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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마야문명 코판 유적지- 온두라스
여행 |
2011/05/26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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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에서 다음의 여행 노정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온두라스- 과테말라- 멕시코로 향하는 길을 잡게 되었다.
온두라스는 코판 유적지를 꼭 보고 싶어서 바쁘게 레옹에서 국경 도시 치난데가 (Chinandega)로, 여기서 다시 온두라스 국경 마을 구아사블레(Guasble)로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그리고는 다시 온두라스 수도인 데구치갈파(Teguchigalpa)로, 수도보다 훨씬 잘 꾸려진 북쪽의 도시 산페드로 데 술라 (San Pedro de Sula)로 향하였다.
한 나라를 스치며 가로질러 간다는 것이 어찌 보면 여행했다고 말 할 수 없지만 그동안 중미를 돌아보면서 느끼지 못했던 마야문명의 흔적을 온두라스에서 찾고 싶었다.
내가 아는 짧은 중남미 역사 속에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축구로 인한 전쟁이 있다.
시발점은 축구가 되어 주었지만 이전부터 누적된 국경선 분쟁이 이로 인해 터져 나온 것이다.
1969년 6월 15일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벌어진 온두라스-엘살바도르간의 월드컵 중남미 2차 예선전 중 3:0으로 온두라스가 패배하자 자국 팬들의 공격으로 온두라스 선수 3명이 집단구타 당해 사망한다. 여기에다 경기장에 있던 엘살바도르 관중들과 시비가 붙어 대규모 폭력사태로 번지게 되어 많은 온두라스인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이 소식을 듣고 같은 시각, 온두라스에서도 엘살바도르인에 대한 사냥이 벌어져 엘살바도르인들이 살해된다. 온두라스 정부는 이후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엘살바도르인에게 추방명령과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다. 이에 맞서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 정부에 항의하며 자국 교민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했으나 온두라스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한술 더 떠 엘살바도르인의 이민금지령을 내리자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를 세계 인권위원회에 제소한다.
그 뒤를 이은 국교 단절, 월드컵 최종 지역 예선전의 무승부와 함께 몰고 온 7월 14일 전쟁 포고, 6월27일 중립지역인 멕시코시티에서 두 나라의 최종전이 열렸다. 이 날은 관중보다 경찰이 더 많았으며 경기는 난폭했다. 결과는 2대2무승부라서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연장 전반 12분 엘살바도르의 로드리게스가 결승골 을 터뜨렸다.그동안 각종 반정부 운동 및 사회문제를 안고 있던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의 엘살바도르 정권은 축구로 인한 반 온두라스 정서에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면서 전쟁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온두라스 4개 도시의 폭격과 함께 전쟁을 시작한다. 이 전쟁 역시 미국의 개입으로 19일만에 끝이 난다.
니카라과에서와 마찬가지로 온두라스의 산악을 지나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은, 사람 사는 것은 똑같은데 왜 이리도 차이가 나는지? 그 전해져 오는 느낌이 더 강렬해서 마음이 아프다.
파나마 카리브해에 있는 인디오 집들을 보면 초라하지만 평화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같은 중미 인데도 온두라스 산악지대의 집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유난히 힘들게 보인다. 워낙 산악지대가 많아서 인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나가는 여행자 역시 힘들어진다.
과테말라와 온두라스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코판(Copan)은 마야문명의 조각품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유적지이다. 이 작은 도시를 보기 위해 온두라스의 남에서 북으로 다시 서쪽으로 여행을 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산페드로 술라에서 코판의 작은 도시에 내리면 우선 반기는 것은 대중 교통 수단으로 한 몫 하고있는 툭툭이들이다. 이것 저것 두리번 거리며 찾고 살펴봐야 할 것도 많지만 우선 잠자리부터 챙긴다.
숙박은 여행자들의 필수 도서인 론리북을 빌려 적어둔 만사나 호스탈(Mansana Hostal)로 정했다. 다른 곳에 비해 매우 숙박비용이 저렴하다 (5 달러)
잠시 마을을 둘러보고 다음 날 새벽부터 서둘러 코판 유적지로 향했다.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므로 조금만 서두르면 한 낮의 찌는 태양을 피할 수 있다. 생각대로 사람이 없다.

