보수화도 막아내지 못한 채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일쑤였고, 전반적으로 자본에 기생하게 된 노동운동 역시 1999년의 좌절을 고비로 혁명성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에 걸친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20년 전에 가졌던 인간해방에 대한 희망을 신자유주의의 주구가 되어버린 제도권 민주화세력들에게 도매금으로 팔아 넘겨버리고 대부분 개인의 영역 속으로, 신자유주의 경쟁체제 속으로 도피하고 투항해 들어갔다. 그 대열에도 합류할 수 없었던 민중들은 양극화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몰아붙여져서 불안과 공포의 그늘 속에서 떠돌게 되었다.



2.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


신자유주의 시장독재가 지배하는 사회는 자본 상호간의 견제 외에는 자본운동에 그 어떤 시간적 공간적 정치적 견제와 장애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이며, 자본이 운동하는 범주 안에 들어 있는 삶의 모든 영역을 상품화하고 모든 인간을 자본화하며 자본의 필요 아래 위계화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상품이 되지 못하는 삶의 영역, 자본화되지 않는(못 하는) 모든 인간은 사회 밖으로 내몰려 존재가 부정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극단적 양극화와 불평등, 경쟁주의는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의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다.

무엇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시장주의, 경쟁주의 논리가 우리 사회의 유일한 이데올로기이자 가치관으로 자리 잡아 다른 삶과 다른 생각의 선택을 제약하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에는 세 부류의 인간만이 존재한다. 하나는 일상과 의식 전부가 시장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철저히 시장적 인간, 일상은 시장규율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의식은 그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분열된 인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상과 의식 양면에서 시장규율에서 벗어나 있는 탈주적 인간이 그것이다. 그 세 부류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일정 시간의 노동과 사회적 기여를 제공하는 한 사회는 그에게 행복하게 살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장독재 사회는 그러한 가능성을 봉쇄한다. 개인적 가능성을 봉쇄할 뿐만 아니라 자본과 이윤이 매개되지 않는 공공의 가치와 상호주체적 연대의식의 사회적 확인과 실천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기까지 한다.(교육, 의료, 복지 등 공공영역의 게토화를 보라).

어떻게 하면 이 점점 더 우리를 죄어오는 신자유주의적 시장독재의 압제와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는 삶의 자기결정권을 회복하고 상호부조와 연대의식에 기초한 삶의 공공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는 자본과 시장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진보라 불리든 아니든 우리가 처한 현상태(status quo)를 넘어서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이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 과제들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과제는 신자유주의가 현재로서는 근대자본주의가 고안해 낸 가장 최신의 전 지구적 착취기계라는 점에서 대단히 전면적인 접근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근대 이후에 대한 사유를 요구하는 세계-지구 전체가 당면한 보편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한국사회의 근대성의 성취와 극복이라는 이중과제와 관련된 특수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국적-근대적 과제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체제는 이미 지난 20년의 역사과정이 보여주었듯이 근대적 부르주아민족국가의 형성과 해체를 동시적으로 수행하면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장자유화가 선행되어야 하고 시장 자유화는 제도화된 정치적 민주주의를 상당한 필요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지금의 제도적 민주화는 신자유주의 체제 수립의 부산물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민주화 과정은 한국적 민주화의 오랜 전제조건들인 식민지유제 청산, 친일청산을 포함한 과거사 규명, 냉전이데올로기와 극우적 광기의 청산, 근대적 기본권의 법적・제도적 보장 등을 수반하게 되고 이는 곧 합리적인 근대적 시민사회 수립에 주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런 과정은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사회적 여건 마련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자기 영역 확장에 필요하다면 낡은 이데올로기 대립이나 적대적 분단체제조차도 얼마든지 붕괴시킬 용의와 힘이 있는 체제이다.(사이프러스의 예)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는 우리의 근대프로젝트가 강력한 민족국가의 형성이라는 지향을 갖는 것과는 상충한다. 민족적 국가적 장벽과 양립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프로젝트는 자본운동의 유동성이 작동하는 모든 공간의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균질화시키고 그 고유성을 해체한다. 더군다나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서 신자유주의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한국의 경우 그 균질화는 경향적으로 미국화로 이어진다. 한미 FTA의 체결은 바로 그 균질화-미국화 프로젝트의 구조적 정착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의 부르주아 민주혁명이 근대적 민족국가의 성취와 함께 사실상 해체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민족주의를 혐오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민족국가적 자기 결정력의 해체는 반가운 일일지도 모르나, 그것이 미국화를 매개로 한 해체라는 점도 큰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민족국가의 자주성은 여전히 유효한 매개가 되는 것이며, 더군다나 분단극복의 과정을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의 포섭으로부터 벗어나는 세계사적 기회로 삼는 기획이 가능하다면 ‘민족적 자주성’이라는 것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관건적 중요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지구적-탈근대적 과제들>


현재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지구적 움직임들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지만 반자본주의적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강력한 탈근대적-근대비판적 경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근대기획인가 탈근대기획인가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자본주의의 폐절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지닌 정통 맑시즘, 맑스-레닌주의의 중앙집권주의가 지닌 근대적 성격을 넘어서 노동계급 범주를 확대하고 탈집중화된 다중의 자율・자치에 무게를 두는 비정통 맑시즘, 상호부조와 자율자치, 진정한 평등에 무게를 두는 각종의 아나키즘, 근대적 인간중심주의를 역전시켜 지구적 생명론을 내세우는 환경・생태주의, 근대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체로 파악하여 그 동시적 극복을 꾀하는 근본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반신자유주의 투쟁 속에서 탈이데올로기, 탈권위주의의 공간정치학을 실현해 나가는 사파티즘 등은 공히 탈근대적 사유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로부터 삶의 자유를 지키려는 이 모든 움직임들이 원하는 것은 자본의 이름이 되었건, 이성의 이름이 되었건, 국가와 민족의 이름이 되었건, 조직과 당파의 이름이 되었건, 종교의 이름이 되었건, 이데올로기의 이름이 되었건, 가부장의 이름이 되었건, 가족의 이름이 되었건 지구와 생명과 인간을 착취하고 끝없는 고갈과 파괴의 벼랑에 몰아넣는 그 어떤 개발도 성장도 발전도 ‘내 이름으로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운동들이 지향하는 과제들을 단순화하여 열거하자면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생산관계의 폐절, 삶의 탈상품화와 탈물신화의 실천, 가부장제와 그에 근거한 성별제도 해체, 근대적 국가-민족기구의 해체, 모든 중앙집권적 권력기관과 교육기관의 해체, 반환경-반지구적 생산/유통/소비구조의 청산 등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자본주의 이후의 삶을 상상하되 근대적 제도나 패러다임, 사유에 의존함 없이 상상하고, 다른 대안을 모색하되 단수의 대안, 단수의 세계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대안, 복수의 세계를 인정하고 그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기도 하다. 근대적 동일성의 세계를 벗어나 차이와 복수성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탈근대적 상상력과 운동적 실천들은 이미 1968년 혁명에서 태동하여 1999년 시애틀 WTO 반대시위를 계기로 세계적 규모로 확산되었고 그 이후 2000년 프라하 반 IMF 시위, 2001년 제노바 반 G8 시위, 2002년 워싱턴 반 IMF 시위, 2003년 칸쿤 반 WTO 시위, 2005년 홍콩 반 WTO 시위 등을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강력한 저항의 힘으로 발전되어 갔다.

