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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정책의 흐름과 역사
문화관련 글들(ktp) | 2007/07/02 02:18
 

문화예술정책의 흐름과 역사


박인배

민예총 이사

함께하는 삶과예술 대표





1. 문화예술정책의 여러 갈래


문화정책이라 하면 먼저 국가의 문화정책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민간 차원의 사회운동을 벌이는 단체들의 문화예술운동과 관련된 정책방향이 있다.


7,80년대 상황으로 보자면 이 두 흐름은 서로 대립관계에 있었다.

1961년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와 남북분단의 냉전이데올로기로 독재정치의 정당성을 유지하였다.

민주화운동세력은 70년대부터 조직화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 광주항쟁이 유혈진압당하자 훨씬 치밀한 운동론을 수립하였고, 대중적으로 더 큰 설득력을 획득하기 위해 대동놀이와 노래운동 같은 문예운동의 방법들을 활용하였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였으며, 그 이후로는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여 갔다.

그 민주화운동의 전(全) 기간 동안에 한국의 문예운동은 독자적인 조직과 정책을 유지하여왔다. 전체운동이나 부문운동의 문선대적 역할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문화예술운동의 고유한 영역에서의 정책방향을 수립하였다. 


물론 문예운동 내부의 정책방향들도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여러 분파들이 존재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입장을 가지는 것조차도 거부하고 예술의 장르 내적인 발전만을 고집하는 경향들도 있었다.


이와 같은 문화예술정책의 다양한 갈래들은 국가 문화예술정책과의 조응 또는 갈등 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정책노선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국가문화예술정책 또한 단일한 방향으로 유지될 수는 없으며,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정치권력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세계화 환경의 영향으로 여러 갈래의 엉킴이 더욱 복잡하게 되어 있다.


2. 정부 내 문화부의 설치


한국 정부내 문화부 출범은 1990년도이다. 그 이전에는 문화공보부로 문화정책의 중심이 정부시책의 홍보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실제는 독재정권의 안위를 위한 우민화정책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한 정책의 후유증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문화부의 출범은 87년 6월 항쟁 이후 드러난 사회적 제 갈등을 문화적으로 수용(민주화운동세력을 체제내화)할 필요에 의해서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88년도에 발표되었던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발전 기본계획’을 모델로 ‘복지문화’, ‘화합문화’, ‘민족문화’, ‘개방문화’, ‘통일문화’ 등의 목표를 설정하고 출범하였다. 이후 김영삼 정부 시절(1993-1997)에는 체육과 청소년부를 통합하여 문화체육부가 되었고, 위 기본방향 중의 하나인 ‘문화복지국가’가 국정의 목표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이 기본방향이 잘 못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계획들은 올바른 실천으로 실재화되지 못하였다. 빠른 성과를 과시할 수 있는 이벤트성 사업들을 확장시켰을 뿐이었다. 문화복지국가를 경제성장과 같이 고도성장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 잘못된 것이었다.



3. 문화부 문화정책의 기본방향은 왜 실재화되지 못하였나?


  문화정책에서 잔존문화의 영향


한국은 1945년, 40년에 걸친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 긴 식민지배를 겪었던 나라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그 강압의 정도는 매우 심각하였다. 

해방 이후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수립하였으나 한반도는 전쟁과 분단을 겪었다.  민주사회는 민주헌법의 선언이나 정치제도의 구성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현대정치사에서 너무나 뼈저리게 느껴왔다.


  문화예술에서 ‘탈식민주의’의 과제


민주주의의 내용을 담을 ‘근대예술’도 다만 형식에 치우쳐 있었다. 한국의 근대예술은 일제의 식민지 문화정책에 의해서 전통문화를 단절시킨 자리에 서구의 근대문화를 이식시킨 것이었다.  여기에 문화적 사대주의가 함께 심어졌다.

  해방 이후, 남한에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1948년-1960년)은 이러한 일제잔재의 청산을 외면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제가 조선 지배를 위해 활용하였던 반(半)봉건적 질서를 그대로 온존시켜 민주주의 문화가 깊게 뿌리 내릴 수 없게 하였다. 분단으로 비롯된 냉전체제의 반공이데올로기와 친미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문화제국주의 노력도 만만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대체된 신식민문화가 자리잡았다. 지식인사회 전반에 대미 사대주의가 지금까지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군사문화의 잔재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1961-1979)에서는 ‘산업근대화’라는 명분 속에 민주주의도, 문화적 가치도 모두 팽개쳐졌다. 문화예술은 산업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그리고 독재권력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도구’로 활용되었다.

이와 같이 개개인의 창의적 발상을 꽉 막아놓은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여타의 불만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퇴폐적 대중문화가 조장되었다. 사회적 비판을 수렴시킬 수 있는 민주주의문화는 각종 검열제도에 의해서 봉쇄당하였고, 일제시대 이래의 감상주의(感傷主義)가 확장되었다. 독재정치에서 흔히 사용하는 3S(Sex, Sport, Screen) 문화정책이 국가적 시책으로 활용되었다. 광주항쟁의 희생 위에 집권한 전두환 정권(1980-1987)은 중화학공업의 토대를 확장하고 고도성장의 신화를 계속 이어갔다. 국가독점자본으로 비대해진 재벌구조는 정경유착․관치금융의 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얽어갔다. 향락산업도 동반성장하였다. 이와 같은 부조리에 대한 비판은 ‘경제위기’와 ‘빨갱이’라는 단어에 의해서 가로막혔다.


위 신식민문화와 군사문화의 발생 근원은 힘을 많이 잃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잔존문화로서의 영향력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한반도의 평화가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고, 6자회담의 결과 남북당국자간의 대화가 재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월말의 어느 여론조사에 의하면) 70%의 국민들은 북에 대한 지원을 줄여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는 북의 실상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과거냉전시대의 향수(鄕愁 - 또다른 감상주의)를 부추기는 독과점 언론매체들의 영향이 크고, 그들 지식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해묵은 사대주의가 근원이라고 볼 수 있다.

“(위에서) 까(하)라면 깐(한)다”식의 군사문화 또한 그것을 생산하던 군인출신들은 국가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잔존문화로서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인맥으로서의 잔존 정치세력도 거대할 뿐만 아니라 과거 군대를 다녀온 대다수 남성들의 의식구조 속에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 결과 민주화운동이 일상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을 강력하게 저지하여 왔다. 중앙정치에서의 풍향계가 지역 차원의 선거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최근 몇차례의 선거가 이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실제적인 문화의식의 흐름으로 볼 때,  87년 6월 항쟁 이후 유네스코로부터 도입된  문화정책의 기본방향은 실재화될 수 없는 문화적 지형 위에 놓여 있었다. 특히 그를 집행해야 했던 당시의 문화부 관료들 또한 잔존문화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있었기에 ‘표리가 부동’ 혹은 ‘복지부동’하고 있었다. 그 결과 문화부 문화정책의 기본방향은 그저 화려한 말잔치에 다름없는 것이 되었고, 표상으로서의 기본방향일 뿐이었다.






4. 문화산업의 국가 기간산업화


김영삼 정권(1993-1997)의 말기에 IMF를 맞이하여야 했다.

김영삼대통령은 군인출신 대통령의 연속을 단절시켰고, 이전의 민주화운동에서도 일정한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였었다.  이때부터 민주화운동세력의 일부가 제도권 정치 속으로 결합되어 들어갔다.

그러나 이 새로운 문민정권은 1990년대의 세계화 조류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였다. 1997년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외환위기와 더불어 한국경제는 IMF 관리체제 아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정권(1998-2002) 시절, IMF관리체계 아래에서 신자유주의의 기조에 따라  강도 높은 산업구조조정이 강행되었고, 이 구조조정 가운데서 많은 실업자가 생겨났다. 이 실업자들을 새로이 흡수할 곳은 어디인가? 그것은 21세기형 ‘지식기반산업’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였다. 이 지식기반산업은 공장의 설비를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창의력을 더 필요로 하는 산업이다. 문화․관광산업이 그중의 중요한 부분이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경제발전논리에 밀려 문화정책 따위에는 관심을 기울일 여지가 없었는데 사정이 바뀌어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면서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그 실제는 ‘문화산업의 세기’로 해석되고 있었다.

문화산업을 21세기의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애니메이션․영화 등 영상산업 △게임산업 △음반산업 △방송영상산업 △출판․인쇄산업 △패션 및 디자인산업 △도자기 등 공예산업 등이 7대 전략부문으로 설정되어 집중지원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문화관광부의 예산은 국가예산의 1%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화산업의 기반이 되는 문화예술의 진흥 없이는 결코 창의력이 계발되지 않으며, 창의력이 없는 문화산업은 경쟁력 또한 없다. 그 결과 김대중정권 말기에 문화산업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기초예술’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문화산업과 기초에술에 대한 지원의 균형을 갖추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5. 문화참여를 통한 문화기본권의 확보


21세기에 들어선 한국사회는 대중의 자기 발현욕구가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의해서 빠른 시간 안에 조직되어 집단적으로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그 배경에는 90년대 이후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 따른 한국사회의 문화소비사회로의 진입, 정보화 인프라의 급속한 확장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물질적 힘 중심의 ‘근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정보화’의 시대가 실제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라는 이름의 한국 축구 응원단의 모습에서 이러한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인터넷에 의해 수백만 명이 자발적으로 동원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적 잇슈에 대해서도 ‘촛불집회’라는 형식으로 이어졌고, 그해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인터넷 대중의 힘에 의해 역전승하였다.


이러한 배경 하에 등장한 노무현 정권은 ‘자율․참여․분권’을 국정지표로 내세웠으며, 문화정책의 방향도 이에 맞추어 재구성되어, 『창의한국』이라는 제목의 책자로 발표되었다. 『창의한국』은 ‘창의적인 문화시민’, ‘다원적인 문화사회’, ‘역동적인 문화국가’라는 3대 추진목표를 두고, ‘문화참여를 통한 창의성 제고’, ‘문화의 정체성과 창조적 다양성 제고’, ‘문화를 국가발전의 신성장동력화’, ‘국가균형발전의 문화적 토대구축’, 평화와 번영을 위한 문화교류협력 증진‘이라는 5대 기본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탈근대의 과제

『창의한국』의 기본방향과 15년 전 문화부 출범 당시의 문화정책 기본방향을 비교해보면 용어상에서는 별반 달라진 바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의 문화정책의 중심은 크게 바뀌어 왔음을 살필 수 있다. 그것은 정권의 의지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시대상황의 변화가 더 큰 몫을 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문화정책이 시대상황의 변화에 대응하려 하여도 잔존이데올로기에 의해 발목을 잡히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참여정부의 출범과정에서 잔존문화의 영향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던 이유 중의 하나는 정보화시대의 위력이 더 크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은 경제성장 중심의 근대적 발전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고, 지식인들의 사대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수용 이외에 다른 대안을 가지지 못하였다. 『창의한국』조차도 다른 부처의 ‘완강함’을 뛰어넘기가 힘들었다.




<『창의한국』의 기본방향>


문화와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문화교류협력 증진


문화와 지역

국가균형발전의

문화적 토대 구축

문화와 사회

문화의 정체성과

창조적 다양성 제고

                                 

문화와 경제

문화를 국가발전의

신성장동력화

 

문화와 개인

문화참여를 통한

창의성 제고


  ο 정보기술의 발달은 방송과 통신을 융합시키고 있으며, 채널의 무한한 확장이 기술적, 상업적 양 측면에서 가능해지고 있다. (정보화의 진전과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 증대)

   - 정보기술이 표준화되고, 기업경영, 생활영역, 공공서비스 등의 각 분야에 적용되어 효율성을 높이는 단계에서 ‘지식’이 제4의 생산요소로 중요하게 자리잡았다.

   - 소비자의 취향이 생산에 바로 영향을 미침에 따라 생산자와 소비자의 결합(Prosumer)이 이루어지고, 소비자의 다양한 선호가 반영되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확대된다.

   - 물질적 필요의 최소기준을 넘어섬에 따라 문화적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분위기와 함께 다양한 문화적 가치에 대한 중요성이 증대한다.

   - 기존의 고전적 예술장르체계가 뉴미디어의 영향으로 상호 융합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근대적 특성에 의해 1-2백년 내에 갑자기 융성하였던 특정 소장르들의 경우 쇠퇴가 불가피할 경우도 있다.


  ο 경제, 문화 분야에서 국가 간의 경계는 약화되고, 정치적으로도 국가주권이나 영향력은 약화되는 추세이다. (세계화와 다문화사회의 도래)

   - 정보화에 의해서 촉발된 자유무역의 확대는 재화와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집단의 경계를 허물어 각국의 노동자들이 직업을 찾아 이주하게 되고, 국제관광의 수요도 문화체험 위주로 활성화되어 서로 다른 문화의 접촉 빈도가 높아진다. 

   - 문화의 상품화는 문화산업자본의 이윤추구에 따라 미국중심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의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의 편재현상을 초래한다. 

   - 한편 미국중심의 세계문화의 확산은 문화다양성협약과 같은 대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문화블럭화 경향을 부추기기도 한다.

   - 국내적으로는 미국중심의 세계문화 추종과 동아시아적 문화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병존하고 있으며, 민족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각성도 높아지게 된다.

   - 그러한 민족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각성은 국수적 민족주의에 의해서는 이미 국내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여러 다른 민족문화와의 공존이 불가능하게 되므로 다문화사회의 공존양식을 찾게 된다.


  ο ‘고용없는 성장’과 사회적 효율성을 위해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여파로 자본(지식문화자본도 포함될 수 있음)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소득 격차가 커지게 된다.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화와 문화적 충돌의 위험)

   - 소득의 격차는 사회 계층화를 부추기어 생활양식, 소비행태, 문화향유방식 등에서도 양극화를 뚜렷이 드러나게 한다.

   - 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화는 프랑스에서 이슬람계 이주민 자녀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와 같이 문화적 충돌이 폭발의 계기가 될 수 있다.

   - 또한 부모세대의 문화향유의 양극화에 의해 그 자식들이 문화적 감수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적절한 문화예술교육을 받지 못하게 될 경우, 창조성이라는 문화자본을 축적시키지 못해 ‘가난의 대물림’이 진행된다.


  ο 세계화의 지배적 추세가 강화 될수록 이에 대응하는 지역화 요구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때의 지역화는 단순히 공간적으로 흩어져 있는 지역만이 아니라 ‘세계화와 지역화의 공존(glocalization)’, '밑으로부터의 세계화‘등의 개념을 포함한다. (지역화 요구의 증대와 미래지향 생활양식의 추구)

   - 지역문화의 뿌리에 입각한 문화다양성의 확산과 이를 위한 범세계적 교류, 특히 세계화의 선두에 선 국가들에서조차 생태적 각성과 같은 성찰적 문화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 기술적으로도 정보의 민주화, 정보커뮤니티의 활동 등은 질 높은 문화콘텐츠의 창조로 이어질 것임.

   - 자연에의 연계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예술활동에 대한 참여의 욕구가 높아질 것이며, 생활권 차원의 예술동아리활동에 대한 추구가 강해질 것이다. 


6. 문화정책의 생태계적 패러다임


참여정부 문화정책의 현황과 한계


  ㅇ 문화예술정책 추진의 통합적 관점의 부족

    - 『창의한국』은 광의의 문화개념에 입각하여 그  정책영역으로 민족적 정체성, 문화유산과 예술, 교육과 학습, 자연적이고 인공적인 경관, 대중매체와 문화산업, 관광, 스포츠와 레저활동 등을 설정하고, 이들 영역간의 상호연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 정부내 상호연계성의 필요를 설명하기 위해 타부처와 협력이 요구되는 사업들을 예시하고 있다. 타 부처에서도 문화분야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확산되고 있으나, 독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을 뿐, 실제 사업으로서 문화부와의 연계 실적은 미약하다. 

   - 문화부내에서도 문화예술교육과, 지역문화과, 공간문화과 등이 신설되어 정책영역의 재편을 편제화하였으나 이전의 실국, 과단위 정책추진의 관행이 강하게 남아 있다.


  ㅇ 기존의 문화기반시설은 대부분 개발 우선 정책에 의해 건설되어, 문화적 필요와 프로그램 관리 운영 체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어진 경우가 많아 현재 이용률이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 (공간문화의 난삽함)


  ㅇ 2006년 문화향수실태조사의 결과는 고급예술에 대한 향수율이 6년 연속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공급형 지원정책을 중심으로 하였던 예술정책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제고를 요구하고 있다. (기초예술의 위축과 공급형 지원정책의 한계)

   - 예술현장에서 새로운 장르와 경향의 출현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비해 예술위원회의 장르 소위원회 구성은 ‘고전적’이어서 새로운 비전을 발빠르게 구체화하지 못함.

   - 미래에의 전망을 이끌어줄 수 있는 예술인 정책의 부재는 기초예술 창작역량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ㅇ 일제의 지배 이래 전통문화의 원만한 계승이 단절된 채 외래문화의 급속한 유입은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극도로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민족문화 정체성의 위기).


