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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즐거운 작품들!!
문화관련 글들(ktp) | 2010/03/28 20:04
 

눈이 즐거운 작품들!!

-루브르박물관 드농관에서-

(http://www.louvre.fr/)


인류 활동의 결정체인 문화와 꿈과 흥망성쇄가 보전되어 있는 박물관은 인류의 보물창고라 불린다. 혹 빼앗은 제국의 후손들에게는 막대한 관광수익의 원천이 되지만, 빼앗긴 후손들에게 있어선 설욕해야 할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세계3대 박물관의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도 역사의 오욕으로 점철된 현장이다. 일반에게 공개되기 전까지는 왕족과 귀족의 전유 공간이었으며, 1750년경부터 프랑스 왕립정부가 국립박물관으로 용도를 변경하면서 비로소 대중에 공개되었다. 오늘날 루브르박물관의 방대한 소장품들은 루이14세가 유럽각국에서 사들인 4000여점을 기초로 구성된 것이다.


지금부터 직접 현장에 가서 감상은 못하지만 루브르 박물관 1층의 드농관(Denon wing)의 전시물을 만나보기로 합시다.1)


1).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루브르박물관의 드농관(Denon wing)에 들어서면 제일먼저 크기로 압도하는 전시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폴레옹 대관식”유채화이다. 우선 커다란 크기로, 색상의 화려함으로 그림 속 인물군상들이 살아나올 것 같은 정교함으로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탱글탱글한 피부며 고급스럽고 화려한 조세핀 의상의 질감까지도 느껴질 만큼 섬세하다 못해 그냥 섬유를 캔버스에 둘러놓은 듯한 이 작품은 오랫동안 관람객의 발길을 유인할 만하다고 느낀다. 이 작품은 다비드에 의해 1806년에서부터 1807년까지 제작된 것으로 정식 명칭은 “1804년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 사원에서의 황제 나폴레옹 1세의 황후 조세핀의 대관식”이라고 하는 꽤나 거창한 것이다. 1804년 프랑스 혁명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 등극한 나폴레옹의 궁중수석화가가 된 당시 56세의 다비드는 혁명기의 화가로부터 나폴레옹의 업적과 권위와 위풍을 후세에 남기는 역사적 기록화가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대관식이 거행되는 현장을 미리 면밀하게 기록하고 참석자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자신도 대관식에 참여하여 식장의 장엄한 분위기를 몸소 체험한다. 집단 초상화 같은 인물 표출의 정교함과 호화로운 질감의 생생함 그리고 장엄한 실내의 분위기가 완벽하게 일치를 이루어서 역사적 기록화의 거대한 기념비적인 작품이 탄생하였다.

이 시기의 사실주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속에 자기를 꼭 그려 넣었다고 한다. 다비드를 한번 찾아보세요!!

Storm Crypt님이 촬영한 Le Combat de David et Goliath.


2). 오달리스크


요즘 롱다리가 각광받는 시대에 롱(long)팔로 눈을 사로잡는 그림이 있으니 바로 “오달리스크”이다. 언뜻 보건 자세히 보건 간에 미끈한 여체가 관능미를 느끼게 하기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비정상처럼 보이는데 전체적으로 참~길다 라고 느껴진다. 이 작품은 1814년 앵그르가 이탈리아 체류 때 제작한 것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미끈한 여체가 연골동물 또는 파충류를 연상시키고, 정상적인 여체가 아니라 척추골이 정상인 보다 두 개 더 많은 여체를 그려냄으로써 진실을 모독했다는 그 당시의 혹평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앵그르의 대담성은 등으로부터 엉덩이로 이어지는 유연한 선의 율동적 아름다움의 표현이고 그 선의 아름다움을 위해 앵그르는 서슴없이 인체의 해부학적 진실을 무시한다.  그 자신이 평생 추구한  여성성의 관능이라는 이상을 선의 아름다움을 통해 형상화 했다는 평을 후대에서 듣게 된다.

               odalesque

3). 화가의 아틀리에


민중을 위한 미술이 한국에서는 혁명적인 화가 홍성담으로 이어졌다면 프랑스 2월의 혁명을 계기로 프랑스의 민중 화가는 단연 쿠르베이다. 쿠르베도 화가 홍성담처럼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붓으로 그려낸 대가로 질곡의 세월을 보냈을까? 하고 자료를 뒤져보았지만 그런 기록은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자신도 회화는 그 시대를 묘사하고 당대의 현실을 그려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순탄치 않은 예술가의 삶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1855년에 그려진 이 작품에 붙인 제목은 “화가의 아틀리에, 7년에 걸친 나의 예술적 생활을 규정하는 현실적 우의”로 되어있다. 화면중앙에는 파리의 화실에서 풍경을 그리는 쿠르베 자신과 그것을 감탄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아이와 나체의 모델이 있다. 쿠르베가 자신의 친구인 비평가 샹프를리에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며 화면은 두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설명한다. 오른쪽에는 그의 친구와 노동자 그리고 예술가가 그려져 있고, 왼쪽에는 민중, 비참, 부, 빈곤, 착취당한 사람, 착취하는 사람, 죽음을 생활의 근원으로 삼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책을 읽는 보들레르, 샹프를리,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푸르농 등의 모습이 보인다.



4). 아모르와 프시케


그리스 ∙ 로마 신화 전작을 다 읽지 않더라도 사랑의 신 에로스(아모르)와 에로스의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미움을 받은 프시케 공주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는 알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토마스 불핀치(Thomas Bulfinch)의 원작을 만화로 만든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100만권 넘게 팔렸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 해주지 않을까 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질투할 만큼 지독히 아름다운 그녀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1817년 피코작품으로 다비드의 제자였던 피코는 스승과 함께 1817년에 이 작품을 유학지인 로마에서 제작했으며 1819년 살롱전에 출품한다. 이미 그는 1812년에 로마대상에서 2등상을 차지해 이듬해 로마로 향하는데 그 당시 브뤼셀에 있던 다비드와는 직접적인 교류는 없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주제의 설정, 침대의 방향, 무대장치 같은 배경, 전반적인 색조가 다비드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장면은 밤에만 몸을 숨겨 프시케와 부부의 정을 나누고 아침이 되자 모습을 감추는 아모르가 날아가려고 하는 모습으로서 다비드의 작품보다는 가벼운 운동감이 느껴진다. 화면 뒤쪽의 틈으로 살짝 비치는 문 밖의 빛은 이미 날이 많이 밝아 있어 여명과 함께 프시케의 곁은 떠난다는 이야기와는 잘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5).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마치 유관순 열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이 작품은 들라크르와의 작품이다. 맨발의 반나(半裸)인 자유의 여신을 이 치열한 전투 장면에 등장시키고 있는 것은 물론 비유적인 기법이다. 건장한 체구를 한 이 여신은 왼손에 총을 들고 오른손에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3색기를 높이 쳐들고 가슴을 드러낸 채 지상에 굳건히 서 있다. 그러나 폭정에 항거하는 민중을 이끄는 이 여인의 모습이 현실감을 띠고 있으면 있을수록 이 작품에서의 그녀의 존재는 비현실적으로 비쳐진다. 사실 총칼을 들고 궐기한 민중의 눈에는 이 여신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 않으며 쳐다보는 중상자의 눈에도 이 여신을 한 순간의 환상이었다고도 할 수 있는 모습이다. 하늘도 무심치 않은 프랑스혁명을 응원하는 구원군 같은 환상이랄까!



6). 밀로의 비너스


전 세계 관람객들이 루브르박물관에 들러서 꼭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비너스 조각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일일 것이다. 말로만 듣던 8등신 서양미인의 본 모습은 의외로 소박하고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낸 누르스름한 색깔만큼 초라한 모습이다. 동양의 여인들을 열등감에 시달리게 했던 8등신 미인의 원조는 전시실을 들락거리는 지금의 서양 금발미녀들 속에 파묻힌 듯 그냥 조용히 서있다.

1820년 에게해(海) 밀로 섬에서 농부가 밭갈이 하다가 발굴, 당시 이 섬에 와 있던 프랑스 영사가 군함까지 파견하여 프랑스로 옮겼던 이 비너스는 루브르의 꽃으로 불릴 만큼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작자 미상인 밀로의 비너스는 발굴 했을 때 양팔과 왼쪽 발가락 끝이 없었다. 자연의 암석같이 소박하게 그리고 조용한 바다와 같이 내부 생명의 파동을 면면히 전해주는 현재의 비너스야 말로 완전한 비너스이다. 

이미 비너스는 신으로서가 아니라 건강미 넘치는 여인상으로서 우리들 앞에 존재하며 조각예술의 본질을 시사해 주고 있다.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서 기다란 목, 앞으로 비스듬히 드러나는 풍부한 가슴의 기복, 넓은 허리 등 풍요와 건강미 등 균형 잡힌 부드러운 여성미가 비너스의 진가가 아닌가 반문해본다.

                     

7). 에바프리마 판도라


판도라상자에 갇혀 있는 마지막 희망을 ‘나눔’이라고 주장하는 나에게 해골로 표현된 선(善)의 단지를  원죄의 후손들이라고 매도되는 여성에 의해 짓눌려져 있는 장면이 나를 그림 속으로 잡아끈다. 이런 이데올로기도 여자를 억압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과거 남자들의 거대한 음모라고 여겨진다.

쿠생 작품으로 1550년경 그리스 신화에서 인류최초 여성인 판도라와 평화로운 지상에 재난의 원인이 되었던 상자이야기(헤시오도스의 “일과 날들”)는 오늘날에 와서야 유명해졌다. 기독교에서 최초의 여성이며 원죄의 책임자인 이브와 판도라의 유사점에 관해서는 신학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인 것 같다. 양쪽을 합쳐 거기에 ‘죄 많은 여인’의 인상이 나타나도록 한 것은 역시 이 시대-특히 프랑스-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얼음같이 차가운 옆모습을 보이며 누워있는 이 그림과 같이 이브에 관계된 모티브인 사과와 뱀과 판도라의 소유품인 상자를 동시에 표현하여 이브와 판도라를 같은 이미지로 나타낸 것은 대단히 드문 예에 속한다. 원래는 하나였던 단지가 두 개 그려져 있지만 이것은 그들 나름대로 좋은 운과 나뿐 운을 넣은 것이라고 하는 제우스의 두 항아리에 관한 이야기 호메로스 “일리아드”의 영향에 의한 것일 것이다. 일체의 선(善)을 담은 단지가 여인의 손에 눌려져 있는 한편, 뚜껑이 열린 사악의 단지에서는 재앙이 흘러나오고 있으며 그 결과 인간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8). 싸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NIKE OF SAMOTHRACH)

                   

얼굴도, 목도 없고 양손도 없지만 힘차게 날고자 하는 승리에 대한 염원이 루브르의 깊숙한 큰 계단위에서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표정을 보여줄 얼굴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상상의 나래를 펴도록 부추킨다.