한국사회 역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민족-국가 내의 다양한 특수한 근대적 과제들이 존재하지만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추세에 급격하게 수렴되어 가면서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의 규정력이 점차 전면적인 것이 되어감에 따라 그 어떤 일국적 문제들도 세계적 차원의 반 신자유주의적 실천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는 단계에 돌입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역시 탈근대적 상상과 실천을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2) 조건들



<객관적 조건>


1997년 IMF 사태를 계기로 한국사회는 완전히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의 일부분이 되고 말았다. 박정희시대의 종언과 더불어 개방화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은 처음부터 희박하긴 했지만 그래도 잔존했던 생산-유통-소비-투자의 민족경제적 순환구조를 완전히 해체했을 뿐 아니라 금융자본의 절대 우위성을 바탕으로 한국자본주의의 일국적 운동논리를 와해시켜 나갔다. 민족경제, 혹은 국민경제라는 개념은 거의 소멸되다시피 하였고 한국경제는 초국적 자본이 운동하는 한 말단부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경제의 국적이 사라지면서 일국적 차원의 국민경제 경영은 불가능해 졌고 그에 따라 생산과 유통, 소비와 투자부문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국가의 보호와 배려가 필요한 고용과 분배 부문 역시 오로지 시장의 논리에 내맡겨지게 되었다. ‘국민’의 기본적 생존권인 일할 권리, 굶지 않을 권리의 충족은 국가가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시장의 성장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장논리에서 고용과 분배는 설 자리가 없다. 성장에 필요한 만큼만 고용하고 시장수요를 유지하는 만큼만 분배하면 되기 때문이다. 항상 착취속도는 분배속도를 초과하게 마련이어서 고용과 분배는 항상적 결핍상태에 놓인다. 고용과 분배는 개인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시장을 키우는 것밖에 없다.

한때 동북아지역의 미국패권주의의 교두보로서 한-미-일 삼각경제구도에 의해 장기적 안정을 보장받았던 한국경제이지만 이제 미국이건 일본이건 한국은 세계적 자본각축이 일어나는 하나의 지역시장에 불과하고 미국은 자국 출신의 초국적 자본이나 자국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만큼만 시장으로서의 한국지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한국은 미국자본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특권적인 경제적, 경제외적 기득권이 살아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 등의 영향력에서 한국시장을 독점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한미 FTA의 한 본질이다. 분단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결국 이제는 동북아지역에서의 미국자본의 이익이라는 관점에 의해 우선적으로 그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유지되는 한, 분단의 극복은 결국 한반도의 미국화, 미국자본의 한반도에서의 우월적 지위의 반영구적 보장이라는 최종 목표와 일치될 때 비로소 가능해 질 것이다. 미국은 현재의 긴장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얻는 이득보다 그것을 해소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크다는 것을 확신할 때에만 분단체제의 변화를 용인할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확립과정이 우리에게 좀처럼 위기로 실감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제도로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정착이나 분단체제의 극복 혹은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수십 년 동안의 오랜 과제들과 그다지 상충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어 불가피하거나 긴요한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주체적 조건>


최근 한 신문은 여론조사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경제, 외교 부문에서는 보수적이면서 인권, 복지 부문에서는 진보적인 경향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인권 복지는 확대되어야 하지만 한편으로 개방과 성장은 필요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성장제일주의가 곧 복지의 확대와는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 국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치 엘리트에서부터 자칭 진보인사들까지 모두가 한편으로는 분배정의와 복지를 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성장동력 발굴론, 사회 전 부문 경쟁력 강화론, 개방 불가피론 등을 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시장독재에 대항하는 주체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착종된 현실인식의 일반화는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수구세력이건 언필칭 진보세력이건 신자유주의 논리에 들려 ‘성장동력’, ‘경쟁력’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한, 현재의 제도 정치세력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동력’과 경쟁력 있는 대안논리를 찾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가 아닐 수 없다. 정당정치의 복원을 주요한 정치적 과제로 내세우는 견해들이 있지만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압도적 우위 속에서 근본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투표행동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는 제도정치권의 각축 속에서 과연 얼마나 변혁적인 정치역량의 형성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한국의 시민사회운동 영역들과 노동계급운동 영역들에게도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주류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광범한 이데올로기적・제도적 유착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제도정치권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사회운동 영역과 노동계급운동 영역에서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감염과 투항, 그리고 민주화 이후 운동의 준 국가기구화와 관료화, 자기 재생산을 위한 보수화, 대중으로부터의 고립현상은 두드러진 현상들이다. 이를테면 ‘지속가능한 개발’ 이데올로기 같은 것은 그 타락상의 좋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계급운동의 개량화와 동반성장론 등 자본에 대한 의존성 강화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그보다 하위주체들-비정규직 노동자들, 농민들, 도시빈민들, 이민자들, 실업자들, 기타 각종의 소수자들의 경우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체제의 최하부에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리면서 때로는 노골적 타자화와 식민화의 대상으로, 때로는 무책임한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무정한 세계의 바다 속에서 부침하면서 아무런 조직도 대변세력도 없이 맨몸으로 이 체제에 맞서고 있는 형편이다.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사회의 정체성 혼란은 더더구나 문제적이다. 나 스스로도 참여한 바 있는 ‘선진대안론’ 같은 것은 현재 한국 지식인 사회가 얼마나 그 본래의 변혁성을 잃고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라는 블랙홀에 무비판적으로, 또는 패배주의적으로 휘감겨 들어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실례이다.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이제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를 용인하는가 거부하는가를 경계선으로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3. 어떻게 해야 하는가--신민중연합의 모색


이상과 같은 주・객관적 조건 속에서 앞서 밝힌 당면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한 정치사회적 대안을 여기서 마련하는 것은 다분히 공상적일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제안으로서 나의 생각을 밝혀두고자 한다.

올해는 대선이 있고 내년에는 곧 총선이 뒤따른다. 이번 대선의 중요성이 많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 중요성에 비추어 결과는 전혀 희망적일 것 같지 않다. 총선의 경우도 현재로서는 보수화된 정치판의 지역 따먹기 놀이를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정치권은 나름의 과제를 가지고 있고 그 과제나마 이행할 수 있으면 다행일 것이다. 이를테면 아직 충분히 성취되지 못한 제도적 민주주의의 완수, 남북한 긴장완화와 협력 및 평화체제 구축, 과거 유제들의 청산 등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과제들을 수행하는 일에 제도정치권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민족적 자주성과 자결주의에 기초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파고에 저항하는 정치적 주체의 가능성과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베네수엘라나 컬럼비아, 브라질 등 남미에서의 선거혁명과 그 이후의 전개과정은 좋은 시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적 대항주체들에 의한 광범하고도 열정적인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보다 강력하게 일어서면서 그것이 제도정치와 결합되는 과정을 겪어야 하며 그것은 현재 한국의 정당정치 구조의 근본적 변혁을 또한 전제로서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시민사회운동 영역들과 노동계급운동 영역들의 분발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상황인데 그 첫 걸음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시장독재 체제에 대한 결연한 투쟁의지와 친시장세력과의 이데올로기적・제도적 단절이 무엇보다 먼저 요구된다. 이것은 사회운동 각부문에 공히 요구되는 것으로 예컨대 ‘지속가능성 이데올로기’ 등과의 단절과 투쟁, 기업기부금 의존으로부터의 단절, 신자유주의적 국가 프로젝트 참여와 준국가기구화의 거부 등이 그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보다 아래쪽으로 눈을 돌려 비참한 소외와 주변화, 타자화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회적 하위주체들과 실천적으로 결합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노동계급운동은 800만 비정규직의 생존권 문제를 최우선의 과제로 설정하지 않는다면 이제 더 이상 그 진보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양극화의 급격한 진전에 따라 중산층의 하향분해와 빈곤층의 궁핍화가 급격하게 진행함에 따라 형성되고 있는 사회적 박탈계층들을 통칭하여 70~80년대적 의미의 ‘생존권에 기반한 민중’으로 재호명하자는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우석훈, 87년 이후 20년, 민중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는가?) 이런 맥락의 민중 재호명에 원칙적으로 공감하면서 나는 반신자유주의 투쟁 주체의 구성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맥락에서 민중개념을 다시 복원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80년대까지의 민중론에서 민중개념은 사회적 존재태의 개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능태의 개념이기도 했다. 흔히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넓은 의미의 생산대중을 아우르는 포괄적 존재개념이면서도 분단된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가능적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호명된 바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급진적 사회주의 기획에서 내세운 노동자계급 당파성론에 의해 민중론 혹은 민중주체론은 소부르주아적 담론으로 매도・폐기되어 버렸으며 90년대 초반 사회주의적 변혁운동 일반의 급격한 쇠퇴와 더불어 노동자계급 당파성론과 동반 소멸해 버리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민중개념은 시민개념으로 대체되었고 다시 2000년대 이후에는 서구 탈근대 담론들의 수입과 더불어 소수자론, 하위주체(서발턴)론, 다중론 등에 가려 오랫동안 낡은 개념으로 버림받아 온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의 전면화함에 따라 시민운동, 노동운동이 그 한계를 노정하고 정체성 위기를 맞게 되고 중산층의 급격한 양극분해 등 시민사회의 동요와 붕괴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안정된 근대시민사회의 존재를 전제하는 소수자 개념이나, 탈식민주의론의 담론적 구성물로서 적극적인 사회적 저항성을 내포하지 못하는 하위주체 개념, 혹은 지나치게 확장된 다중 개념 등은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에 대항하는 보다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주체 개념으로는 부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민중개념의 귀환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발생한다.