ㅇ 2006년 문화향수실태조사에 의하면 대도시와 중소도시, 학력간, 소득격차간 문화향유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사회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경험률도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소득격차에 따른 경험률의 편차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100만원 미만의 경우에는 평균치의 1/5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수준으로 드러나 있다. (문화향유의 양극화 심화와 대물림)


문화예술의 생태계적 구조 확립


ㅇ 왜 생태계적 접근인가

   - 분야를 가로지르는 이슈(cross-cutting issues)에 대응하는 통합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의 각 분야별 연관관계를 생태계의 먹이그물과 같은 관점에서 그려보아야 한다.

   - 초기의 문화예술생태계 논의에서는 문화산업의 토대로서의 역할을 하는 기초예술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어 양자의 순환구조가 원활해야 상호발전을 이루는 모형으로 제시되었으나, 이 양자 순환구조의 모형(아래 그림의 기초예술과 문화산업의 관계)은 문화산업의 실질적인 수용에 해당하는 생활권의 문화소비활동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일반국민의 일상적인 문화활동을 정책 영역으로 설정하지 못하였다.


  ㅇ 자생적 토대의 구축을 위한 저변확대

   - 기초예술의 고사(枯死) 위기는 그 자체만으로는 시장의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창작활동을 직접 지원하는 공급형정책으로는 지금까지 별 실효가 없었다.

   - 문화예술의 생태계적 구조를 그리면 기초예술은 원래 수용자로서의 대중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해왔으며, 현재 문화산업과 대중매체와의 시장경쟁에서 밀려난 상태이지만, 직접 참여하는 예술체험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리라는 전망에 의해  대중 속에서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화된 생활권을 토대로 하는 문화예술생태계 모형


   - ‘작은 단위로 지역화된 생활권’은 일반 국민들의 일상적 삶의 영역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문화소비행태는 하나의 ‘대박’ 영화에 천만 이상의 관객이 몰리는 ‘문화적 쏠림현상’이 심각하다. 대중매체에 대한  ‘일방적 수용’의 경향이 이러한 현상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 그 결과 문화예술생태계의 순환이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어 기초예술이 고사위기에 놓여 있는 바, 이는 자연생태계에서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한 농업이 토양을 황폐하게 만든 것에 비교될 수 있다.

   - 생활권에서의 문화소비가 ‘문화적 쏠림’ 현상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문화상품이 비판적으로 수용되어야한다. 이러한 비판적 수용역량은 생활예술동아리의 활성화와 그 활동경험으로 길러질 수 있다. 창조활동의 경험이 풍부할수록 문화상품의 질적 수준을 올바로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 창조역량을 가진 소비자들에 의해서 문화적 생비자(Pro-sumer), 즉 UMC(User Made Culure)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경향이 자리 잡을 때 문화산업의 제작구조도 단일품종의 대량판매(대박, Block-buster)에 목매달지 않고, ‘다품종 소량판매’로 수익을 올리려는 건실한 제작방향을 가지게 될 것이다.


  ㅇ 국민의 문화감수성 증진(확대된 개념의 문화복지 실현)

   - IMF 이후 문화정책의 새로운 과제는 ‘창의성교육’이었다. 국민의 창의적 역량이 새로운 세기 국가경쟁력과 사회발전의 핵심적 동력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2004년 6월 발표된 ‘창의한국’과 ‘예술의 힘’도 이러한 과제의 추진이 핵심적 내용이었다. (‘창의한국’ P25-35).

   - 그 결과 문화예술교육진흥법이 마련되어 문화예술교육 관련 사업이 급속히 확대되기는 하였으나 교육시행의 양적 확대에 대한 통계만 있을 뿐 문화감수성의 증진에 대한 성과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 그 이유로는,  학교에서의 교육이 여전히 근대적 교육의 산물인 입시위주의 틀에 갇혀 있고, 둘째 문화예술교육의 양적 확대 수준이 전체 국민을 포함할 정도의 공급량을 절대로 가질 수 없고, 마지막으로 문화예술교육의 성과가 그리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는 본질적인 측면도 있다.

   - 공급형 문화예술교육정책의 급속한 확대는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특히 질적인 측면에서)를 가져올 수 있고, 이는 자생적 시장구조 내에서의 수요의 양적 확대를 선도할 촉매로서의  공공정책이 오히려 자생성의 모델을 지체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 국민 스스로가 ‘문화참여를 통한 창의성 제고’를 이루어내어 ‘창의적인 문화시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그러한 수요가 생겨나도록 사회문화예술교육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한 통합적인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생활권의 자생성에 기반한 선순환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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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문화와 공통어문제(조정환)
문화관련 글들(ktp) | 2007/06/12 23:56
 

6월민주항쟁20년기념 대토론회



주최 및 주관 :

공동 기획 및 진행 : 문화단체


    삶문화와 공통어 문제


조정환 (문학평론가, 「실천문학」 편집위원)




1. 머리말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혀 밑의 얇은 조직을 절개하는 수술(이른바 ‘설소대절제술’(舌小帶切除術))을 강요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혀 절제 수술을 하면 영어발음이 좋아진다는 이유로 수술이 강요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학교에서 학원으로, 가정에서 직장으로, 국내에서 국외로 이어지는 현대 영어교육의 일부임이 분명하다. 영어 조기교육의 논리는 초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유아들의 삶에 부과하기 시작했고, 영어를 배우기 위한 조기유학은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교육과정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어 능력 검증은 학교 시험이나 대학 수능평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학원들은 입학과 졸업논문제출 자격에 반드시 영어능력을 포함시키며 일부의 대학원들은 자연과학은 말할 것도 없고 인문과학에서조차 영어로 된 논문에만 학위를 수여한다. 유학을 위한 학문영어 시험인 TOEFL, 일상 및 업무를 위한 영어 능력 시험인 TOEIC, 그리고 이 양자를 겸한 TEPS 등으로 다양화된 영어능력 시험들은 영어를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문제이자 문턱으로 만들어 놓는다. 요컨대 영어능력은 학업의 척도이자 입학의 척도이고 취업의 척도로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의 문화적 현상들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 우리 삶의 매우 큰 부분이 영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으로 배치되면서 영어교육 시장은 거대 시장이 되었고 영어적 소통은 한국어적 소통을 압도할 것처럼 거센 물결로 되고 있다. 상점 간판들이 영어로 바뀐 지는 오래며 상품의 이름들, 심지어 책 제목조차 직접 영어로 지어지고 있다. 영화, 가요, 신문,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등 대중적으로 향유되는 문화상품들 속에서 영어는 필수불가결한 구성부분이다. 인터넷 정보의 80% 이상이 영어로 되어 있다. 점점 영어가 지배적 문(文)으로 되면서 문맹은 한글능력이 아니라 영어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영어를 말할 수 없는 사람은 문화적 불구자, 즉 반귀머거리에 반벙어리로 취급된다. 이러할진대 영어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혀 수술을 마다할 일이 아닌 것이다. 필요하다면 좌우반구로 나누어 언어능력을 관리한다는 두뇌까지 수술해야 할 형편이 아닐까?

영어공용론은 영어를 우리 삶과 신체조직 속에 강제로 (그래서 마침내 무의식적 자발성의 방식으로) 각인하는 이러한 역사적 상황의 논리적 연장이자 그 정점이다. 복거일은, 중립적 제목 속에 영어공용론을 감추어 두었던 [국제어 시대의 민족문제](1998)에서와는 달리,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2003)는 선동적이고 도발적인 제목 하에서 영어공용론을 펼친다. 그의 노골화된 영어공용론은 점점 심화되어 가는 영어 편집증에 불을 지피면서 영어능력 향상의 전국적이고 공공적인 방안으로 제시된다.


이 방안(영어공용-인용자)은 당장 우리 시민들이 영어에 들이는 투자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 것이다. 지금 우리 시민들은 영어를 배우는 데 엄청난 자원을 쓰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투자의 효율은 아주 낮다. 근본적 원인은 우리 시민들에겐 영어를 일상적 활동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힐 기회가 없다는 사실이다. 어린 아이들이 일상적 활동들을 통해 언어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으면, 우리 시민들은 영어가 일상적으로 쓰이는 환경에서 영어를 쉽고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이 방안이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은 그것이 기회의 평등에 이바지한다는 점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영어학원에 자식들을 보내고, 적잖은 사람들이 자식들을 해외로 유학을 보낸다. 물론 그들은 재산이 넉넉한 계층이다. 영어가 이미 생존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술이 된 터라, 그런 사정은 부의 세습을 뜻한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으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우는 기회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정부도 영어교육에 투자를 더 많이 하게 되어,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1)


국가를 영어학원화하며 사회를 영어마을로 만들고 소통적 삶 전체를 영어에 결박시킴으로써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영어를 유일의 공용어로 삼는 것, 지금 사용되는 ‘조선어’의 사멸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고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영어를 우리말과 함께 공용어로 삼자는 것이다. 그렇게 두 가지 공용어들이 쓰이면, 우리 시민들은 자식들에게 영어와 조선어 가운데 하나를 골라 모국어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의 영어의 확산과정이 시민들이 바라는 속도로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다. 이 방안은 국제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삼는 일의 첫 단계이면서도 조선어의 습득에 큰 투자를 했고 조선어에 큰 애착을 지닌 우리 시민들의 심리적 저항을 크게 받지 않을 것이다.2)


조선어는 사멸할 것이다. 이것은 민족어들의 궁극적 쇠멸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이것에는 ‘회의나 예외’3)가 있을 수 없다. 영어는 이중 언어 사용이라는 과도기를 거쳐 대부분의 나라의 유일 공용어로 자리 잡을 것이다.4) 복거일의 이러한 주장을 ‘몽상’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조동일)은 문제의 핵심을 덮어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늘날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영어 득세의 현실적 경향을 실증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근대로의 이행기에 일본이나 조선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소수 엘리트들의 계몽주의적 영어공용론 같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영어에 대한 욕망은 ‘시민들’의 대중적 욕망으로 내면화되어 하루하루의 삶을 규율하는 의식과 습관과 문화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복거일이 자신의 영어공용화론을 어떤 계몽적 어법도 빌지 않고 ‘시민들이 바라는’ 것의 ‘자연스러운’ 진행에 다름 아닌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은 영어의 유일 언어화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처럼 느껴지게 된 현금의 언어문화적 상황 때문일 것이다.

영어가 인간능력 측정의 절대 척도로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언어들을 버리고 습득해야 할 절대 언어로 받아들여지는 이 문화적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에게 과연 다른 문화적 가능성이, 다른 언어적 대안이 남아 있는 것일까? 만약 그러한 가능성과 대안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일까?




2. 근대와 언어


가. 언어와 창조, 그리고 생명 진화

우리에게 언어 문제가 화급한 문제로 대두되어 있음을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다. 도대체 언어가 무엇이기에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던져져 있단 말인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언어는 정보전달의 수단이라거나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정의를 가지고 언어 문제를 다룬다. 복거일의 영어공용론이 특히 그렇다. 분명히 언어는 지시하고 전달하고 소통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왜 우리는 언어를 통해 지시하고 전달하고 소통하는가? 삶의 변형을 가져오기 위해서다. 삶을 다르게 창조하기 위해서다. 지시와 전달과 소통은 창조와 변형을 위한 계기들일 뿐이다. 언어는 인간이 새로운 삶을 열어나가는 비물질적 기술인 동시에 의식의 비물질적 신체이다.


인간은 단지 자신의 기계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기에 이른다. 그는 아마도 이런 일을 두뇌의 우월성에 힘입고 있을 것이다. 두뇌는 인간에게 무한수의 운동기제를 만들게끔 해 주고 새로운 습관들을 끊임없이 과거의 습관들에 대립시키며 자동성을 자기 자신에 맞세워 분해하면서 그것을 지배하게 해 준다. 인간은 이런 일을 언어에 빚지고 있다. 언어는 의식에 비물질적 신체를 제공하여 거기서 자신을 구현하고 그렇게 해서 의식으로 하여금 물질적 신체에만 의존하지 않을 수 있게 해 주는데, 물질적 흐름은 처음에 의식을 끌고 가서는 곧 삼켜 버릴 수도 있었다. 또한 인간은 위와 같은 일을 사회적 삶에 빚지고 있다. 언어가 사유를 저장하듯이 사회적 삶은 노력을 저장하고 보존한다. 그렇게 해서 사회적 삶은 평균 수준을 고정하여 개인들로 하여금 단번에 거기로 올라하게 하고 이런 최초의 자극에 의해 평범한 사람들이 잠들지 않게 하고 탁월한 자들은 더 높이 올라하게 해 준다. 그러나 우리의 두뇌와 사회 그리고 언어는 단 하나의 동일한 내적 우월성이 외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 기호들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생명이 주어진 순간에 진화로부터 획득한 유일하고도 예외적인 성공을 말해준다. 그것들은 인간을 나머지 동물과 구분해 주는 본성의 차이를 나타내며 단순한 정도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로부터 우리는 생명 도약의 발판이 된 넓은 점프대 끝에서 다른 모든 것들은 팽팽하게 당긴 줄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여 내려와 버린 반면에 인간만이 장애물을 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5)


생명체로서의 인간은 한편에서는 두뇌와,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와 연결된 언어를 통해 삶을 새롭게 창조해 나간다. 정보와 전달 그리고 소통은 이 창조 과정의 기능적 계기들일 뿐이다.6) 그러므로 새로운 언어의 문제는 사실상 새로운 의 문제이다. 오늘날 언어의 변형이 문제로 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기, 진화의 길을 개척하기, 요컨대 봉착한 장애물을 통과하기가 문제로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 언어와 권력

그런데 사회에서 도구나 재화보다 사회체라는 기계적 배치물이 우선하듯이 언어에서도 랑그나 단어보다 언표행위라는 집단적 배치물이 우선한다.7) 기호계의 이 집단적 배치물은 크게 보아 질적으로 구분되는 두 가지 벡터, 성분, 노선이 갈등하는 장(場)이자 일종의 블록이다. 한편에는 생명의 창조적 약동과 창조적 협력의 잠재적 성분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주객 분리의 구조를 만들어 내고 변수를 상수로 고정시키며 창조를 명령에 종속시키는 현실적 성분이 있다. 전자는 후자와 혼합되고 또 그것에 의해 침식된다. 요컨대 언표행위의 집단적 배치물은 언어활력이 언어권력으로 응고되는 한편 다시 언어권력이 언어활력의 특이한 추상기계에 의해 균열되면서 갈등적으로 구성되는 일종의 역사적 블록이다.8)

공용어(oficiala lingvo)는 응고, 상수, 표준의 집대성이다. 그것은 방언들, 소수어들을 타파하고 흡수하면서 성장하는 중앙집권적 언어이다. 그래서 공용어는 흔히 국어(nacia lingvo)로 정립된다. 공용어로서 국어가 갖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공동의 언어를 사용하는 통합된 국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국가는 어떤 장치들을 사용하는가? 우선 문법을 확립하고 체계화해야 한다. 문법은 소수어적 가능성을 봉쇄한다. 언어생활과 사유가 정해진 코드 위에서 전개되도록 만드는 핵심적 장치이다.9) 여기에 어휘의 표준화가 덧붙여짐으로써 표준문법을 갖춘 표준어 체계가 구축된다. 둘째로 표준어의 교육이 필수적이다. 국어는 초등, 중등, 고등 전 교육과정의 필수과목으로 삽입되며 능력 측정의 척도로서 기능한다. 셋째로 국어 과목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과목이 이 표준어로 교육되어야 한다. 외국어조차도 국어로써 교육됨으로써 국어의 주권은 확고해진다. 넷째 표준어는 입법, 사법, 행정 등에 걸친 전 정치영역의 공적 언어로 자리 잡는다. 중앙집권적 행정체계는 표준어의 작동공간으로, 다시 말해 언어적 명령체계로 기능한다. 다섯째로 표준어는 노동어로서 사용된다. 공장과 사무실에서 표준어는 작업상의 협력을 위한 공동언어로 사용된다. 여섯째 표준어는 문화언어로서 문예창작과 신문방송의 기본언어로 사용된다. 이렇게 다방면적으로 구축된 표준어 체계를 통해서 사람들은 공동의 언어망에 연결된 국민으로 양성된다. 이 공동의 언어망 위에서 사고방식, 감정체계, 행동양식의 공동성이 형성되어 공용어로서의 국어는 마치 자연의 산물인 것처럼 개개인들의 뼈 속 깊숙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국어는 언어에 의해 표현된 개별 이데올로기에 앞서는 국가의 모반(매트릭스)이며 국민적 충성심, 애국심, 민족성 등 국민통합을 위한 정서형태들의 깊은 원천이다. 이 자발성의 정서형태들을 기반으로 국어는 국가의 필요를 국민들 자신의 욕망으로 만드는 은폐된 명령어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국어를 통해 국민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다는 것은 다른 언어를 통해 형성되는 다른 국민들과의 대등함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의 경쟁을 의미하기도 한다. 형성과정에서 방언과 소수어들을 포식해온 국어의 흡수 및 확장의 본능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요컨대 그것은 국경 너머의 소수어, 민족어, 방언들을 타파하고 필요한 것을 흡수하면서 확장하려고 한다. 국어 체제에서 언어 간의 전쟁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국어는 국민의 공동망으로서 국가의 근간으로 기능하고 국가는 해외에서 생산된 잉여가치를 흡수함이 없이는 자신의 잉여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자본의 정치적 조직형태이기 때문이다.10) 자본이 본원적으로 제국주의적인 그 만큼 국가도 제국주의적이며 국어 역시 본원적으로 제국주의적인 언어형식이다. 이것은 식민지 정책에 언어동화 정책이 필수적인 구성부분으로 포함된다는 것에서, 아니 언어동화 정책이야말로 식민지 정책의 골간이라는 점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11) 식민지 언어동화 정책은 국내에서 방언들과 소수어들을 흡수하고 타파하면서 표준어, 공용어로서 국어를 정립한 역사를 다르게 반복한다. 국어의 정립과정이 사회 전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표준적 언어체계의 구축과 확립의 노력을 요구했던 것처럼 식민정책은 식민지 주민들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국어의 확립 및 국제화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12) 그 노력은 발음, 강세, 억양, 표기법, 문법, 어휘, 문체, 기계화의 용이성 등 언어의 모든 영역에 주의 깊게 기울여진다. 다시 말해 외국어의 다양한 언어적 변주능력을 국어의 동일성의 체계 속에 흡수하여 순치하면서 궁극적으로 외국어를 타파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 근대와 국어

