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마당(동유럽의 향기- 브라티슬라바 편 7/26-)

여행 2010/08/12 18:41

열다섯 번째 마당

(동유럽의 향기-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편 7/26-)

  프라하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감하고 오렌지 버스를 아침 일찍
  잡아타고 슬로바키아로 향하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약 4시간 걸려
  도착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의 첫인상은 아직은
  촌티를  간직한 순박함이라고 해야겠다.

  체코가 황금 박씨 물고 온 제비 다리 몽댕이 뿐질러 나날이
  부자가 되고 있는 놀부 형이라면 슬로바키아는 양볼짝에
  붙은 밥 한 톨도 소중히 먹을 줄 아는 흥부 같은 동생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심술 사나운 형은 옥토를 차지하고 조금은 미련하고
  어눌한 동생은 황무지를 물려 받은 듯 시내 곳곳에서 보이는 낡고
  초라한 건물들이 아직은 가난한 이 나라의 고단한 현실을
  말해준다. 그런 상황과는 정반대로 더욱 순하디 순한 눈빛과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는 이곳 사람들이 피곤한 여행자를
  안심시켜 준다.

  택시비 계산도 한결 정직하게 거리에 따른 휘발유가격을 가늠해서
  우리에게 요구한다.(5유로) 아이러니 하게도 프라하에서는 국경을
  넘는 오렌지 버스 비용은 두 사람이 562체코 코루나인데 비해
  호텔에서 이 버스 타러 가는 역전까지 약 15분여의 거리 비용은
  470체코 코루나(20유로)이었다. 콜택시라는 특수한 요청이
  있었기는 했지만 참으로 프라하의 물가가 장난이 아닌 것 같았다.

  브라티슬라바 시내 중심에 위치한 우리가 묵을 호텔로비에서의
  무료 인터넷 접속은 정말 신선한 서비스였다. 체코 프라하를
  비롯한  호주(주립도서관 제외), 태국 등 이전에 방문한
  부자 국가들(슬로바키아에 비해서)에서 무료 인터넷 접속은
  오직 거대한 맥도날드와 KFC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전 세계 곳곳의 요지를 접수한 맥도날드와 KFC의 마케팅 승리는
  바로 무선 인터넷 접속 WIFI를 무료 사용하게 함으로써
  여행자들에게는 꼼짝없이 방문하고 소비하지 않고서는 세상과의
  손쉬운 소통을 힘들게 만든다.

  울며 겨자먹기로 어느 지역이든 도착하면 제일 먼저 맥도날드와
  KFC를 찾아보아야 하는 일이 중요한 사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 눈처럼 새하얀 털북숭이 할아버지의 새까만 잇속이여...

  아~ 미소 띤 로고(M) 뒤에 숨겨진 진실이여....

  무료 WIFI의 유혹은 항상 배! 째라 부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리가 맥도날드와 KFC를 가장 즐겨 찾는 곳이 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바로 배! 째라 부부 아니여?

  경우에 따라서는 구석탱이에 쳐 박혀서 일체의 소비도 거부한 채

  오직 인터넷 접속과 작업에만 몰두한 채 그곳 점원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나가라고 하면 배! 째라고 반격할 태세를 갖춘 채...

  가끔은 우리가 먼저 찢어질 듯 입가에 함박웃음을 띠우면서...

  그들이 어색해서 말도 못 붙이게, 선수를 친다.

  다행히 그 어느 곳에서도 눈총 한번 받지 않고...

   아니다! 도끼눈 뜨고 날리는 눈총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
  옳으리라...   ㅋㅋㅋ
  그래, 쌍눈총, 아니 따따따불 눈총 얼마든지 받아서
  즐겨주마..ㅎㅎㅎ

  배! 째라 부부의 의기양양 무료 인터넷 접속은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로 이어진다.


  오후2시 호텔 체크인이 시작되기 까지는 약 3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호텔 로비의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본다.

  잠시 후 초록별이 선명한 에스페란토 깃발이 꿈결처럼
  내 눈앞에서 펄럭인다.
  깜빡 졸음으로 슬로바키아의 에스페란티스토 마리아가
  흔드는 녹성기가 내게로 찬찬히 다가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살루톤!!(안녕하세요.) 로자.

  미 에스 타스 마리아.(저는 마리아입니다.)

