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 평화행동의 랩퍼 박하와 호호센은 신혼여행을 위해 배낭 메고 세계 속으로 걸어간 새내기 부부이다. 오늘 이 두 사람이 우릴 만나러 프란체스카의 집으로 오기로 했다. 비교적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있어서 버스타고 점심 도시락을 싸 들고 그들이 왔다.
허구헌 날 되지도 않는 꼬부랑 말 버벅대다가 침 튀기면서 속 시원히 우리말 쓰니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 한 사발 마신 듯 묵은 체증이 내려가며 절로 수다 꽃이 만개한다.
박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농장의 일을 도와주고, 호호센은 가정용 로봇 만드는 공 장에서 하루 8시간 일하면서 여행경비를 마련하고 있었다.
오는 7월 쿠바에서 열리는 세계에스페란토대회 참가와 멕시코 여행을 목표로 티끌모아 태산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영국, 프랑스,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여러 나라 여행을 끝낸 모험적인 그들의 당찬 신혼여행은 오는 9월로 마감을 하게 된다.
사람보다 양과 염소와 소들이 더 많은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평평한 지역에 속한다.
오세아니아주 대륙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호주는 거대한 사막, 산맥과 함께 싱싱한 초록 그 자체만으로도 수 많은 여행객의 발길을 잡는 나라이다. 그래서 여행자들에게 최후의 방문지는 호주여야 한다고 한다.
배! 째라 부부가 구사하는 평등의 언어 에스페란토의 상징색도 초록이다. 평등과 공정을 추구하는 초록이 이 호주에서 만큼은 하늘이 내린 편애의 흔적이라 느껴질 만큼 매우 불공평하다고 생각된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시샘도 나고, 너무합니다, 하느님!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아래 그들만의 평화로운 초록이라.....

산드라는 우리를 호주 우프로 초대한 첫 번째 우프 호스트(host)이다. 헐리우드 배우 산드라블록을 연상시키는 늘씬한 키와 붉은색의 베레모와 망토는 더욱 강한 인상을 주었다. 약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그녀의 하얀 주름살 속엔 삶의 흔적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이, 로자 앤 카라!
하이, 산드라,
델로레인 시내에서 자동차로 20분 걸린다는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아름다운 과실수와 정원의 하얀 벤취, 앙증맞은 조각품들, 이름모를 꽃들이 우릴 반겨 맞는다. 매우 점잖다는 망아지 두 마리는 우리가 낯선지 머리를 돌려가며 쳐다본다.
하이, 두 마리 포니!
이제부터 우린 친구야..
내가 아침마다 너의 먹이 담당이다...
벌써 말을 알아들었는지 카라가 가까이 가자 엉덩이를 들이대며 환영해준다.
그녀의 아늑한 주방에서 티타임이 시작되었다.
홍차에 두유와 설탕을 넣고 물병에는 레몬 서너 방울을 떨어뜨려 신선함을 더해 주었다.
근데, 여기저기 훑어봐도 아무도 안 보이네...
저어....혼자사세요?
남편과 애들은 어디계시죠?
아니! 산드라가 처음 본 우리 앞에서 굵은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오랫동안 혼자예요...
남편과 샌디(그녀의 애견)가 내 곁을 떠난 지 오래되었어요....
오!! 마이 갓, 쏘리 베리베리 쏘리...
배! 째라 부부 너무 당황스러워서 오직 쏘리만 연발했다.
휴~ 이놈의 오지랖이 너무 넓어도 탈이라니깐...
호주 우프 체험 첫날밤의 흥분과 호기심은 그날 저녁 몰아친 장대비와 천둥, 번개로 무참하게 산산조각이 났다.
주인을 닮아 늘씬하게 내려앉은 삼각형의 지붕위로 떨어지는 굵은 빗소리와 뒤이어 등장하는 벼락, 번쩍 거릴 때마다 들리는 무시무시한 굉음, 사방팔방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시커먼 어둠, 여기에다 뱀파이어와 요괴 한 마리만 등장하면 바로 한 편의 공포스릴러 영화가 되는 것이다.