이렇게 해서 민족국가를 중심으로 언어활동이 조직되는 '국어'(國語)의 시대가 개시된다. 국어의 지배는 전적으로 근대적 현상이다. 근대 이전의 지배적 언어생태는 이와 달랐다. 한문, 라틴 문자, 아랍 문자, 빨리(Pali) 문자 등 몇 개의 광중심적 문어가 지역적 공용어로 기능하고 각기 다른 소수어들과 방언들이 구어로 사용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근대 이전의 출판은 이 광중심적 지역 문어들을 출판언어로 사용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이 광중심적인 신성한 언어(신성한 묵어)에 의해 연결된 고전적 공동체를 근대 민족들의 상상된 공동체와 구분한다.13) 자본주의의 발흥과 발전이 자립적 민족국가의 수립을 필수적 조건으로 요구하면서 민족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언어 조직화가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앤더슨은 민족이라는 상상 세계를 구축하는 두 가지 연결매체로서 단순한 달력상의 일치로 나타나는 공허하고 동질적인 시간 외에 민족어로 출판된 책과 신문을 든다. 특히 신문에 대한 그의 서술은 인상적이다.


신문은 엄청나게 팔리지만 하루살이 같은 인기를 누리는 '극단적인 형태'의 책이었다. 1일 베스트셀러 책이라 말할 수 있을까? 신문이 인쇄된 바로 그 다음날에 폐품이 된다는--일찍부터 대량생산된 상품의 하나인 신문이 현대 내구재의 내재적 폐품화를 예고한다는 흥미로운--바로 이 사실은 픽션으로서의 신문을 거의 동시에 소비하는 ('상상하는') 이 엄청난 대중의례를 창조한다. 우리는 특정한 조간판과 석간판이 저 날이 아닌 이 날에만, 이 시간과 저 시간 사이에 압도적으로 소비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 신문은 현대인에게 아침 기도의 대용역할을 한다고 헤겔이 관찰했듯이 대중의례의 의미는 역설적이다. 이 대중의례는 조용한 사적인 시간에 머리를 식히면서 행해진다. 그러나 각자는 그가 행하는 의례가 수천의(혹은 수백만의) 다른 사람들에 의해 동시에 반복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지만 그 사람들의 신원은 전혀 모른다. 더욱이 이 의례는 하루 한나절의 간격으로 끊임없이 반복된다. 세속적이고 역사적으로 시간이 측정되는 상상의 공동체에 대해 이보다 더 생생한 다른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14)


인쇄자본주의를 근거로 반복된 민족에 대한 이러한 상상적 의례의 결과 주권의 성격과 위상이 바뀐다. 이제 정본 문자언어, 신성한 섭리에 의해 통치하는 군주, 우주와 역사의 통일이라는 시간관의 3위일체에 의해 지탱되던 전근대적 주권개념은 붕괴한다. 그것을 대체하면서 각각의 민족어를 말하고 읽는 집단이 주권의 궁극적 담지자로 부상한다.15) 민족 공동체에 대한 이러한 상상은 때로는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혁명적 운동에 의해 조성되었고 때로는 이 대중적 공동체에서 배제될 위험에 처한 주변집단들(왕조와 귀족의 세력집단들)에 의해 위로부터 추진되었다. 황호덕은 박영효의  [사화기략]에 대한 분석을 통해 국어로서의 조선어의 확립과 조선민족의 상상적 발명이 후자의 경로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밝힌다.1) 19~20 세기 전후 개항, 정변, 내전, 전쟁, 합방을 거치면서 이루어진 세계체제로의 편입과정에서 조약과 통상의 필요성이 증대했고 그럴수록, 다른 민족어의 존재와 대비되는, 조선어의 부재가 깊이 실감된다. 차이가 차이로서 대접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대칭성이 요구되는데, 국가 간의 대칭성을 요구하는 외교상황과 그 수행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구어 발화의 상황이 자국어의 필요성을 상상케 하고 국어 발명의 욕구를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2) 그리하여 1894년에 고종은 "법률칙령은 다 국문으로 본을 삼고 한문 번역을 붙이며 또는 국한문을 혼용함"이라는 칙령을 발하게 된다. 이로써 훈민정음 이후 중국말에 비교하여 방언, 이언, 속어, 언어(諺語)로 불린 말에 상응하여 '상스런 말을 적은 글'이라는 뜻의 '언문'으로 불려왔고 때로는 반절, 암클, 창살글자, 중글, 상말글 등으로도 불려던 정음이 마침내 국어, 국문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유길준이 <서유견문>(1895)을 국한문혼용으로 쓰고 이듬해 창간된 <독닙신문>이 순한글 신문으로 발간됨으로써 바로 세계체제로의 편입기에 비로소 민족어를 통한 민족 공동체에 대한 상상이 개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기 전환기에 국어, 국문을 정립하기 위한 주시경의 노력, 특히 1898년에 출판된 [국어문법]은 국어를 통한 자립적 사유체계를 확립함으로써 다른 민족과 대등한 민족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한 초석이 된다. 1910년 이후 일본의 지배와 동화정책 속에서 국어의 발전은 위기에 부딪히며 국어학 그 자체가 탄압의 대상이 된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은 그 정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계속된 사전편찬 작업과 맞춤법통일 작업은 일본에 의한 언어적 동화에 대한 거부로서 정치가 언어에 내재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근대는 민족적 상상력을 활성화한 한 시대이다. 국어가 근대에 특징적인 현상이라 함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라. 민족문화와 민족어

이처럼 민족은 대타의식 속에서 민족어에 기반을 두고 상상된 특수한 역사적 형성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민족이 민족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문화가 민족을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민족문화의 형성 과정은 민족어의 세공에 기초한다. 이 사회적 과정에는 두 가지의 상반된 힘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하나는 민족에 기초한 국가주권의 형성을 통해 자신을 확장하려는 개별자본의 욕망이다. 또 하나는 그 국가주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방어하려는 민중들의 욕망이다. 자본은 민족적 통합이 축적과 경쟁의 지렛대로 기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민중의 삶의 요구를 억제하려 하며 민중은 반대로 민족적 통합의 틀 속에서 자신들의 삶의 요구를 극대화하려 한다. 이 갈등 때문에 민족문화 속에 우파 민족문화와 좌파 민족문화의 대립이 발생한다. 물론 이 둘은 민족이라는 틀 속에서의 갈등이며 표준어의 확립은 이 갈등의 산물이다. 지배계급은 표준어의 제정과 규범화를 통해 민족어를 행정과 통치 및 교육의 필요에 종속시켜 왔다. 이 과정에서 민중의 소수적 언어들은 방언, 사투리, 지방어로 분류되며 하위언어로 배치된다. 이렇게 하여 민족문화는 소수어들을 흡수통합하면서 성장하는 표준어의 작동공간으로 경화된다.



3. 세계화와 영어공용 논쟁


가. 민족문화와 그것의 제국주의적 성격

민족문화, 민족국가의 형성과 발전이 자본주의적 사회통합의 종착지가 아님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소수민족을 병합하고 억압하면서 하나의 통일된 주권으로 일어선 민족국가, 소수어들과 방언들을 병합하고 배제하면서 표준화된 민족어, 그리고 민족어에 기초한 민족문화는 앞서 암시한 바처럼 모두 동일하게 본원적으로 제국주의적인 성격을 갖는다. 제국주의는 외부를 흡수하면서 민족국가의 국경을 확장하는 정치형태이다. 제국주의는 근대 초기에는 강대국에 전형적인 정치양식이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식민지 체험을 하고 독립한 나라들에서도 제국주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본다. 전후에 독립된 많은 민족국가들 중에서 한국처럼 국민적 통합에 성공한 일부 나라들이 아(亞)제국주의적 확장 욕망을 내보이는 것은 민족 개념 속에 외부의 흡수를 통한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논리가 내재해 있다는 점을 반증해 준다.

그러나 오늘날의 민족국가와 제국주의는 흡수할 외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외부로의 확장을 꾀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역사적으로 제국주의는 전자본주의, 비자본주의라는 자본주의 외부 지역의 자원들, 주민들을 민족국가적 자본주의 속으로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로 변형되고 기술세계가 제2의 자연으로 되며 기존의 자연도 자본주의에 의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영역으로 바뀐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진정으로 고유한 자본주의로, 제 발로 선 자본주의로 되었다. 자본주의 외부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흡수할 외부가 없는 상황에서 제국주의는 무엇을 흡수병합할 것인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이러한 상황에서 흡수병합의 논리가 작동하는 가장 최근의 형태이다. 세계화는 여러 민족국가들과 개별자본들과 국제기구들을 네트워크 형태로 통합하여 전 지구적 수준에서 주권을 재구축한다. 민족국가의 흡수병합의 논리는 오늘날 지구제국의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다.3) 지구제국은 민족국가들을 마디로 삼으면서 세계 전체 주민들의 삶 에너지를 흡수한다. 이것이 정보적 자본형태인 초국적 금융자본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지구제국에 포획되어 있다. 제국 외부는 이제 사실상 실재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지구제국이 사용하는 주요한 지배수단은 핵, 화폐, 정보이다. 이 중에서 정보적 지배는 특히 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평면에서 작용하면서 사람들의 지각, 정서, 행동을 변조하는 내면적 권력형태이다. 정보적 지배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더욱 커지고 있다. 노동의 비물질화는 이러한 과정의 결과이자 동시에 원인이다. 노동은 정보, 지식, 소통, 정동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가고 있는데 이것은 언어노동이 노동의 주요형태로 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 지구제국, 세계문화, 그리고 영어공용론

세계적 수준에서의 이러한 정치사회적 상황이 민족어, 민족문화, 민족국가의 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한국에서 영어공용화론이 대두되는 정치적 지평이다. 영어는 제국의 정보적 지배를 위한 현 시기의 ‘사실적’ 공용어(oficiala lingvo)로, 제국 주권을 재생산하는 정신적 코드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확장시키고 사람들의 삶 속에 내면화시킴으로써 제국은 자기재생산의 지적 정서적 토대를 확보한다. 이런 의미에서 영어는 분명히 지배언어, 주권언어, 척도언어이다. 영어는 경영의 언어로서 효율적 축적의 수단이 됨과 동시에 노동언어4)로서 생존을 위한 필수 언어로 사용된다.5) 영어의 확장과 세계화의 효과는 수많은 언어들의 죽음으로 나타난다. 세계 언어의 절반 이상이 빈사 상태에 있다. 즉 다음 세대로 효율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세계 언어의 대부분이 사멸하게 될 중대한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다.6) 세계문화는 소수어들, 소수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민족어들, 민족문화의 죽음을 빠르게 재촉하면서 영어에 기초한 세계 유일문화의 지배를 가져오고 있다. 이것이 영어공용론이 등장하는 사회정치적 무대이다.

복거일은 지금이 '모든 문명이 하나의 지구제국으로 통합되는 때'라는 예리한 시류감각에 자신의 논리를 정초한다.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판단을 흐리고 있는 것은 민족주의이다. 시민들의 애국심이라는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 사회를 실제로 이롭게 하려면 거친 민족주의가 제어되고 길들여져야 한다. 민족주의는 민족어와 관련해서 가장 강렬하게 나오므로 민족어가 제어되어야 한다.7) 그의 논리를 계속 따라가 보자. 지구제국의 권력망은 사실상의 국제어인 영어를 기반으로 구축된 거대 언어망에 기초해 있다. 그것 역시 하나의 언어망인 민족어가 문제인 것은 새롭게 구축된 이 거대 언어망에의 참가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언어망의 경제적 효과는 그 참가자들의 수에 의해 결정된다. 민족어들에 비해 국제어의 망 경제적 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래서 마침내는 교역권 안의 모든 사람들이 국제어에 동화되게 된다. 국제어는 마침내 국제교섭에 쓰이는 수준을 넘어 세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세계어로 변신한다. 영어에 대한 다양한 도전들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이 쇠퇴한다거나, 중국어나 스페인어가 부상한다거나, 개별 민족국가들의 저항이 거세진다거나, 비표준 영어들이 영어의 소통력을 침식한다거나 영어 학습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번역통역기가 발전한다거나…. 하지만 그것이 영어의 세계어적 지위를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이중언어 사용이라는 일시적 과도기를 거쳐 민족어들은 빠르게 쇠멸할 것이다. 번역과 통역이라는 불확실하며 비용이 많이 드는 수단에 의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손해를 덜 보려면, 아니 사멸하지 않으려면, 요컨대 구원을 얻으려면 한시바삐 영어전용 열차에, 영어망 지구제국의 거대방주에 올라타야 한다.8)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되는 것은 영어와 영어문화에서뿐이다. 그 이외의 경우에 가장 민족적인 것은 세계적인 것으로 되기는커녕 도태되고 쇠멸한다.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이미 영어에 의해 구축된 망(網)경제와 망권력, 그리고 언어망에 기초한 망문화이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계적 망문화는 외부의 흡수와 병합에 의해 자신을 확장해온 민족어, 민족국가, 민족문화 논리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연장이자 최종적 귀착점이라는 사실이다. 세계주의와 민족주의는 모두 철두철미하게 권력의 논리이며 경제의 논리이다. 그것은 흡수동화의 논리이고 착취의 논리이며 분할지배의 논리이고 배제와 추방의 논리이다. 세계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사람들의 은 오직 대상으로만 취급된다. 복거일이 세계주의를 통해 민족주의를 제어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의 세계주의는 민족주의에 내장된 권력과 제국주의의 논리를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구적 수준에서 완성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다. 영어공용론에 대한 민족문화론의 대응

세계주의적 영어공용론이, 삼성-조선일보-복거일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극적 지지세력에 의해 주장되었음에 반해 이에 대한 반론들은 크게 민족주의로 묶을 수 있는 다양한 조류들에 의해 피력되었다. 이제 영어공용론 비판 흐름의 정신적 내면을 살펴보자.

우선 주목되는 것은 영어공용론 반대파에게서도 영어를 사실상의 공용어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9) 영어가 세계 공용어로 기능하는 것에 대한 반대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영어를 누구나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 그것도 효율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의견을 양측은 공유했다. 영어 지배 상황에 적응하자는 것에 서로 동의하면서 논쟁은 영어공용론과 영어교육 개혁론 중에서 무엇이 더 영어능력을 향상시키는 방안으로 유효한가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예컨대 한학성은 영어공용어 논쟁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실질적인 영어교육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어를 한국어로 가르치지 말고 영어로 가르쳐야 하며 이를 위해 영어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영어교사를 양성하는 것이 그 대안이라는 것이다. 채희락은 영어공용어화가 그것에 요구되는 높은 비용에 비해 영어능력 향상에는 그만큼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영어 능력 향상은 전적으로 영어를 배우는 개개인의 학습동기와 노력 여하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서 영어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 영어 교사의 해외연수를 실시할 것, 영어권 지역의 해외동포 2세를 활용할 것, 자동번역기를 개발할 것 등의 방안을 제시한다.