붉고 황금색으로 장식된 커다란 잉꼬들이 올라!(안녕) 를 목청껏 외치며 정성껏 여행자들을 맞아 주는가 하면 어떤 녀석들은 방문객들을 쌩~무시하며 여기 저기 날아다니고, 또 어떤 놈은 땅을 걸어 다니며 먹는 게 남는 것인 냥 이것 저것 주어 먹기에 열심이다. 과테말라에서 여행 온 한 가족을 만났다. 엄마, 아빠, 딸이 코판을 보기 위해 이 유적지에 왔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 라는 분은 역사와 유적에 상당한 조예가 깊은 것 같다. 방문객이 뜸한 한적한 유적에서 그들과 난 코판 유적지를 세세하게 보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그와는 비록 언어가 안 통하지만 전문가 수준 이상으로 중앙 아메리카의 문명에 대해 비교 설명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끔씩 돌 조각을 보며 생김새가 아시아의 문양과 비슷하다는 말들과 조각들이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짧은 말 뿐이었다.
조금씩 마야문명에 대해 빠져 들고 있을 때 그는 과테말라와 멕시코에 가면 이곳과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차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저 조금 알고 있는 지식이라고는 ----마야문명은 아즈텍 문명 발생 전, 중앙 아메리카 전역에서 고도로 발달된 신비스러운 문명 정도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마야 문명의 분포에 대해 간추리면 멕시코의 고산지대인 치아파스지역과 정글지대인 다빠스코 지역,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벨리즈의 광대한 지역에서 볼 수 있고, 3000 년 전부터 오늘 날까지 이어지는 중미 최고의 문명이라는 것이다. 후에 북쪽에서 내려온 툴텍크 문명에 흡수, 통합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왕이나 그의 가족들의 무덤인데 반해 중앙 아메리카의 피라미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이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코판 유적지의 돌 조각 하나 하나에 아로 새겨진 섬세한 문양들과 석조상들은 마야문명의 찬란함을 엿 볼 수 있어 이 곳을 찾아온 여행자를 과거의 세계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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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도시 니카라과 레옹
여행 |
2011/05/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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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 리베리아에서 니카라과 국경마을은 그리 멀지 않지만 출입국 신고 절차가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입국 시 12불을 내야 하므로 환전이 반드시 필요하고, 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거침없이 달려드는 삐끼들과의 실랑이는 필수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치킨버스행.. 중미에서 치킨버스는 서민들의 교통수단이라서 가격이 저렴하다.
그 착한 비용에는 모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승객 인원 초과는 기본, 2명이 안는 자리는 3명씩 포개 앉아야 한다. 물론 승하차도 자유롭게 어느 곳에서든지 가능하다.
난 중미 여행 기간 동안 키친버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어느 자리가 가장 편하게 앉을 수 있는지도 아는 여유까지 생겼다. 하지만 키친버스에 타는 순간 내 짐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배낭을 보호하려고 그냥 들고 탔다간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더 큰 짐이 된다.
차라리 버스 지붕 위에 올려놓고 목적지까지 나 몰라라 푹 잊고 가는 것이 속이 편하다. 한 번 올려놓을 때 마다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서 돌아오는 배낭을 볼 때 마다 걱정이 되었지만 현지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버스 지붕 위에 꾸러미들을 올려 놓는다.

물론 현란한 솜씨를 발휘하는 숙달된 조교(일명: 버스 차장)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려도 돈을 받은 사람과 안 받은 사람을 정확히 구분하여 낑낑 비집고 들어가서는 차비를 받아내며, 승차 하기 전에 들락날락 버스 지붕으로 짐을 올리고 내리고를 수 없이 반복 한다.
<혁명의 도시 레옹>
역사 속에 살아왔던 사람들, 그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나오지 않더라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수 많은 민중들이 그 역사와 함께하지 않은 피의 역사는 매우 드물 것이다. 지금도 지구 상에는 그러한 민중들의 역사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니카라과는 여행하는 동안 묘한 여운이 남는 곳이다. 몇 번의 치킨버스를 이용해서 도착한 그라나다(Granada)라는 도시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지만 스페인풍 건물들이 낯선 방문객들에게 독특함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각인 시킨다. 실제로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분이 안가는 니카라과에서 제일 크다는 니카라과 호수를 끼고 도심 안에 예쁘게 만들어진 카페며 바, 레스토랑 그리고 고풍스런 호텔들이 이 나라에 대한 선입견들을 말끔하게 없애 준다.

이곳뿐만 아니라 실제로 니카라과는 우선 눈을 즐겁게 하는 여러 가지 볼 거리들이 많다는 것과 물가가 다른 중미에 비해 저렴해서 일반 관광객들이 아닌 여행을 즐기는 북미나 유럽의 배낭 족들에게는 인기가 많다. 실제로 많은 배낭 여행객들이 증가하고 있는 나라이다.
가까운 코스타리카는 관광 인프라가 잘되어있어 여유 있는 투어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여행객, 특히 돈 없는 배낭 여행객에는 그림의 떡!! 고로 주머니가 얄팍한 우리 같은 여행자들에게는 니카라과나 과테말라가 최고이다. 그 중 니카라과에서 내가 제일 인상 깊은 곳을 꼽으라면 레옹이라는 도시라고 말 하고 싶다.