많은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지만 60년대에 탄생하여 70~80년대에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한 민중론, 민중개념은 단순히 노동자계급의 지도를 필요로 하는 통일전선의 구성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근대 부르주아사회와 세계체제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는, 풍부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그리고 신학적 함의까지도 지닌 이념형적 주체개념이었다. 이러한 7~80년대적 민중개념은 한국사회뿐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지구적 시장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지구상의 모든 지역의 인민들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개념으로 상당한 적합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실업자를 포함한 정규・비정규 노동자계급, 여성, 농민, 도시빈민, 이민자, 각종의 소수자 등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체제의 현재적・잠재적 희생자들이 민중의 이름으로 하나의 반신자유주의 ‘연합’을 이루어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에 전면적으로 또 세계적 규모로 저항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전망이고 희망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그 저항투쟁은 그 안에서 동원이 아닌 참여로, 중심화가 아닌 탈중심화로, 위계화가 아닌 평등화로, 동일성이 아닌 차이의 힘으로, 자기가 존재하고 생활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남의 논리가 아닌 자기 삶의 논리와 요구에 의해, 그러면서도 긴밀한 네트워크적 연대를 통해 전개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 신자유주의 시장독재 체제가 강요하는 획일적인 자본과 상품논리를 넘어서 민중의 자기결정권의 회복이라는 본원적 민주주의 원리를 회복하고 점점 사멸해 가는 지구환경을 살려내는 전면적인 근대극복 운동으로 확산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4. 민중문화운동의 새로운 전개를 위하여


90년대 이후 한국 문화에서 ‘운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다른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화 영역 역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범람 속에서 전부 생존을 위한, 혹은 상품적 변신을 위한 각개약진에 몰입하는 동안 파괴되어 가는 공동체의 문화적 생명력에 대하여, 마멸되어 가는 민중들의 삶에 대하여 공감과 연대의 움직임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민중의 문화유산은 상품화 코드에 적응하여 컨텐츠가 되었고 상품화되지 못하는 문화는 전부 폐기처분되어 갔다.

문학 역시 90년대를 통해 여지없이 공동체적 문제의식에서 유리되어 개인화의 길을 걸어갔으며 그것은 상업화와 긴밀하게 대응되었고 그것은 이내 사회적으로 문학적 자원의 고갈로 이어졌다. 신자유주의체제의 도래와 더불어 점차 사회적 문제들이 문학 속에 귀환해 들어왔지만 그것은 의식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증후적인 것이었다.

문학을 포함한 문화영역 역시 역동적 운동성을 회복하여 이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체제에 대한 문화주체들의 동시다발적이고 확산적인 저항이라는 민중연합적 투쟁 속에서 다시금 재정립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상품문화에 대항하여 민중문화 본연의 저항성과  창조성을 회복하고 그 민중적 소비와 유통구조를 다시금 창출해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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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문화운동의 비판적 시선 (복거일)
문화관련 글들(ktp) | 2007/06/12 23:04
 

6월민주항쟁20년기념 대토론회



주최 및 주관 :

공동 기획 및 진행 : 문화단체

3회 : 6월 혁명 뒤의 한국 문화 - 평가와 전망


복거일 (소설가, 미래문화포럼 대표)



1. 서언


개항 뒤 우리 사회는 서양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자연히, 큰 문화적 충격들과 급격한 사회적 변화들이 지속적으로 나왔고, 이념적 대립과 역사관에서의 혼란이 심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견해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그러므로 이상하지 않다. 수정주의적 충동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명칭을 바꾸려는 시도들에서 잘 드러난다.

전형적인 예는 전통적으로 ‘동학란’이라 불린 역사적 사건이니, 그 반란의 주체인 ‘동학’이나 ‘농민’과 그것의 시점인 ‘갑오년’과 그것의 성격에 대한 평가인 ‘전쟁’이나 ‘혁명’의 여러 조합들이 이름으로 나와서 어지럽다. 당대 사람들이 붙인 ‘동학란’이라는 이름은 어느 사이엔가 사서들에서 사라졌다. 원래 어떤 역사적 사건을 가리키는 이름은 당대 사람들이 붙인 것이 가장 큰 정당성을 지닌다. 자주 바뀌면, 이름은 제 구실을 하기 어렵다. 역사적 사건의 이름을 굳이 바꾸려는 이들은, 관련된 자료들이 모두 알려졌고 현재의 역사학의 방법론이 더 나아질 여지가 없을 만큼 발전되어서, 후대인들이 다른 해석을 할 여지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그것은 오만한 환상이다. 더구나, 그런 태도는 역사에 대한 평가의 바탕이 되는 평가자들의 가치 체계들이, 인류와 문화의 진화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1987년 6월에 일어난 민주화 운동도 사정이 비슷하다. 그 역사적 사건이 아직 시간적으로 가깝다는 사정도 있겠지만, 서로 다른 견해들을 반영한 여러 이름들이 쓰인다. 가장 널리 쓰이는 이름들은 '6월 항쟁’과 ‘6월 혁명’이다. 이 자리를 마련한 분들은 전자를 따르는데, 필자는 후자가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주최측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 이 글에선 ‘6월 혁명’이란 이름을 쓰고자 한다.



2. 6월 혁명의 성격


1987년 6월의 민주화 시위로 시작되어 같은 해 10월 ‘직선제 헌법’의 제정으로 마무리된 민주화 운동에 대한 평가들은 다양하고 상당한 편차를 보인다. 그런 사정은 그 역사적 사건을 부르는 이름들에 반영되었다. 그 이름들은 대체로 ‘항쟁’과 ‘혁명’으로 나뉜다. 그 사건의 성격과 성과에 대한 평가에서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큰 뜻을 부여한다.

1987년의 민주화 운동을 혁명으로 간주하는 데 대한 반론으로 먼저 나오는 것은 그것이 혁명을 구성하는 요건들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그 사건은 혁명의 특징적 정의(ostensive definition)의 요건들을 완벽하게 갖추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집권 세력의 뚜렷한 교체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신과 성과를 살피면, 우리는 그것이 진정한 혁명이었을 뿐 아니라 보기 드물게 성공적인 혁명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정신에서그것은 비정상적인 정치적 상태를 교정하려는 노력이었다. 시민들은 당시의 헌법과 권력 집단이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해서 정당성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것은 옛 사람들이 ‘반정(反正)’이라 부른 혁명이다.

성과에서도 그것은 혁명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만한 혁명의 정의는, 월터 래커(Walter Laqueur)를 따르면, “정부 체계에서 근본적 변화를 이루려는 시도(an attempt to make a radical change in the system of government)”다. 6월 혁명은 처음부터 정부 체계에서 근본적 변화를 이루려 했다. 그것은 ‘직선제 헌법’의 제정을 목표로 삼았고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루었으며, 그 헌법은 그 뒤 20년 동안 우리 사회의 근본적 규범으로 원활하게 기능했다.

혁명의 과정에서 치른 비용도 아주 작았다. 폭력의 수준은 아주 낮았고 폭력의 희생자들과 사회적 비용도 적었다. 정치적 불안은 비교적 작았고 경제의 위축은 전혀 없었다. 경제 성장률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나니, 1986년의 성장률 11.0%는 1987년의 11.0%로 이어졌고, 1988년엔 10.5%였다. 그런 뜻에서, 6월 혁명은 탈냉전 시대에 나온 ‘빛깔 혁명(color revolution)’―매우 낮은 수준의 폭력을 통해서 혁명적인 정치적 변화를 이룬 혁명―의 선구였다.