영어공용론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언어학적 논점들이 제시된 것은 성과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가 의사전달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며 중립적이지도 않다는 비판이다. 윤지관은 영어가 중립적이라고 보는 영어공용론을 비판하면서 언어는 중립적 기호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부착된 의미이기도 하다는 볼로시노프의 관점에 의거한다. 언어의 본원적 사회성과 창조성을 괄호쳐두는 도구주의적 혹은 기능주의적 언어관이야말로 영어의 득세와 관련하여 가장 심각한 삶의 왜곡을 야기하는 관념이라는 것이다.10)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최근 영어교육이 실용영어 중심으로 기울어가는 것을 반성하고 교양영어 교육에 더 큰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11) 실용영어는 창조성을 상실한 상공업적 기능어로서 죽은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어의 사회성과 정치성에 대한 이러한 확인을 통해 영어공용 비판론은 영어의 보편화 경향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및 영어제국주의의 효과로서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한다.12)

그러면 그 대응방안은 무엇으로 나타났는가? 일차적 대응은 영어공용이 아니라 영어교육 개혁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다. 그렇지만 영어교육 개혁이, 세계화하고 있는 현 시기의 언어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안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어공용에 대한 반론에는 모국어를 통한 저항 혹은 모국어의 개혁과 세계화가 그 대안으로 덧붙여질 수밖에 없다.


한 민족 혹은 종족 구성원의 삶은 그들이 자기의 것으로 해온 언어, 곧 모국어의 환경 속에서 가장 충일해질 수 있다. 이방인의 언어, 특히 영어처럼 폭력과 힘을 동반한 언어가 언제나 주게 마련인 억압의 체험은 이 같은 자기실현의 가능성에 위기를 야기한다. 영어 앞에만 서면, 혹은 외국인 앞에만 서면 난처해지고 작아지고 마는 주눅 들린 심리 속에서 대등한 인간관계 혹은 의미 있는 교류는 한계를 가진다. 자기 언어 속에서 길러진 정체성에 대한 확신 가운데서 비로소 진정한 교류가 시작되며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경쟁력이기도 한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표현을 빌리면, "어머니의 무릎에서 처음 접하고, 무덤에 가서야 헤어지는 그 언어", 즉 모국어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13)


모국어와의 고투를 통한 세계성의 실현을 주문하는 이러한 요구가 민족문화론의 핵심주제이자 최후근거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한 세기 이상을 이어져 온 이 오랜 문화적 노선 속에서 우리가 현 단계의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삶의 요구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모국어가 새로운 삶을 열어내는 창조적 진화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민족문화론의 언어론 속에는 모국어, 민족어, 민족문화야 말로 수많은 소수적 언어들을 절멸시키면서 비대해진 언어라는 사실, 그리고 민족어 형성 메커니즘이 지금 영어를 승자로 부상시키고 있는 제국주의적 경쟁, 흡수, 탐식 논리의 기본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에 대한 반성은 들어 있지 않다.

조동일은 영어가 국제사회의 공용어가 아니며 단지 교통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인류 전체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어는 있을 필요가 없다. (…) 세계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단일 공용어나 세계어는, 있다면 인류를 불행하게 하고 파멸로 이끌 수 있다. 수많은 언어가 공존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전통계승과 문화창조를 계속해서 그 성과를 주고받아야 인류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교류를 위해서 번역을 활발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통어를 활용해야 한다"14)는 주목할 만한 생각과 대안을 내놓는다. '공용어가 아닌 교통어'라는 생각은 언어적 다양성을 살리면서 서로의 소통을 도모할 수 있는 언어 관계에 대한 발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시 교통어를 "민족어와 민족어를 연결시키는 언어"로만 이해하면서 생태계의 다양성 못지않게 소중한 '문명의 다양성'을 '민족문화의 다양성'과 곧장 동일시한다. 요컨대 그는 "어떤 언어라도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아 민족문화를 이어받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염원한다"15)고 표현한다. 이러한 염원이 수많은 언어를 포식하면서 확장해 가고 있는 영어지배의 암적 실태를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 역시 그가 염원하는 민족문화 체제야말로 수많은 소수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 결국에는 현재의 영어제국주의의 현실을 가져온 모반임에 대한 몰각을 드러낸다. 이렇기 때문에 모국어에 대한 단호한 확신을 표현하기보다, 영어에 대한 '비틀기'와 '되받아 쓰기'를 주장하는 아체베와 영어 없는 세상을 꿈꾸면서 기쿠유어로 소설을 쓰는 응구기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태도16)가 오히려 진지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른다.

또 영어공용을 비판하면서 모국어와 민족문화를 옹호하는 견해는 엘리뜨의 지배를 허용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왜냐하면 영어의 대중적 사용을 주장하는 영어공용론에서와는 달리 모국어중심론에는 대체로, 민족어는 대중이 사용하고 영어는 전문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운용한다는 암묵적 표상이 뒤따름으로써 오늘날 사람들의 삶에 크고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경을 넘는 삶에서 전문가의 지배가 확고해지는 것을 정당화해 주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영어공용론에 기초한 세계문화론과 민족어 사수론에 기초한 민족문화론의 투쟁을 검토해 보았다. 마치 화해 불가능할 것 같은 갈등 속에 휩싸여 있는 이 두 생각은 사실은 같은 부모(즉 자본의 제국주의적 주권 논리)에서 성장해 나온 형제들이다. 이 두 개의 언어론과 문화론은 언어가 권력이며 언어의 정치성은 경쟁력의 획득에 있다는 공유된 견해에 기초한다. 즉 이 둘은 권력언어관, 주권언어관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어에 대한 다른 사유가 가능할까? 그것은 현 시기의 언어 및 문화 문제에 대한 다른 생각을, 적극적 대안을 생산할 수 있을까?



4. 삶문화와 언어


  가. 다수어와 소수어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물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언어는 인간종의 진화의 산물이자 동시에 창조적 진화의 역능이고 기술이다. 진화는 경쟁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창조력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우리의 삶의 각 순간들은 언제나 일종의 창조이며 우리 각자는 우리 삶의 장인(匠人)들이다.17) 언어적 삶은 우리의 삶의 비물질적 신체이다. 그런데 영어인가 국어인가 하는 논쟁은 언어의 문제를 경쟁력의 관점에서, 권력의 관점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하등의 차이를 갖지 않는다. 어떤 방안이 개인과 민족과 국가의 경쟁력을 더 강화시킬 것인가라는 평면 위에서 논의는 전개된다. 이것은 언어를 권력장치로 사용하는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언어문제가 취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입장에서 언어민주주주의의 문제가 실질적으로 사고될 가능성은 없다.

영어공용론은 노골적으로 지구제국에의 참가와 지구제국의 완성을 주장하며 영어망 경제에의 참가가 새로운 전 지구적 망주권의 이점을 누리는 첩경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망경제의 입장에서 서술하면 국어망 경제를 잃지 않으면서 영어망 경제에 마디로서 참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환원할 수 있다. 이 이종동질(異種同質)의 목소리들 때문에 영어망이나 국어망 모두가 사람들의 삶-공통체를 포획하고 흡혈하는 그물망이라는 사실은 깊이 파묻힌다. 여기서 창조적 진화를 위한 첫 번째의 언어적 노력이 다수어로부터 소수어를 구별하는 일이어야 할 필요가 발생한다.


프루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걸작들은 일종의 외국어로 씌어진다." 그것은 말더듬기와 같은 것이다. 단지 파롤만이 아니라 랑그가 말더듬기가 되는 것이다. 외국인이 되어라.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네 모국어 속에서 외국인이 되어라. 2개 국어나 다국어 병용자로 존재하라. 그렇더라도 하나의 동일한 언어 안에서 방언이나 사투리도 쓰지 말고. 사생아나 혼혈아로 존재하라. 하지만 혈통을 순화시키면서. 문체가 언어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언어가 강렬하게 되는 것은, 값과 강렬함의 순수연속체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언어 안에 비밀스런 하위-체계를 만들어내기는커녕 숨길 것 하나 없이도 모든 언어가 비밀스럽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우리는 절제와 창조적 뺄셈을 통해서만 이 결과에 이른다. 연속적 변주에는 금욕적 선들이 있을 뿐이며 약간의 풀과 맑은 물이 있을 뿐이다.18)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말하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국어 속에서 외국인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당연히 영어 속에서도 외국인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언어에 대해 외국어인 언어, 더듬과 뒤섞이고 변주되는 언어는 소수어이다. 언어를 강렬하게 할 때 문체가 바로 언어가 된다. 모든 랑그는 필연적으로 개척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남기며 추상적 기계는 이 가능성(혹은 잠재성)을 포괄한다. 잠재성은 실재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것의 실재성이다. 그것은 변수들의 연속적 변주로서 변수들의 상수적 관계의 현실적 결정에 대립할 뿐이다. 추상기계는 변화의 선 또는 창조의 선을 그려야 한다. 보편적이지 않은 특이한 랑그, 현실적인 것에 변주를 도입하는 잠재적 랑그를 만들기. 특이한 랑그에는 문법처럼 강제적이거나 불변적인 규칙이 없고 변주 그 자체와 더불어 끊임없이 변주되는 임시규칙만이 있을 뿐이다.19)

그러나 이 특이한 랑그, 말더듬는 랑그, 연속적 변주이자 창조로서의 언어는 그것의 집합적 배치물과 분리불가능하다. 집합적 배치물은 변수들을 다루며 변주의 선들에 따라 변수들의 다양한 관계들을 조직한다. 변수들을 상수적 관계로 맺거나 강제적 규칙에 복종시킨다. 따라서 랑그의 통일성은 정치적인 것이다. 들뢰즈가 "모국어는 없다. 단지 권력을 장악한 지배적 언어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집합적 배치물로서의 통일된 랑그는 추상적 기계들을 고정시키면서 추상적 기계들에 대립할 뿐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변주가 통과하는 잠재성을 결정하는 데 본질적이며 그 배치물 자체도 본질적으로는 그것에 내재하는 변수들, 창조의 선들에 의해 임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집합적 배치물은 추상적 기계와 독립해서 기능하지 않으며 추상적 기계 역시 집합적 배치물과 독립해서 존재하지는 않는다.20)

그러므로 다수어가 따로 있고 소수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수어는 상수의 권력에 의해 정의되고 소수어는 변주 역량에 의해 정의된다. 방언도 변주 역량을 갖지 못하면 소수어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결국 두 종류의 언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언어를 다루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변수들에서 상수들을 뽑아내는 방식(다수어적 방식)이고 또 하나는 변수들을 연속적 변주 상태로 만드는 방식(소수어적 방식)이다. 상수는 변수들을 보편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으로서 다룸으로써 출현한다. 상수는 변수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변수의 임의규칙성을 강제규칙성으로 바꿈으로서 성립하는 것이다.21) 중요한 것은 다수어를 소수화하는 것, 소수어-되기이다. 그것은 변주의 연속체를 만드는 것, 언어에서 외침, 아우성, 음높이, 지속, 음색, 억양, 강렬함을 끌어내는 것, 어휘적-통사적 형식들을 감소시키고 변형과 바꿔 말하기를 증식시키는 것, 상수의 제한과 변수의 증식을 통해 역동적 차이들이 생성되게 하는 것, 방언이나 사투리로 재영토화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어와 표준어를 탈영토화하는 것이다.22) 이  소수어-되기를 실천하기 위해서 각자는 우선 나만의 말, 자기 고유의 언어, 자신의 다수어를 발견해야 하고 그것을 정복해야 한다. 이 자기만의 다수어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연속적 변주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소수적 말하기는 자기 자신의 다수어 속에서 이방인으로 말하기이다. 이것을 통해 소수적인 것은 모든 사람의 잠재적 역량을 갖게 되기이다. 그리하여 소수어 화자는 2개어 병용자 혹은 다국어 병용자로 될 수 있다. 그래서 소수어는 "다수어의 모든 차원들과 요소들이 소수화되게 하는 잠재력을 지닌 작인"23)으로 정의될 수 있다.  소수성은 게토라는 영토성을 갖고 있는 언어 상태이지만 그것이 가치 있는 생성의 씨앗으로 되는 것은 다수성의 탈영토화를 열어 놓을 때뿐이다. 그래서 "소수의식의 보편적 형상은 만인이 생성에 들어가는 것이며 창조란 바로 이 생성이다."24) 모국어중심론과 영어공용론은 모두 추상적 표준을 적용하면서 그 누구도 아니며 항상 아무도 아닌 자, 즉 등질적 국민이나 추상적 세계인을 만드는 데 열중한다. 그것은 생성과 창조에는 관심이 없으며 명령, 목적수행, 경쟁, 효율에만 관심이 있다. 그것들은 권력의 언어, 명령어, 죽은 언어를 지향한다. 반면 소수적 언어사용은 변주, 생성, 창조에 관심을 갖는다. 혁명적 자율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의식의 보편적 형상으로서의 소수파되기 자체이며 소수파되기는 방언이나 소수자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소수적 요소들을 이용하고 연결접속시키고 결합함으로써 자율적이고 돌발적인 특이한 생성을 발명하는 것이다.25)


사람들은 명령어에서 명령어를 끌어낸다. 명령어 속에서 삶은 죽음의 대답에 응답해야 한다. 도주함으로써가 아니라 도주가 작용하고 창조하게 만듦으로써 명령어 아래에는 패스워드가 있다. 통과로서 존재하는 말들, 통과의 성분들이 있다. 반면 명령어는 정지들, 지층화되고 조직화된 구성물들을 나타낸다. 하나의 사물, 하나의 말이라도 분명 이중의 본성이 있다. 하나에서 다른 하나를 구출하라. 명령의 구성물을 통과의 성분으로 변형시키라.26)


들뢰즈는 명령어와 통과어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명령어에서 통과어를 발명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현실의 삶에서 영어도 국어도 명령어로 실존한다. 국어는 일국적 명령어이며 영어는 세계적 명령어이다. 모국어중심론이나 영어공용론 모두 삶을 자유롭게 하는 것보다는 삶을 권력의 선분에 종속시키는 것, 삶에서 도주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 표준적 질서를 확립하는 것, 다수어를 정립하는 것에 관심을 쏟는다. 이와 반대로 언어를 통한 자유는 다수어를 소수어로 만드는 것, 모든 소수적 요소들을 연결접속시키는 것, 이것을 통해 혁명적 자율의 과정이 작동되도록 만드는 것에 있다.


  나. 공용어와 공통어

그렇다면 이 혁명적 연결접속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이것은 소수어 되기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들뢰즈와 가타리의 언어론은 이 질문을 우리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이것이 창조적 진화를 위해 우리 시대에 필요한 두 번째의 언어적 노력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공용어와 공통어를 구별 지을 뿐만 아니라 공용어에 공통어를 대립시키는 것, 나아가 공용어의 지배를 해체시키는 것이다. 너무나 자주 공통어는 공용어로 환원되고 공용어에 종속되어 왔다. 그래서 공통어는 공용어 외의 다른 방식으로는 생각될 수 없을 정도이다. 공용어는 다수어이며 지배의 언어이고 권력의 언어이며 명령의 언어이다. 그것은 표준을 요구하며 그 척도에 모든 사람이 종속될 것을 요구한다. 반대로 공통어는 명령의 언어가 아니라 사람들이 명령어 속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통과의 언어(paslingvo)이다. 그것은 어떤 표준도 요구하지 않으며 또 평균화된 모든 사람들이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도 수반하지 않는다. 공통어는 등질적 사실들의 평균성과 공동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의 통과-통행-흐름을, 혁명적 힘들 사이의 연결을, 혁명적 자율의 언어망을 의미한다. 그것은 특이성들의 소수파 되기를 망적 힘으로 연결함으로써 공통되기로 만들어 나가는 언어행위이다. 그것은 공용어 체제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었던 언어능력을 되찾으면서 창조적 진화의 길, 공통되기의 길, 영원하게 되기의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이 공통되기의 방법들에 생각해 보는 것이 가능할까? 실제적 방식들, 경로들, 강도들은 구체적 상황 속에서 특이성들의 자기결정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므로 그 상황 외부에서 보편적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기도 하다. 다만 우리는, 영어 유일공용론을 상상케 할 정도로 균질적인 단일 공간으로 전환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화하는 지구 상황 속에서, 공통되기의 가능한 경로들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상상은 무엇보다 세계화가 자본의 일방적 행동만이 아니라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세계화는 오늘날 분명히 자신의 생사를 건 자본의 전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아래로부터의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27)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민족국가 속에 영토화되어 있던 민중들이 기존 체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소수화의 적극적 대안으로 탄생했다. 이 당시의 자본은 민족국가화 전략에 입각하고 있었다. 민족국가화 전략은 20세기 자본의 지배적 전략형태로서 제1세계의 케인즈주의적 사회국가에서 뿐만 아니라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 제3세계의 권위주의 국가 모두에서 뚜렷이 나타나는 전략형태이다. 20세기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민족국가를 기반으로 한 민중의 연합인 국제주의가 자본주의 질서를 해체하기는커녕 때로는 그것을 위기로부터 구출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보여주었다.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을 일국적 지배계급으로, 즉 국민적 계급으로 조직하는 것만으로는 자유를 얻을 수 없고 자신의 국민성과 계급성을 동시에 넘어서면서 전 세계적 수준의 사회적 인류로 자신을 변형함으로써만 자유롭게 될 있다는 맑스의 이론적 주장이 역사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1968년 혁명 이후의 일련의 혁명적 사회운동들은 이러한 자각을 명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1994년에 개시된 사빠띠스따 봉기, 1999년에 씨애틀에서 개시된 대항지구화 운동, 그리고 2001년에 첫발을 내디딘 세계사회포럼 등 주요한 운동과 투쟁들이 그러한 자각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이 운동들에서도 영어가 일종의 교통어로서 기능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한다. 사빠띠스따 투쟁은 원주민의 소수어적 목소리를 스페인어로 옮기고, 다시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여 인터넷 망에 유통시킨 사빠띠스따 지지 단체와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인해 세계적 투쟁으로 부상되었다. 세계사회포럼도 처음에는 스페인어, 불어 등이 주요 언어로 사용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영어가 주요한 언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운동도 지금 공통어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 영어의 득세를 침략과 수탈, 흡수와 병합을 의미하는 제국주의의 일방적 언어 표현으로만 간주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분명 영어의 득세는 미국이나 영국 등 영어사용권 주요 국가들의 권력확장적 언어정책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영어의 확장이 다른 한편에서 새로운 삶을 요구하는 다중들의 공통되기를 위한 공통어 요구에 의해 촉진되고 있다는 점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 다중들의 공통되기의 방안들

영어가 다중들의 공통어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해 영어로 충분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다중들의 공통되기는 다수어를 정복하고 또 그것을 넘어서는 창조의 문제이다. 오늘날 운동에서 영어를 이런 수준에서 정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의 전문가들에 불과하다. 그래서 대항지구화 운동에서 결정적인 의사결정이 이들 소수 전문가들의 수중에 맡겨질 가능성이 높고 또 그것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영어 지배의 환경으로 인해 전문가가 아닌 많은 사람들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소통중심적 실용영어는 점점 더 기업적 관심에 오염되어 있고 형식적이고 죽은 언어로 되어 가고 있다.28) 다시 말해 실용영어로는 기존 질서의 코드를 반복할 뿐 혁명적 창조의 선을 열어나갈 수 없다.