영어공부고 나발이고 간에 내일 동트면 무조건 이 곳을 떠나리라는 다짐은 카라의 귀곡산장 이야기로 한층 더 달아올라 거의 까무러칠 정도이다.
극도로 공포에 질린 인간의 달콤 쌉싸름한 간을 꺼내 먹어야 늑대인간이 사람으로 완벽히 변신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서양의 동화책과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오늘 같은 밤의 무시무시한 이 분위기는 나를 호러 공포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놓는다.
칼 가는 듯한 소리, 피의 축제가 시작되는 소리, 유령이 어둠에 묻혀 다가오는 소리,
늑대인간이 변신하는 소리....거기에다 산드라의 티벳 요가 배경음악의 괴기스런 주문
소리....으.우..으.우..으.우...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가 공포 영화의 음향이었다.
그래, 가자, 집으로 가자!!
영어고, 영어할애비고 간에, 우프 체험이고 뭐고 간에 나 이제 돌아갈래....
오돌오돌....덜덜덜....간은 이미 쪼그라지고, 주책없이 방광만 풍선처럼 부풀고.....
화장실도 가야하는데......덜덜덜....온몸의 털이란 털은 다 곤두서고...닭살마저 쭈뼛거리며 여기 저기서 돋는다.
화장실....같이 가줘...카라...제발...이제부터 자기 하라는대로 다 할께....오~제발...
드드드드...(너무 무서워서 이가 부딪히는 소리)
호주에 영어공부 하러 죽자 사자 가자고 고집을 부린 것은 로자이기에 차마 카라 앞에서 사시나무 떠는 약한 모습 보여주긴 죽어도 싫고....씨....
다만 애꿎은 오줌보만 탓 했다.
이날 이후 로자는 카라의 말이라면 무조건 오케이를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 완전히 새 됐어!’
호주 우프 첫날밤의 살벌한 환영식은 다음날 유리창 밖으로 쏟아지는 천진난만한 햇살과 눈 앞에 펼쳐지는 티끌 한 점 없는 파란하늘에 파묻혀 어느새 잊혀지고 있었다.
산드라는 우리나라 대우 자동차 누비라웨건을 몰고 삼성 애니콜 핸드폰을 지니고 있으며 동양 철학과 명상법, 도, 요가 등 동방의 신비한 문화에 대한 관심을 넘어 실천을 하고 있었다.
은퇴한 자연치료사로서 정원의 많은 꽃과 나무, 심지어는 착한 벌레들이 선사하는 신선한 산소와 선물마저 감사히 받아들이는 친환경주의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오싹했던 첫 날 이후로 우리 세 사람이 동서양을 넘나드는 종교, 사상, 의학, 예술 등 밤낮없이 식탁머리에서의 토론과 수다가 별 막힘없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철저히 영어를 거부하는 카라와 이제껏 배운 단어 총동원하여 설명하는 로자와 짙은 회색의 눈동자를 연신 동그랗게 뜨고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산드라 이 세 사람은 혹독한 첫날 신고식 이후 단 하루 만에 친한 친구가 되었다.
거기에다 매일 읊어주는 카라의 에스페란토 인사를 산드라가 한 두마디 따라하더니 어느새 간단한 문장도 읊조린다.
‘보난 아페티톤’(맛있게 드세요.) ‘포르 비아 본 사노’(당신의 건강을 위하여) ‘봉 구스타’(맛있어요) 어느 순간에 에스페란토가 산드라의 식탁을 점령했다.
더군다나 가벼운 폐질환을 오래 앓고 있는 산드라는 카라의 거침없는 침과 뜸 지식에 아낌없는 동감을 넘어 거의 존경의 눈빛을 보낸다.