6월 혁명은 ‘항쟁’이라 부르는 것은 그래서 그 성공적 혁명에 대한 정당화되기 어려운 폄하다. 저항(resistance)의 뜻으로 쓰이든 반란(revolt 또는 rebellion)의 뜻으로 쓰이든, 항쟁이란 말엔 부정적 함의들이 들어있다. 그것은 부당한 강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할 따름이지 사회 제도를 적극적으로 변환하거나 권위의 정통성을 새로 세우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며, 자연히, 이룬 성과나 영향이 크지 않다는 함의를 품는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직선제 개헌’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내세워 정권의 정통성을 새로 세우려 나섰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이룬 시민운동을 항쟁이라 부르는 것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 중요한 사건에 대한 폄하일 수밖에 없다.

6월 혁명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것이 제한된 목표를 겨냥했다는 사실이다. 그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을 지녔고 체제의 전복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압제적이고 정통성이 없는 정권을 민주적이고 정통성을 지닌 정권으로 바꾸려 했다.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에 대해 비우호적인 사람들에겐 그 점이 오히려 6월 혁명을 낮게 평가할 요소가 되겠지만, 바로 그 점이 그것을 그리도 성공적인 혁명으로 만들었다.


“자신들에게 제한된 목표들만을 부과하는 혁명들은, 만일 그것들이 인민 다수의 희망들을 대변한다면, 진정한 개혁들을 이루는 데 성공할 수 있다. 혁명이 폭력적일수록, 그래서 사용된 강제의 양이 클수록, 겉으로는 짧은 ‘과도기’ 동안만 존속하도록 설립된 독재 체제가 영구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회의 전체적 변환을 겨냥한 혁명들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주장하지만, 다수는 자신의 가장 나은 이익이 어디 있는지 깨닫지 못하므로, 그것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일은 소수의 전위에게 남겨진다. 결과적으로 극심한 압제가 영구적으로 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가 출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국가는 국가 경제나 국방과 같은 각종 분야들에서, 괄목할 만한 결과들을 이룰 수도 있지만, 과거의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그것은 보다 자유롭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세우는 일에선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월터 래커, ‘혁명’,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6월 혁명은 전 과정에서 아주 낮은 수준의 폭력만을 불렀고, 압제적 정권의 권력을 무너뜨리는 폭발적 과정이 잘 통제되었고, 덕분에 사회적 비용이 아주 낮았으며, 반동적 움직임을 부르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 사회는 보다 자유롭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다. 그렇게 제한된 목표를 향해 천천히 “기어가는 혁명(creeping revolution)”이었던 데에 6월 혁명이 성공한 비밀이 있다.



3. 6월 혁명 뒤 한국 사회의 진화


사회의 진화는 경제 분야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통찰대로, 경제 분야의 진화는 다른 분야들의 진화의 바탕이 된다.

여러 지표들은 우리 경제가 6월 혁명 뒤 대체로 무난하게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1986년에서 2005년까지 19년 동안, 국내총생산(GDI)은 1,076억 달러에서 7,875억 달러로, 1인당 소득은 2,550달러에서 16,291달러로, 수출은 347억 달러에서 2,844억 달러로, 수입은 316억 달러에서 2,612억 달러로 늘어났다. 덕분에 우리 시민들은 평균적으로 크게 부유해졌고,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풍요로워졌다.

이런 경제 성장은 당연히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불렀다. 실은 경제 성장 자체가 가장 중요한 변화다. 사람의 행동은 소득과 밀접한 관련을 지녔다.

이런 경제 발전은 경쟁을 통한 진화의 과정이 상당히 원활하게 이루어졌음을 가리킨다.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갖가지 실험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한다. 실로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 경제 체제의 우수성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

근년에 좌파 정권이 거듭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에 거스르는 정책들이 시도되었다. 그런 정책들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경제적 실험들을 억제했다. 줄어든 실험들은 진화 과정의 재료들을 줄였고, 비효율적인 진화는 투자의 위축을 불렀다. 근년에 우리 경제가 보인 침체의 큰 부분은 그런 사정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의 진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은 기술의 진화다.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은 경제 발전의 기본적 조건이고, 경제 발전은 기술의 환경을 넓힌다.

기술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생산 활동에 쓰이는 물리적 기술(Physical technology)이니, 이것이 통상적으로 기술이란 말이 가리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를 조직하는 데 쓰이는 사회적 기술(Social technology)이다. 좀 낯선 개념이지만, 사회 발전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사회적 기술의 중요성이 드러났다.


“경제적 진화는 단일 과정이 아니라, 세 개의 서로 연결된 과정들의 결과다. 첫째는 역사상 경제 성장의 결정적 요인이었던 기술의 진화다. 가장 주목할 만하게, 1750년경의 경제 성장에서의 급격한 상승은 산업 혁명의 위대한 기술적 도약과 일치한다. 그러나 기술의 진화는 이야기의 한 부분일 따름이다. 진화경제학자인 컬럼비아 대학의 리처드 넬슨은 실은 경제 성장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기술에는 두 유형이 있음을 지적했다. 첫째는 ‘물리적 기술’이다 이것은 청동 제조 기술, 증기 기관들, 그리고 미세 칩들과 같은 것들처럼 우리가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한 것이다. 반면에, ‘사회적 기술들’은 일들을 하도록 사람들을 조직하는 방식들이다. 사례들은 정착 농업, 법의 지배, 화폐, 주식회사들, 그리고 모험자본을 포함한다. 물리적 기술들이 분명히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지만, 사회적 기술들의 공헌도 마찬가지로 중요했으며, 실은 그 둘이 서로 공진화한다고 넬슨은 지적한다. 산업 혁명 동안에, 예컨대, 18세기 리처드 아크라이트의 방적기의 발명(물리적 기술)은 대공장 방직을 조직하는 것(사회적 기술)을 경제적으로 만들었고, 그것은 다시 수력, 증기, 그리고 전기를 제조에 적용하는 많은 발명들(다시 물리적 기술들로 돌아옴)이 나오도록 도왔다. 농업, 산업, 그리고 정보 혁명들은 모두 대체로 물리적 기술들과 사회적 기술들 사이의 상호적 무도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에릭 바인호커(Eric D. Beinhocker), <부의 기원(The Origin of Wealth)>]


그러나 모든 일들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기술들이 실제로 적용되려면, 그 일을 맡을 만한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물리적 및 사회적 기술들의 공진화는 그림의 3분의2일 따름이다. 기술들은 그것들만으로는 아이디어들과 설계들에 지나지 않는다. 방직을 위한 물리적 기술은 방직 기계 자체는 아니다―누군가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장을 위한 사회적 기술은 공장이 아니다―누군가 그것을 실제로 조직해야 한다. 기술들이 세상에 충격을 주려면,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람들의 집단이 물리적 및 사회적 기술들을 개념들에서 실재로 바꾸어야 한다. 경제 분야에서, 그 역할은 기업에 의해 행해진다. 기업들은 물리적 및 사회적 기술들을 서로 융합해서 그것들을 제품들과 서비스들이라는 형태로 환경에 배출한다.” [바인호커, 같은 책]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 그리고 기업 모형들은 거의 모두 해외에서 들어왔다. 우리 사회가 세계를 향해 많이 열린사회라는 사실은 그래서 중심적 중요성을 지닌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 사회는, 특히 경제 분야는, 해외의존도가 무척 높다. 아울러, 세계화는 급속하게 진행되어왔다. 자연히, 우리 사회의 진화는 본질적으로 세계의 여러 사회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되는 세계적 진화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근년에 우리 사회는 문화 발전의 바탕을 빠르게 키웠다. 풍요로워진 경제는 가능한 문화의 영역을 크게 늘렸다. 빠르게 발전해온 물리적 기술은, 특히 컴퓨터, 인터넷, 휴대 전화와 같은 정보 처리 기술은, 새로운 사회적 기술과 결합해서 사람들의 행동 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고 새로운 문화를 낳도록 했다.



4. 문화의 진화


가장 너른 뜻에서, 문화는 “비유전적 정보의 전달(nongenetic transmission of information)”이라 정의된다. 생명체들의 유전을 통한 정보의 전달을 빼놓고, 나머지 모든 정보의 전달을 문화라고 보는 것이다. 많은 고등 동물들은 비유전적 정보의 전달을 하며, 당연히, 그들의 그런 행위들도 문화다. 물론 그렇게 전달되는 문화의 양과 수준은 사람의 그것에 비기면 아주 작다. 그래도 그런 사정은 문화를 이처럼 너르게 정의하는 것이 깔끔할 뿐 아니라 문화의 본질을 잘 파악했음을 가리킨다.