영어공용론은 정치적 계급적 지향성은 다르지만 영어사용 능력에서 대중과 전문가 사이의 이러한 괴리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영어공용을 통해 누구나가 차별 없이 실용영어 이상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영어공용론은 정치적으로 전 세계적 양극화와 위계화의 주요 행위자인 신자유주의를 적극 지지하면서도, 언어관에서는 이렇게 마치 대중민주주의의 이념을 가진 것처럼 나타난다. 여기서 영어망에의 참여는 오직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이러한 경우에는 실용영어 이상의 영어라 할지라도 인간의 창조적 삶이 아니라 그것의 죽음과 결합된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자. 그리고 이미 모국어를 갖고 있는 민족들의 경우는, 수 세대에 걸친 식민경험 없이 영어(혹은 다른 민족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것(혹은 정복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국어 자체가 누대(屢代)에 걸친 내부 식민화를 통해서 정착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영어공용화가 만약 실시된다면 그것은 사람들을 장기간의 식민상태에 묶어두기 위한 억압적 정치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교육 개혁을 통한 영어습득이라는 대안은 어떨까? 민족어중심론자들은 영어교육의 개혁을 통해 오늘날 영어를 둘러싼 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대안이 소수 엘리뜨의 국제관계 독점을 가져오리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다. 여기서는 외국인이 영어를 정복하기 어렵게 만드는 언어 내적 요인들에 대해서 주목해 보자. 영어는 문법이 상대적으로 쉬움에도 불구하고 음소적 철자법이 아닌 역사적 철자법을 고수함으로 해서 실제 발음과 철자법 상의 괴리가 심하다.29) 이것은 동일하게 라틴문자에 기반하면서도 음소적 철자법을 선택한 핀란드어, 이탈리아어 등과 현저하게 다른 영어의 특성이다. 영어가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사람은 발음을 듣고서는 그 철자를 유추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거꾸로 철자를 통해 그 발음을 정확하게 유추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과 영어를 외국어로서 사용하는 사람 사이의 간격은 영어교육이 개선된다 할지라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에 기초를 두고 있는 세계화는 본질적으로 위계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영어를 변용시켜 사용하는 방안은 어떠한가? 미국의 흑인이나 인도, 필리핀, 아프리카 등지의 사람들이 오랜 식민체험 후에 영어를 변용시키고 변주시켜 특이한 영어를 창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언어 속에는 탈영토화의 성분, 변주의 성분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영어를 정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주요한 언어수행의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Basic English, Business English 같이 기성품으로 변용된 간단 영어들을 사용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죽은 언어이지 살아 있는 언어는 아니다.

직접소통과 직접연합의 사방이 막힌 궁지 앞에서 공통되기의 문제를 번역자, 통역자, 번역통역기에 의한 번역실천들을 중심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번역은 외국어 발화자에의 단순한 제국주의적 흡수 혹은 동화를 저지하면서 특이성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번역은 말하기․쓰기․듣기․읽기의 행위체들 사이에 상정된 인격(인칭)적 관계 속에 '이접적 불안정성'30)을 도입하면서 공통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미 사회화되어 있는 것들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에 변주를 도입하는 특이자인 번역자는 다양한 변주들의 창조적 선들을 서로 연결시킴으로써 공통의 힘을 구축한다. 이 점에서 번역은 사카이 나오키가 외국인들의 비집성적(nonaggregate) 공동체라고 부르는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에 대한 표상을 제공한다. 그것은 그곳에 "우리는 함께 있으면서 스스로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고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이 어떤 공통된 균질성에도 기초하지 않"31)는 그러한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에서는 균질언어적 말걸기가 아니라 이언어적 말걸기가 중요하다.


균질언어적 말걸기의 자세는 균질적 매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적이고 투명한 전달을 정상으로 보며 여기에는 이질적인 매체가 개입되지 않는 한 번역이라는 이념은 의미가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언어적 말걸기의 자세는 상호적이고 투명한 전달이라는 기준에 머무르지 않고 그 대신에 언어적인 것이든 아니든 간에 모든 매체에는 이질성이 내재하기 때문에 모든 발화가 전달에 실패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모든 번역은 그에 응답하는 번역을 부르며, 이런 유의 말걸기에서 분명한 것은 전달의 틀 내에서 번역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언어적 말걸기의 자세에서 듣는이는 쓰인 것이든 말해진 것이든 간에 발언을 실제로 받기 위해서는 모든 발언을 번역해야 한다. 또한 이언어적 말걸기의 자세에서는 발화행위를 통한 말걸기가 최종적인 전달과 일치한다고 생각되지는 않기 때문에 말하는 이가 제공하는 것을 받기 위해서 듣는이는 행동하는 것을 요구받는다. 즉 듣는이를 향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배달되지는 않는다는 것인데, 그것은 말걸기와 전달하기 사이의 격차, 말하는이와 듣는이 사이에 있을 뿐만 아니라 말하는이나 듣는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가지는 본질적 거리를 나타내는 격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언어적 말걸기의 자세에서 받는 행위는 번역이라는 행위로 생겨나고 번역은 모든 듣기나 읽기에서 일어난다.32)


사카이는 외국인들의 비집성적 공동체라는 개념을 통해 언어행위에 내재한 특이점을 극히 면밀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는, 개개의 특이점들이 번역이라는 행위를 통해 공통을 구성하는 실천적 과정을 실감나게 서술한다. 그를 통해 우리는, 번역이라는 행위가 단순한 기술적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언어행위와 삶행위에 내재하는 본원적 활동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실제적 번역 행위를 공통되기의 유일한 혹은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번역의 본원적인 삶내재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오늘날 긴급해진 것, 즉 직접적으로 연합한 사회적 인류를 구축할 필요성과 그 욕망을 번역이라는 방법으로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협의의 실제적 번역이 번역가라는 사회적 집단(심지어는 번역기라는 기계장치)에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와 더불어 현실에서 번역은 강한 언어에서 약한 언어로의 일방적 번역흐름이라는 언어권력의 상황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오늘날의 번역이 다양한 여러 언어들의 공통되기를 가져오기보다 소수 언어권력의 명령을 집행하는 과정으로 되고 있는 사정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 보편어의 꿈에서 공통어 운동으로

그렇기 때문에 혁명적 소수성들의 보편적 연결접속, 특이성들의 비집성적 공동체를 추구하는 대항지구화 운동의 언어적 상상력은 다시 16세기 이래 많은 사람들이 이상주의적으로 추구해 왔던 인류 보편의 언어적 소통에 대한 꿈, 즉 보편어 구상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보편어에 대한 꿈은 고대 이집트 왕 프샤메틱이나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 쩨파냐(Cefanja)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오래되었다. 중세 빙겐의 힐데가르트 수녀가 창안한 '무지한 자의 언어'(Lingua Ignota)도 보편어를 찾는 역사의의 한 장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에는 R. 데까르뜨, G. W. 라이프니츠, J. A. 코멘스키(코메니우스) 등의 철학자들이 전 인류적 소통을 위한 언어에 관해 숙고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주로 세계를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언어, 즉 논리어에 대한 추구였다. 특정한 소수어에 기초한 후험적 기획은 카르포포로필루스(Carpophorophilus)라는 필명을 쓴 저자에 의해 1732년에 출판되었다.33)

우리는 보편어를 사회의 이상적이고 사회주의인 변화와 연결시키려한 적극적 시도들의 역사에 주목할 수 있다. 에스페란토에 대한 박해의 역사를 상세하게 연구한 울리히 린스는 근대 이전 수 세기에 걸친 보편어 추구의 역사를 흥미 있게 요약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부분적으로 중복되고 또 다소 길지만 긴 역사가 매우 압축적으로 정리되어 있으므로 그의 요약 그대로 인용해 보자.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인류의 언어적 상호이해라는 주제는 일찍이, 우리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의 개척자들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상가들의 정신을 점령했다. 영국 휴머니스트 토마스 모어, 이탈리아의 군주 똠마소 깜빠넬라, 그리고 가상의 나라로의 여행기를 쓴 프랑스 작가 데니 베라 다레 등이 그런 사람들에 속한다.  [유토피아],  [치비타스 솔리스], 그리고  [세바람브의 역사]와 같은 그들의 작품들 중에는, 환상에 가득 찬 신세계 기획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종종, 새로운 사회질서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을 돕거나 가로막는 요소로서의 언어에 관한 암시들이 발견된다. 심지어, 그 작품들 중에서 몇 가지는 또, 볼테르가 “삶의 가장 커다란 불행들 중의 하나”로 애통해 한 것, 즉 인류의 언어적 분열을 없앨 제안들을 했다. 볼테르의 불만은, 협소한 민족적 사고방식에 반대하면서 이성, 도덕, 법질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조화에 호소하는, 17 세기와 18 세기의 계몽주의에 특징적인 것이었다. 민족어들이 다양하게 꽃피고 세계 지식인들의 상호연결수단으로서 라틴어의 의미가 약화되었던 17 세기 초 이래로, 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그들 중에 데카르트, 코메니우스, 라이프니츠 등이 포함된다--은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창조할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의 목적은 서로 다른 언어 사이의 훨씬 손쉬운 소통 수단을 획득하는 것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단어들과 개념들을 결합하여 인간의 사유를 충분히 반영하고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언어들을 넘어서는 언어에 도달하는 것에 있었다. “철학적” 언어를 위한 다양한 설계들이 보편어의 계획에 바쳐졌다. 보편어는 인간 지성의 부단한 전진의 논리적 정점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그것은 심지어, 좀더 신비하게 생각하는 사상가들의 상상처럼, 바벨에서 언어의 혼란이 생기기까지 실존했던 상태로의 복귀를 약속했다. 민족적 부활과 낭만의 시대였던 19세기 동안에  더 많은 보편어 기획이 나타났다. 그것들은, 철학언어나 선험언어들과는 달리, 실존하는 언어의 구조나 어휘들에서 더 많은 것을 뽑아내려 했다. 그것들이, 훨씬 실용적인 해법을 목표로 삼는, 새로운 언어 계획의 경향에 대한 더 적극적인 지지의 형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에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의 대표자들이 가졌던 관심은 지속되었다.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새로운 사회질서라는 조건 하에서 인류의 언어적 통일성이라는 관점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은 보편어의 특징이나 그것의 형성과정을 상세히 밝히지는 않았다. 프랑스인 에띠엔느 꺄베가 쓴 소설 [이까리로의 여행]은 공산주의적 식민지의 실험을 고무했는데, 거기서 그는 이까리 사람들이 배우기 쉬운 충분히 규칙적이고 이성적인 언어를, 언어들의 진보를 방해하는 변이와 불완전함을 물리치는, 언어의 모델로 제시했다. 또 특이한 프랑스인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의 웅대한 책 [보편적 통일의 이론]에도, 완전한 사회에 적합한, 이성적 보편어라는 논제가 나타난다. 그 언어의 발생은 민중들 사이의 접촉의 결과라고, 즉 실존하는 “비이성적” 언어들의 융합의 결과라고 --다소 모순적으로-- 예측되고 있다. 맑스 이전 사회주의의 주요 대표자인 또 다른 프랑스인 피에르-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은, 심지어 언어에 관한 저작(1837년에 출간한 [일반문법 시론]을 가리킨다.-옮긴이)으로 데뷔를 했다. 그는, 인류가 과거 언젠가 공통어를 가진 적이 있으며 잃어버린 언어적 통일성의 재건을 통해 전 세계적 우애를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가장 독창적인 초기사회주의자들 중의 한 사람이며, 독일의 재단사이자 독학자인 빌헬름 바이틀링(Wihelm Weitling)이 보편어라는 주제에 관해 논한 것이다. (…) “애국주의와 민족성이라는 어리석은 선입관을 분쇄할 것”을 권하는 바이틀링은, 라이프니츠를 가리키면서, “완전히 새롭고 아름답고 듣기 좋은 완전한 언어를 발명하는 것”은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기차와 비행기의 시대에 언어들의 경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가 보기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바이틀링 자신이 그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세계어의 실제적 사용에 관한 저 역사적 이해와 대조적이다. 단지 발췌를 통해서만 알려져 있는 그의 작품 [보편 사유론과 언어론](Allgemeine Denk- und Sprachlehre)은, 위대한 철학자들의 모델에 따라, 사유와 언어의 일치를 이룰 완벽한 체계를 발견하고 그렇게 해서 우주 전체의 분류를 제시하려는 야심적 시도이다. 보편어에 관해 소묘된 생각들이 아무리 피상적이고 또 종종 소박하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어떻든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의 지도적 대표자들의 생각의 구성적 부분이었다. 이성에 복종하면서 그리고 모든 미신을 버리면서, 사회적 불평등과 민족적 차이를 사라지게 하는, 연대하는 인류에 관한 꿈은, 언어적 상호소통의 영역에서도 원시적 낙원상태를 부활시킬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쉽게 발생시켰다.1)


이상의 모든 기획들은 기획에 머물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꿈을 이어받으면서도 단지 꿈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직접 말하며 소통한 사람들을 발견한 것은 1879/80년에 만들어진 볼라퓌크였다. 그러나 볼라퓌크는 난해함과 소통상의 장애라는 언어내적 원인과 1887년에 자멘호프에 의해 만들어져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한 에스페란토의 영향으로 일찍 소멸했다. 에스페란토는 초기에 에스페란토의 동맹자로 여겨졌던 사회주의 국가들(그리고 파시즘)의 뜻하지 않은 탄압으로 인해,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프랑스어나 영어와 같은 주권적 공용어의 득세로 인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사용되어 왔고 많은 사람들은 그것의 실효성에 대해 의심하거나 혹은 그 실효성이 끝나 실패한 것으로 단정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복거일은 이렇게 말한다.