루브르에서 밀로의 비너스와 더불어 그리스 헬레니스틱기(期) 조각의 보물로, 기원전 3세기말의 시라아의 안티오코스 3세와 싸워 이긴 로도스 섬 사람들이 감사의 표시로 에게 해의 북쪽 트라카아 해안에 가까운 싸모트라케 섬의 가베이로이 신역(神域)에 세웠다. 배에 서서 커다란 날개를 펼쳐 전진하려고 하고 있는 자태는 B.C. 5세기 이전의 그리스 조각에는 없었던 것으로, 헬레니즘의 역동적인 미술을 나타내고 있는 걸작이다. 특히 그 옷 무늬의 유동적 기법은 놀라운 것으로 이 무렵의 의상은 대체로 몸에 붙어 조각의 양감을 나타내고 있는데 비하여 싸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상은 몸은 떨어져서 자유로이 유동하며 명암효과를 낳고 있다. 여신이 요구하는 승리를 향한 동적 자태는 조각 구조상 매우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400년간의 그리스 조각에 있어서 자태와 의상의 관계에 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 시대의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진솔한 예술작품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외침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예술가는 진실을 표현할 때만 역사에 빛나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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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운동의 유산과 문화연구의 지리정치학
문화관련 글들(ktp) | 2008/04/02 14:00
문화운동의 유산과 문화연구의 지리정치학

                                                                                                   이동연(문화평론가․문화연대 사무차장)

1. ‘문화운동’의 유산: 두가지 역설

‘문화운동’이란 화두로 지난날의 유산들을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대안을 모색하는 글을 쓰기에 앞서 먼저 이 토픽이 적어도 나에게 곤혹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역설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문화를 구체적인 운동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이제는 너무 진부하고 지겹게 느껴지다가도, 막상 현실 속에서 부딪치게 되면, 구체적인 일상문화에서 법적 제도에 이르기까지 문제투성이인 한국의 문화환경을 개혁해야겠다는 충동을 항상 버리지 못한다. 문화를 운동으로 바라보는 것이 진부하면서도 도대체 왜 문화는 여전히 운동의 대상이 되어야하는가?

사실 이 역설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논쟁이 되었던 것이기는 하다. 문화는 쾌락의 장소이면서도 이데올로기의 장소이고, 소비의 장소이면서 생산의 장소이고, 개인의 자유가 실현되는 장소이면서 집단의 의지가 관철되는 장소이고 실천과 개혁의 대상이면서 그것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곤혹감은 문화의 일반적인 역설, 혹은 이러한 문화의 이중적 성격과는 다른 맥락에 있다. 그것은 적어도 지난 20여 년간 한국의 문화운동, 진보적 문화담론이 걸어온 궤적에서 발견되는 특수한 유산에서 비롯된 곤혹감이다. 지난 20-30여 년간 문화의 이론적․현장적 실천은 문화와 운동의 상관관계를 주어진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았다. 70년대부터 지금까지 문화운동은 민족문화운동, 민중문화운동, 노동자문화운동, 시민문화운동과 같은 이름으로 전환되면서 마치 특정한 문화운동과 문화담론이 특정한 시대의 문화적 성격을 일방적으로 규정하거나 지배하는 것처럼 해석되어왔다. 20여 년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명명된 문화운동론은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 생겨나는 다양한 문화적 욕망의 흐름들을 활성화시키는 데 주력했다기 보다는 그러한 흐름들을 특정한 문화운동집단과 세력들의 이념적 방향대로 표상하려는 지배논리가 배어있지 않았나 싶다. 문화담론이 시대의 문화적 성격, 운동의 성격을 규정하려는 ‘표상의 힘’은 표상되지 않은 부분대상들로서의 욕망의 흔적들, 무의식의 잔재들, 신체적 표현의 잠재적 욕구들을 배제하거나 심지어는 억압해 온 것은 아니었을까? 문화운동의 이론적 실천 궤적을 보자면 민중문화운동론이 민족문화운동론을, 노동자문화운동론이 민중문화운동론을, 시민문화운동론이 노동자문화운동론을 배제하는 방식이 대체로 그러했는데, 이 과정에서 문화운동은 문화적 모순과 실천의 이행을 내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문화현실 외부의 정치적 요구에 의해 표상되거나 사회운동의 일반적 분위기에 편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문화가 운동에 외삽되어 ‘문화적 구성체’의 복합적 층위들이 제대로 접합되지 못하고, 민족문화론, 민중문화론, 노동자문화론과 같은 상징적 기표들이 오히려 문화구성체의 복합적 층위들을 망각하는 것이 일종의 표상으로서의 문화운동의 관행이 아니었나 싶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곤혹감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시점에서조차도 문화담론의 표상의 논리가 여전히 관철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요컨대 진보적인 문화운동가들 사이에서 이제 80년대 식의 계급 중심, 민족 중심의 문화운동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대신 일상의 문화현장에서 일반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민문화운동이 새로운 대안이라는 생각을 피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새로운 세기에 접어든 시점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문화운동을 전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필자 역시 시민운동의 현장에 있으면서 시민문화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당사자이긴 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시민문화운동이란 담론은 지금의 문화운동을 표상하는 언어로 사용되면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화의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실천 과제들이 과거의 유산으로 망각되는 자기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닌가 반문해 본다. 그래서 내가 갖는 곤혹감은 시민문화운동이 기존의 문화운동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등장하면서도 기존의 문화운동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 있는 자기한계를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계급과 민중이란 개념이 80년대에는 대단히 추상적으로 사용되었고, 이른바 ‘시민’이란 개념이 그러한 추상적 관념을 대체할 수 있으며 사회적 모순관계를 구체화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더라도, 그러한 주장이 사회의 일상적 모순과 일상적 쾌락 사이의 갈등에 대한 더 철저한 이해와 실천없이는 오히려 시민이란 개념만큼 더 추상적인 것은 없을 것이며, 문화운동의 관점에서도 퇴행적일 수밖에 없다.

시민문화운동이 시대의 문화적 실천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문화운동의 내재적인 전화를 기획하는 일종의 전략적 언어이고, 선택적 언어라는 점을 인정할 때 담론이 현실을 규정할 때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자기지시적 한계를 인정할 수 있게 되고 이로부터 기표에 지배당하지 않는 현실운동의 다양한 전술과 전략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요컨대 현실의 모순들이 거의 그대로 존재하는 것과는 다르게 지난 20여 년간 사용했던 문화운동의 언어들은 마치 현실의 모순을 ‘상상적으로 해소하려는’ 공포감에 시달려왔으며, 그 공포감은 문화담론의 과잉, 해결되지 않은 운동에 대한 성급한 포기와 새로운 언어로의 손쉬운 이행을 자명하게 만들었다. 시민문화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문화운동은 진부한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시민문화운동 역시 여전히 불완전한 언어로서 과거 유산으로 남겨진 운동의 실천적 과제를 계승하고 이후 새롭게 등장할 수 있는 문화의 진보적 언어에 의해 계승되어야 할 운동성을 갖고 있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문화운동의 동시대적 유산으로 존재하는 시민문화운동은 문화운동의 역사에서 일부에 불과할 뿐이며, 그런 점에서 지난 문화운동의 한계를 모두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도 아닐 것이다. 이른바 문화담론의 표상을 넘어서는 “단절과 이행의 중층결정”이라는 역설.

지난 20년 동안 전개되었던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동요 속에서 우리의 문화현실과 문화운동은 어떤 궤적을 그려왔을까? 사실 80년대와 90년대의 문화현실을 지도그리는 것만큼 이 시대간의 차이와 단절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80년대에서  90년대로의 이행을 ‘정치경제학적 시대’에서 ‘문화의 시대’로의 이행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문화담론’은 90년대의 문화를 말하는 언표만이 아니라 90년대 자체를 규정하는 언표로 그간 사용되어왔다. 그래서 80년대와 90년대 문화환경의 변화와 차이를 지시해주는 담론들, 요컨대 소비주의담론, 신세대담론, 사이버 테크놀러지담론, 그리고 소수․하위문화담론들은 대부분 80년대의 낡은 사회체제를 기각하고 새로운 체계로서의 이행을 지시해주는 언표들로 일반화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90년대의 새로운 문화담론들은 80년대의 문화현실을 훌쩍 뛰어넘어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문화환경을 지시하기에 필요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역으로 말해 80년대의 문화운동의 담론들은 90년대 문화담론들이 수없이 제시하는 새로운 문화환경들을 결코 자신들의 것으로 전유할 수 없었을까? 공동체문화론, 민족문학이념논쟁, 현실주의론, 사회주의적 당파성, 과학적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결합, 노동해방문학과 같은 문화담론(더 정확하게는 문학론이나 문예이론으로 말할 수 있다)들이 순식간에 신세대문화론, 하위문화론, 소수문화론, 사이버문화론, 시민문화론과 같은 문화담론으로 이행할만큼 우리사회의 생산관계와 사회구성체의 요소들, 그리고 구체적인 문화의 현실 사이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는가?

물론 80년대와 90년대의 간극은 일반적인 시대별 차이와는 다른 특수한 사회적 성격을 갖고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적어도 문화담론의 층위에서는 사회구조의 이행이 과장되게 포장되었거나, 현실을 문화적으로 해석하는 데 있어 이념의 비판은 비판대로, 개인의 욕망은 욕망대로 일종의 과잉초월 현상이 팽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사실 80년대의 대표적인 민족문학이념논쟁과 노동자계급문화운동은 문화담론의 표상적 지시관계에 얽매여 90년대 세대문화, 소비문화, 일상문화의 징후들을 읽어내지 못하고 이행하는 문화현실의 여진들을  감지하지 못했다.1) 마찬가지로 90년대의 세대문화론과 소비문화론 사이버문화론은 마치 한국 문화환경의 악마적 지배구조가 순식간에 해체되어 구조적 모순이 해소된 새로운 환경으로 이행한 것처럼 호들갑을 떤 것은 아닌가 역설적인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문화운동이 활발하게 조직화되던 시대에는 오히려 대중들의 문화적 욕망이 억제되거나 문화적 향수의 빈곤을 겪고, 이른바 문화과잉의 시대에는 문화운동의 열기가 쇠퇴하는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러한 두가지 역설을 통해 우리는 문화현실이 문화운동조직과 문화담론으로 표상될 수 없으며, 문화운동의 유산도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80년대 문화운동의 유산은 거의 대부분 조직운동과, 이론적/비평적 논쟁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80년대 초 미술운동의 커다란 분기점이 되었던 <현실과 발언>을 비롯해서 80년대 중반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중문화운동연합>, 80년 말에 발족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그리고 <전국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 <노동자문화운동연합>, <노동해방문학> 등, 10년 사이에 민족과 노동의 문화적 접근에 대한 서로 다른 실천강령을 가진 다양한 문화운동 조직들은 민족문화이념논쟁과 노동자 계급 당파성문제, 민족예술의 실천성과 통일문화운동을 전개해나갔다.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문화운동은 80년대처럼 치열하고 급속한 방식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조직적 실천과 담론적 실천을 지속시키고 있기도 하다. 조직과 담론없는 문화운동은 사실 존재할 수 없다. 80년대 만들어진 다양한 문화운동조직들도 그냥 자의적인 것이 아닌 그 나름의 시대적인 요청과 문화운동 내부의 이행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조직적 실천과 담론적 실천의 역사를 검토하는 것이 문화운동의 유산을 기록하고 검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문화운동의 조직과 조직을 위한 담론들이 당대의 문화현실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역산하여 문화운동의 자기성찰을 해보는 것이다. 문화운동의 유산에 대한 재평가는 문화운동 내부의 지배적인 조직과 지배적인 담론의 무의식을 읽어내는 것이고, 이는 지배적인 문화운동의 담론이 배제한 대상들과, 오인했던 문화현실을 표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문화운동의 유산에서 무의식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바로 지배적인 담론으로 표상되지 않은 문화현실의 복잡한 층위들이 아닐까? 문화의 살아있는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실천적인 의제들을 문화운동의 새로운 대안으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화운동의 국면들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2. 90년대 문화운동의 국면들