문화의 기본 단위는 밈(meme)이다.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밈은 진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퍼뜨리는 ‘복제자(replicator)’다. 그렇게 밈들이 경쟁하면서 문화는 진화한다.


“밈의 예들은 곡조들, 생각들, 구호들, 의복 유행들, 냄비들을 만들거나 홍예들을 쌓는 방식들이다. 유전자들이 정자들이나 난자들을 통해서 몸에서 몸으로 뛰어 건너면서 유전자 풀에서 자신들을 전파하는 것과 똑같이, 밈들은 넓은 뜻에서 모방이라고 불릴 수 있는 과정을 통해서 뇌에서 뇌로 건너뛰면서 밈 풀에서 자신들을 전파한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


문화적 복제자로서의 밈은 유전적 복제자로서의 유전자와 아주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을 전파한다.


“밈의 표현형적 효과들은 낱말들, 음악, 시각적 심상들, 의복의 스타일들, 얼굴이나 손으로 하는 몸짓들, 박새들이 우유병을 열거나 일본 마카크 원숭이들이 밀을 이는 것과 같은 기술들의 형태를 할 수 있다. 그것들은 뇌 안에 있는 밈들의 바깥으로 드러나고 볼 수 있는 (들을 수 있는 등등의) 표현들이다. 그것들은 다른 개체들의 감각 기관들에 의해서 감지될 수도 있고, 그것들은 받아들이는 개체들의 뇌들에 자신들을 각인하여 원래의 밈의 복제(꼭 정확하지는 않은)가 받아들이는 뇌에 새겨지도록 할 수도 있다. 그 밈의 새로운 복제는 이제 그것의 표현형적 효과들을 널리 펼 수 있는 처지가 되고, 그것 자신의 더 많은 복제들이 또 다른 뇌들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우리의 전형적 복제자인 디.엔.에이로 돌아가면, 그것의 세계에 대한 결과들은 두 가지 중요한 유형들로 이루어졌다. 첫째, 세포의 복제 기구를 이용하는 방식 등으로, 그것은 자신의 복제들을 만든다. 둘째, 그것은 외부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런 영향은 그것의 복제들의 생존 가능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 두 효과들 가운데 첫째는 밈이 자신의 복제들을 만들기 위해서 개체들 사이의 의사소통과 모방의 기구들을 이용하는 것에 상응한다. 개체들이 모방이 흔한 사회적 풍토에서 산다면, 이것은 디.엔.에이를 복제하는 효소들이 풍부한 세포적 풍토에 상응한다.

그러나 디.엔.에이의 둘째 효과에 관해선, 즉 종래에 ‘표현형적’이라 불린 종류에 관해선, 어떠한가? 밈의 표현형적 효과들이 복제에서의 성공이나 실패에 어떻게 공헌하는가? 답은 유전적 복제자들에 대해서와 같다. 어떤 밈이 그것을 지닌 몸의 행태에 대해서 지닌 영향은 그 밈의 생존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것의 몸들을 절벽 너머로 달려가도록 만든 밈은 그것의 몸을 절벽 너머로 달려가도록 만드는 유전자의 운명과 같은 운명을 가질 것이다. 그것은 밈 풀에서 제거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몸의 생존을 돕는 것이 유전적 복제자들의 성공을 구성하는 것들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과 똑같이, 밈들이 자신들의 보존을 위해서 표현형적으로 작용하는 데는 많은 다른 길들이 있다. 만일 한 밈의 표현형적 효과가 한 곡조라면, 따라 부르기 좋을수록 그것은 복제될 가능성이 높다. 만일 그것이 과학적 생각이라면, 세계의 과학적 뇌들 속으로 그것이 퍼져나갈 가능성은 이미 확립된 생각들의 집적과의 양립성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정치적 또는 종교적 생각이라면, 그것의 표현형적 효과들 가운데 하나가 그것의 몸들을 새롭고 낯선 생각들에 대해 격렬하게 비관용적으로 만들 경우, 그것은 자신의 생존을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밈은 자신의 복제 기회들과 자신의 표현형적 효과들을 가졌으며, 밈의 성공이 유전적 성공과 무슨 연관을 가질 이유는 없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통섭(Consilience)>]


따라서 문화를 지닌 종들에선 진화가 유전적 요인들만이 아니라 문화적 요인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이러한 ‘유전자-문화 공진화(gene-culture coevolution)’는 물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다.


“문화적 진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유전자들과 문화 사이의 관련은, 비록 완전히 끊어질 수는 없지만, 점점 느슨해진다. 문화는 상응하게 정확한 유전적 규정 없이 발명되고 전수되는, 정교하게 조율된 적응들을 통해서 환경에서의 변화들에 대한 빠른 조정을 허용한다. 이 면에서 인류는 모든 다른 동물 종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 유전자-문화 공진화는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보다 일반적인 과정의 특별한 확장이다.” [에드워드 윌슨, 같은 책]


밈들이 경쟁해서 보다 나은 것들이 선택되고 퍼지므로, 선택의 재료가 많을수록 문화는 활발하게 진화한다. 따라서 문화의 빠르고 성공적인 진화의 비결은 밈들의 다양성이다.



5. 6월 혁명 뒤의 한국 문화


6월 혁명 뒤, 다시 자유로워진 사회에서 문화는 활기를 되찾았고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대체로 잘 적응했다. 여러 지표들은 우리 문화가 아직 바람직한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지만, 큰 사회적 혼란이나 정체는 없었다. 이것은 결코 작지 않은 성취다.

특히 중요한 성취는 지식을 많이 갖춘 ‘지식인 대중’의 빠른 성장에 걸맞은 대중문화의 발전이었다. 높아진 소득은 많은 시민들이 흔히 ‘문화’로 불리는 오락과 예술을 누리도록 했다. 그래서 모든 분야들에서 시장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대중의 판단보다 전문가들의 판단이 우월적 지위를 누려온 예술에서도 뚜렷하니, 시장의 판단에 가장 끈질기게 저항해온 문학을 포함해서, 모든 예술 장르들이 이미 대중의 판단을 궁극적 기준으로 삼는다. ‘좋아서 많이 팔리는 것이라기보다는 많이 팔리니 좋은 것이다.’

그래서 오락 산업이 크게 발전했고, 해외 여행이 가파르게 늘어났다. 해외 문화의 유입이 늘었고, 사회적 금기들은 크게 줄어들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대중적 문화와 예술이 자연스럽게 주류로 자리 잡았다. 만화와 전자오락과 같은 장르들이 중요해졌고 전통적 예술인 문학에서도 추리소설이나 환상소설과 같은 장르들이 번창했다. 텔레비전은 여전히 사회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면서 문화의 모습을 다듬어냈다. 20세기 말엽엔 새로운 통신 수단인 인터넷이 더해져서, 시민들의 정보 처리 능력을 혁명적으로 늘렸다.

한국 문화가 원숙해지고 나름의 특질을 지니게 되면서, 한국 예술 작품들은 해외에서 시장을 찾았다. ‘한류’라는 이름을 얻은 이런 현상은 한국 예술에 큰 동력을 더했고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사회를 끊임없이 효율적으로 만들었고 그런 변화는 사람들의 감성과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내 직접적으로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지식인 대중의 중심적 역할은 우리 언어의 진화에서 두드러졌다. 영어가 세계의 표준 언어가 되었다는 사정과 우리 사회가 빠르게 세계를 향해 열린 사회가 되었다는 사정이 어울리면서, 한국어는 영어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진화했다. 그런 진화의 결과에서 나온 한국어의 모습에 대한 평가를 떠나, 그런 진화는 필연적이고 궁극적으로 한국어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점은 강조되어야 한다.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진화하지 못하는 언어는 사용자들로부터 버림받을 따름이다.