카라는 남미대륙의 가난한 어린이와 원주민들과 노동자들의 육체적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어 약 2년 전 부터 침과 뜸 시술을 배워왔다. 그런데 선진국 호주에서 이렇게 환대받고 먹힐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
카라의 말 끝마다 자지러지는 산드라를 보면서 모처럼 타국에서 효도 미팅하는 분위기다. 호주의 우프 호스트들이 체험을 원하는 각 국의 사람들에게 주문하는 것이 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유머와 웃음보따리이다. 마주보고 앉아서 주고받는 대화 속에 쏟아지는 웃음은 곧 가족처럼 서로의 정을 나누고 신뢰를 나눌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산드라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2층을 향해 외친다.
하이! 로자 앤 카라...
티타임... 아유 오케이?
예스...예스... 베리 굿.
동서양의 수다쟁이 두 아줌마가 만났으니 까르르 넘치는 웃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르게 시간이 잘도 간다. 마치 아주 오래된 이웃처럼.
우리 세 사람 친근함의 정도는 벽난로 앞에 앉아서 가벼운 음담패설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카라 : 100톤이 넘는 코끼리를 네 발 번쩍 들고 위로 뛰게 할
수 있어요?
산드라 : 에이... 설마...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해요?
카라 :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나에게 두 개의 붉은 벽돌만
주세요.
산드라 : 그 벽돌은 뭣에 쓰려고요?
카라 : 붉은 벽돌을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코끼리 배 밑으로
살금 들어가서...
(잠시 두 눈을 감고...목소리를 가다듬고....)
그의 쌍방울 (고환) 을 냅다 치면 깜짝 놀라고 아파서
네 다리 번쩍 들고 펄썩 뛴다니까요...
산드라 : (거의 자지러지면서) 오.....마이.... 갓.....하하하...
카라 : 그리고 코끼리는 머리를 위아래로만 끄덕 거리죠
그죠?
산드라 : 예스... 물론이죠..
카라 : (심각한 얼굴로 목소리를 깔고) 나는 이런 녀석들
머리를 좌우로 도리도리질 하게 할 수 있어요.
산드라 : 농담하지마세요...사육사도 못하는데...또 벽돌이 필요해요?
카라 : 아니요...이번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다만 그 녀석 가까이 다가가서 귀엣말로 하이! 코끼리...
너 아까 그 맛 한 번 더 볼래?
그러면 코끼리가 절대 ‘싫어 싫어’ 하면서 머리를 좌우로
마구마구 흔든다니까요..
산드라 :( 거의 이젠 눈물까지 보이며) 오....노우.....
원래 우프 체험자들은 거의 반나절(약3-4시간 정도) 노동은 필수이다. 그런데 배! 째라 부부는 산드라의 잦은 티타임 요청으로 거의 노가리만 풀다가 하루를 다 보낸다.
리소토, 파스타, 스윗라이스, 씨푸드라이스 등 매일매일 산드라의 정원에서 나오는 친환경 재료의 환상적인 식사 메뉴와 하루하루 달라지는 융숭한 대접은 점점 포동포동 해지는 볼 살과 윤기를 띠는 로자의 피부, 카라의 쾌변이 숨김없이 대변해준다.
산드라의 아담한 정원의 잡초(나는 이것을 멋진 꽃이라 생각했음)제거 후 맛난 점심 먹는데 느닷없이 산드라의 치킨 두 마리(산드라가 치킨치킨 할 때 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생각나서 처음엔 엄청 웃었음)가 소란스레 운다. 산드라도 놀라서
산드라 : 오..베이비...왜 우니?
로자 : 알을 낳았나요?
산드라 : 알을 낳을 때도 저렇게 울기는 해요...
카라 : (심드렁하게) 알을 낳을 때 왜 우는지 알아요?
산드라 : (놀랍다는 듯이) 카라가 그것도 알아요?
카라 : 알 낳느라 힘을 너무 줘서 똥꼬가 아파서 우는
거라니까요...
산드라 : (또 자지러진다)..오...카라...제발...그만...
호주는 세계 물 부족국가로서 물 절약에 대한 경각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멜버른 프란체스카네 설거지 담당 베르니에는 우리들에게 효과적인 물 절약 설거지 법을 보여주었다. 먼저 뜨거운 물에 천연 세재 약간을 넣고 먼저 씻는다.