앞서 언급했듯이 90년대 문화운동은 80년대의 관점으로 보자면 부재하거나 그 실체를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쇠퇴했다고 볼 수 있다. 80년대 문화운동 조직들이 대부분 해체되거나 명백을 유지하는 데 그치고, 그 조직들이 이념적으로 지도를 그리고자 했던 문화적 해방은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들이었으며, 문화운동가 대부분이 현장을 떠나거나 새로운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상당수는 상업적인 대중문화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대학의 문화운동 역시 학생운동의 퇴조와 상업적인 대량 소비문화의 등장으로 그 정체성이 모호해졌을 뿐아니라 대학문화의 파산을 선고하기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2)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90년대 문화운동은 80년대의 문화운동보다 더 활발하고 다양하게 전개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80년대 문화운동은 대중문화와 시민문화를 배제한 진보적 사회운동 내부의 제한된 운동이었고, 그 과정에서 대중과 대중문화의 자생성에 굴종하지 않으려는 계급과 민족을 이해하고 그 모순을 실천하는 데 있어 선명한 의식이 지배했다. 80년대의 문화운동은 대중문화를 이념적으로 넘어서야 할 하나의 단일한 문화로 단정하면서 계급/민족문화의 대당으로 추상화시켰고 이 과정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연구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욱이 80년대의 문화운동의 방식은 문화없는 운동, 정치적 해방의 수단으로서의 운동에 대한 자기비판 없이 문화와 이데올로기, 문화와 정치를 혼동하는 일종의 문화적 의미와 표현의 기근현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와는 다르게 90년대 문화운동은 대중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개입, 다양한 문화적 차이들의 반란, 문화적 감수성과 욕망의 분출, 새로운 청년문화들의 활성화, 영상시각문화의 진보적 실험 등 오히려 문화적 컨텐츠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사건들을 많이 경험했다. 문화운동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자명한 것이 아니고 그 대상 고정되지 않은 문화적 유물론의 과정이라면, 90년대의 문화적 흐름들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문화운동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로 환원되지 않고 조직과 담론으로 동일시될 수 없는 다양한 문화적 흐름들이 새로운 형태의 문화운동을 가능케하는 국면들을 낳았다. 90년대 새로운 문화적 흐름들은 대체로 문화운동의 전화에 있어 몇가지 국면들을 야기시켰다고 볼 수 있다.  

먼저 문화운동의 새로운 이론적 실천을 들 수 있다. 물론 90년대 이전에도 문화운동의 이론적 실천이 있었지만, 이 때의 이론적 실천은 대체로 사회운동의 부문운동으로서 문화운동의 대상과 조직방향에 대한 이론적 검토가 주를 이루었다면 90년대 문화운동의 이론적 실천은 문화의 진보성 그 자체에 대한 유물론적인 이해와 새로운 문화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이론적 점검들이 주를 이루었다. 1992년에 창간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은 알튀세르의 이론적 실천의 독자성을 제기하면서 문화운동에서의 주체의 자명함과 문화의 본질성을 비판하는 과학적 문화론을 주창했으며,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로서의 문화(이데올로기로서의 문화)와 감성적 해방의 장소로서의 문화(욕망으로서의 문화)의 중층결정을 해명하고자 했다.3) 한편으로 문화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방식과는 다르게 새롭게 확대재생산되는 대중문화영역에 대한 비평적 개입이 이론적, 비평적 실천으로서의 문화운동을 전환을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문학중심의 계간지와는 다른 형태의 다양한 문화이론지와 비평지들이 창간되었으며 대중음악, 영화, 만화, 광고, 미디어, 공간 등등에 전문 문화비평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4)

이러한 문화의 이론적 실천들이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지만, 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기존의 문학중심의 인문주의적 연구와는 다른 흐름을 형성했는데, 9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경향을 통상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라고 명명했다. 문화연구는 1960년대 중반부터 영국의 문화신좌파 그룹들이 버밍엄 대학에 <버밍햄 현대문화연구소>(Center for Birmingham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CCCS)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새로운 문화적 실천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은 현대 자본주의 대중문화에 대한 의식적, 정서적 비판보다는 꼼꼼한 현장연구와 기호학, 정신분석학, 페미니즘 등 다양한 방법론을 도입하여 경험주의에 기반한 문화이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으며, 특히 문화운동의 담론적 실천의 새로운 전형을 낳았다.5) 우리의 문화지형에서 문화연구의 등장도 영국의 상황에 유사한 측면이 많다. 요컨대 문화연구는 문학중심의 담론, 분과학문 중심의 담론, 그리고 문화예술의 위계화된 가치에대한 담론에 의의를 제기하면서 거대담론, 낡은 실천 패러다임, 고정된 학문체제의 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의미화실천’ 방법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문화연구는 앞서 말한 분과학문 지형이 탈영역화되는 구체적인 예증이 될뿐 아니라, 담론적 실천방법이 전화되는 예증이 된다. 기존에 진보적인 문화예술의 담론적 실천은 주로 문학 텍스트가 중심이 되었는데, 비판하려는 대상이 부르주아 고급예술이었던 만큼 전유하려는 대상 역시 작가의 위대한 창조정신이 구현이 되는 소수의 고급예술이었다. 그러나 비판적 담론이 그 대안으로서 리비스의 ‘위대한 전통’을 연상시키는 고급예술의 형상화에 몰두하는 사이 문화현실은 이미 음악, 영화, 광고, 스포츠, 만화 등등의 엄청난 장르분산과 경험하고 있었으며, 문자형태만이 아닌 영상기호, 시각이미지, 스텍타클 공간과 같은 다양한 텍스트 형식으로 조직화되어 있었다. 대중문화의 장르확산과 문화현실의 대량화, 산업화에 대한 비판적 담론의 입장은 대체로 그러한 텍스트들이 과연 얼마나 의미의 진정성을 담고있는가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에는 두가지의 편견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나는 그 가치평가의 기준이 늘 문자중심의 형상화의 우위성을 전제로 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중문화 장르와 문화현실이 문학 텍스트보다 실제로 더 복잡한 의미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려는 것이었다. 문학적 형상화와 그것이 사회모순에 대한 실천의식의 기능을 강조했던 비판적 담론과는 달리 문화연구는 그 방법에 있어서 대상과 대상의 가치를 고정되게 제한하지 않으며 위계질서화하지 않으려는 기획들을 가진다. 서사와 이미지, 표상된 것과 표상하고 있는 것을 접합시키는 기호학적, 정신분열적, 종족기술적, 리좀적인 의미화실천이 문화연구의 방법적인 문제틀로 자리잡는다. 

둘째로, 80년대 계급과 민족 중심의 조직운동과는 다른 형태의 문화적 실천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이는 계급과 민족환원적인 문화운동과는 다르게 세대, 성, 성차, 환경, 생태 등 사회적 모순들과 차이들을 접합하려했던 문화운동이 성격이 강하게 드러났는데, 가장 대표적인 경향이 청년문화운동이지 않을까 싶다. 90년대 신세대문화론이 주로 소비자본주의문화공간의 탄생과 문화자본의 확대재생산의 비판적 준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문화담론으로 사용되었다면, 청년문화운동은 소비자본주의 문화공간과 자본의 지배적인 흐름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세대들의 문화적 감성과 자율적 문화활동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소비욕구가 강한 신세대들이 소비문화공간의 중요한 고객으로 등장했고, 90년대 청년문화운동의 중요한 전투고지였던 대학의 문화운동도 학생운동의 위기와 맞물리면서 점차로 쇠퇴하는 과정을 놓고 보면 청년문화는 소비문화와 구별되지도 않을뿐더러 문화의 정치적 실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보면 젊은 세대의 문화적 감성들이 독점문화자본의 영역에서 독립하여 자신들만의 문화시장과 문화적 자유를 꿈꾸려는 다양한 실험모델들을 생산하여 소위 ‘청년인디문화’라는 새로운 실천공간을 만들었고, 대학문화운동은 문예 중심에서 시각영상중심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대학 내에 다수의 영상문화집단들을 만들기도 했으며, 집단적이고 조직적이지는 않지만, 기존의 도덕율과 윤리관에서 벗어나려는 청년세대들의 문화적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소위 ‘하위문화적 실천’을 이끌어냈다.6) 청년문화운동은 계급과 민족 모순에 근거한 기존의 문화운동과는 다르게 세대적 모순을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문화운동에 있어 세대적 실천은 부모세대들에 대한 도적적, 윤리적 저항을 담고있기도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말하고자 했던 문화의 자율적 공간의 확보와 문화적 감성의 극대화이다(요컨대 70년대 영국의 청년하위문화 그룹이었던 펑크족들의 구호인 “네맘대로해라”Do it Yourself가 그에 부합하는 언어라 할 수 있다)