6. 전체주의의 부정적 영향


제5공화국의 압제적 통치 아래서, 우리 사회엔 전체주의적 사조가 점점 널리 퍼졌다. 전체주의가 압제적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유효한 이념이라는 생각이 널리 자리 잡았다는 사정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전체주의 사조는 6월 혁명 뒤에도 큰 세력을 이루었다.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이념이 세력을 얻은 일이 좋은 결과를 낳기는 물론 어렵지만, 전체주의의 확산은 우리 사회의 문화에 특히 큰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전체주의는 문화에 특히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전체주의는 개인들의 자유롭고 다양한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풍토에서 문화가 발전할 수는 없다.


“모든 집단주의적 체계들의 공통된 특질들은, 모든 분파들의 사회주의자들에게 늘 소중한 구절을 쓰면, 확정된 사회적 목표를 위한 사회의 노동의 의도적 조직이라고 기술될 수 있다. […] 갖가지 종류의 집단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등은 사회의 노력들을 몰아가고자 하는 목적의 성격에서 서로 다르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사회 전체와 그것의 모든 자원들을 이 단일 목표를 위해 조직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개인들의 목표들이 가장 중요한 자율적 분야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및 개인주의와 다르다.” [하이에크(Friedrich A. Hayek), <예종에의 길(The Road to Serfdom)>]


공산주의든, 민족사회주의든, 다른 사회주의의 분파들이든, 전체주의는 다른 이념이나 세력과 공존하는 것을 거부한다. 전체주의는 사회에서 다른 세력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사회의 완전한 통제를 추구하며 밖으로는 다른 나라들을 공격하는 확장주의적 정책을 추구한다.

허버트 스피로(Herbert J. Spiro)에 따르면, 전체주의 체제들의 중요한 특질들은 아래와 같다.

1) 산업화, 인종적 지배, 또는 무산계급의 통합과 같은 단일의 적극적으로 공식화된 실질적 목표의 공약과 그것에 따르는 절차적 안정성의 유지에 대한 공약의 부재,

2)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반역자가 되고 오늘의 충성스러운 행동이 내일의 전복적 활동이 되는, 절차적 동요의 상태에서 연유하는 예측불가능성과 불확실성,

3) 군대, 준군사조직, 제복 입은 경찰 및 비밀 경찰에 의한 조직적 폭력의 대규모적 사용,

4) 정권의 실체적 목표에 맞춰지지 않은 조직들과 단체들을 길들이거나 억압하기 위한 노력들,

5) 단일 목표에 헌신하는 공공 조직들에 대한 전반적 참여를 강요하기 위한 노력들,

6) 전체주의 체계 자체의 심상에 맞추어 전 인류를 다시 만들려는 목표의 보편화.


자유주의와 전체주의는 뚜렷이 대조적이다. 두 이념들의 본질적 차이는 개인들의 자유에 대한 태도에서 나온다. 하나는 개인들의 자유가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가치를 지녔다고 여기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집단적 목표에 봉사해야 한다고 여긴다.

전체주의가 떠받드는 사회적 집단은 전체주의 분파마다 다르다. 그들에게 공통된 점은 인종, 민족, 국가, 종교, 또는 계급과 같은 기준들에 따라 특정 집단을 높이고 다른 집단들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결코 인류 전체를 기본적인 사회적 단위로 보지 않는다. 이런 특수주의(particularism)가 보편주의(universalism)을 추구한 종래의 이념들과 전체주의를 나누는 본질적 특질이다.

반면에, 자유주의는 보편주의를 따른다. 그래서 늘 인류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고 인류를 구성한 개인들 사이의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 성, 인종, 민족, 국가, 종교, 또는 계급과 같은 것들은 개인들을 차별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보편주의는 궁극적으로 인류라는 종(種)의 차원에서 개인들과 사회들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보편적인 관점은 본질적으로 개인들에 주목하게 되어 끝내는 자유주의로 귀착될 것이다.


전체주의가 필연적으로 부르는 개인들의 억압과 사회적 정체는 예술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예술이 늘 자유와 보편성을 지향하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본질적으로 개인들을 다룬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서 개인들의 혼란스러운 경험들에 질서를 부여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의 진정한 대상이 개인들이지 어떤 사회적 단위라고 여기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예술과 예술가들을 보편주의로 이끈다.

예술가들의 이런 태도는 19세기 프랑스 역사가 르낭(Joseph Ernest Renan)의 얘기에 잘 요약되었다: “사람은 그의 언어에도 그의 민족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자신에게만 속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유로운 존재, 즉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진정한 예술 작품들은 궁극적으로 도덕적 선언이다. 진정한 작가는 도덕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은 예술이 일반적으로 개인들의 노력이라는 사실을 잘 설명한다. 때로 둘 이상의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하여 작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들은 ‘규칙을 증명하는’ 드문 예외들이다. ‘집단적 창작’을 북돋우기 위해 전체주의 정권들이 무던히 애썼지만, 그런 시도들은 진정한 예술 작품을 낳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초엽에 좌파 문인들이 ‘집단적 창작’을 시도했었다. 공산주의의 공식 예술 이론이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에 정통한 문학 비평가들의 지도 아래 작가들이 협력하여 문학 작품들을 생산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이념으로 작가들의 상상과 표현을 억압하는 일이어서,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반면에, 전체주의자들은 자유롭고 도덕적인 개인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도덕적인 것은 자신의 민족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라는 프랑스 문필가 바레스(Auguste Maurice Barres)의 주장은 이런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들에게 개인은 자신의 도덕을 가진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개인들의 도덕은 전체주의 국가가 그들에게 내리는 지시들을 따르는 것이다. 전체주의는 본질적으로 도덕의 우위를 부정하고 그런 점에서 가장 깊은 수준에서 부도덕하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마키아벨리안 행동 계획을 수행하라고 조언할 때, 그는 그 행동들에 어떤 종류의 도덕성이나 아름다움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에게 도덕성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뜻하는 것이며, 그것이 정치와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안타까움이 없지 않게) 지적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군주는 늘 선을 실천할 마음이 있어야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엔 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는, 비록 정치를 돕는 경우에라도, 악은 그대로 악으로 남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의 현실주의자들은 현실주의의 도덕론자들이다. 그들에게,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행위는 그렇게 한다는 사실에 의해 도덕적 성격이 부여되고, 그 행위가 무엇이든 그렇다. 정치에 봉사하는 악은 악이기를 그치고 선이 된다. [쥘리앙 방다(Julien Benda), <지식인들의 배반(La Trahison des Clercs)>]


예술은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도덕적이다. 도덕을 부정하므로, 전체주의는 예술을 병들게 하고 전체주의 사회엔 올바른 뜻에서의 예술가가 존재할 수 없다.

다음엔, 전체주의를 따르는 예술가들은 예외 없이 자신들의 정치적 감정을 예술 작품들에 불어넣는다. 그런 정치적 감정은 필연적으로 작품들을 인도하고 왜곡한다. 방다는 폴 클로델(Paul Louis Charles Claudel)이나 다눈치오(Gabriele D’Annunzio)의 시들이 표현한 정치적 감정이 “단순함을 아예 다 잃고, 그것의 적에 대한 차가운 경멸이 담긴, 의식적이고 조직화된 감정”이라고 말했다. 방다는 전체주의를 추종한 소설가들과 극작가들에 대해 “그들의 주인공들이 인성의 진정한 관찰과 맞게 느끼고 행동하는 대신, 그들은 작가들의 감정이 요구하는 대로 주인공들이 느끼고 행동하도록 만들었다”고 평했다. 그런 사람들은 진정한 예술가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따르는 이념을 위해서 예술이 봉사하도록 만드는 정치가들이다. 그런 선택에 대해 그들이 치르는 값은 보편성을 잃은 작품들이다. 이것이 전체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예술과 예술가들이 존재하기 어려운 둘째 이유다.