  상냥한 미소와 함께 등장한 마리아는 우리를 오렌지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다 지쳐 이곳 호텔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다는 무성의한 메일에도 정성껏 우릴 위해
  왕림해준 마리아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촉촉이 내리는 빗줄기를 헤치고 브라티슬라바 시내 산책에
  나섰다. 연신 싱글벙글 웃음꽃이 가시지 않는 그녀의 얼굴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정 동생들 대하듯 친근하기만 하다.

    화학교사로 퇴직한 마리아는 현재 에스페란토 무료 강습을 진행
    하면서 후학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영어에
    대한 열풍이 몰아닥쳐서 젊은이들이 에스페란토 학습에 그리
    큰 호감을 보이지 않아서 슬프다고 한다.

  그녀의 단순 명쾌한 논리는 영어는 신분 상승과 부를 가져다주는
  사악한 요술주머니라면 에스페란토는 세상 사람들의 가슴과
  가슴을 이어주는 신비한 마법의 주머니라고 강변한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던 사회주의 체제에 비해 일 할
  능력이 없는 삶은 죽음과도 같은 자본주의의 체제에서 남보다
  더 잘해야만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현장에서의 영어는 윤택한
  삶으로 이끄는 지름길인 것이다.

    내리는 빗줄기를 피하지 않고 연신 대화를 나누며 브라티슬라바
    골목 끝자락에서 들어선 곳은 지하의 동굴을 파 놓은 듯한
  아담한 레스토랑이었다. 치즈, 감자, 소시지, 돼지고기 등이
  들어간 이 지역 의 전통음식 브린조밴하우스키를 점심으로
  주문하고
난 후에도 우리의 열띤 이바구는 끝이 없었다.

  정이 많은 마리아는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불우한 사람들도
  놓치지 않는다. 어린자녀와 함께 목청껏 노래 부르는 가난한
  아빠의 애절한 구원에 화답이라도 하듯 작지만 소중하게 동전
  하나를 정성껏 건넨다.

  저들도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야 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시내 중심가 한 모퉁이에서 꼿꼿이 서 있기도 불편한 장애
노인이  잡지책을 들고 서 있는 곳도 그대로 지나치지 못해
  꼭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조금이라도 풍족한 우리가 저것을
  구매함으로써 그녀에게  작은 은총을 베풀자고 제안한다.

  적어도 그들이 빈손으로 막무가내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팔고 당당하게 이윤을 취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자존심을 배려해주는 모습들이 더 없이 감동이다.

    그들 모두와 우린 함께 살아나가야 할 인류라면서...

  새삼 배 앞에 불룩하게 차고 있는 내 여행가방의 무게가
  부끄러워졌다. 꽁꽁 숨어있는 여행경비와 카드가 가방 속에서
  숨죽인 채 민망해서 얼굴 빨개 진 것만 같았다.

  가난한 나라의 백성으로 더욱 못 가진, 아니, 도도한 자본주의의
  격랑을 이겨내지 못한 이웃들에게 손을 내밈으로써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님을 깨우쳐 주는 것 같았다.

    이 가난이 당신들 탓이 아니라고....

  우리 모두도 당신들과 똑 같은 처지로 내몰릴 수도 있다고...

  그러나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은 놓지 말라고...

  아직도 브라티슬라바의 선량한 시민들은 당신들과
  한 가족이라고...

  소박한 점심 식사 후 함께 활동하는 에스페란티스토 요하노의
  사무실로 우릴 안내하기위해 바삐 길을 나섰다. 그는 오늘이
  다 가기 전에 꼭 만나야 할 에스페란티스토이다.
  7월 31일부터 루마니아 브라쇼보에서 열리는
  무민족성 세계에스페란토 대회(SAT)에 참석하기위해 거쳐서
  가게 되는 곳곳에서(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 많은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워서 슬로바키아에서도 1박2일 의 짧은 일정만이
  잡혀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면 마리아가 서운해 할까봐 아직은 입속에
  간직한 채  우리의 촉박한 계획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널따란 요하노의 사무실 벽에는 슬로바키아의 국기가 마치
  정물화처럼 걸려 있었다.
  전직 농림부 관리로 일했던 그의 경력을 살려 지금은 농업과 식량
  관련 회사(Agriculture and Food Chamber)를 운영하고 있다.