그리고 나서 다시 뜨거운 물을 받아서 한 번 헹구어서 말리고 난 후 마른 행주로 닦아서 보관한다. 그러면 물이 두 통 정도면 한 끼의 설거지가 완성되는 것이다.
치즈, 버터, 올리브 오일 등 기름기 있는 음식이 많으니 뜨거운 물 사용은 정말 필요한 것이다.(호주에서 물 콸콸 틀어놓고 함부로 쓰면 경우에 따라서는 맞고 나서 쫒겨 난대요...)
화장실 변기의 버튼도 두 개가 설치되어 설거지 물과 빗물, 세탁기의 헹굼 물은 소변 본 후에 사용토록 연결이 되어 있다 한다. 아낄 수 있으면 이슬 한 방울, 빗물 한 방울도 모아두었다가 쓰는 합리적인 절약정신은 배워도 아깝지 않겠단 생각이다.

산드라는 내게 팽팽한 피부 유지 비결이 무어냐면서 피부 탄력 강화에 대해 관심 갖고 묻곤 한다. 내 나이를 믿을 수 없다나...(히히히.,,,자뻑..)
로자 : 비결은 단전호흡과 쑥뜸이에요..
피부 젊음은 화장품에 달린 것이 아니고 내 몸속 오장육부의 건강함에 달렸어 요..(마치 무슨 도사처럼...피부과 선생처럼...폼 잡으면서....그것도 완죤히 잉글리쉬 로,,,푸하하하)
산드라 : 네....로자 말이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로자 : 전문적인 단전호흡 대신 가벼운 얼굴 지압만으로도 피부 젊음 유지가 가능해요.
산드라 : (너무 좋아서) 리얼리?
로자 : 마지막 세안은 꼭 찬물로 하고 물기를 가볍게 말리세요..
손바닥을 뜨겁게 비비고 지압준비 하세요.. 약지 손가락으로 눈 밑 주변을
가볍게 2-3초 정도 눌러주어서 눈의 피로를 풀어요...그래야만 눈 밑 처짐을
방지해요... 가운데 손가락으로 눈썹 산 위를 넘어 관자놀이까지 조금 강하게
눌러주세요.. 잔주름이 예방돼요...
산드라 : 와우! 이런 비결은 티벳 요가 책에서도 보았어요..정말 열심히 해야겠네요..
로자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했나요?
로자 : 잘 기억안나지만 오래되었어요, 그냥 습관이 되어서 이젠 안하면 허전해요..
산드라 : 역시 부지런함은 부자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미인도 만드는군요...
로자 : (흐흐흐..넘 좋아서... 침 떨어지는 웃음) 왓? 내가 미인?
산드라 : 물론이에요, 당신 베리 뷰티플해요...
로자 : 땡큐 ...당신 또한 따따블로 뷰티플해요...
카라 : 아부가 너무 심하다 로자....(순 한국말로)
5월 19일 수요일은 산드라와의 9박 10일간의 동거가 끝나는 날이다. 홀로 꿋꿋하게 요가하며, 두 마리의 망아지와 귀여운 치킨과 오손 도손 살고 계신 산드라와 이별하는 날이돌아왔다.
무심한 태즈매니아의 늦가을 하늘은 파란잉크를 뿌려 놓은 듯 새파랗고 저 건너 이웃집 멍멍이 지미도 아는지 모르는 지 벌써 우리를 싣고 갈 대우 누비라 웨건에 냉큼 올라앉았다.
산드라의 자동차 안에서 우리의 만남과 이별을 마무리하는 즉석 공연이 이루어졌다. ‘아리랑’을 한국어와 에스페란토로 번갈아 부르고 이어서 새타령, 진도아리랑, 무인도(senhoma insulo)가 경쾌하게 하이웨이 따라 질주했다.
카라와 로자는 아름다운 만남과 아쉬운 이별을 우리 노래에 담아 산드라에게 선물하는 것으로서 행복했던 호주의 첫 번째 우프 체험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