셋째, 전체주의 정권은 모든 사회적 자원을 하나의 집단적 목표에 바치고 개인들이 그런 목표를 위해 봉사할 것을 강요한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선동선전(agitprop)의 수단이 되어 집단적 목표에 봉사하도록 강요된다. 예술에 대한 이런 강요는 전체주의가 본질적으로 대중의 정치적 동원에 바탕을 두고 선동선전이 그런 동원의 중심적 수단이라는 사정에서 비롯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전체주의가 예술을 궁극적으로 경멸한다는 점이다. 전체주의는 예술이 선동선전의 수단이 되는 한도까지만 예술을 존중하고 허용한다. 역사상 전체주의보다 예술과 예술가들을 더 경멸한 이념은 없었다. 선동선전의 수단이 되면, 아무리 그럴듯하더라도, 예술은 이미 예술일 수 없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예술과 예술가들이 존재하기 어려운 셋째 이유가 거기 있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예술이 번창하지 못하는 넷째 이유는 전체주의 사회 자체가 정체한다는 사실이다. 예술 작품들은 새로운 질서를 찾는 예술가들의 노력에서 나온다. 예술가들은 새로운 사람들의 경험들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으려 애쓴다. 그런 예술적 욕구는 늘 새롭게 나온다. 그러나 전체주의는 전체주의 사회가 이미 가장 나은 질서를 이루었고 그런 질서는 최고 지도자에서 완전히 구현되었다고 상정한다. 따라서 예술가들이 새로운 질서를 찾는 것은 전체주의 이념과 체제에 어긋난다. 예술은 이미 자신의 임무가 자세하게 규정되었으며 새로운 질서를 찾아 나설 필요가 없다고 늘 자신에게 일러야 한다. 이것은 예술에겐 치명적 상태다.


“진정한 생명적 일체성은 충족, 얻음, 도착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세르반테스가 오래 전에 얘기했듯이, ‘길은 언제나 주막보다 낫다.’ 어떤 시기가 그것의 욕망들을, 그것의 이상을, 충족했을 때, 이것은 그 시기가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욕망의 우물이 말라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유명한 풍요는 실은 끝남이다. 행복한 수펄이 혼인 비행 뒤에 죽듯이, 자신들의 욕망들을 새롭게 할 길을 알지 못해서 자기만족으로 죽는 세기들도 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중의 반역>, ‘Unwin Books’의 역자 비공개 영역본]


위에서 살핀 것처럼, 전체주의는 본질적으로 예술에 적대적이다. 실제 상황은 더욱 나쁘다. 전체주의의 경제적 질서는 ‘노동의 지도’를 포함한다. 즉 전체주의 사회에선 개인들이 자신들의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히, 어떤 개인이 자유롭게 작가가 될 수도 없고 자유롭게 그만둘 수도 없다. 중앙의 계획 기구에 의해 선택된 개인들이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될 수 있고 그들이 하는 일들은 본질적으로 체제에 봉사하는 것들에 국한된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선동선전 일꾼들이 되어야 하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다.

예술이 선전선동의 수단이 되고 예술가들이 노동의 지도를 통해서 작업을 배정받으므로, 전체주의 사회들에서 예술 작품들은 필연적으로 엄격한 검열을 받게 된다. 검열이야 모든 사회들에서 있었지만, 전체주의 사회들에선 그것은 예술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요소가 된다.


“검열은 독일의 민족사회주의자들과 러시아의 공산주의자들의 두 전제정치 아래서 치명적 심각성을 지닌 문제가 되었다. ‘진정한 독일 예술’을 옹호하면서, 독일 민족사회주의자들은 1937년에 뮌헨에서 ‘퇴폐적 예술’ 전람회를 열어 ‘퇴폐적 볼셰비키와 유대인 예술’을 비웃었다.

작품들이 추방된 예술가들은 조르쥬 그로스, 바실리 칸딘스키, 마르크 샤갈, 그리고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흐너를 포함했다. 스탈린의 검열관들도 똑같이 야만적이었다. 그들이 선호한 스타일은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근로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조형적 작품들―이었고 소련 예술가들은 자신을 ‘검열과 자아 비판’에 맡기도록, ‘그 자신의 국가 검열관’이 되도록 요구되었다. 선동적 문학은, 특히 성경과 다른 종교적 저작들은, 소련 공산주의자들에겐 저주받는 것들이었다.

천안문 광장 사태 이후 중국의 예술적 표현에 대한 탄압은 스탈린주의의 가장 나쁜 관행들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의 가장 뛰어난 영화감독들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의 작품들은 홍콩의 1992년 국제 영화제에 아예 나오지 않았다.” [<역사에서의 검열(Censorship through the Ages)>,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1993년 12월 26일자]


전체주의 국가는 필연적으로 권력을 지닌 소수의 전제적 정치가 되고, 이어 개인숭배가 나오므로, 작가는 궁극적으로 권력을 칭송하는 일만 하게 된다.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전체주의 사회에선 진정한 예술가가 존재할 수 없다. 예술가로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 실제로는 선동선전 요원들이며 그들의 노력들은 근본적으로 진정한 작가들이 이루려고 애쓰는 것들에 대척적이다. 만일 진정한 예술가가 존재한다면, 소련의 만델쉬탐(Osip Mandelshtam),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 솔제니친(Alexander Solzhenitsyn)처럼, 그는 공식적으로는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박해를 받을 것이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전체주의는 자유로운 문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 예술을 경멸하고 이용하며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타락시킨다. 근년에 우리 사회에서 높이 차오른 전체주의 사조는 어쩔 수 없이 우리 문화에, 특히 예술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7. 문화의 진화에 대한 전망


근년에 우리 사회는 상당히 침체했다.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적 색채가 짙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에 맞지 않는 정책들이 추구되었다. 그런 사정은 정치적 분란과 경제적 혼란을 불렀다.

다행히도, 우리 시민들은 그런 사정에서 교훈을 얻은 듯하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런 경제적 바탕에서 우리 문화도 활기를 지니고 진화할 것이다.

개항 뒤에 나온 빠른 사회적 변화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시장 경제의 발전과 핵가족의 출현으로, 혈연이 크게 약화되었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훨씬 계산적이 되었다. 시골의 공동체적 삶에 바탕을 둔 관계는 도시의 개인주의적 삶에 바탕을 둔 사업적 관계로 대치되었다.

이런 상황은 새로운 문화를 부른다. 새로운 과학 지식에 바탕을 두고 빠르게 바뀌는 사회 환경에 맞는 이념과 관행들을 창조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것은 물론 힘든 과제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보인 성공적인 발전은 앞으로도 한국 사회가 성공적으로 진화하리라는 전망을 떠받친다.

여기서 살필 것은 그런 진화가 우리의 정체성을 보다 뜻 깊게 다듬으리라는 점이다. 어떤 사람의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미래의 환경에서 그가 차지할 자리를 가리킨다. 과거의 환경에서 그가 차지했던 자리가 아니다.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들은 그가 그런 자리를 차지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뜻을 지닌다. 즉 정체성은 미래지향적이다.

이 점을 잘 설파한 사람은 오르테가 이 가세트다. 그는 삶의 본질을 ‘미래에 대한 관심’으로 보았고 그런 관점에서 ‘한 국가가 존재하려면, 그것이 미래를 위한 목적을 지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관점을 따르면, 국민의 본질적 특질은 ‘미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과거의 공유만으로는 국가를 이룰 수 없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자신의 조국인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가 ‘공통된 과거, 공통된 언어, 공통된 민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미래’를 지니지 못해서 결국 영구적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떠받쳤다.

국적의 취득에 관한 일반적 관행들을 살피면, 우리는 오르테가의 주장이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져 왔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출생에 의한 ‘생래적(生來的) 취득’이나 혼인. 입양. 인지나 귀화에 의한 ‘전래적(傳來的) 취득’을 통해서 국적으로 얻는다. 사람들이 대체로 태어난 나라에서 영구적으로 살고 혼인이나 귀화는 당사자들이 그 땅에서 영구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행위들이므로, 결국 국적의 취득은 그 땅에서 미래를 보내겠다는 의사의 표시다. 태어나는 사람에게 과거가 없고 혼인이나 귀화를 통해서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의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국민이 되는 요건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임을 우리는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미래에 있고자 하는 위치가 어느 곳이든, 그곳에 이르기 위해선 새로운 환경에 맞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미 사라진 환경에서 나온 문화적 전통에 눈길을 고정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다듬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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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과 '특집' 좋아하는 사회 [퍼온글]
문화관련 글들(ktp) | 2007/03/14 02:07
파문놀이로 함께 해요

“오늘 00당 XXX의원이 (당신이 지겹게 뉴스를 통해 본 내용들을 스스로 나열해보라)란 말을 하여 정계에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파문. ‘ㅍ’이 갖고 있는 거센 소리의 임팩트로 인해 당신은 가슴 속에 약간의 공포심을 갖게 된다. 눈은 자연스럽게 커지고, 고개를 브라운관으로 내민다. 오늘은 무슨 자극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어떠한 일의 영향’이라는 생각보다 ‘싱거운(?) 명시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파문’이란 단어는 액션 영화에 분출되는 스펙터클,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타면 느끼는 쾌감으로 전환되어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한다. 뉴스는 정작 사건의 본질을 합리적으로 소개하는 것을 잊은 채, ‘말’에 담긴 ‘격정’만을 채집한다. 이런 사례들의 빈번함을 볼 때면, <영화, 그 비밀의 언어>의 저자인 장 끌로드 까리에르가 했던 말은 유효하다.
“뉴스는 오락이다.”