1887년에 폴란드 언어학자 라자루스 루트비히 자멘호프가 발표한 에스페란토어는 대표적 예다. 아쉽게도 그런 인공어들은 널리 쓰이지 못했다. 그것들을 아는 사람들은 적었고 그것들로 저장된 문화적 유산은 전혀 없었다. 그것들을 배워서 얻을 이익이 거의 없었으므로, 그것들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국제어로서의 장점들을 여럿 갖추었지만 망경제의 이점을 누릴 길이 없었으므로 인공어들은 결국 외면당했다.2)


조동일도 이와 유사하게 "에스페란토라고 하는 인공어를 만들어 인류 전체가 함께 사용하자는 운동이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3)며 에스페란토의 실패를 단정한다. 또 정시호 역시 인공언어 에스페란토를 링구아 프랑카(교통어)로 하자는 주장은 "이상과는 달리 현실성이 없다"4)고 재단한다. 이 외에도 에스페란토를 죽은 개로 취급하는 생각과 말들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에스페란토가 인공어에 큰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생각한 만큼 널리 쓰이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에스페란토는 인공어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의 예상보다는 훨씬 널리 보급되어 있다. 어떤 언어를 배워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류의 공통되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바로 얻을 경제적 이익이 거의 없다는 바로 그 이유가 서로의 공통되기, 친구되기를 도와주기 때문에 에스페란토를 배운다. 에스페란토는 어떤 국가의 공용어도 아니며 일방향적인 텔레비전이나 일간신문을 전혀 갖고 있지도 않으며 자격증을 부여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그 언어의 운명이 오직 사용자들 개개인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의지와 실제적 사용에만 달려 있다. 그것은 복거일이 말하듯이 망경제에서 배제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권력의 관점에서 벗어나 삶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면 권력의 눈이 단점이라고 말하는 이 각각의 것들이 사실상 커다란 삶정치적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은 아닌가? 망경제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은 에스페란토만이 아니다. 세계의 프롤레타리아들, 다중들은 망경제에 참가하면 할수록 가난해지고 무력해지며 그것이 '누린다'는 이득의 메커니즘에서 지속적으로 추방당하고 배제당한다. 복거일이 말하는 바의 망경제가 크면 클수록 그것에 참가하는 자본이나 권력은 더 큰 이익을 보겠지만 다중들은 더 가혹한 착취, 더 잔혹한 억압, 더 참혹한 가난 외에는 얻을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중들에게 망경제에의 참여를 대안으로 권유하는 것은 고통과 죽음을 권유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다중들은 오직 자기 자신의 자율적 삶의 망을 구성하는 것에 의해서, 그리하여 현실의 경제망--그것은 다중들의 잠재적 공통체에 대한 착취에 의존한다--을 해체시키는 것에 의해서 자유롭게 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다중의 운명은 에스페란토의 운명과 매우 흡사하다.

영어가 사람들을 거대 제국의 신민으로서의 추상적이고 동질적인 세계인으로 만들고자 함에 반해 에스페란토는 특이한 개개인의 발전이 인류의 발전을 가져오며 다시 인류의 발전이 개개인의 발전의 계기로 되는 선순환적 관계 속의 인간, 즉 인류인을 창출하는 것을 지향하는 언어이다. 인류적 공통되기의 이념은 에스페란토에 내재한다. 다중의 공통되기 운동이 에스페란토를 공통어로서 사용할 필요성이 있다면, 맑스의 사회적 인류의 이념과 자멘호프의 인류인주의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비스듬히 겹쳐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5) 여기서 에스페란토를 공통어로 삼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서술할 필요가 있겠다. 에스페란토를 공통어로 만든다는 것은 그것을 세계 공용어로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표준으로 받아들일 의무를 갖게 한다거나 법률과 규정에 따라 개개인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척도로 사용한다거나 영어를 포함하여 수많은 개별 국어들, 민족어들, 방언들, 소수어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금지한다거나 하는 것은 이와 전혀 무관한 일이다. 에스페란토를 유일언어로 만드는 것은 더욱 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오히려 에스페란토 공통어 운동이 반대해야 할 일이다. 에스페란토 공통어 운동은 개개인의 특이한 언어능력들의 최대한의 해방을 돕고 촉진하는 것으로 기능해야 한다.6) 개개인들의 언어적 창조능력이 극대화되어서 다수어를 정복하고 그것을 뒤섞고 자유롭게 변주하면서도 그것이 블랙홀에 빠지지 않고 인류인되기, 공통되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어나 민족어 혹은 세계어의 경우, 그것들의 일괴암적 폭력성이 드러나고 다중의 투쟁에 의해 그것들이 다양한 소수어들로 해체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7) 그러나 그것은 결코 언어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며8) 국어, 민족어, 세계어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는 언어들의 소수적 해방, 소생을 의미할 것이다. 소수어와 공통어 병용 및 혼용을 통해 개개인들은 고립된 개인으로 남아 있지도 않을 것이며 국민으로 집단화되어 있지도 않을 것이며 세계인이라는 추상적 규정 속에서 무력함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개개인들은 인류인들의 자유로운 망 속에서 부단히 새로운 삶을 여는 가치 창조적 마디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이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공통어는 공용어와는 달리 총체성을 자임하거나 욕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양적 집합으로서의 인류를 대표하려는 허구적일 뿐만 아니라 죽은 욕망을 갖지 않는다. 공통어는 특이한 힘들의 실재적인 접속, 이접, 통접을, 요컨대 창조적 망 구성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에스페란토 공통어 운동은 미래에 도달할 어떤 상태가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누구나가 즉각적으로 실행 가능한 실재하는 운동이다. 이것은 특이어-공통어의 2언어 병용 및 혼용을 기축으로 한다. 하지만 이것이 언어종으로 구분되는 두 언어의 병용/혼용에 고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특이어의 직접사용이나 특이어들 사이의 번역과도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2언어 병용은 이런 것들의 광범위한 이용과 보충을 통해 훨씬 더 풍부해질 것이다. 나아가 에스페란토 공통어 운동은 에스페란토를 완성된 언어로 간주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어야 한다. 공통되기에서 모든 규칙이 임시규칙에 불과하듯이 에스페란토 역시도 임시어로서 기능해야 하며 끊임없이 언어개혁과 언어혁명에 열려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공통되기에 더 효과적인 새로운 공통어로의 대체 가능성에까지 완전히 열려 있어야 할 것이다.


1. 맺음말


지금까지 우리는 민족문화에서 세계문화로 이행하고 있는 현대 지배문화의 변화경향과 그것에 대항하는 언어적 잠재력에 대해 살펴보았다. 영어의 득세와 이에 영합하는 영어공용론의 확대는, 지금까지 지배적이었던 민족문화의 지배를 흡수, 잠식, 재구성, 대체하면서 세계문화가 구축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문화의 구축과정은 민족문화가 구축되었던 이 흡수, 재구성, 대체의 과정을 전 지구적 규모에서 반복한다. 그래서 민족적인 것의 철저화가 곧 세계적인 것으로 되는 상황은 영어사용권 국가, 특히 미국의 예외적 현상으로 되고 있을 뿐이다.

각기의 민족어들이 민족문화를 구축하는 표준어였듯이 영어가 세계문화를 구축하는 표준어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영어공용 논쟁이라는 장기 논쟁을 불러오고 있는 조건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논쟁은 주권문화와 주권언어를 둘러싼 논쟁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주권이 생명, 삶을 명령하고 통제하는 것인 하에서 주권언어에 대한 논의는 삶의 내재적 진화의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 삶의 내재적 진화를 규정하는 문화는 민족문화도 아니요 세계문화도 아닌 삶문화이다.9) 이것은 언어의 문제에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삶의 창조적 진화를 규정하는 언어는 민족어도 세계어도 아닌 개개인들의 특이한 언어능력, 특이한 랑그로서의 삶언어이다. 삶문화는 민족문화나 세계문화와 구분되는 현실적 문화영역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주권문화 속에서 그것에 대항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경향으로서 실재한다. 주권문화의 이행이 실제로는 삶문화의 내재적 운동에 대한 반작용이다. 삶언어는 우선 모든 사람들의 창조적 언어표현능력으로서의 특이어이다. 그것은 주권어나 공용어 등이 수행하는 표준화, 상수화, 흡수, 배제, 대체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정복하며 비틀고 뒤섞으면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삶언어는 공용어와는 달리 고정된 규칙체계에 묶이지 않으며 끊임없는 변주능력을 통해 나타난다. 그것이 규칙을 갖고 있다면 새로운 변주 속에서 변형될 임시규칙으로서뿐이다. 그러나 특이어는 게토에 묶이고 블랙홀에 빠질 위험을 언제나 갖는다. 이 위험을 제어하면서 특이어들이 그것의 변주운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특이한 언어적 힘들의 연결접속이 필요하다. 이것이 언어적 공통되기의 문제이다. 공통되기는 언어적 소수파되기를 그 계기로 삼는다. 소수파되기 없이 공통되기는 존재할 수 없다. 공용어는 사실상 이 언어적 공통되기의 전복이며 물구나무선 공통되기이다. 그것은 소수파되기를 억제하는 공통되기이다. 공통어가 공용어에 대립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공통되기는 언어문제에서 다중어사용, 이중어사용, 번역 등의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왔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적 인류의 구성이 당면한 의제로 제기되어 있는 상황이 지금까지의 공통되기 방식의 한계를 드러냈다. 다양한 개개인들의 언경(言境)을 넘는 직접적 연합, 직접적 공통되기가 필요해진 것이다. 영어의 세계어화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주권의 응답방식이다. 그러나 영어는 다중들의 공통되기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억제한다. 그것은 추상적이고 동질적인 세계인을 제국의 신민으로 만드는 표준적 세계어로 기능한다. 각각의 민족어가 추상적이고 동질적인 국민을 만들어온 과정이 더 큰 규모에서 반복되는 것이다. 우리가 국가나 자본에서 독립된 언어 에스페란토를 공통어로 사용하는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쏟아야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에스페란토는 보편어에 대한 오랜 꿈의 연속이면서 인간의 탁월한 언어적 발명능력의 산물이다. 에스페란토는 소수파되기를 억제하지 않는 공통어로 기능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10) 그것은 국민이나 세계인이 아니라 인류인(homarano)에 의거하고 또 그것을 생산할 것이다. 인류인은 지구상 모든 사람들의 추상적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공통되고 있는 소수적 힘들을 일컫는 이름, 즉 부단한 생성의 이름이다. 따라서 에스페란토 역시 생성의 언어인 한에서만, 그리고 다양한 언어적 힘들의 변주에 개방되어 있는 한에서만11) 이 공통되기의 언어적 교향악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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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사회와 사상의 변화(이진경)
문화관련 글들(ktp) | 2007/06/12 23:50
 

6월민주항쟁20년기념 대토론회





주최 및 주관 :

공동 기획 및 진행 : 문화단체


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사회와 사상의 변화



이진경 (철학자, 서울산업대 교수)




1. 역사적 대답, 질문의 역사


우리는 지금 지난 20년의 지나간 역사에 대해 묻고 있다. 무엇을 묻고 있는가?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의 변화에 하나의 문턱이 되었던 87년 6월 항쟁의 의의에 대해, 그 항쟁으로 인해 얻은 것과 얻지 못한 것에 대해, 그리고 그 이후 사회의 변화양상에 대해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묻고 있는가? 지금 자신의 입장에서 그 동안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확보하지 못한 것을, 혹은 다행히도 확보한 것을 문턱이 된 과거에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묻는다면, 우리는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얻기 위해 묻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역사적 형식의 질문으로 무언가의 ‘의의’를 묻는다는 것은 이렇게 되기 십상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역사 안에 확고한 하나의 자리를 부여하고, 이후의 사건들에 대해 그것과 계열화하는 것, 이것이 아마도 하나의 사건에 대해 역사적 의의를 묻는 통상적인 방법일 것이다. 이 경우 질문은 이미 대답을 포함한다. 질문에는 언제나 이미 반쯤은 대답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사건에 할당된 역사적 자리, 그것은 이미 그것과 연결되는 모든 사건들의 의미를 이미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답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흔히 그것에 이미 만족한다. 그것이 얻으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87년 6월 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설정된 지난 20년이란 기간은 그 사건을 통해 이미 '해석의 지평‘이 만들어진 기간이고, 그 지평을 통해 다듬어진 시간이며, 그리하여 그 안에 발생하는 사건들이 대개는 그 중심적 사건으로 수렴하게 마련인 시간이다. 그러나 정말 그 20년이 6월 항쟁으로 귀속되는 시간이었을까? 그 20년간의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 사건과 계열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을까? 차라리 그렇게 제공된 대답들에 대해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87년 6월 항쟁 이후 20년간의 사회·사상적 변화에 대해 논의하자는 제안에 대해 나는 그것을 질문의 역사로서 검토하자고 말하고 싶다. 운동의 관점, 아니 좀더 넓게 말해 실천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사람에게 질문이란 사건과 사유가 만나는 접점이고 사회와 운동이, 사태와 실천이 만나는 교차점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이 어떻게 사유되었나를, 아니 사유되어야 하는가를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질문들이 당시에는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래서 사태가 좀더 진행된 연후에야 비로소 명료하게 된 것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이럼으로써 우리는 다시금 사회와 운동이 우리에게 던지는 무엇을 대답으로 받아들이고 ‘따라가며’ 사유하기보다는, 그것을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대결하며’ 사유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2. 혁명적 실천은 어떻게 시작하는가?


87년은 두 개의 사건에 의해 과잉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는 80년 광주항쟁이다. 그것은 6월 항쟁으로 치명상을 입게 되는 군사정권의 행로를 처음부터 결정지은 사건이었고, 그 정권과 대결하는 운동으로 하여금 혁명적 강밀도를 가질 것을 요구했던 사건이었다. 혁명적 봉기, 군사적 폭력과의 대결, 해방구적 상황, 그리고 거대한 패배, 80년 광주항쟁 이후 운동은 좋든 싫든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어야 했다. 좋든 싫든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자 하지 않고선 어떤 혁명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확인해야 했다. 그렇다면 이 모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것은 이렇게 묻고 있었던 게 아닐까?

다른 하나는 멀리 70년의 전태일 분신이었다. 그것은 한국에서 노동자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는 어떠한 운동도 삶의 진실성을 담보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고, 그리하여 삶에 진지하거나 운동에 진지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노동자에 대해 노동운동에 대해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사건이었다. 오랜 잠행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혁명에 관해 질문하기보다는 삶에 대해, 노동에 대해, 노동자와 민중들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진실한 삶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아마도 85년 대우어패럴 노조 연대파업과 서노련·인노련의 창립은 이 두 가지 사건의 효과가 응집되며 만들어낸 사건이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혁명을 꿈꾸는 노동자와 지식인의 연대, 그리고 군사정권의 폭력과 대결하며 존속할 수 있는 조직, 그리고 ‘부분운동’을 넘어서 ‘전체 운동’을 자신의 과제로 삼는 운동. 물론 알다시피 서노련과 인노련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던진 것이든 아니든, 그들을 통해, 그 사건을 통해 우리가 이러한 질문을 자신의 질문으로 삼게 된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혁명, 그것을 위한 직업적 혁명가의 조직, 아마도 이것이 그 질문을 통해 얻어낸 대답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종종 비판하기도 하듯이, 질문을 통해 사유된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형태로 ‘수입’된 대답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대답이 너무 빠르고 너무 쉽게 도출되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을 ‘사유 없이 도입된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순히 배우고 논문을 쓰는데 원용되는 이론 아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실천의 이론이 ‘사유 없이’ 도입되는 게 과연 가능할까? 비록 그 사유가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었음이 사실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우연이었을까? 동형적인 이론적 배치가 출현한다. 종속이론이나 세계체제론 등, 후진국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한 이론들에 대비하여, 노동자계급의 사상으로서 맑스주의 이론의 보편성을 계급분화 양상을 통해 논증하면서, 이론적 수용에서 ‘사상적 원칙’을 수립할 것을 요구한 논문이 제출되면서, 다기한 이론들 사이에 배제와 선별의 선이 그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혁명적 실천을 위한 혁명적 이론, 혁명 전략을 고민하기 위한 이론적 연구가 아카데믹한 공간에서 벗어나 운동의 장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사회구성체 논쟁’은 이러한 조건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에 대한 대답의 시도이기 이전에, 맑스-레닌주의적 지반 위에서 혁명의 대상과 주체에 대한 질문이었고, 그 주체들을 하나의 대열로 결집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렇기에 대답은 그토록 많이들 달랐지만, 그 모두가 질문을 공유함으로써 형성되었던 하나의 이론적 장 안에 함께 있을 수 있었던 것일 게다.

87년 6월 항쟁은, 물론 그 직접적인 불씨는 고문치사사건과 호헌선언이었지만, 그것은 점점 가속화되며 진행되던 이러한 사건들이 하나로 응축되며 폭발하게 한 하나의 계기였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3. 정치의 새로운 공간


87년 항쟁의 직접적 결과물은 정치의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야당은 물론 운동권의 정치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합법적 정치공간이 만들어졌다. 합법정당을 창당하고, 대통령 후보를 내서 공개적인 정치적 장에서 선전활동을 했던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운동단체들이 합법적인 조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고, 노동조합의 활동 역시 합법성의 폭이 확대되었다.