  브라티슬라바의 명물 주점(Pub)에서 격의 없는 이야기를
  나누자는 요하노의 요청으로 들어선 곳은 19세기 초반에 지어진
  전통의 살롱이었다.
  슬로바키아의 예술가와 문인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불어 넣어 준 이곳은 200여년의 넘는 오랜 세월을 이곳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자리를 꽉 메운 곳곳마다 뜨거운 대화가 넘쳐나고 즉석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흑맥주가 묘한 향기를 풍기면서 우리의 만남을
  축하해준다.
  형 만한 아우 없다 하지만 슬로바키아의 소박한 사람들의 자랑은
  탐욕스런 놀부형을 부끄럽게 만드는 흥부의 순수함이었다.

  다음날 아침, 왜 이렇게 일찍 이 나라를 떠나느냐는 마리아의
  원망을  뒤로 작별을 고하는 우리의 코 끝도 찡하다.
  친정 동생들 멀리 떠나보내는 것처럼 마리아의 울먹임이
  우리의 눈을 촉촉이 적신다.
  단 하루의 만남이지만 만리장성을 쌓은 것처럼 견고하고 튼튼한
  우리의 믿음과 마리아와의 우정이 동아줄처럼 질기게 이어지길
  바라면서 눈가의 이슬을 닦는다.

  정겨운 흙 향기가 풍겨나오는 듯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를 뒤로하고 헝가리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리아와 요하노의 선한 기운을 받아 상쾌하기만 하다.

top

Trackback Address :: http://esperamondo.com/es/trackback/105

  1. vera AN 2010/08/30 10:34 PERMALINKMODIFY/DELETE REPLY

    Kara, Roza kaj Sono.
    Ja en pasinta tutsemajno, pluvis pluvegis denove pluvis tutlande. Ec' hodiau' ekde matene hele sunbrilas agrable.

    Jam au'tunig'as, sed ankorau' tage varmegas, s'vitas.
    Mi bone legis vian viglan vojag'adan raporton kun aktivaj nekoreaj esperantistoj, kun viaj malnovaj amikoj kiel Mikaelo, Sandor en eu'ropo.

    Tiaj renkotig'oj g'ojegas vin. cxu ne? Hodiau' mi fine salutas, atendas sekvontaj'on.
    Sane, felic'e fartu.

Write a comment


열네번째 마당-동유럽의 향기(체코 프라하편)

여행 2010/08/10 17:53

열 네 번째 마당(동유럽의 향기- 체코 프라하 편 7/24-)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프라하의 봄’ 보다는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전도연 주연의 TV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으로
    일반인들에게 더욱 잘 알려진 곳이다. 이스탄불을 거쳐
  프라하로 향하는 길에 만난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은 이미
   프라하도 파리, 런던에 못지 않은
매력적인 도시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오랜 사회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치열한 자본주의 물결에 동승한
     동유럽 개방의 선두주자로서 프라하는 연간 천만 명 외국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곳곳에서 만나는 장사꾼들의
    오만과 불친절은 이미 배부른 관광대국의 일원으로서 살테면
사고 말테면 말라는 듯이 배를 내민다.
이들의 배째라 행태의 극치를 보면 우리가 이미 예약한 호텔이름은 분명히 ‘Comfort Hotel Prague' 이다.
  그러나 공항 버스타고, 다시 갈아타고, 또 다시 이 사람 저 사람 물어 물어 파김치 되어 드디어 찾아 낸 호텔이름은 ’Fortuna West Hotel'인 것이다.
바로 코 앞에서 우린 우리가 묵어야 할 곳을 못 찾아 헤 맨 것이다.

아니.... 불과 한 달 사이에 이름이 바뀔리도 없고...

우리가 예약한 호텔이 분명 이 곳이 맞다고라고라?

호텔 상호명이 변경되어도 알려주지도 않고....이런 우라질...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친절한 설명 안내판은 전혀 없다...

아이구 두야...

다행히 잘 찾아왔으니 된 것 아닌가? 라며 무심히 반응하는

호텔 직원하며...미치고 팔짝 뛸 일이네...

참으로 프라하의 향기를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정나미
팍팍 떨어져서 그냥 이곳을 뜨고 싶은 생각밖에는 없게 만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렴한 가격에 비해 내부는 썩 괜찮아서
부글부글 열 받은 배! 째라 부부의 머리를 식혀준다.