셋째, 문화운동이 국가의 부정이나 자본주의 문화장치들의 전면적인 전복을 시도하려는 환상에서 벗어나 국가의 문화권력과 시장자본주의의 문화독점에 반대하는 제도적 개입을 하지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을 대체로 국가와 시장자본주의에 대한 문화정책 비판으로 정의할 수 있다. 문화정책의 개입과 비판은 앞서 설명한 문화연구의 새로운 실천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간에 진행된 한국의 문화담론들은 문학텍스트 중심의 제한된 텍스트와 글쓰기 실천을 확대하는 정도의 의미 이상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문화연구는 대체로 장르중심의 문화비평으로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고, 새로운 문화현실의 복잡한 층위들을 실천의 관점으로 읽어내서 이론과 비평이 다시 문화현실의 운동력을 구성하려는 노력들이 부진했다. 문화담론이 새로운 문화현실의 대상에 걸맞는 ‘의미화실천’을 하지 못했던 것은 대부분의 문화비평가들이 장르에 묵여있거나 매니아적인 감수성에 젖어 문화현실을 전유하는 방식을 자신의 지식권력으로 환원해 버렸기 때문이다(문화연구는 많은 잠재적인 실천을 남겨놓고 있고 그 한 과정으로 문화비평/분석에서 정책/기획으로의 전환을 전망할 수 있다. 스튜어트 홀은 우리 시대에 ‘에이즈’ 문제는 투쟁과 논쟁을 야기시키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며, 사람들이 죽게 되는 장소이자 욕망과 쾌락 역시 소멸되는 장소임을 언급하면서 이런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문화연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해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화연구는 “재현들 그 자체의 구성적, 정치적 본질과, 그것의 복합성, 언어의 효과들, 삶과 죽음의 장소로서의 텍스트성에 대한 문제들을 분석해야한다”는 홀의 지적은 앞서 언급한 ‘에이즈’라는 당면한 현실의 문제에 문화연구의 표상적인 실천들이 주목해야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7) 홀의 지적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문화연구의 재현적 실천, 혹은 담론적 실천이 문화현실의 억압성을 바꾸어 나가고 대중의 삶의 문화적 자유와 평등을 확대하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지 못한다면 문화연구는 또하나의 지적인 유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화연구는 문화비평의 실천과는 다르게 새로운 의미화 실천, 혹은 현장적 실천으로 전화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화연구는 문화비평 담론 중심에서 대안적 정책개발 중심으로 전화되어야 한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제기되었다. 영국의 문화연구자인 토니 베네트(Tonny Bennett)는 문화연구가 ‘문화정책연구’로 대체되든지 그쪽으로 변형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8) 그는 문화연구의 행위자로서의 주체의 위치의 자기변신을 주장한 셈인데, 주어진 문화의 장에 대해 ‘사후적인 담론’으로 반응하는 이차적인 문화 담지자에서 그 문화의 장을 실제로 구성할 수 있는 담론을 생산하는 일차적인 문화담지자로의 이행이 문화연구의 전화의 핵심사안이기는 하다. 문화의 장 안에서 전략과, 구상과 절차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화이론과 정치학의 형태를 띠며, 문화적 제도들이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절차들과 정책적 전략들 안으로 좀더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구상하는 지적인 작업이 문화정책연구의 중요한 실천과제이다.

가령 국가의 문화정책의 방향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는지, 문화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시대의 문화적 흐름에 역행하는 각종 문화관련 법과 제도들이 없는지, 문화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의 문화재원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조정해야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개혁안을 제시하는 운동들은 시민사회운동의 주요한 실천대상으로 간주될 수 있겠다. 물론 문화정책 연구는 국가의 주요한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과 정책수립 과정시의 부분적인 참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문화현실의 하부구조 전반에 정책적인 개입을 의미한다. 우리의 문화현실과 문화환경이 갖고 있는 제도적, 도덕적, 윤리적 문제점들에 대한 분석과, 대중들의 삶의 자유와 평등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생산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문화정책 연구의 과제이다. 가령 문화연구자들이 새로운 도심개발이나 지역개발 정책 수립과정에서 하나의 기획자로 참여하든지, 한국의 문화적 아비투스(가부장제 가족주의/지역주의 등)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조사를 한다든지, 뉴미디어의 문화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종의 컨텐트-웨어(content-ware)를 생산하는 것들이 구체적인 문화정책 연구의 사례가 될 수 있겠다. 대중의 일상생활에 편리한 공간과 시스템을 생산하는 문화정책적인 실천은 결국 문화영역을 통한 사회의 공공성, 대중의 문화적 권리옹호를 위한 실천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운동의 새로운 조직화이다. 기존의 문화운동 조직들은 대게 전문 문화예술 창작자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기존의 문화운동 조직은 대부분 연합체의 성격을 가지지만, 전통적인 문화예술 장르들의 분과들이 단순하게 결합된 형태로 존재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으로서 민예총은 지역별 장르별 분회․분과 조직을 가지고 민족예술의 진보적 운동과 전문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문화예술의 영역이 점차로 해체되고 있고, 비전문가적 문화예술의 공간과 취향들이 확대되고 있으며, 전지구화되어 있는 문화자본의 독점화가 강화되고 있는 새로운 문화환경에서 전문예술가 중심의 문화운동은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문화운동은 점차로 전문문화예술인중심에서 시민중심으로, 창작적 실천에서 문화공공성 구축으로, 이념적 실천에서 제도적 실천으로 그 방향이 전환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90년대 말 시민문화운동의 조직화를 기획하려는 움직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는 이러한 문화운동의 전화를 목적으로 결성된 최초의 문화 NGO 단체이다. 문화연대의 출범은 한국의 문화운동의 역사에서 몇가지 중요한 전환점을 시사해 준다. 먼저, 문화연대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그간의 문화운동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려는 기획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9) 시민중심의 문화운동은 문화운동의 대상과 주체, 그리고 실천과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요컨대 문화운동은 문화예술들의 창작적인 실천을 중시하기보다는 그러한 창작활동을 가능케하는 제도개혁을 중시하며, 문화예술의 창작환경 개선 역시 전문문화예술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적 향수와 문화적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문예술가들도 특정한 창조자보다는 시민주체로서 문화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시민들도 문화예술의 소비자나 수용자만이 아니라 문화생산과 문화적 과정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시민문화운동은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독립적 영역을 구축하려했던 기존의 문화운동과는 다르게 국가와 시장을 지속적으로 견제하면서, 이 두 영역으로 환원되지 않는 3의 영역을 창출하려는 기획을 가지고 있다. 흔히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참고하여 시민사회영역의 실천적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되곤하는데, 문화예술운동에서 시민문화운동의 출현은 국가와 시장을 극복하는 제 3항의 대안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제 3항으로서의 문화적 영토가 개인들의 자율적 문화활동의 보장과 문화적 욕구의 극대화를 꿈꾼다는 점에서 국가와 시장에 대한 탈근대적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연대의 활동방식과 실천의제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문화개념과 문화장르들을 해체하려는 데서 출발한다. 문화는 정치경제의 부차적인 산물이고, 문화의 민주화 역시 정치경제적 민주화 이후에 자연스럽게 주어질 것으로 보려는 목적론에 반대하며, 문화와 비문화적인 것, 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구별을 없애고자하며, 문화개혁을 위한 법적 제도적 감시활동 이외에 영상매체와 시각문화의 다원화, 복합적 문화행동과 시민자치문화의 활성화를 중요한 운동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결론적으로 90년대 문화운동의 국면들은 문화운동의 전화에서 두가지 문제의식을 생산한다. 첫째는 문화운동의 국면들은 한동안 실종되었던 문화운동의 복원을 준비하는 과도기적 단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운동에 대한 기존의 통념들을 깨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문화운동의 도래를 지시하는 징후로 이해할 수 있다. 청년문화의 등장, 세대문화의 폭발, 스타일과 취향의 반란, 소수문화의 생성, 새로운 실천영토로서 디지털공간, 그리고 이 의제들의 문화적 해방을 읽어내려는 이론적 실천과, 자본주문화권력과 제도에 대한 정책적 개입과 같은 국면들은 분명 새로운 문화환경에서 새롭게 제안되는 문화적 실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문화운동의 긍국적인 목적이라기보다는 조건이자 환경이다. 이는 이러한 다양한 문화적 실천들이 문화적 자유를 확대하고 대중들의 문화적 해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어떤 계기들을 만들고 있을 뿐이지, 실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로 90년대 문화운동의 국면들은 사실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일정한 연관성과 지속성을 가지고 있다. 80년대 진보적 문화운동의 경험주의와 이념중심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문화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이론적 검토가 요구되었고, 이것이 기존의 문학예술 중심의 문화운동의 한계를 비판하며, 문화연구라는 통합학문적이고 장르분산적인 텍스트연구가 진행되었던 것이며, 문화텍스트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문화정책 개입과 같은 제도적 실천이 등장했고, 이를 좀더 조직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시민문화운동조직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문화운동의 국면들은 자연스럽게 진보적 문화운동이 가야할 방향을 단계적으로 지시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면 속에서 21세기 한국의 문화운동은 어떤 실천적 계기들을 만들어 나가야할까? 

3. 문화연구의 지리정치학

1) 서구 문화연구의 발생배경:

▶문화좌파적인 전통-->The Reasoner, The New Reasoner, Universities & Left Review(ULR),                   CND(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 The New Left Review

▶인문주의와 휴머니즘에 대한 반성: 문자문학, 문화의 미적가치, 예술의 진리에 대한 회의감(문화의 일상        으로서의 경험주의-->부르주아 문화예술관에 대한 반대: 톰슨, 윌리암즈)

▶문화의 구조결정성--> 프랑스의 이론적 구조주의에 영향(레비스트로스, 바르트, 라캉,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과 주체형성

2) 문화연구의 전개과정

▶ Pre-CCCS 단계: 경험주의, 좌파리비스주의

    (Lived Experience)

▶ CCCS 단계:              ① 리차드호가트: 미디어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관계

    (Signifcation)             ② 스튜어트홀: 주체형성론(에스노그라피)

    (Hegemony)              ③ 리처드 존슨: 주체의 역사적 실천의 문제

▶ Post-CCCS 단계: ① CCCS의 학과편입(1984년)-->문화연구의 학제화․제도화

    (Intervention)   ② 지역연구로의 확대(Local-Studies)--> 캐나다/호주의 문화연구

                    ③ 문화정책으로의 전환--> 제도적 개입

3) 문화연구의 이론적 계기들

  ▶ Althusserian Moment: 이데올로기론, 구조결정론(중층결정론), 주체호명테제, 상징적 질서

                           -->60-70년대 중반: 이데올로기․국가장치이론

  ▶ Gramsian Moment: 헤게모니론, 문화의 블록화, 주제의 능동적 실천

                           -->70년대 중반--80년대 초반: 헤게모니․시민사회론

  ▶ Deleuzian Moment: 욕망하는기계, 분열분석, 리조마틱스, 사이버네틱스

                           ---> 80년대 말--90년대: 욕망이론․탈주론

4) 한국문화연구의 생성 배경

  ▶ 80년대 민족문학이념논쟁의 쇠퇴

  ▶ 문화운동의 조직화의 동요

  ▶ 소비문화의 출현

  ▶ 문화텍스트의 의미생산

5) 한국문화연구의 한계

▶ 문화연구가 문화비평으로 동일시, 담론적 실천으로 제한

▶ 문화담론 진영들 간의 생산적 논쟁의 부재

▶ 문화연구의 주제적 실천의 부족

6) 문화연구와 문화운동의 절합가능성

▶ 문화의 의미화실천: 텍스트비평의 의미화실천에서 삶을 재구조화하는 의미화실천으로

▶ 문화공학과 문화의 실천: 문화의 테크놀러지에 대한 진보적 전유, 삶 속의 문화적 시스템을 전환하려              는 노력, 감각의 문화정치