니카라과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과거 산디니스타 해방군의 거점 지역이고, 소모사 정권을 물리친 혁명의 도시이다. 지금도 과거의 인물들이 잊혀져 간 과거의 역사 속에 아직도 살이 있는 곳이기에 도시에 머무는 동안 이 도시를 눈으로가 아닌 가슴으로 보려고 애썼다.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니카라과는 중미에서도 못사는 나라에 속하지만 그들에게는 독재에 저항할 줄 아는 끓는 피를 가지고 있고, 그들은 그러한 과거를 자랑스러워한다.
다른 지역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도시, FISL이라는 산디니스타의 로고를 자랑스럽게 붙여놓고 운전하는 택시기사를 보는 것도 이곳만의 특징이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과거와 함께한 역사는 지금의 현실 속에 묻혀져가고 있다. 혁명 박물관을 운영하고 안내하는 과거 FISL 전사들의 노인들은, 작금의 현실을 아쉬워하지만 과거 그 혁명의 시기에 총을 든 자신의 사진 앞에서는 언제나 자랑스런
혁명가 이다.
도심 안에 위치한 중앙공원에서 도심의 안내를 자처하는 Maria 아줌마를 만났다. 처음에 나는 이 분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삐끼 정도로 생각했었다. 자신이 이 도시를 하루 안내 해 줄 테니 50콜론(3달러)를 달라고 하길래, 나는 처음에는 딱 잘라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좁은 도시에서 가장 큰 바실리카 성당을 중심으로 동선이 이루어지다 보니 세번씩이나 그녀를 보아야 했다.

볼 때마다 다정하게 다가와서 자기가 이 도시를 누구보다 잘 아니까 원하는 안내를 해 준다고 한다. 그녀에게 과거 산디니스타 관련하여 이 도시를 보고 싶다고 하고, 또 가이드 비용대신 점심을 대접하겠다고하자 한참 고민하다 그렇게 하자고 한다. 점심을 함께 먹으며 짧은 대화가 이어갔다. 자신이 산디니스타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자신이 이 일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는 정말 열심히 이곳 저곳으로 저녁 늦게까지.
마지막으로 우리가 찾아간 곳은 그 당시 학생들이 시위하다 죽은 사진들이 있는 초라한 기념관이었다. 많은 사진들 속에 손짓을 하며 이 아이가 자기 동생이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를 보는 순간... 왜 그 녀가 이 도시에서 과거의 역사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나를
알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Arte musum을 구경하고 나서 그녀를 찾았다. 함께 점심을 먹자고 하면서 돈이 많지 않아 비싼 음식을 사줄 수가 없으니 싸고 맛있는 곳이 어디냐고 했더니, 시장으로 안내 한다. 여기가 레옹에서 제일 맛있고 싼 곳이라는 것이다.
시장 음식을 함께 먹었다. 한 접시에 고기와 밥과 여러 가지 채소를 올려진 스튜 비슷한 것이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하였다.
한국에 가서 꼭 연락하라고 이메일 주소를 나누고는 그녀와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 레옹 혁명 박물관을 안내하는 과거 산디니스타 전사, 총을 든 사진을 가르키며 자신이라고 설명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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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의 스위스 코스타리카
여행 |
2011/05/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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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중미는 남미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다르게 느껴질까? 중미와 남미, 북미를 지역별로 나누어 보면 북미가 캐나다, 미국, 영어권의 (캐나다 퀘백지역이 프랑스어 사용이 있지만) 선진국이지만, 여타의 중미, 남미 나라들 대부분이 제국주의의 식민지를 오랫동안 겪으면서 독립한 개발도상국가들이다. 스페인풍의 제국주의 잔흔들이 여기저기 넘쳐나는 곳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브라질과 몇 몇을 제외한 전 지역이 스페인어로 소통이 가능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북미와 중미, 남미는 크게 보면 같은 아메리카 대륙이면서도 다르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것의 제일 큰 이유가 식민지 경험의 역사와 아닌 것과의 차이가 아닐까? 그 만큼 중미와 남미는 일찍부터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 역사와 함께 했다. 17-18세기 해상 왕국 스페인의 영향력은 막강하였다.
모든 대륙을 통째로 먹었다고 생각해도 될 만큼 크게 그리고 새롭게 재편되는 독립국가까지 그들이 만들어 놓은 후손들에게 의해 새롭게 라틴 아메리카로 탈바꿈 되었으며, 또한 새롭게 형성된 그들의 현대사는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안 마당의 놀이터로 전략되었다.
그 안 마당의 곡간을지키기 위해 그들은 개 망나니들을 키우고 비호하며 이익을 챙겼다. 그렇기에 커다란 그 곡간을 둘러싼 투쟁들이 중미와 남미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많다.
독립 이후에도 지독한 독재정권과의 치열한 민중 투쟁의 역사들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들도 있지만 아직도 부패한 정권과의 투쟁은 진행형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곳이 중미이다.
중미 국가들 현대사를 보면 어느 나라라고 할 것 없이 너무나 슬픈 민중들의 역사가 그 안에 담겨있다.