우리의 케이블 방송 같은 ON TV에서는 벌거벗은 남녀들이
대낮임에도 아랑곳없이 서로의 섹시함을 자랑하며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차지하려고 야수처럼 낼름거린다.

시내 중심가 곳곳에서 24시간 불야성을 이루는 카지노와
지옥으로 데려다 준다는 섹스숍이 보란 듯이
정육점 불을 밝히고 있다. 마치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자본주의의 쓰레기 더미가
이곳을 덮친 것 같다.

한 낮의 불쾌한 해프닝과 피곤을 말끄미 씻어 준 정갈한
이브자리가 우리를 좀 더 머물다 가라고 붙잡는다.
주렁주렁 줄 인형이 유명한 프라하 시내 관광을 결심하고
호텔을 나서는 발걸음이 푸짐하고 신선한 아침 식사로 가볍다.

체코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
은은하게 울려나오는 가운데 2시간짜리 시티 투어가 시작되었다.
한, 중, 일본어 등 25개국의 언어 서비스가 완벽하게 지원되는
헤드폰을 끼고 독일인 9명과 함께 15인승 버스에 앉아서
바라보는 프라하 시내는 성질을 돋구던
어제와는 다른 곳이었다.

은은한 체리핑크와 다정다감한 노랑색조의 아르누보 건축 양식 및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화려함과 세련됨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거기에다 금장장식을 더함으로써
웅장함과 신비함마저 풍겨준다.

  체코의 수호신 파찔라브의 광장에서 만나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신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은 지난날의 영광을 송두리째 간직한
  채 후손들의 풍요와 부를 담보하는 거대한 유산이 되고도
남는 것 같았다.

1993년 1월 1일 체코공화국은 슬로바키아와 평화적인
분립을 선언한다.
국가적 상징인 불따반강은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말없이 흐르고 있지만
관광 선진 대국을 향한 체코 정부의 각고의 노력은
곳곳에서 돋보인다.

크고 작은 버스를 비롯하여 늘씬한 쌍두마차,
오랜 전통의 명차, 전차 등 골목 골목을 누빌 수
있게 만든 다양한 관광객 운송수단들이 사람들의
발의 피로를 덜어준다. 물론 비용을 지불해야 하겠지만...

현재 체코의 대통령궁으로도 쓰이고,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 등이 돋보이는 프라하성에 몰려든
수 천 명의 관광객들을 보면서 그 지역 체코상인들은
벌떼 처럼 몰려든 외국관광객들의 불룩한 지갑이
내 것인 양 너무 빨리 오만방자표 샴페인을
터트려 버린 것 같다.

전 세계가 경제 위기에 떨고 있지만
이곳 프라하 성에서 만큼은 예외인 듯 발 디딜 틈이 없이
혼잡한 곳곳에서 알짜 장사를 하고 있는
약삭빠른 장사치들이 배를 두드리며
달러며 유로며 체코 코루나 등을 마구 마구
긁어 모으고 있었다.

붉은색 벽돌 지붕과 빛바랜 비취색 돔,
황금색의 화려한 장식들이 아름다운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분명 문화적인 저력이 차고도 넘치는 곳이었다.
다만 졸부의 심보처럼 변해가고 있는
몇몇 장사치들의 눈에 뵈는 것 없이 하는 행태들이
아직은 순박한 전체 체코인들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항상 물고기 한 마리가 전체를 흐린다고 하지 않는가.

씁쓸한 향기와 유쾌하지 않았던
프라하에 대한 기억들이 종종 내리는 빗줄기와 함께
씻겨 내려가길 빌면서
배! 째라 부부는 체코와는 쌍둥이 같은 형제의 나라
슬로바키아로 발길을 돌린다.

top

Trackback Address :: http://esperamondo.com/es/trackback/103

Write a comment


열세번째 마당(6/21-7/13, 호주 아들레이드에서 피어난 에스페란토의 향기)

여행 2010/07/30 02:25
열세번째 마당(6/21-7/13, 호주 아들레이드에서 피어난 에스페란토의 향기)

     약 두 달 동안의 행복했던 호주 최남단 태즈마니아주의 여행을
  마치고 아들레이드로 향하는 길이 꽤나 성가시다.
  새파란 숫처녀같은 순수함으로 우릴 맞을 것 같았던 저가
  항공사 버진블루가 배! 째라 부부의 속을 박박 긁는다.