▶ 문화정책의 개입: 문화의 인프라르 개혁, 시민들의 문화적 권리를 확보

▶ 문화사회: 상상력의 네러티브화, 감각의 물질화, 문화연구의 주체화양식

             삶의 패러다임을 전화

4. 대안적 문화운동을 위한 실천토픽들

먼저 새로운 집단적 운동형태로서 시민문화운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필자는 앞서 90년대 문화운동의 국면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문화연구, 문화정책, 시민문화운동의 계기들을 설명한 바 있다. 한국에서 시민문화운동은 지난 몇 년동안 시민사회운동이 활성화된 데 힘입은 바 크지만, 90년대 문화연구의 담론적 실천의 한계, 문화정책 개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된 일종의 진보적 문화운동의 이행과정에서 출현했다. 한국에서 문화연구가 일부 문화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담론적이고 비조직적인 실천이라는 점에서 문화현장을 새롭게 조직화하고 거대독점화된 문화환경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운동의 복원이 제기되었고, 문화정책 개입이 위로부터의 문화개혁이고, 거시적인 제도개혁 운동이라는 점에서 시민들의 문화일상과 취향과 감성을 바꾸는 아래로부터 개혁의 필요성 또한 제기되었는데 시민문화운동은 이러한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시민문화운동이 새로운 세기에 걸맞는 ‘문화운동의 지배소’이자, 진보적 시민사회운동의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민중운동과 노동운동과 끝임없이 연대해야 할 과제들을 안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여전히 시민없는 시민문화운동으로 그칠 소지가 많다. 특히 최근에 시민사회운동이 마치 자신들의 운동에 특정한 대상이 고정된 것처럼 분과주의, 전문주의에 매몰되어 민중연대와 계급운동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없지않아 있는데, 시민없는 시민문화를 구호로만 외치거나, 운동의 구체적, 전문적 개입없는 시민문화운동도 문제이지만, 계급적, 민중적 연대없는 시민문화운동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대안적 문화운동의 실천토픽들로 현재 당면한 시민문화운동의 과제들을 제기하고 싶으면서도 그것이 과거 민중문화운동이나 노동자계급문화운동처럼 시민과 시민운동을 제한되게 설정하거나 특정한 문화적 실천만을 운동의 대상처럼 나열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가령 현재 시민문화운동에서 문화개혁 캠페인으로 삼고 있는 '용산미군기지문화생태공간만들기‘, ’청소년보호법폐지와 표현의자유 수호 캠페인‘, ‘도서관 컨텐츠확충과 책읽는사회만들기 캠페인’, ‘한국대중음악 개혁캠페인’과 같은 문화공공성을 위한 운동과 ‘공공문화기반시설 모니터링단’과 ‘시민문화감리단’과 같은 시민들이 주축이 된 문화감시 프로그램들은 과거의 문화운동과는 확연하게 다른 토픽들을 갖고 있는 셈인데, 만일 이 운동 프로그램들이 마치 시민문화의 고유한 영역을  개혁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간주된다면 애초에 이 운동이 제기되었을 때 잠재되어 있던, 계급과 세대와 생태의 중층결정성과, 신체의 표현과 감성과 지식의 절합효과, 그리고 문화감시가 곧 문화개혁과 해방의 과정이라는 문제의식들이 사장될 우려가 있다. 필자는 청소년보호법 폐지운동이 단순히 10대들의 문화적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싸움만이 아니라 문화적 표현의 급진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며, 대중음악개혁프로그램의 목표 역시 가요순위프로그램폐지와 음반유통구조의 개선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부르고, 음악을 통해 자신들의 문화적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문화운동의 안과 밖에 대한 문화적, 정치적 함의들은 많은 논쟁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고, 시민문화운동의 대상과 실천전략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시민문화운동의 실천전략은 그 나름대로의 대상과 운동방식을 갖고 있긴 하지만, 미리 주어진 것은 아니라고 보며, 통상적으로 민중운동과 노동운동과 연계된 진보적 문화운동의 과제들과 끝임없이 연대하고 구별지어야 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집약하자면 문화적 공공성과 자율성에 대한 투쟁이라 할 수 있다.10)

둘째, 문화운동은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문화자본에 대항하고 독점문화자본에 맞서는 자율적인 문화공간과 문화시장을 만드는 실천을 지속가능한 자신의 유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문화경쟁과 시장압력의 마지막 보루인 문화의 영역마저도 자유시장 체제의 논리를 들어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90년대초 WTO의 출범으로 다자간 무역협상이 진행되었고, 미국과 다른 제 3세계 국간들 간의 문화시장개방 압력으로 인한 마찰로 인해 전세계 민중들의 거센 저항이 있었다. 문화시장에 대한 개방압력은 문화적 교류와 세계문화의 동시대화를 명분으로 문화자본의 시장 독점과, 미국문화자본의 지속적인 회전효과, 문화적 감성의 지배효과들을 강화하려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4-5년전부터 한미투자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미통상부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요구에 맞서 영화인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저항하는 것은 단지 오랜만에 전성기를 맞고 있는 한국영화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지구적 문화자본의 독점화에 맞서 지역의 문화적 특수성과 문화시장의 자율적 흐름들을 지키기 위해서이다.11)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문화시장을 지킨다는 것은 민족문화를 수호하겠다는 의미보다는 문화적 표현의 획일화와 문화시장의 독점을 막겠다는 의미가 더 크다.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은 미국이 중심이 된 신자유주의 문화자본의 독점화를 거부하는 운동의 한 실천에 불과하다. 앞으로 대중문화시장의 자생성과 문화적 표현과 감성의 자율적 확대를 위해 시각영상 문화 전체에 대한 민중적 표현의 확대와, 다양한 문화예술장르에서의 특화되고 자생적인 미시적인 문화시장의 확대를 위한 독점문화자본에의 저항이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 일상생활과 일상공간에서 개인의 문화적 욕망이 억압되지 않도록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시키는 운동이 필요하다. 작년 한해는 표현의 자유 수난의 시대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문화계에서 표현의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 음란물 시비로 법정공방을 벌였고, 이 영화의 원저자인 장정일씨는 실형까지 선고받았다. 만화 이현세씨의 <천국의 신화> 청소년판이 청소년들이 보아서는 안되는 유해한 장면들을 그렸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으며, 영화 <JSA 공동경비구역>은 본래의 현실과는 다르게 왜곡되어 표현되었다는 JSA 전우회의 항의에 시달려야했고, 페미니즘 미술가 그룹 ‘입김’이 종묘에서 개최하려했던 <아방궁 프로젝트>는 유림들의 방해로 전시회가 취소되는 사태를 맞았다. 또한 최근에 정부는 음반․게임․비디오에 관한 청소년연령을 종전 18세에서 19세로 상향조정한다는 안을 발표했고,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인터넷 내용들을 등급화하여 음란물/성표현물에 대한 차단과 사회적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려하고 있다.

문화적 표현물이 이토록 수난받게 된 데에는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성적, 정치적, 성차적 사회문제들이 다양한 표현물로 생산되는 과정에서 보수문화 사회의 저항을 받았기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문화적 표현물을 경계로 해서 한국의 지배이데올로기들인 금욕주의문화, 청교도문화, 가부장제문화, 군사주의문화의 시대적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성적표현물을 음란물로 규정하여 격리시키고 훼손시키는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의 안정된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신체의 자유로운 표현의 감성들을 표준화된 기준으로 억제하려 한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활성화시키는 문화운동이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문화적 자유의 폭과 다양성을 확대할 수 있는 일종의 급진적 계몽운동의 기획이며, 나아가 문화의 생산과 소비과정에서의 검열과 통제를 최소화하여 사회의 지배체제를 안정화하려는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의 ‘문화전쟁’ 이데올로기의 잘못된 정당화에 맞서기 위해서이다. 청소년보호, 사회윤리의 보호라는 문화전쟁의 이데올로기는 때로는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이나 보수적 페미니스트운동가들에게 수긍되는 메커니즘이 존재하는데, 표현의 자유 수호운동은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나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인 문화운동 내부의 보수주의자들과의 논쟁을 안고있기도 하다. 어쨌든 표현의 자유의 보장없는 문화운동의 진보성이란 신체의 자유와 해방없는 사회개혁운동과 마찬가지로 공허하고 제한적이다.

셋째, 문화운동은 비문화운동, 혹은 기존의 문화운동이 포괄하지 않았던 사회운동과의 지속적인 연대와 대화가 필요하다. 문화의 비문화운동, 혹은 문화운동의 외연의 확대에 있어 문화와 생태가 결합된 문화운동은 기술 중심의 동시대 문화환경의 극단선을 항상 조절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서구적인 의미에서 문화는 개발이고 경작이라는 점에서 자연을 정복하는 인간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간의 문화운동은 자연의 영역을 대립적인 대당으로 놓던지 아니면 실천의 영역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문화생태운동은 문화의 자연적 요소들의 복원과 인간의 감성적 활동에 필요한 환경을 유지하고 확대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문화개념과는 다른 위치에 서있다. 문화생태운동은 단순히 기술문명에 대한 정서적 반대와 저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에 있어 문화적 의미와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고, 문화의 공간적인 실천과 주체의 일상생활의 배려에 기인하는 것이며, 생태운동의 인간적 복원과 감성적 확대를 위한 것이다.요컨대 용산미군기지를 문화생태공간으로 전환하는 운동이나 기무사공간을 역사문화복합공간으로 조성하려는 문화생태운동은 과거에는 문화운동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았지만, 공간정의와 문화생태성의 동시적 실현과, 역사와 문화와 생태의 공존, 일생생활에서의 신체가 자극받아야 할 문화적 감성의 배려를 위해 중요한 문화운동으로 전유할 수 있다.

넷째, 새로운 예술운동의 전환이 필요하다. 80년대 문화운동은 문학예술운동이 주를 이루었다. 그것도 대체로 진정한 리얼리즘의 구현을 위한 예술창작의 성취와 특정한 운동 이념노선을 형상화하는 창작집단들의 조직화에 집중했다. 그러나 문화운동이 창작과 조직중심으로 집중하는 사이에 문화예술의 환경들을 여전히 많은 모순들을 안고 있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문화예술환경으로의 이행을 경험하고 있다. 거대문화예술공간이 주로 보수적인 예술가집단에 의해 독점되고,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기구들과 제도들의 문제점들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고, 각종 국제문화예술제가 문화예술의 인프라 구축과는 무관하게 관주도로 남발되고 있고, 창조성과 실험성이 강조되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대안이 개발되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는 디지털문화의 급속한 증가로 예술생산방식이 변했고, 근대적 의미의 문화예술장르 개념을 해체하려는 실험적인 실천들이 시도되고 있으며, 청년세대들의 독립문화예술의 장이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예술환경의 진단과 변화를 놓고 보면 문화예술운동도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먼저 근대적이고 보수적인 문화예술제도에 대한 개혁이 선행되어야 하며, 소수의 문화예술 창작자들의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려는 노력보다는 많은 창작자들의 창작환경들이 개성되고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권리들이 보장되는 제도적 실천이 필요하다. 이는 문화예술이 창작가들이건 수용자들이건 우리 사회의 문화적 공공성을 높일 수 있는 문화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12)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의 문화운동은 개인과 집단들의 자유로운 문화적 영토들을 다양하게 생산할 수 있는 흐름들을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 하위문화적 스타일의 반란과 소수문화공간의 출현은 그 자체로 문화적 차이와 급진적 문화정치의 구성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하위문화의 공간에 놓여있는 청년세대들의 문화적 세력권을, 소수문화의 자율적인 문화시장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운동과정이 중요하다.13) 또한 사이버공간에서의 급진적인 문화게릴라 운동은 자유의 새로운 영토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실천공간이라는 점은 익히 전술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사용하고 있는 바이다. 정보문화운동이 새로운 문화운동에 있어 관건이 되는 것은 비단 소통과 연대의 편리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지배적인 문화자본과 권력이 상당부분 정보환경이나 정보자본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며, 사이버공간에서의 반자본주의적, 반독점문화적 운동이 실재공간에서의 문화투쟁이 안고 있는 어려움들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타리와 네그리는 이미 이것을 문화영역에서의 아우토노미아 운동으로 명했고, 개인들과 그룹들가의 자유로운 연합을 구상했다. 한편으로는 계급, 성차, 세대, 정보, 지역이 교차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문화운동과 정보문화운동, 시민운동과 독립문화운동, 생태운동과 공간정의운동, 청소년인권과 표현의 자유가 교차되는 복수의 실천고지들을 수없이 만들어나가는 것이 지금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문화운동의 과제가 아닐까?