어느 정도 시차를 두기는 하지만 그람시의 이론을 비롯해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의 의의를 강조하는 이론들이 조명을 받게 되고, 그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내지 한국의 정치공간을 분석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조건의 산물일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획득한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개념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란 점에서 6월 항쟁이라는 사건의 결과물에서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이론적 대답이었던 셈이다. 그것은 새로이 확장된 공간에 대한 사유고, 그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사유며,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사유였다. 아마도 새로운 정치적 공간에 진출하여 그것을 이용해야 했던 한, 필연적으로 거쳐가야 했고, 따라가야 했던 사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합법공간에서의 정치는 합법공간이 요구하는 규칙에 따라, 거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행해진다. 가령 합법공간을 가장 소극적으로 규정하여 합법적인 선전의 장으로 본다고 해도, 거기서 선전하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을 요구할 뿐 아니라 다양한 진입장벽과 작동방식으로 인해 항상-이미 부르주아지나 보수층에 유리하게 선규정된 게임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합법적 공간을 장악한 부르주아적 매체들과 대항해서 값은 싸지만 빈약한 선전물로 대결해야 하는데, 그것은 시작하면서부터 지는 게임일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합법공간에서의 선전이 취하게 될 경로는 어느 정도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다는 아니라고 해도, 그 경로에서 크게 이탈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아주 적은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맑스의 말을 빌어, “무엇을” 선전하는가보다 차라리 “어떻게” 선전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한다면, 부르주아지와 대결하는 지점에서 “어떻게” 대결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근본적인 지점에서 사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는 선전만이 아니라 정치활동 자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민중당을 비롯한 초기의 합법적 정당활동이나 대통령 선거 참여가, 그 성과가 없었다고는 하기 힘들지만, 합법적 공간에서 혁명은 그만두고라도 변혁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하기는 그 성과가 매우 적었음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요컨대 합법적 정치공간은 거기에 부합하는 정치활동의 ‘방식’에 따를 것을 요구하며, 그 방식은 물질적인 면에서나 정치적인 면에서의 기득권이 거대하다는 점을 그만두고라도 기존 정치인들이 훨씬 능숙한 방식이다. 그렇다면 그런 방식으로 싸워서 그들에게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없다면, 그것은 과연 혁명운동의 기회를 확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람시의 용어로 말한다면,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에 대항해 합법적 정치공간에서 벌이는 진지전이 과연 그들과 싸워 이기는데 적합한 전술형태일까? 그것은 이기기 위해선 부르주아지보다 좀더 부르주아적이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는다면 패배할 수밖에 없는 난점을 안고 있는 사태는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운동을 통해 확보한 합법적 공간을 포기하고 계속 지하로 달리는 노선을 고집해야 할까? 그거야말로 ‘좌익 소아병’이라고 비판받던 사람들의 오류를 답습하는 것은 아닌가?

아마도 합법적 공간과 합법적 활동의 관념을 바꾸지 않고는, 아니 합법과 비합법으로 정치적 공간을 사유하는 지반 자체를 바꾸지 않고는 이 난점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합법공간의 확장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근본적인 사유를 요구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정치에 관한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정치를 사유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사실 이러한 질문은, 결코 근본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묵시적으로, 그리고 편의적으로 나름의 대답을 한 것 같다. 가령 합법 공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정치권에 들어가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민중당이나 합법정당이 아니라 기존 보수정당(심지어 한나라당!)을 선택함으로써, 합법적 공간이 요구하는 바에 충실히 따라갔다. 기존의 모든 비합법 지하조직을 합법화하고자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해소의 길을 걸었던 한노당(준비위)의 시도는 이런 난점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유하기는커녕 사태를 통해 질문조차 하지 않은 채 합법정당을 전부라는 부르주아적 대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결정적인 와해를 야기했던 극적인 사례였다. 그렇다면 합법적 정당을 단지 지하조직의 분견대로 간주하는 것이 이러한 난점을 피할 수 있을까?

어쨌건 이러한 질문과 근본적으로 대결하지 않는 한, 노동당이나 사회당이 앞서 말했던 난점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유럽이나 일본에서 사회당처럼 ‘성공’했던 경우에조차 게임의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부르주아적 정당의 하나가 되고 만다는 딜레마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정치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지만 말이다.

사실 합법적 공간의 문제는 단지 정당정치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 또한 합법적 공간의 딜레마를 피할 수 없었던 던 것 같다. 가령 민주노총은 이와 다른 경로로 합법화가 갖는 난점을 다른 측면에서 잘 보여준다. 알다시피 1999년까지 불법단체였던 민주노총은 김대중 정부 들어 합법화을 쟁취했고, 민주노조운동은 법적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나아가 민주노총은 노사정 위원회라는 코포라티즘적 체제의 중심적 한 축이 됨에 따라 정부와 ‘사용자’의 파트너로서 지위를 얻었다. 그러나 합법적 공간에서의 지위가 확고해짐에 따라 민주노총은 앞서와 어느 정도 유사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즉 합법적 공간에서의 힘과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선 합법공간의 다른 두 축인 ‘사용자’와 ‘정부’의 협조자가 되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라면 민주노조운동이 받아들이기 힘든 그 입장에서 벗어나려면 합법적 공간이 제공하는 대부분의 이점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합법적 공간은 그 공간이 요구하는 게임의 규칙, 게임의 방식을 제시하고 그에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민주노총이 노사정 위원회에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노동운동은 명료하다곤 하기 어려워도 이러한 상황이 던지는 질문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질문과 대결하고 있다고 하긴 어렵다 해도 말이다. 이 질문과 대결하지 않고서 당면한 딜레마를 빠져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합법적 활동의 개념을 바꾸는 것 이상으로,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의 형태 자체, 그리고 그것의 활동방식 자체를, 아니 노동운동의 위상이나 의미 자체를 근본에서 다시 사유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시민운동의 경우에는 이런 동요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87년 이후 시민운동의 발전은 매우 급속하게 이루어졌고, 특히 ‘민주정부’나 ‘참여정부’ 이후에는 시민운동이 정부의 정책이나 재벌의 활동 등에 대한 비판적 견제세력이 되었고, 비정부조직으로서 거버넌스의 한 요소로 확고하게 자리잡았으며, 그 결과 시민운동 단체는 ‘운동권’에서 정부나 정계로 진출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총리나 장관은 물론 심지어 국정원 내부에까지 소위 ‘운동권’ 인사들이 진출하게 되었다.

이와 나란히 시민운동은 ‘공식소송’처럼 법에 근거하여 정부나 재벌의 불법행위를 따지고 비판 내지 ‘고발’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혹은 문제가 많은 법에 대해 법의 정당성을 따지고 개정하려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라는 또 다른 법적 소송에 기대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이 모든 과정은 합법적 공간이 확대되고 법이 정권의 직접적 도구로부터 일정 정도 거리를 두게 되면서 가능했던 것이었지만, 거꾸로 그것은 시민운동이 법에 기초한 운동이지 그것을 전복하는 운동이기를 그쳤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런 근본적--시민운동가들에 의해 통상 ‘비현실적’이라는 말과 동일시되는--문제와 다른 차원에서 좀더 현실적이고 심각한 문제는, 운동이 법을 기반으로 삼고 법적 고발의 형식을 반복하게 됨에 따라, 법적 판결을 최종적 판단으로 삼는 경향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개폐 등이 모두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귀착되었을 뿐 아니라, 이라크 파병문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등 운동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사안이 법적 판결에 의해 운동 자체가 해소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러한 양상의 가장 극적 형태는 새만금 사업에 대한 투쟁이었을 것이다. 오랜 기간을 많은 사람들이 혼신을 다해 싸웠고 그 성과 또한 환경과 생태문제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전환시킬 정도로 성공적이었던 운동이, 대법원의 어이없는 판결 하나로 해소되고 중단되어 버렸던 것이다.

법이 운동의 상위에서 운동에 대해 판단하고 운동은 그것을 존중하고 그 판결에 따르는 현상, 운동 자체마저 사법화되고 있는 것이다. 법관들은 고시공부만으로 세상을 만났기에 법 바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좋든싫든 법의 경계를 침범하고 위반하는 운동들을 통해 법 바깥을 고려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인데, 운동은 역으로 법 안에 안주하게 됨에 따라 법적 통치의 게임이 현실이나 운동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법적 관점에서보아도 사태는 매우 비관적인 결과로 귀결되고 있는 것 같다. 법정 드라마가 TV시청자의 관심마저 끌게 되고, 모든 문제를 법적 소송의 문제,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는 문제로 귀착되는 미국의 상황이 이러한 사태의 멀지 않은 미래라고 하면 과장일까?

이런 점에서 시민운동은 합법적 공간이 제공하는 대답, 즉 합법적 공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운동의 목표를 달성하고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확보한다는 대답에 충실했지만, 그것이 던지는 질문을 듣지 못했고 그것이 야기하는 딜레마조차 아직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4.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좌익적 사유는 가능한가?


운동과 사유의 지반을 가장 심층적인 층위에서 뒤흔들고 뒤바꿔버린 사건은 87년 6월 항쟁과 전혀 다른 외부에서 왔다. 90~91년의 사회주의의 붕괴가 그것이다. 단절된 운동의 역사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며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고 전국적 전위정당의 건설을 시도하기 시작하던 바로 그 시기에,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이 그 모든 꿈과 희망을 와해시키며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서도 스스로 던진 적이 없던 질문에 대한 확고한 대답을 찾아내고 발빠르게 그 대답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사회주의 혁명의 불가능성, 혹은 맑스주의적 사상의 무모성, 혹은 혁명의 꿈 자체의 불가능성을 뜻하는 것이었을 게다. 자본주의가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저 꼴 난 사회주의보다는 나으며, 그나마 덜 나쁜 체제라는 식의 생각, 혹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사회주의적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사회민주주의가 그나마 적절한 대안이라는 생각이 거기 포함된 또 다른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전에 [맑스주의와 근대성] 서론에서 개인적인 상황과 체험의 형식으로 쓴 적이 있는 것이지만, 사회주의 붕괴는 무언가를 확고하고 확신하게 해주는 대답이 아니라 여러 가지 근본적인 질문들을 동시에 던지는 사건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한국에서 혁명운동 내지 변혁운동은 사회주의 혁명의 이념, 맑스주의라는 사상에 의해 시작된 게 아니었다. 그것은 이념 아닌 삶의 문제였기에, 그래서 이념도 사상도 없이 운동했기에, ‘자생성’과 ‘아마추어주의’, ‘자족성’ 등으로 비판되었던 것이 아닌가? 삶 전체를 걸게 만들었던 현실과 사태가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 삶을 걸고 가려던 길이 갑자기 끊어지고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난 것이다. 손쉬운 대답이나 발빠른 대안을 찾는 사람이라면 널 나쁜 길을 찾아갈 수 있겠지만, 미련하게 거기에 삶 전체를 걸었던 사람, 항상 근본적으로 사유하려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나아갈 수도 없고 돌아설 수도 없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다. 발빠른 변신을 시도한 사람들과 달리, ‘붕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가던 길을 의연해 계속하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태에 대해 좀더 진지했었다고 믿는 것은, 흔히들 말하는 것과 반대로 이념에 집착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삶에 진지했기 때문이라고 믿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맑스주의와 스탈린주의를 대비시키고, ‘진정한 사회주의’와 ‘잘못된 사회주의’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이 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도 좋을까? 스탈린에 의해 폐기된 사회주의 이론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사회주의 없는 노동운동으로 우회하는 것으로 이 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믿을 수 있을까? 그것은 오히려 저 사태가 강력한 당혹의 힘으로 힘껏 던지고 있는 질문에 귀 막는 것은 아니었을까?

좋든싫든 사회주의의 붕괴는 혁명이나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사유되던 삶의 문제, 새로운 삶의 방식의 문제가 근본에서 다시 사유되어야 하는 지점이었다. ‘사유되지 않은 채’ 혹은 ‘사유할 여지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혁명이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될 것을 요구하는 사태였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 혁명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한편으론 맑스주의 사상 자체에 대해 근본에서 다시 사유할 것을 요구하는 사태였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혁명, 사회주의의 역사란 어떻게 말을 해도 맑스주의의 이름으로 진행되어 온 것인데도, 맑스주의는 그 붕괴한 역사의 이유조차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지났다는 사회주의가 어째서 붕괴했고 자본주의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대체 맑스주의는 자신의 이름과 결부된 이 역사를 어째서 이해할 수조차 없는가? 그것은 맑스주의 자체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붕괴 이후 맑스주의는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사회주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해 맑스주의자는 맑스주의에 대해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선형적 배열을 넘어서, 역사철학적 종말/목적으로서 공산주의의 관념을 넘어서 자본주의와 다른 종류의 관계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구성하는 것, 그리하여 언젠가 다가올 미래의 형태로 현재로부터 분리되고 유예되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맑스 말대로 현재 시제의 “현실적인 이행운동 그 자체”로서 코뮨주의를 다시 사유하는 것, 아마도 이런 과제가 이러한 질문들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코뮨적 관계, 코뮨적 구성체를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라는 이전의 개념으로부터 분리하여 다시 정의하고 다시 사유하는 것.

다른 한편, 그것은 자본주의와 외연을 달리하는 것으로서 ‘근대’ 내지 ‘근대성’에 대해 다시 사유할 것을 요구하는 사태기도 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님이 분명한데도, 자본주의와 마찬가지의 근대적 인간들, 근대적 통제체제, 근대적 관리체제들이 그대로, 혹은 좀 더 거대하게 확대된 형태로 작동하고 있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근대성’이란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근대 사회에 대한 푸코의 연구가 이 시기 맑스주의자에게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면, 그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문제의식이 한국 사회에서 근대성의 형성과 결부된 많은 연구들과 어떤 식으로든 결부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푸코의 그것을 포함하여, 이러한 연구들은 경제적 관점에 입각한 전통적인 사회구성체론과 다른 측면에서 ‘근대’라고 불리는 사회구성체에 대한 연구였다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이 두 가지 문제는 서로 상관적이며 서로를 규정한다. 한편으로 사회주의가 근대적이었다면, 그것을 방향짓고 그것을 인도하던 이념인 맑스주의 역시 근대적이었을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맑스주의 안에서 근대적 요소들, 혹은 맑스주의의 근대적 지반은 대체 어떤 것이었던가? 그리고 그 근대적 지반을 넘어서는 사유는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 수 있을 것인가? 전통적 맑스주의의 사상적 지반이었던 노동의 인간학 내지 휴머니즘, 그것의 경제학적 형태인 노동가치론, 계산가능성의 사회적 전제로서 화폐적 형식, 그리고 생산성으로 생산력을 대체하고 그런 의미의 생산성 발전을 진보로 정의하는 공리주의적이고 개발주의적인 진보관념, 그리고 생산의 사회화를 계산능력의 사회화로 치환하고는 계산과 계획을 통해 정의되는 사회주의의 관념 등 모든 것들이 근본에서 다시 검토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다른 한편 맑스주의를 통해 근대성의 경계를 다시 사유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긍정적 관계를 구성하는 것, 근대적 삶의 방식, 근대적 주체형태를 넘어선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주체형태를 근대와의 대결지점에서 사유하고 창안하는 것이 또 하나 모색되어야 할 과제가 아니었을까? 종종 포스트모더니즘의 그것으로 대체되어 이해되는 ‘근대의 종언’ 내지 ‘탈근대 사회’의 도래를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재정의하고 그것을 통해 근대 이후 세계의 요소를 발견하고 확장하며 현재화하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근대 내지 자본주의 안에 존재하는 그것의 외부들을 창안하고 구성하려는 시도로서 코뮨주의를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다.

이러한 질문들과 대결함으로써 우리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도 좌익적 사유가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아니 이러한 대결을 통해 새로운 이론적 사유를 밀고 나갈 수 있다면, 사회주의 붕괴야말로 거꾸로 진정 좌익적 사유를 가능하게 하리라고 믿는다. 기성의 것들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으로서 보수주의와 반대로, 사회적 상황 내지 사태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미 확보된 안정적 요소들에 대해서조차 전복의 힘을 작용시키는 것으로서 좌익적 사유를 정의한다면 말이다. 이전의 사회주의가 결코 사유되지 않은 혁명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것이 충분히 사유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할 때, 비로소 혁명에 대해 충분하게 사유하고 혁명을 향해 전위--‘아방가르드’라는 의미에서--적인 실험과 실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5. 문화주의의 시대?


사회주의 붕괴 이후 ‘문화’에 관한 관심이 부상하고, 문화이론이 이전의 ‘경제이론’을 대신할 듯한 이론적 구도가 만들어진 바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라캉이나 푸코 등의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이 읽히기 시작했으며, 그에 이어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이론이 널리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최소한 외환위기사태가 발생했던 1997년까지 이는 이론적 영역에서 지배적인 경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는 사회주의의 붕괴에 따라 맑스주의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그 공백을 문화이론이 차지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문화주의의 시대’가 시작된 거라고 간주했던 것 같다. 혹자는 긍정적으로, 혹자는 부정적 내지 냉소적으로.

일단 현상적인 측면에서 사태가 그러했다는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 긍정적인 면이 있었음 또한 사실인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이론을 갖춘 통일적 세계관으로서의 맑스주의에 의해 다른 이론적 사유의 가능성이 닫혀 있던 상황이 해소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보는 이론적 사유의 가능성이 열렸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러한 대립적 지점이 있었기 때문일테지만, 그러한 사유의 개방은 자본주의 내지 근대에 대한 맑스적 사유 전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보드리야르나 리요타르가 프랑스 공산당을 왼쪽에서 비판하던 ‘좌파’였으며 그의 이론 역시 그런 좌익적 문제설정에서 시작된 것이었음은 잊혀진 채, 모든 ‘거대이론의 종말’이란 형태로 사소한 것에 집중하게 된 시대의 선언으로 읽히거나, 시뮬라시옹이라는 과잉실재의 세계에 대한 묘사를 통해 문화가 지배하게 된 시대에 대한 선언으로 읽혔던 게 아닐까? 매체나 문화의 강력한 힘에 도취된 ‘날라리’ 이론. 이는 심지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푸코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적용되었던 것 같다. 자본주의와 친화성을 갖지만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근대 사회에 대한 근본적 비판은 잊혀진 채, 경제를 담론이 대신하고 국가권력을 미시권력이 대신하는 문화이론으로 간주되었던 게 아닐까?