  짐으로 부치는 수하물에도 돈을 요구하고 심지어는 기내의
  오렌지 쥬스 한 잔에도 계산서를 발행한다.
  이건 뭐 완전히 뒤통수 맞는 기분...
  싼 게 달리 싼 게 아니구먼...이렇게 뜯어내고 저렇게 충당해
  나가는 것이 순박한 처녀가 아니고 산전수전 다 겪은 속물 같다.

  거기에다 1시간 30분이나 멜버른 공항에서 연착하는 불상사로
  심통 밥통이 부글부글 끓는다.
  아니, 안개도 없고 날씨도 이렇게 화창하고 좋은데...

  C C...도데체 뭔 일이래...

  (궁시렁 궁시렁....중얼중얼...붉으락 푸르락)

  호주 본토 아들레이드의 브리지워터로 초대한 우프 호스트는
  조지이다. 배! 째라 부부는 조지가 남자인줄 알고 이메일에
  미스터 조지라고 꼬박꼬박 존칭을 적어 보냈다. 알고 보니
  조지가 부인, 더크가 남편, 자라는 11살 난 아들이다. 카라가
  이들을 한꺼번에 ‘헬로~떡 조지 자라’ 하고 성질 급하게
  부를 때마다 뒤집어지는 로자의 웃음소리에 세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같이 싱글거린다.

  성명들도 참으로 거시기한 게 이름만 들어도 재미있어
  배! 째라 부부 매일 매일 자지러진다. 독일 출신의 번역가 더크와
  남미계의 강인한 인상을 갖고 있는 조지는 연하남 연상녀 커플로
  보인다. 조지가 정원에서 삽질하고 있어도 연하의 잘생긴 남편은
  두 손 바지 주머니에 꾹 찔러 넣고 멀뚱거리며 쳐다보기만 한 채
  같이 거들 생각도 않는다.

  자고로 동양이든 서양이든 미남 남편 데리고 사는 일이 참으로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 같구먼...
  돈 못 벌어와도, 하는 모양새가 아니꼽고 치사해도 꾹 참고
  살아야 하고, 손톱에 때가 낄까봐 절절거리는 모습도
  사랑스럽게, 멋있게 보아야하니 말이다.

  아~ 로자는 정말 다행이다. 연하의 미남과 같이 안 살아서~~
  이런 꼬락서니를 보면 복통 터져서 삼신 할매 주신 명줄
  부여잡고 살아갈 수나 있을까...

  11살의 자라는 아빠의 훤칠한 모습을 닮은 귀엽고 잘 생긴
  소년이다. 장래 희망이 쉐프(요리 명인)와 훌륭한 축구선수가
  꿈이라는 그는 스페인 축구단의 열렬 팬이면서 월드컵 우승도
  스페인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명랑한 이 소년도
  엄마 조지의 잔소리에는 풀이 죽어 단숨에 하던 놀이도 멈추고
  제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신세가 된다.

  앙알 앙알거리는 조지의 지친 목소리에는 철부지 남편을
  대신하여 자라가 가장으로 우뚝 성장하여주길 희망하는 것처럼
  들린다. 낯선 땅에서 만난 이들에 대해 배! 째라 부부의 상상력이
  오지랖이 넘게 설쳐대는 것인가?

  얼키설키 엉크러진 가시 많은 불랙베리 나무를 베어낸 그 자리에
  심은 유칼리나무와 이름 모를 과실수들이 싹이 나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갈 때 쯤이면 이 부부의 희망 자라의 키도 부쩍부쩍
  자라나서 이들과 함께 값진 
결실을 맺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친절한 에스페란티스토 산도르가 사는 아들레이드는 호주 남부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의 주도(州道)로서 현 호주 최초
  여성총리 줄리아 길라드가 자라난 곳이다. 영국 웨일즈
  태생으로서 어린 시절 폐렴에 시달리던 그녀의 건강을 위해
  따뜻한 곳으로 옮겨 오기로 결정한 곳이 바로 이곳 이라고 한다.

  인구 110만으로 호주에서 5번째로 큰 해안도시 아들레이드는
  사계절이 비교적 온화한 곳으로서 토렌스강을 중심으로
  북아들레이드와 남아들레이드로 나뉜다. 길게 뻗은
  킹스윌리암스 스트리트를 사이에 두고 북아들레이드는 유럽풍의
  고풍스런 석조 건물들이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서 있는
  반면 남아들레이드는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되고 파격적인 건물과
  문화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와 고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곳에서 만난
  에스페란티스토들과의 만남과 교류는 에스페란토라는 용어의
  어원과도 같은 희망 그 자체였다.