1) 가령 다음과 같은 인용문을 보자.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문화론의 문제를 거론해보자면 80년대 문화론은 본질주의적, 선험주의적, 혹은 경험주의적이었다고 정리해 볼 수 가 있다. 이런 경향은 문화론의 대상과 방법의 오해에서 시작된다. 적어도 80년대 문화운동의 문화론은 그것의 대상규정방식이나 문제설정의 인식론적 내용에 있어서 관념론적 잔재에서 충분히 자유롭지못하다. 그것은 이를 테면 문화라는 범주 혹은 개념은 이미 자명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고 다만 문제는 그 내용을 민중문화적 사실들로 구성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이성욱, 「90년대 문화운동의 방향」, 『문화과학』 창간호, 165쪽)

2) 대학문화운동의 비판에 대해서는 『대학문화의 생성과 탈주』(이동연 외 저 문화과학사, 1998) 서문과 1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3) 국내 최초의 문화이론 전문지로 등장한 『문화과학』 창간선언문 중 다음의 언급을 보라. “문화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문화이론의 수립은 필수다. 하지만 현재 과학적 문화이론은 그 정초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과학적 문화이론을 수립하려면 문화이론에 침투한 관념론을 극복하는 길이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유물론적 문화이론의 청조를 놓아야 한다”(『문화과학』 1992 창간선언문 중에서)

4) 국내 문화담론의 등장과 문화론적 함의에 대해서는 졸고, 「한국문화연구의 전개과정과 실천토픽」(『현대사상』 4호)를 참고하기 바란다. 

5) 버밈엄 현대문화연구소에 대한 자세한 소개로는 졸고, 「문화학의 대안적 교육과정에 대한 모색」(『문화연구의 새로운 토픽들』1997)과 원용진, 「지식생산장치로서의 문화연구-영국 CCCS를 중심으로」(『문화과학』 11호 1997년 봄)을 참고하기 바란다.


6) 청년문화의 취향과 스타일에 대해서는 졸고, 「하위문화연구, 어떻게 할까」(『문화연구의 새로운 토픽들』, 문화과학사, 1997)과 딕 햅디지, 『하위문화:스타일의 의미』(현실문화연구 1998)를 참고하길 바란다. 이 논문과 저서는 사회적 모순들을 상상적으로 해소해보려는 청년세대들의 스타일의 실천이 세대적 실천의 의미를 담고있음을 강조한다.

7) Stuart Hall, "Cultural Studies and its Theoretical Legacies", Cultural Studies, eds by L. Grossberg, C. Nelson, Routledge:New York and London, 1992.

8) Tony Bennett, "Putting Policy into Cultural Studies", Cultural Studies, eds by L. Grossberg, C. Nelson, Routledge:New York and London, 1992.

9) 문화연대 창립선언문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은 문화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안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문화적 관점을 채택하는 것만이 아니라 문화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문화발전의 과제와 전망을 본격적인 '사회적 의제'로 떠올리는 일이 필요하다. 문화개혁에서 필요한 일은 우리의 삶과 문화를 왜곡시키는 관행, 의식, 제도, 전통, 정책 등을 근절하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큰 문화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국가와 시장, 그리고 문화제국주의 세력이다. 문화연대는 국가기관과 자본에 의한 문화 권력 및 자원의 독점 경향, 다국적 문화산업의 문화주권 침탈에 따른 문제점을 비판하고 시정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다.”(『문화연대 창립대회 자료집』, 1999) 

10) 요컨대 다음 인용문을 보자. “노동운동은 전통적인 조합주의나 전위 당 전략에서 벗어나 자율적 자기조직화의 원리를 도입하여 자주관리의 전통을 새롭게 부활시켜야하며. 노동자계급의 문화적 창의성을 증진하고 확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며, 그와 동시에 국가장치의 성격을 확대할 수 있는 변화시키기 위한 공공적 노력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반면 시민운동은 국회와 행정부, 대기업에 대한 감시활동을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개선하려는 노력만이 아니라 생산현장의 민주주의를 활성화함과 동시에 노동자 계급 역시 공공영역에의 자유로운 참여를 증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심광현, 「변혁과 탈주의 이분법을 넘어서」, 『문화과학』25호 2001년 봄호 38-9쪽).

11) 스크린쿼터와 다자간투자협정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해영의 글(「신자유주의와 한미/한일 투자협정」, 사회진보연대․민주노총주최, 『누구를 위한 한미. 한일 투자협정인가』 1999년 자료집)을 참고바란다. 이 글은 수정보완되어 『스크린쿼터와 문화주권』(문화과학사, 1999)에 실려있다.

12) 문화예술운동의 탈근대적 실천에 대해서는 졸고, 「문화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예술운동의 과제들」(『문화사회를 위하여』, 심광현/이동연 편저, 문화과학사, 1999)참고.

13) 청년문화운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담은 글로는 졸고, 「청년세대들의 문화꼬뮨 사회를 위하여」(『일탈기록』창간호, 2000)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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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시대의 예술과 문화, 그리고 다중들의 시간
문화관련 글들(ktp) | 2008/03/08 01:19

제국 시대의 예술과 문화, 그리고 다중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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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ubStance> 112호, 통권 36권, no. 1, 2007년.

저자 : Antonio Negri

영역 : Max Henninger

번역 : 은혜(irreducible@naver.com)/승준(redsboy@hanmail.net)

링크참조 : http://muse.jhu.edu/journals/substance/toc/sub36.1.html

http://korotonomedya2.googlepages.com/AntonioNegri-ArtandCultureintheAgeof.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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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비판은 자주 그 자신을 반복한다. 우리의 현 정세와 관련해 그렇게 문화비판을 반복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면 잘못된 일일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7년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ꡔ계몽의 변증법ꡕ을 출판하자, 새로운 비판모델은 재생산이 가능하고, 또 상이하면서도 반복이 가능한 독특한 형태로서 출현하게 되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그들이 한 때 머물렀던 파시즘으로 폐허가 된 유럽과, 그들이 망명지로 택한 미국사회 모두를 반성하면서 계몽의 경향이 스스로를 자신의 대립자로 변형시킨다고, 즉 새로운 문화산업의 유혹으로 양산된 대중들을 파시즘에 무방비상태인 야만족으로뿐만 아니라, 전체주의의 신민으로도 변형시킨다고 생각했다. 유럽의 파시즘과 미국의 상품화가 공존한다고 간주되었다. 그 뒤부터 (즉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부터) 오늘날까지 서구문화에 대한 그러한 판단은 제국의 점진적 구성으로 확신을 얻게 되었다. 파시즘의 문화상품화로의 변형은, 텔레커뮤니케이션 체계들이 그러한 변형을 확산시키는 주요도구가 됨에 따라 전지구를 가로질러 퍼지면서 깨지지 않는 연속성으로 실현되었다... 이미지들의 가공은 보편적인 관광매춘1)과 수많은 다양한 악취미를 야기했다. 루퍼드 머독의 텔레비전을 생각해보라.2) 그러면 당신은 아도르노의 문화비판 모델이 새로운 세계의 존재론을 제대로 폭로했다는 것의 증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세계의 파시즘으로의 재구조화, 전쟁에 의한 세계의 재구축, 타락한 이미지에 의한 세계의 부패. 이 모든 것이 오늘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 텔레비전은 쓰레기 문화를 생산하고, 특유의 청중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게 되었다! 뮤지컬 문화는 새로운 쓰레기 생산물들을 요구하고, [이러한] 순환은 완전히 닫혀 있다. 정보의 중립화는 정동의 평준화라는 동일한 법칙들에 의해 야기된다. 만일 낭만주의와 고전주의가 모두 의미 없는 기호들로 환원되었다면, 이제 진리는 강제된 것 혹은 저속한 것이다. 아도르노의 모델은 자신을 소진시켰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그의 문화비판이 담고 있었을 혁신적 요소가 무엇이든 간에 이제는 진부한 것이 되었다. 분노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문화비판이 필연적으로 반복적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문화를 지구화하고, 동시에 문화가 자신의 가치들을 황폐화하고 왜곡하는 이러한 지옥-기계 안에서, 그리고 그 지옥-기계에 대항하는 하나의 유령, 하나의 반란의 정신이 있다. 문화적 커뮤니케이션의 회로가 완전하고 자족적인 반면, 이 반란의 정신은 자신에게 외생적인 것과 타자를 공급함으로써만 전진할 수 있다. 육체적 욕망, 다중들의 자유, 언어들의 역능.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끔찍한 추상 속에서 무엇인가가, 즉 다중의 정신이 자신을 주체화한다. 왜곡된 기호들의 세계 속에서, 누군가는 진리의 단순한 기호들을 생산한다. 바스키아3)를 생각해보라, 그의 순진무구한 기호들을, 유토피아적 묘사들을... 생산은 언어적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주체성은 이제 자신을 언어 자체를 통해 제시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추상은 특이성들의 몸이 된다... 따라서 다중이 탄생된다.