얼마나 ‘파문’의 메커니즘이 지겹도록 설파되었는지, 누리꾼들은 ‘파문놀이’라는 것을 만들어 덧글과 덧글의 유머러스한 교환으로 서로의 웃음보를 자극하려 애쓴다. ‘윤은혜, 독일월드컵이 왜 새벽에 중계되는지 몰랐다 파문’, ‘지하철 결혼식, 알고보니 자작극이었다 파문’. 이제 뉴스에서 ‘파문’이란 용어가 나오면 별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뉴스는 자신만의 ‘파문놀이’를 수행한다. 사람들은 뉴스에서 파문이란 단어가 나오면 이젠 들어왔던 습성이 생겨, 예전보다 쉽게 자극을 걸러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파문’이란 단어가 난무하면서 정작 걱정되는 것은 일의 경중이 사라지고, 가치의 옳고 그름마저 본질과 합리가 아닌 이미지와 정서의 잣대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 매주가 특집인 <무한도전>의 특집남발증 -


* 특집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 매달 14일이 되면 설레임이 밀려오는가. 홈플러스엔 14일이 되면 ‘얼씨구나’ 장단 하에 2월엔 초콜렛이, 3월엔 사탕이 그리고 11월엔 빼빼로가 ‘알록달록’, ‘요리조리’ 배치된다.
나의 아련했던 연애사가 생각난다. 5월 14일, 장미꽃 한 송이도 안 챙겨준다며, 이 특별한 날에 나를 가여운 여인으로 만든 자네는 과연 로맨틱한 남자인가라고 심문하는 그녀에게 ‘끽’ 소리도 못하고, 인사동 거리를 죄인처럼 걸었던 그 날. 물론 나의 무지가 그녀의 가슴을 심란하게 만든 것은 그녀의 은장도로 나의 무릎을 찔러도 무방한 일이나, 14일의 이벤트가 난무하는 이 사회에 어찌 원망을 표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은 무슨 프로그램을 볼까. 편성표를 확인해보니, 무슨 ‘특집’이 이렇게 많은 것일까. 어렸을 때 나에게 텔레비전의 ‘특집’은 명절과 예수 그리고 부처의 탄생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심심하면 찾아오는 것은 울릉도 호박엿이 아니라, 특집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이 나를 웃겨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개그- 내가 잘 보는 <무한도전> -를 보면 나를 던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그에 내 발을 담그기 전에, 아쉬움이 섞인 ‘딴지’의 가능성은 강력하게 존재한다. 굳이 붙일 필요가 없는 ‘농촌특집’, ‘복고특집’ㆍㆍㆍ특집이란 단어를 왜 이리 남발하는 것일까. 어린 시절, 방송에서 ‘특집’이라는 테마가 명시된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설레임이 이제는 사라졌다. 마봉춘(MBC)도, 크브스(KBS)도, 스브스(SBS)도 심심하면 ‘특집’을 갖다 붙인다. 이제 ‘특집’이란 단어가 갖고 있는 기대는 사라지고, 특집에 담긴 효과는 ‘특집’이란 글자에 표현된 ‘의사-기대감’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연인들은 14일만 되면 ‘무슨데이’라는 특집에 스트레스를 받고, 방송에선 심심찮게 ‘특집방송’을 한다고 설치니,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특집공화국이다.

* 감동 강요하는 사회

“.. 한국에 돌아와서 유난히 자주 듣는 말이 ‘감동’이다. 감동이란 결국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사람을 움직이려면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논리적 설득보다 정서적 감동이 종종 더 큰 역할을 한다. (중략) 굳이 연속극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초기에는 TV를 보면 자주 눈물을 흘렸다. 조금 슬픈 장면에는 영락없이 구슬픈 배경음악이 깔린다. 최근에는 뉴스 보도에조차 배경음이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본다. 정념이 풍부한 사람들은 감동을 좋아하는 법이다.”

- 진중권, <호모 코레아니쿠스> 중에서-

혁준이와 신식이가 길을 가다가, 콜라병 몸매의 여인을 발견한다. 신식은 혁준에게 이런 감탄사를 날릴 것이다.

“야! 저 여자 죽이지 않냐?”

좋으면 좋은 것이지, 죽일 필요까지 있으랴. 자동차 사고가 나면 남보다 강하게 성낸 놈이 승자인 사회, 자신과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대화보다 주먹으로 해결하려는 ‘돌발영상’의 이미지에 씁쓸한 웃음을 짓는 사회. 대한민국의 비공식 18번 ‘한 오백년’을 생각한다면, 억압과 분출의 피드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으로 이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의 격분이 때론 합리적 과정을 무시하고, 인맥자본으로 돌변하여 낙하산 인사를 만들고, 극장에서 나를 단시간에 웃기거나 울리지 않으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쓰레기 영화’라고 치부 받는 이 사회에 과연 정념과 감동은 원활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 감동의 결핍인가, 감동의 과잉인가. 자작극으로 밝혀진 지하철 결혼식 -


2006년 2월 10일, 지하철 5호선 우장산 역을 지나는 전동차에서 두 남녀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시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조촐한 결혼식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한 효과로 남았다. 심지어 당시 지하철에 있던 할머니 한 분은 그들의 삶을 축복하고 위로하며 더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이 결혼식이 연극영화과 출신 대학생들이 두 달동안 준비해온 '연극'이란 소식이 공개되면서 한편으론 씁쓸한 소회를 감출 수 없었다. 일 년이 지난 후, 인터넷을 통해 ‘진범을 잡아라!’라는 특명이 내려졌던 여학생 성추행 사건도 결국 여학생들의 조작극으로 밝혀졌다. 여학생들은 UCC를 통한 뉴 미디어 기업들의 상업적 부정성들을 알리고자 동영상을 제작했다고 하지만, 속으로 ‘월척이다!’라고 외쳤을 지상파 방송사의 보도국이나 아무리 좋은 의도였다고는 하나, 진의와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의 어긋남을 보인 여학생들에게 가지는 씁쓸함은 가슴에 깊이 남는다.



- 진의는 좋았지만, 표출과 표현의 심사숙고가 고려되지 않은 일년만에
다시 일어난 제2의 지하철 결혼식, 여학생 성추행 연출 사건 -


갑자기 부는 UCC 열풍엔 오직 ‘감정의 분출’ 뿐이다. 미디어의 수많은 기능 중 인간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지위부여기능’의 유혹에 어찌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감정에 호소하고, 자극에 호소하며 벌이는 ‘관심받기 놀이’의 심리가 미디어의 지위부여기능이 가져다주는 ‘스타 만들기’와 ‘자기 주목의 과잉’에 국한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조작을 진실처럼 받아들이고 오늘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적실 것이다.


결국 ‘감동’으로 점철된 연극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한국 사회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방송을 조작하는 일이 일어난다. 더욱 괘씸한 것은 ‘사과방송’ 한 번으로 무마해버리려는 속성이다. 미디어는 감동이란 좋은 어감 아래, 하인즈 워드와 위성미를 아무렇지 않게 갖다 쓰며, 황우석과 MBC 사이에서 스릴있는 게임을 즐겼다. 파문놀이, 특집놀이, 감동놀이.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 ‘놀이’ 참 많다. 다음에 태어날 내 자식에게 다음엔 무슨 놀이를 가르쳐줄까.
                                                                               - 출처 : 풀로엮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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