  본의 아니게 하루 일찍 도착한 아들레이드의 중앙역에서 만난
  산도르의 상쾌한 미소가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지난 1년 동안 한국에 교환교수로 와 있었던 산도르와 카라는
  이미 막역한 사이로서 이국땅에서 이산가족 상봉하듯
  뜨거운 포옹으로 반가움을 대신 한다.

  빅토리아 스퀘어 가든역에서 공짜 시티써클 버스를 타고
  산로르의 장모님 패트 여사댁으로 향하는 발길이 마냥 신난다.
  약15분 후에 내린 곳은 멋드러진 나무들이 얼마나 상당 하길래
  역 이름도 굳우드(goodwood)이다.

 

  마치 무당 빤쓰라도 입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패트 여사가 집을
  비우는 날짜를 정확히 알아 맞추어서 이곳에 도착 한 것이다.
  산도르의 놀란 음성만 들어도 이미 우리는 배! 째라 도사님이
  되어 버린 것이다.

     트레 스트랑가...(참말로 이상허데이...)

     키엘 비 코니스 티안 팍톤?...
    (집 비운단 사실 어찌 알았당가?...)

  산도르의 궁금증도 잠시, 흥겨운 콧노래와 함께 도착한
  패트 여사댁은  호주 정부가 은퇴자들에게 수여하는
  공용주택이었다. 아담힌 붉은 벽돌의 2층집으로서,
  1층에는 응접실과 주방, 세탁실, 화장실, 2층에는 2개의 침실과
  서재와 욕실 등이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맑고 화창한 햇빛
  만큼이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아파트이다.

  빛과 소금같은 이곳에서 우리는 2주 동안 호주에서
  제2의 신혼 같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냉장고에 가득한
  식료품들이며, 거실 가득 쌓여있는 비디오, DVD, 서적들이
  우리의 늘그막한 신혼을 더욱 향기롭게 해준다.
  입에 귀에 걸린 채 배! 째라 부부만의 늘어진 아들레이드의
  여행 또한 행운의 여신이 보내주는 선물로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두 손을 맞잡는다.

  지난 5월 멜버른에서 만났던 당찬 신혼부부 박하와 호호센을
  이곳 산도르의 공동체 보금자리 ‘셀리 후(Seli Hoo)’에서
  또 다시 만난다. 이왕 한국인들이 5명 (한명은 한국 유학생)이나
  모여 있으니 한국의 밤 행사를 갖자고 산도르가 제안한다.

  한국음식과 춤과 음악이 흐르는 조그마한 페스티벌을 갖기로
  결정한 이상 우리l의 먹거리 준비와 양반춤 연습을 해야하는데...   
  늘어지게 게으름 피우던 시간이 새삼 근심스럽게 다가온다.
  산도르와 함께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애니가 토요일 오전에
  한국의 아름다운 춤을 이곳 주민들께도 구경 시켜주자는 말에
  흔쾌히 찬성!

  토요일(7월 3일) 직거래 장터가 클래어랜스 파크 커뮤니티 센터  
  (Clarence Park Community Centre) 대강당에서 열린다.
  유기농을 사고 파는 친환경적인 행사의 서막을 알리는 공연이다.
  한껏 단장한 양반춤과 흥겨운 아리랑이 울려 퍼진다.
   연방 뷰티풀을 날려주는 이들은 이미 예술을 아는 멋쟁이들이다.

  저녁에는 김밥과 된장국, 비빔밥의 향기로운 냄새와 함께
  익어가는 박하의 랩과 로자의 양반부채가 휘늘어진
  신록만큼이나 신선한 즐거움을 전해주기 위해 부산하다.
  이왕 시작한 발걸음 다음 주 아들레이드 대학
  영어교육원(ELS)에서 한 번 더 우리의 공연을 주문한다.

  콤프레네블레!!(물론이고 말고요!!) 동서양의 청년들과 교수들의  
  아낌없는 박수와 관심 속에 우리의 속전속결 공연이 3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나날이 개선되고 발전하고 있다고 산도르가
  한마디 더 거든다. 벌써 우리 춤에 대한 안목이 생겼나봐...