2. TV는 보이는 세계를 경영자의 이미지로 혹은 명령 기능 일반의 이미지로 재구축하려 한다. TV은 아래를 향해 상호작용한다. 즉 지배하기, 분해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 아래에 놓인 것을 생산하기. 전쟁들은 실재의 혼탁함(obfuscation)에서 전지구적 판타지들의 서사까지를 포괄하는 언어로 다시 묘사된다. 전쟁 다큐멘터리는 비디오 게임이 된다. 하지만 다중이 삶의 중립화 내부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 모든 추악한 구성물은 도살장 안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그것은 베트남에서, 즉 권력에 의해 다시 묘사된 진리에 대한 다중스러운(multitudinous) 분해에서 시작되었다. 아주 소수의 사진기사들, 그리고 이따금씩 철학적 마인드를 가진 병사들은 전쟁이 퍼뜨린 피와 눈물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때 이래로 탈신비화의 메커니즘들 및 세계를 그것의 생생한 직접성 속에서 포착하는 능력은, 유행병과 같이 격렬히 증식하는 바이러스들이 되었다. 반G8 시위 동안의 제노바를 생각해보라. 경찰은 평화로운 시위자에 맞서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이용해) 그들을 테러집단으로 매도하면서 저강도의 전투를 수행했다. [하지만] 그건 헛된 일이었다. 다중은 경찰보다도 더 많은 카메라를, 그것도 셀 수 없이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경찰-암살자라는 이미지가 모든 집집마다... 익숙한 것이 되었다. 다중은 자신들의 이미지 생산 능력으로 기호들의 추상을 반항적이게 만들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세계는 그것을 해석하는 것만으로 변혁될 수 없었다. 아도르노가 파시스트들로 규정했을 법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의 의해 전유된 최후의 철학적 기획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턱수염이 수북히 난 어떤 옛날 사람[맑스]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에 대한 유일하게 가능한 해석은 그것의 변혁에 있다. 만일 이것이 우리가 도착한 지점이라면, 계몽의 변증법은 결국 소진되었고, 반복적인 이미지들(“역사는 끝났다”)이 자본주의적 생산 속에서 소멸했으며, 새로운 욕망의 생산으로 대체되었다. 상품화된 바로 그 커뮤니케이션의 추상은 다중들의 주도적 활동 덕분에 이제는 구제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도르노여 안녕, 리얼리즘과 근대적 비판모델의 반복이여 안녕. 여기에서 문화비판은 자신을 새로운 영역으로, 즉 다중과 탈근대성의 영역으로 확립한다. 다중은 더 이상 유토피아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디스토피아4)를 생산하는 것일지 모른다. 즉 그 내부에 남아있는 능력, 언어를 내부에서부터 공동화(空洞化)하는 능력, 그리고 변혁을 위한 물질적 욕망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출현한 것이다.


3. 다중들의 디스토피아는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정치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문화가 현재 자신을 구조적으로 조밀하고 생동감있는 형태로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래로부터, 즉 삶-권력과 대립되는 관점으로부터 지배와 폭력을 사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높은 것과 낮은 것의 변증법 혹은 높은 것과 낮은 것 간의 대립의 변증법과 동일시될 가능성이란 없다. 다중은 새로운 언어적 규정들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 증식하는 특이성들의 앙상블(ensemble)5)이다. 자신의 고전적 형태 속에서, 변증법은 일자로 후퇴하지만, 새로운 변증법은 카오스적이다. 다중들은 언제나 제 때가 아닌, 예외적인 클리나멘에 따라서 마주치는 원자들의 앙상블들이다. 따라서 삶권력의 구조들 내부에서 사는 것과, 자유롭게 그리고 적대적으로 그 구조들을 삶정치적 주체들로서 옮겨 다니는 것, 이 양자의 대립에는 어떠한 변증법도 없다. 오늘날 새로운 문화적 규정들을 제국적 공간 속에서 사고할 때, 우리가 관심을 두는 유일한 문제는 상호교차의 순간, 사건의 규정, 그리고 다중의 카오스적 앙상블을 횡단하는 혁신 등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것은 삶정치적 표현이 삶권력의 표현에 대해 언제 승리하는지를 인식하는 문제이다. 여기에는 어떤 종합도, 어떤 지양(Aufhebung)도 없다. 여기에는 오로지 대립들, 각양각색의 표현들, 모든 방향에서 탈주하는 언어적 긴장들의 다양체들이 있다. 근대에서 탈근대로의 이행은 탈근대가 도입하는 측정불가능성에 의해, 즉 근대적 합리주의가 제안하고 부과한 모든 척도기준의 종말을 표시해주는 측정불가능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척도와 도구적 이성은 근대의 금의 시대(인본주의와 데카르트 사이)에는 그들 자체를 자생적으로 제시했고, 자신의 은의 시대(헤겔과 베르그송 사이)에는 질서지워진 세계의 형이상학적 종합으로 표현되었으며, 그리고 자신의 동의 시대에는 베버주의적인 도구적 이성과 케인즈주의적 계획의 폭력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척도와 합리성은 종말에 이르렀다. 아도르노가 주장했듯이 시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귄터 안더스(Gunther Anders)가 주장했던 모든 희망이 히로시마 이후에 사멸했다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올바른 진리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시와 희망은 탈근대적 다중들에 의해 다시 생기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척도는 더 이상 근대의 시나 근대의 희망과는 동질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탈근대의 새로운 문화적 표준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그것이 하나여야만 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다만 이 새로운 변형이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새로운 표현의 형상들을 발견하는 곳은 바로 삶 안에서라는 것이다. 즉 척도 없는 형상들, 형식적인 측정불가능성. 바로 괴물들.


4. 따라서 탈근대적 혁신은 괴물스럽다. 이 괴물스러움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그것의 척도 없는 존재, 그리고 그것의 측정불가능한 존재론적-되기. 이 두 가지 특징을 세부적으로 사고하면서 괴물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먼저 그것의 존재론적-되기를 살펴보자. 앞에서 제시했듯이, 새로운 문화의 생생한 표현들은 종합들로서가 아니라 사건들로, 그리고 무시간성으로 산출된다. 그것들은 측정불가능성이라는 근본적 혁신들 및 형식들을 구성하는 생(生, vital)의 요소들의 계보학 내부에서 그 형태를 취한다. 몇몇 동시대 철학자들은 탈근대의 이 새로운 표현적 힘을 추적하면서 그것을 특질화하려 했다. 라깡은 척도의 부재를 새로운 것과 예술, 그리고 기표 일반의 특징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데리다에게 있어, 주변부의 생산성은 자신을 산종(disseminating)6)하면서 질서의 새로운 형태를 발견한다. 낭시와 아감벤은 이 극한의 들판에서 그럭저럭 수확(harvest)을 해낸다... 이 저자들 중 누구도 혁신의 괴물스러움을 긍정적으로 특질화하지 못했지만, 그들 저작에는 예리한 감각과 존재론적인 격화(exasperation)의 강도가 있다. 새로운 문화의 생생한 표현들이 비생산적이 되고 또 부재할수록, 새로운 형태들은 존재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더욱더 자신을 드러낸다. 그것들은 자신을 존재 속으로 침윤시키거나 빠뜨린다. 그것들은 자신의 바람에 쓸려다니는 모래들(shifting sands) 속에서 살고 호흡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이 저자들이 인지하는데 실패한 것은, 그들이 모험을 택했던 그 질료가 바로 새로운 세계들이 주조되는 진흙이라는 점이다. 존재론적인 차원은 자신의 한계를 무(無)의 가장자리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저 불가능한 주변부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의 구성능력에 무모하게, 어떤 대안도 없이 기생한다. 존재론적인 차원은 언제나 기생적인 자본의 명령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한 조건 하에서, 즉 절망 아래에서 이동적이고 유연한 노동을 하는 비물질 노동자들의 다중적 지성의 기초 위에서 발전한다. 존재론적 차원은 일련의 역설들로부터 출현한다. 노동의 여성화, 생산에서의 이성과 정동의 결합(conjunction). 그리고 우리는, 항상 근대에서 탈근대로의 이행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황을 함축하는, 이 양가적이지만 근본적인 존재론적 조건을 끊임없이 규정하면서 나아갈 수 있겠다. 괴물은 존재론적 차원 안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혁신적 카오스의 이 존재론적 차원이 가진 두 번째 특징은 바로 척도의 부재에 있다. 괴물은 척도의 부재, 아니 어쩌면 새로운 척도일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이러한 이행 내부로부터 부정과 긍정을, 즉 탈주와 구성능력을 규정할 수 있을까? 17~18세기 동안,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흥미를 끌었던 기형물들을 발견했다. 왕들은 자신들의 공포의 방[런던에 있었던 흉악범의 밀랍인형 진열실]에 그 기형물들을 수집했다. 하지만 더 자세히 생각해보라. 그들에게 있어 측정불가능성은 척도에 대한 변명이었다. 숭고함과 마찬가지로 공포스러움은 질서에 대한 욕망을 정신 속에 복원시킨다. 얼마나 많은 머리 셋 달린 닭들이, 얼마나 많은 샴쌍둥이들 혹은 자웅동체 태아들이, 얼마나 많은 신체적 비틀림들과 기형아들이 해부학적 일탈들의 이색적인 저 박물관에 수집되었는가. 조르푸아 생틸레르(Geoffroy Saint-Hilaire)는 우리에게 태생적 별종들의 역사적 백과사전을 남겼다. 비록 그것은 다양한 시대의 괴물스러움들 및 자연적 결함들에 대한 법칙과 원인을 규명하려는 시도였지만 말이다. 심지어 이 모든 것에 대한 하나의 이름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기형학(teratology)이었다. 괴물스러움의 새롭고 탈근대적인 형태가 기형학적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자신을 다르게 표현하는 삶일 뿐이다. 카오스 내부에 존재하는 특이한 기계들이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 구축하길 바라는 것은 바로 잡종성이다. 척도 형식들에 의해 위계적으로 질서지워지거나 선형화(先形化)되지 않는 것은 바로 삶에 대한 희망이자 선택이다. 이전의 수많은 고대철학처럼(적어도 그것의 일부분은 전통이 되었다), 존재의 기원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 역시도 존재의 질서와 척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에게 아르케(arche)는 최초의 원리이자 명령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우생학은 자신의 형식상의(stylistic) 원리들에 대한 합법화를 추구했던 근대에서 다시금 채택되었다. 괴물에게 손짓을 보내는 것은 고전적 우생학과 근대적 우생학 모두를 부정하는 것이며, 원리 혹은 출발점으로서의 본질을 포기했던 하나의 존재론적 과정을 전개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새로운 여정은 우리를 우울한 지대로 이끌 것이며, 아마도 우리의 방향감각은 때때로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투사로서 활동해야하는 것은 바로 이 해답 없는 질문들과 함께 하는 여정에서이며, 질서지워지고 측정된 기원의 결여에서이다. 그것은 모든 원리(precept)를 뒤흔드는 하나의 긴장이다. 즉 공간적이든 시간적이든 모든 원리일 뿐 아니라 모든 선형화를, 그리고 모든 선형화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일원적 매트릭스를 뒤흔드는 긴장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 이 존재의 한 가운데에서 격동적인 창조성이 전위의 계보학들이 아니라 다양한 특이성들의 구체적 역사가, 인류학적 괴물스러움을... 부여잡는다. 숲이 다 타버린 땅은 비옥해진다. 그들은 숲(하지만 이것은 움직이고 있다)에 불을 놓았으며, 우리는 새로운 자연에서 살기 위해 (새처럼 자유롭게, 야생으로) 회귀하고 있다.