명시적으로 맑스주의자임을 자처하며, 68혁명을 이론화한 것으로 간주되는 들뢰즈/가타리의 이론 역시 마찬가지로 맑스주의에 반하는 날라리 문화이론의 하나로 간주되었던 것은 이 시기 이론적 지형의 형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거기에는 이전의 맑스주의와 다른 모든 이론을 맑스주의에 반하는 이론으로, 그것을 대체하는 어떤 ‘대답’으로 간주하려는 의지가 일종의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었던 셈이다. ‘문화이론’ 내지 ‘문화주의’란 말이 이러한 의지와 나란히 가고 있었던 것은, 그것이 경제이론 내지 경제주의로 간주되었던 유물론과 대비되는 명칭이었다는 점에도 적지 않게 기인하는 듯하다. 새로운 형태의 페미니즘이나 탈식민주의 이론 역시 이와 유사하게 어떤 근본적 질문보다는 이전의 이론을 대신할 대답으로 받아들여진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프롤레타리아트 없는 운동의 가능성, 혁명 없는 운동의 불가피성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을까?

1997년 이른바 IMF사태가 또 하나의 변곡점으로 간주되었던 것은 정확하게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구도 속에서 그것은 잘나가던 ‘문화’의 화려함을 밀치고 ‘경제’가 다시 삶의 일차적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가령 1998년 [진보평론]이 적어도 그 창간의 시점에서는 ‘신/구’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맑스주의자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나, 2003년 개최된 제1회 맑스코뮤날레가 백화점식 나열이란 비판을 들을 정도로 넓은 편폭의 대다수 맑스주의자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전의 이론적 지형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맑스주의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헤게모니를 얻을 수 없었고, ‘정통’이란 이름의 분할과 배제의 이론적 메커니즘 역시 되살아날 수 없었다. ‘문화이론’이란 이름의 이론들 또한 앞선 시기와 같은 주도권을 유지할 순 없었지만 그것은 그 나름대로 확보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어느 하나가 헤게모니를 확보하지 못한 채 대립의 강도가 완화되며 만들어진 이 거리 속에서 경제주의와 문화주의, 맑스주의와 ‘문화이론’을 가르던 경계는 와해되었고, 새로운 이론적 사유의 공간이 만들어진 게 아니었을까? 이론이 대답 아닌 질문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게 아니었을까? 적어도 맑스주의 진영 안에서는 그랬던 것 같다. 비록 모두가 그랬다고는 할 수 없다고 해도 말이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혁명에 대해, 혹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세계에 대해, 그리고 맑스주의 붕괴 이후의 좌익적 사유에 대한 질문들이 시작되었고, 이런 의미에서 맑스주의 안에서 새로운 분화와 분기의 지점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정보가치를 둘러싸고 노동가치론 자체에 대해 논쟁을 하기도 하고, 맑스주의에서 노동의 인간학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제국주의를 대신한 제국의 개념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었고, 레닌주의적 당조직을 대신하는 네트워크 식의 조직이, 혹은 평의회 식 사회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대신하는 사회주의적 세계화가 새로운 토론의 대상들로 떠올랐다는 것을 나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자율주의나 아나키즘, 푸코나 들뢰즈/가타리의 사상이 단순한 거부나 지지의 방식을 넘어서 이론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나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다.  그렇다면 ‘문화주의’는? 잘 모르겠다.



6. 전선의 이동, 혹은 소수자의 정치학


박정희 체제 이래 한국의 다양한 정치적 세력들을 분할하고 결집시키던 적대의 구도는 이른바 ‘민주/반민주’의 대립이었다. 상이한 이해, 상이한 입장을 갖고 있어도, 독재정권에 대해 반대하며 투쟁할 의사가 있다면, 모두가 민주/반민주를 가르는 전선에서 민주의 편에 선 것을 뜻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반민주’의 대립구도는 87년 이후, 혹은 더 뒤로 잡아도 양 김씨의 집권이후에는 유효성이 소실되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정치적 대립을 전체화하는 전선의 양상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 이후의 정치 전반을 규정하는 새로운 전선의 형태는 오랫동안 가시화되지 않았다. 분명히 정치투쟁, 혹은 계급투쟁이 새로운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음이 분명했지만, 그래서 가령 이전에는 관제동원에 지나지 않아 거의 무의미하던 우익단체의 행동이 새로이 ‘자발적’ 운동의 형태를 취하고 기독교 단체들의 우경화가 아주 뚜렷하게 진행되는 한편, 대중운동 역시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나로 모아주고 집약해주는 대립의 형태는 뚜렷하지 않았다. 즉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을 대체한 다른 전선의 형태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투쟁은 빈발하고 다양한 형태의 운동과 대결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전선으로 결집되지 않고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세력들간의 대결과 확장되지 않는 상태, 그래서 지원과 지지의 형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대립하는 세력 전체가 하나의 장으로, 하나의 전선으로 응집되지는 않는 상황, 그것이 우리가 87년 이후 통과한 시기를 특징지어준다. 다양한 투쟁들은 있지만 그 투쟁들이 응축되어 하나의 전선, 하나의 ‘주요모순’으로 응축되지 않는 상황, 그래서 각각의 투쟁들은 각각의 해당지점에서 각개약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상황, 아마도 알튀세르라면 이를 ‘과소결정(underdetermination)’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물론 미군반대운동과 대통령 선거로 대중운동이 강력하게 집중되었던 2002년이나, 탄핵을 둘러싸고 국민 전체가 양분되어 대결하던 시기를 들어 응축이 발생하지 않았던가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령 2002년의 사태는 대중의 흐름이 강력하게 형성되어 가시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월드컵과 반미운동, 대통령 선거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투쟁, 전혀 다른 대립의 지점으로 이동하며 진행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응축이 수반되는 과잉결정이 아니라 응축이 없이 다양한 투쟁이 상이한 지점에서 진행되는 과소결정의 상태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거기서 하나로 결집된 것은 모순이나 전선이 아니라 대중이라는 흐름 자체였다. 그것은 다양한 세력이나 투쟁을 응집하는 단일한 전선이 가시화된 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흐름의 공간을 통해 단일한 대중으로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전선, 새로운 대결의 지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움직이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대결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대결해야 할 하나의 중심적인 적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종류의 적들과 대결하는 새로운 종류의 대중을, 새로운 종류의 운동방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새로운 대결의 지점은 다른 곳에서, 그리고 서서히 형성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여러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른바 ‘양극화’와 결부되어 있다. 특히 IMF 사태 이후 이는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이전과 다른 점은 양극화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두 계급으로의 분해가 아니라, 각각의 내부에서조차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율은 1998년 각각 6.5%와 5.2%였던 것이 2004년에는 9.4%와 4.1%로 벌어졌다. 이러한 양상은 노동이나 일자리와 관련해서 더욱 현저하다. 1998년 중소기업이 고용한 인력은 전산업고용인구의 75.3%였고 그 사람들에게 지불된 임금은 전체임금의 76.2%였던 반면, 2003년에는 고용비중이 87%로 늘어났지만 그들에게 지불된 임금은 전체 임금의 65.8%로 줄어들었다. 이는 중소기업에 고용된 사람들의 임금이 급격한 속도로 줄어들고 있으며, 반대로 대기업 고용인력의 임금이 그만큼 빠르게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체 일자리 역시 상위 수준의 일자리와 하위 수준의 일자리가 모두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반면 중간수준의 일자리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좀더 분명한 것은 전체 고용인구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가 매우 급속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4년 8월 전체 노동자의 반이 넘는 56%가 비정규직 형태의 일자리에 고용되어 있다. 노동자계급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두 개의 층으로 급속하게 분화 내지 분해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여성의 경우 비정규직의 비율은 70%에 이른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60% 정도에 머물고 있으며, 4대보험이나 퇴직금, 상여금, 유급휴가 등 다른 급여적 요소들 역시 정규직에 비해 형편없이 열악한 조건에 처해있다(고병권, [한미FTA와 한국사회의 양극화], [한미FTA 국민보고서], 그린비, 2006).

이러한 양극화는 맑스주의자라면 자본주의 사회 어디서나 발견하던 것 아닌가?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지금 진행되는 양극화는 고전적인 맑스주의 계급이론에서 말하는 양극화와 크게 다르다. 고전적인 계급이론에서 그것은 중간계급인 쁘띠 뿌르주아지가 일부 소수는 부르주아계급으로, 대다수는 프롤레타리아계급으로 분해되는 것을 지칭한다. 반면 지금의 양극화는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간의 실질적인 격차를 만들면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그것과 다르다. 중간계급만 분해되는 게 아니라 노동자 계급 자신도 두 층으로 분할--아직은 분해하고 해야 할지, 분화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르주아지나 중간층 역시 유사하게 양극화되고 있다는 점이 여기에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분할은 단지 경제적이고 객관적인 현상만이 아니다. 잘 알다시피 2000년 한국통신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의 배타적인 태도로 아주 유명하다. 이는 현대자동차 등의 대기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 대해 보여준 배타적인 태도와 더불어 2000년대 노동운동의 지형을 규정하는 아주 근본적인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노동운동 자체도 경제적 양극화의 선을 따라 분할되며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간부나 민주노총 간부의 ‘비리’ 사건은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이 이젠 이익을 확보하고 따로 챙기는 자본주의의 고질적 병폐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고 하겠다.

이처럼 노동자 내부에서 정규적인 일자리를 갖고 높은 임금을 받아 안정적인 생활을 확보한 주류적인(major) 노동자와 비정규적이고 낮은 임금, 불안정한 생활을 감수해야 하는 소수적인(minor) 노동자로의 분할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소수적인 노동자의 문제는 단지 노동자 내부에서의 분할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힘들고 위험한데 임금마저 낮아 한국인들이 피하는 최하위층 일자리를 담당하는, 이미 40만을 넘어서 이주노동자들 역시 한국에서 소수적인 노동자층의 핵심적인 요소다. 여기에 태생적으로 시장에 취약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해야 하는 농민들, 남성들에 비해 어디서나 2차적이고 저급한 대우를 감수해야 하는 여성 등등의 수많은 소수적인 층, 소수적인 집단들이 여러 영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 수가 많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확보한 이권이나 이득이 많다는 의미에서 ‘다수적인(major)' 층과, 수는 많지만 이권이나 이득이 적다는 의미에서 ’소수적인‘ 층의 대립이 점점더 많은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 대립의 양상 역시 본격화되고 있다.

이상의 사태를 요약하면, 여러 영역에서 다수자(이른바 ‘주류’)와 소수자간의 분할과 대립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결국 다수자와 소수자의 대립이 현재 한국 사회를 양분하는 주요모순이 되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민주/반민주의 전선’이 ‘다수자/소수자의 전선’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아직은 다양한 영역에서의 대립이 하나의 전선으로 응축되는 과잉결정의 상황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미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한미FTA는 이러한 상황을 빠르게 가속화하게 되지 않을까? IMF 이후의 구조조정이 비정규직이나 소수자를 급격하게 양산하기 시작했음을 안다면, 그보다 훨씬 강도 높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수반될 한미FTA가 이러한 사태를 매우 강하게 밀어붙이며 다양한 소수자들을 하나로 응집시키리라고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현재 노무현 정권이 보여주는 아이러니의 이유를 이러한 전선의 변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대중들의 강력한 지지와 투쟁을 통해 집권했을 뿐 아니라 탄핵사태라는 위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노무현 정부는, 집권 기간 내내 진보적이라고 할 만한 어떤 개혁도 이루어낸 것이 없으면서도 자신은 ‘진보’라고 믿고 있으며,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 진보적이라고 믿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그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유효하게 실행된 정책은 모두 진보진영에 반하는 ‘보수적’ 정책 일색이었다. 새만금이나 천성산 문제처럼 자신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도 모두 뒤집었고, 언론개혁처럼 자신이 원했던 것은 하지 못했으며, 국가보안법처럼 거의 다 죽은 악법조차 의회에 과반수를 갖고서도 폐지하지 못했다. 그린벨트를 과감하게 풀어 개발주의를 가속화했고, 스스로 공언하던 아파트 원가공개조차 포기했고 거꾸로 부동산 가격을 이전 어느 정권보다 급속하게 올려놓았다. 미국과 거리를 두던 초기의 입장은 어느새 사라지고 미군기지의 확장을 비롯한 미군의 새로운 세계전략에 파트너가 되어주었고, 진보운동 진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이라크 파병국이 되었다. 그리고 급기야 모든 진보진영이 일치하여 반대하는 한미 FTA를 미친 ‘곤조’ 하나로 밀어붙였고, 덕분에 견원지간이던 보수언론이나 보수정치인들에게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 믿음 자체는 거짓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왜 노무현은 자신이 선택한 정책이 그렇지 않은데도 자신이 진보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서 있는 곳은 예전과 같은 곳 그대로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독재정권과 투쟁하던 민주진영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싸우던 곳에 그대로 서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걸핏하면 내세우는 ‘도덕적 정당성’은 단지 선거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사실보다는 이러한 전선 상의 위치에 대한 자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그가 민주진영의 사람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을 만큼 훌륭한 일원이었음은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보다도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고 해도(그게 사실인지도 지금은 의문이지만) 사회적 대결의 양상을 규정하는, 즉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전선이 이동해버렸다는 것이다. 지금은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민주인사라는 것이 ‘진보적’이라고 말할 어떤 이유도 제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양김씨 주변에 있었기에 자동으로 ‘반독재’ 진영에 속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대개 보수파임이 분명해졌으며, 거꾸로 과거 운동권에 속했던 사람들이 보수파 정객이 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처럼 전선이 이동하는 경우, 민주/반민주의 이편에 있다고 해도, 다수자에 속하는 경우 전선의 저편에 있다고 해야 한다. 한국통신 노조처럼 민주노동운동의 중요한 일부였지만, 소수자들의 적대세력이 된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무언가 의도적으로 이동한 것은 아니기에, 그는 여전히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많은 노조들, 특히 대기업노조들이 그러하듯이.

여기서 정말 웃기는 코메디는 전선이 이동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어도 보수파가 될 일군의 사람들이, 이제는 진보를 그만두고 보수가 되겠다고 전선 저편 멀리 훌쩍 이동한 것이다. 그들은 새로이 보수파가 되려는 의도를 갖고 이동했기에 자신이 ‘뉴 라이트’이라고 믿지만, 그들이 옮겨간 곳은 민주/반민주 전선의 저편, 즉 ‘올드 라이트’가 서 있던 곳이다. 그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 그들이 제시하는 역사해석 등이 한결같이 낡은 올드 라이트의 그것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정확하게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 사회에서 ‘뉴 라이트’는 그들이 아니라, 자신이 진보라고 믿으면서 그 자리에 선채 전선의 저편으로 이동한 사람들, 노무현이나 주류층이 된 노동조합이다.

여기서 진보적이 되기 위해 ‘소수자’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너무 쉽게 대답을 구하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새로이 던지고 있는 질문을 듣지 못하고, 그것을 사유하지 못한다면, 그 대답은 상황이 조금 달라지면 또 금방 잘못된 대답이 되고 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던지는 질문은 사실 보기보다 훨씬 근본적이다. 두 계급으로의 분해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신이 다수자와 소수자로 분할되고 있다면, 그리하여 전투적인 역사를 갖는 민주노조조차 가던 길을 그대로 가는 한 다수자가 되고 만다면, 노동운동이 진보적이기 위해선, 즉 노동운동이 ‘소수적’(이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민주/반민주가 정권이라는 근대적 총체성의 담지장치를 통해 작동하기에 반독재 세력의 결집과 응집이 자연스럽고 용이했지만, 소수화는 여러 영역으로 분할되어 진행될 뿐 아니라 시장의 힘이라는 분산적 권력에 의해 진행되기에 응집과 결집이 어렵다면, 다수자에 대한 소수자의 투쟁은 언제나 과소결정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전통적 의미에서 권력의 전복을 뜻하는 혁명이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연대나 동맹의 관념이 이제는 계급이란 개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가로질러 작동해야 하는 것일까? 등등.

그렇다면 6월 항쟁이라는 미완의 혁명, 미완의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방식으로는 혁명적이기는 물론 진보적이기도 어렵다는 것을 굳이 따로 지적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20주년 기념’의 형식으로 현재를 어떤 식으로 6월 항쟁과 연속적인 지점에 두고 연결하기보다는, 차라리 6월 항쟁과 현재 사이에 존재하는 단절과 변환을 포착하는 것이 정작 필요한 게 아닐까? 그것이 6월 항쟁의 정신에 더 충실한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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