  오는 8월 루마니아공연과 10월 스페인 공연을 위한 전초전이라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한 획을 그어가는 심정으로 힘껏 부채를
  펼친다.

  산도르가 처가의 집안 행사로 호주 북부 다아윈으로 떠나고
  난 후 우리의 친절한 안내인을 자청한 에스페란티스토는
  트레블 스틸과 그의 아내 카트야이다.
  그는 세계에스페란토협회(UEA)사무총장을 지냈으며,
  수많은 에스페란토와 영문 저작들로 인해 호주에서는
  유명한 에스페란티스토이다.

  더구나 호주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영화
  ‘폭풍의 소년(Storm boy)'에 에스페란토 자막을 첨가하는
  방법으로 수많은 초보 에스페란토에게 흥미를 전해주었다.

  카트야의 또랑또랑한 에스페란토 발음만큼이나
  걸출한 두 에스페란티스토 부부는 향기로운 금슬을 자랑하면서
  정성스런 식사준비와 함께 우리를 빼어난 아들레이드의
  서남부의 명소로 인도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중남미 아루바 섬(네덜란드령)에서 태어난 인드라니라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에스페란티스토가
  아들레이드 북부를 구경 시켜주어서 아들레이드의 유명한
  명소를 다 둘러 보는 행운을 누렸다.

  오는 2011년은 아들레이드에 에스페란토가 보급된지 10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100년이란 오랜 세월만큼이나 견디고 이겨낸
  호주 아들레이드 에스페란티스토들의 헌신과 애정에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를 보내면서 성공적인 대회를 기원한다.

top

Trackback Address :: http://esperamondo.com/es/trackback/102

  1. 황상희 2010/08/06 14:15 PERMALINKMODIFY/DELETE REPLY

    푸하하하
    선생님 정말 떠나셨네요.
    와앙 부러버요. 신나게 사시는 모습이 그려져서 보기 좋네요.
    상흰 결혼해요. 그때 말씀드렸던 9살 연하남과....
    잘생긴 연하남은 데리고 살려면 고생한다는 말씀이 와 닿네요. ㅋㅋㅋ
    그리고 배 속에 아이도 있어용. 태명은 만복이....

    결혼 날짜는 8월 15일 광복절이요.
    행복한 나날 보내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그리고 복된 여행되세요.

    • 로자 고경자 2010/08/06 16:41 PERMALINKMODIFY/DELETE

      얼씨구 좋다!!

      무지 무지 축하해요.
      8월 15일은 내게도 특별한 추억이 많은 날이랍니다.
      알콩달콩 향기롭게 두 분 손 꼭잡고 살아가길 빌어요.

  2. 김진선 2010/08/11 13:04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언니 오랜만에 들어와서 읽어보네요.
    음~
    할 말을 잃게 하네요.
    무엇보다도 좋은 여행되세요. 건강 조심하구요. 글을 읽으면서 언니와 형의 열정.정열.꿈이 보이네요. 그 열정이 가장 부러워요. 뚜렷한 목표의식과 버림, 그리고 비움 ...
    그리고 여행.
    버려야 얻는것도 있겠지요.
    오늘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물론 안개로 인하여 찾을 수가 없답니다. 여하튼 길 찾기를 북돋아 주신 언니와 형의 과감한 실천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 로자 고경자 2010/08/12 18:31 PERMALINKMODIFY/DELETE

      하이~ 진선...

      4명의 보물들이 다 크고 나면 자네도 훌훌 털고 남편이랑 떠나보시게..
      우리에 못지 않은 정열과 그대의 끼를 우린 자알 알고 있다우.
      부디, 꿈을 접지 말고 펼칠지어다.
      그대의 끼와 열정의 화려한 부활을 위하여!

  3. vera AN 2010/08/30 11:04 PERMALINKMODIFY/DELETE REPLY

    Kara. Roza.

    En dua bildo, S-ro Sandor aspektas iom melankolie kun blankaj maldensaj barboj, iom pli s'ulkigitaj mienoj ol antau'e en seulo.

    Tamen, vi g'ojege renkontig'is kun li, sendis kvazau'mielvojag'on. ^*^

    Dankon pro via skribaj'o.

Write a comment


◀ PREV : [1] : [2] : [3] : [4] : [5] : [6] : .. [26]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