5. 전지구화의 차원들은 측정불가능한 것에 가깝다. 어떤 경우에도 세계는 더 이상 어떤 “외부”(어떤 외부도 어떤 선행자도)를 갖지 않는다. 문화인류학의 발전을 생각해보라. 그 중심에는 유럽인이 있었으며, 그것은 두 개의 외부를 갖고 있었다. 원시인과, 원주민 혹은 미개인, 즉 인류학적 선행자와 정치적 외부. 유럽인은 문명의 찌꺼기(rest)에 둘러싸인 중심점이었다. 시장과 다양한 감성적 모델들, 화폐와 거주지(the habitat), 세계(welt)와 주위세계(umwelt). 역사는 유럽인의 독점에 맞춰 조정되었다. 최초로 등장했던 자는 원시인이었고, 유럽인에 의해 지배된 자는 미개인이거나 원주민이었다. 그러나 지구화와 더불어 인간의 공간이 더 이상 다양한 한계들을 알지 못하고 하나의 한계(그것의 외부적 주변(circumference))만을 안다면, 그렇다면 이 한계에 도달하자마자 그 후에 나타나는 모든 표현은 내부로 향해질 뿐이다. 여기에는 자기반성이라는, 이 가장 거대하게 가능한 확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연속성의 선이 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최후의 프로메테우스주의이자 부르주아 문명(culture)의 최후의 보편주의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해방된 인류의 유적 존재(Gattungswesen)라는 최초의 규정으로 정의될 수도 있겠다. 지구화 이전의 모든 역사는 우리를 이러한 한계로 인도했다. 그것은 서구 문화의 지배 범위를 표시하길 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모순들 및 투쟁들의 과정, 즉 억제될 수 없는 경향을 띄지만 바로 그 한계들 내부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주체의 계보학의 가장 거대하게 가능한(그리고 종종 괴물스러운) 효과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세계 무대(world scene)는 단순히 어떤 지평이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무대미술이며, 소품들이 극의 일부가 되었다.(포스트-발레 뤼스) 세계 무대는 한계가 없으면서 동시에 유한하다. 그것은 이 괴물스러운 대립(confrontation)에 기생한다. 바로 이 역설을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확실히 함으로써 하나의 작품은 미학적 중요성을 획득한다. 세계는 거대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작게 되었다. 즉 우리는 파스칼을 의미 있게 만드는 상황 속에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이상 어떠한 신도 없다. 이 공간은 매끄럽고 표면적이다. 즉 가치의 내재성은 오로지 인간들의 노동에만 자신을 내맡긴다. 이 상황 속에서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6. 그 괴물을 새로운 세계 무대 위에서 행동케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인류학적인 변신의 과정 내부에서 행동하는 괴물을 주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그 괴물을 돌연변이와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살펴봤듯이, 이 돌연변이는 공간적이지만 또한 시간적이다. 서구 부르주아 문명이 세계의 가장자리에 도달하자마자 역사의 종말은 바로 시간 안에서 자신을 실현한다. “여기”와 “세계”의 공간적 종합은 “지금”과 “무한”의 시간적 종합을 흡수하고자 한다. 인류학적 변신은 이 역설적 앙상블들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탈근대가 의미하는 바이다. 즉 완전히 괴물스러운 거대서사이다... 사실상 인간사(human events)의 살(flesh)은 서사에 대해 요구되는 시공의 통일로 포위되지 않는다. 살은 몸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구적 사건들의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모든 측면에서 예술적 표현을 흘러넘치게 한다. 엄청난 정념들이 살의 무능력을 통해 몸이 된다. 한때 즉 1968년에 앞서는 거대한 시대 동안, 이러한 무능력은 유토피아를 향한 어떤 열림으로서 살아남았었다. 문학적 그리고 미학적 전위들은 유토피아를 창출해야만 했다. 유토피아가, 실재를 구축하는 집단적 실천이라는 극단의 역량을 맴돌았던 한에서, 세계의 종말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 목표, [즉] 걸작(masterpiece)은 마치 기독교 이전 시대의 위대한 작가들의 요한계시록이었다... 그러나 탈근대에서(여기, 우리 시대에서) 예언자가 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예언자가 되지 않고도 요한계시록을 반성한다. 우리는 유토피아주의자가 되지 않고도 전위에 대해 말한다. 세계는 완성되었다. 모든 시선은 내부로 향해진다. 탈주로는 막혀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내부로부터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슬로건은 우리 자신을 인도하는 탈주(exodus)를 함의한다. 한계에 도달할 때마다(그것은 그 너머가 없는, 즉 초과될 수 없는 한계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현재의 카이로스로 다시 향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도대체 카이로스는 무엇인가? 그리스 문화에서 그것은 화살의 비행에 의해 표시되는 시간 속 순간이었다. 그것은 여전히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 문명이었고, 따라서 화살을 쏘는 것과 화살이 도착하는 것을 보는 것 간의 관계였다. 하늘로 쏘아진 화살은 별들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카이로스는 우리의 심장을 꽂는 화살이며, 별의 극한으로부터 되돌아오는 화살이다. 카이로스는 우리 자신을 창조적 기획의 출발점으로 취하는 필연성(이자 가능성)이다. 그것은 우리 몸들을 변형시킬 가능성, 즉 외부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몸들을 잡종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구축하고 내부로부터 잡종으로 만들 가능성이다. 그것은 삶의 모든 요소들을 시적 재구성으로 되돌림으로써 정치학에 참여할 가능성이다. 바로 “삶정치”라는 용어가 이러한 구성기획을 함의한다. 요컨대, 우리가 전지구화 아래에서 살아갈 때, 그리고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경계들이 있는 세계 속에서 살아갈 때,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자신과 프톨레마이오스를 확실하게 소진시키고 그래서 카이로스의 중심성이 유일한 준거점이 되었을 때, 이 모든 경우들에서, 예술적 실천의 창조적이고 구성적인 정신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술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에 있어 유일한 가능성이 존재 내부로부터 출발해, 모든 형성이 인간 몸의 바로 그 육체적․정신적 본질의 변형과 같은 삶정치적 실천을 관통하는 데 있을 바로 그때. 사회적인 것의 구조가 아주 중심적이 되었고, 그래서 세계가 아주 작고 제한적이 되어서 더 이상 이 거주지 뒤에 남아있을 어떠한 가능성도 없을 바로 그때. 유토피아적 환영들(다른 장소(topoi)에 대한 환영들)이 더 이상 자신을 제시하지 못할 바로 그때. 그렇다면 예술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새로운 존재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지구적 공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며, 그 공간으로 하여금 다시 특이성들의 실존을 향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죽음을 제거하도록, 지구기계의 내적 한계들을 해소하도록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괴물은 우리에게 더 이상 어떤 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7. 다중은 죽음을 이 창조적 도전에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다. 다중은 특이성들의 앙상블이지만, 각 특이성은 또한 다중들의 앙상블이다. 이 기계는 삶을 위해 투쟁한다. 그것은 삶 내부에서 죽음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다중의 실천은 죽음에 대한 부정, 즉 삶의 과정을 중단시키는 것에 대한 확실한 거부와 거절을 공통적으로 갖는, 생의 경험들의 지속적인 증식일 뿐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지구적 세계는, 마치 제국이 우리에게 정치적 질서로 나타나듯이 닫힌 세계인데, 그것은 시공간이 소모되었을 때 귀결로서 나타나는 엔트로피에 종속된다. 그러나 이 닫힌 세계 내부에서 행동하는 다중은 각 주체를 통과해, 세계를 형성하는 각 특이성들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세계를 변형시키는 법을 배웠다. 푸코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역사가 끝났다고 생각할 때, 역사가 우리가 서있는 세로축에서 자신을 갱신한다는 것을 발견한다고 말이다. 바로 그것이 다중으로서의, 다중스러운 신체로서의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 자신의 변형 내부에서만, 그리고 죽음에 대항하는 맹렬한 투쟁 속에서만 다중의 실천은 시작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보기에는 제국의 시대 그리고 다중들의 시간 동안에서의 예술의 의미이다.




1) [역자주] 보편적인 관광매춘의 원문은 ‘universal prostitution of tourism’으로,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성매매관광인 ‘매춘관광’과 의미상 구분짓기 위해 ‘관광매춘’이라는 말로 옮겼다. 네그리는 이것으로 오늘날 (대부분은 여행비자로 출국한) 노동자들의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한 유랑을 의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는 노동자들에게 특정 지역(제 3세계에는 제 1세계를, 제 1세계에는 제 3세계를)이 더 나은 일자리를 보장할 것이라는 환상을 유포하는데, 이것은 한편으로 전지구 어느 지역에서도 자신의 신체를 팔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2) [역자주] 루퍼드 머독은 세계 미디어 시장을 장악한 뉴스 코퍼레이션(The News Corporation Ltd.)의 대표로 런던타임스, 선, 선데이타임스 등의 신문과 폭스TV를 비롯해 스타TV, 내셔널 지오그라피 등의 방송을 소유하고 있으며, 21세기 폭스사, 하퍼콜린스 출판기업, LA다저스 등과 같이 영화, 출판, 스포츠 산업과 같은 시장에도 개입하고 있다.


3) [역자주] 바스키아는 80년대 초 미국에서 활동했던 20대의 젊은 흑인화가로, 엔디워홀의 후원을 받았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검은 피카소라는 별명으로 유명세를 얻고, 28살의 나이에 생을 마친 이 천재적인 화가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공존하기도 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참고할 만한 내용이 소개된 것으로 다음의 사이트를 참고하라. http://jmbasquiat.new21.org/main.htm

4) [역자주] 디스토피아로 옮긴 ‘dis-utopia’(본문에는 ‘dis-ustopia’로 표기되기도 했는데, 오타로 여겨진다.)는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어원적 의미를 갖는 유토피아(‘u(~이 없는)+topoi(장소)’)의 의미를 유물론적으로 역전시킨다는 점(즉 ‘어디에나 있음’)에서 주목되어야 할지 모른다. 최근에 번역 발간된 네그리의 작업노트는 그러한 의미역전의 사례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유물론적 목적어의 공통 언어는 디스토피아(dystopia)이다. 유토피아가 완전히 결정된 미래를 전유한다면 디스토피아의 공통 언어는 빈 상태로 남아있는 ‘장차 올 것’을 채운다. 디스토피아는 혁신의 힘을 진공 속으로 투사하기 때문에 힘차다. 디스토피아는 가난의 덕성(virtus)이다.” ꡔ혁명의 시간ꡕ, 정남영 역, 갈무리, 2004, 212쪽.

5) [역자주] ‘ensemble’을 영어든·독일어든·불어든 관례적으로 ‘총체’로 옮겨왔다. 예컨대 맑스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6의 다음 구절이 그렇다.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본질을 인간적 본질 안에서 해소시킨다. 그러나 인간적 본질은 ...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ensemble)이다.” ꡔ독일 이데올로기 Ⅰꡕ, 김대웅 역, 두레, 1989. 39쪽. 그러나 ‘총체(總體)’가 전체로의 통일 속에서의 차이의 지양을 함의하는 ‘totality’의 역어에 좀더 가깝다면, ‘총화(總和)’가 ‘조화’가 차이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ensemble’의 역어로 더 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낯선 번역어가 독서를 방해하는 어색함을 준다는 점에서 여기에선 의미만 환기시키고, 불가피하게 음역하는 방법을 택했다.

6) [역자주] “산종(散種)”은 “파종(insemination)”과는 달리 씨앗을 무의미하게 흩뿌리는 것을 의미한다. 데리다에게 있어 ‘산종’은 자신의 ‘원본 텍스트’로 되돌아갈 수 없고, 오히려 자신이 출발했던 텍스트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의미의 방사(emission)과정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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