파나마에서 코스타리카를 거쳐 니카라과로 육로 이동하면서 받은 느낌은 같은 대륙 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는 느끼게 하는 여행이었다.
파나마가 빈부의 격차가 크고, 다국적 거대 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계획적인 국가라면 니카라과는 가난한 사람들이 뭔가를 해보려고 애쓰는 민중들의 치열함이 엿보이는 나라다.
그리고 코스타리카는 중미의 스위스답게 관광객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래서 인지 모르지만 전체 GNP 중 관광수입이 3위이다. 관광 인프라를 위해 잘 가꾸어진 도로망, 관광투어 상품들, 호텔들…… 파나마의 오지 섬에 있다 와서 그런지, 코스타리카에서 받은 인상은 내가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광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곳 받았다.
갈 만한 곳은 전부 관광 상품화된, 너무나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어, 실제로 여행자가 마음 놓고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적은 곳이 또한 코스타리카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스타리카는 1949년 이후 군대가 폐지된 나라라서 그런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언제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나라 중에 하나였는지 모른다, 또한 국토의 거의 절반이 원시림이면서 국립공원으로 보호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도시처럼 잘 가꿔진 자연 공원이 아니라 원초적인 상태의 모습을 보호하여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곧 이 나라 관광정책인 것이다.
그것을 보기 위해 유럽과 북미의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은 살아있는 자연의 모습에 탄성을 지어낸다.
또한 다른 중미의 나라에 비해 이 나라는 백인이 월등하게 많이 살고 있는 나라이다.
물가는 유럽 수준 정도로 다른 중미 나라에 비해 높아서 배낭여행객들이 오래 머물고 싶어도 빨리 떠나게 만드는 곳이다.

수도 산호세를 여행하고 나서 니카라과로 가기 위해 중간에 위치한 아레날 화산과 리베리아 국경마을을 선택하여 바쁘게 일정을 재촉하였다.
여타 중미의 국가들도 비슷하지만 코스타리카는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양 옆으로 끼고 있으며 가운데로 북미의 로키산맥과 남미의 안데스산맥을 연결하는 산지와 고원지대로 많은 화산들을 가지고 있다. 양쪽 지역이 더운 아열대 기후라면 가운데는 봄/가을 날씨라고 느껴지는 곳이지만 그래도 한낮에는 덥다.
아레날 화산을 원뿔모양으로 두고 다양한 투어 상품들이 있는데, 난 오전에는 아레날 산을 오르는 산행과 저녁에는 열대지방에서 즐기는 노천 온천을 선택했다. 아레날 산은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산행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 가이더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관광회사를 통해 신청한 단 2명을 위해 배치된 티카 버스와 한 명의 전문 안내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의 일들을 너무나 친절하고 완벽하게 처리한다.
나무 하나 하나 그 숲에 살고 있는 새들과 동물들의 이름까지 그리고 망원경으로 살펴 보라고까지 권한다. 마지막 안개 낀 화산 산의 절경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일정을 끝내고 늦은 시간 온천을 하러 갔지만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붐비지 않는다.
온천의 규모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 정말 크고 다양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온천 탕에서 맘껏 즐기면 된다.

숙박은 백버거 인이라는 호스탈의 도미에서 했는데 지금까지 묵었던 호스탈보다는 럭셔리하면서도 가격은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해서 묵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산호세에서 머물렀던 갈릴레오 호스탈이 배낭여행객들에게는 부담 없이 요리도 하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면, 이 곳은 쉬기 편하게 모든 것들이 세심하게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관광지이다 보니 소소한 모든 것들 조차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아레날에서 코스타리카 북쪽 리베리아로 가는 길은 아레날 호수를 끼고 장시간 가는 환상의 풍광을 느끼게 하는 차도이다. 호수와 또 다른 화산 산들 그리고 작은 마을들까지 거대한 풍경화를 펼쳐 놓은 것 같아 잠시 스위스나 북유럽의 산천을 온 것 같은 느낌으로 여행객의 눈을 잠시도 떼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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