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에 살아야 한다!!

책 리뷰 2010/01/06 19:43
 

「수수밭으로 오세요」  공선옥 장편소설, 여성신문사


                              수수밭으로 오세요


         “수수밭으로 오세요” 는 제목으로만 보아서는 오직 소박하고 수수한 입맛 당기는 이야기만 한 가득 있을 것 같았다. 도시든 농촌이든 수수를 볼 기회도 없는 요즘에 더욱 향긋한 소식을 전해줄 것 만 같은 책이었다.


근데 웬걸! 1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식욕을 떨어뜨리는 구절이 있었으니, 주인공 강필순의 동생 필례의 말처럼 ‘공순이와 의사 선생의 풋사랑이야기’에는 밥맛없는 소식이 꽤 자주 등장한다. 자고로 먹물 먹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 나누는 사랑 놀음에는 한 순간의 욕망으로 뜨거운 몸뚱이만 있었지 될성부른 싸가지는 없었다. 


나도 먹물 먹은 인간에 속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심이섭(주인공 필순의 두 번째 남편)같은 무책임으로, 방관으로, 냉혹함으로 훌쩍 떠날 수 없는 비교적 따스한 정은 갖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싶다. 그런데 과연 필순이 처럼 어미의 위대한 모성을 발휘하는 실천적인 행위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역시나 심이섭이랑 똑같은 싸가지가 바가지에 불과할 것만 같다.


필순의 아이 한수와 산이, 친구의 자매 소정, 소란, 여동생 애인의 자식 봄이, 마치 고아원 보모처럼 졸지에 떠안게 된, 아니다 이런 단어를 갖다 붙이기에는 필순의 사랑이 너무 깊고 순수해서 가슴이 아린다. 어떠한 말로도, 나의 짧은 문장력으로는 표현해 내지 못할 미련한 이 여자, 아니 너무도 숭고한 강필순의 모성애는 여자이기 이전에, 누구의 사모님이고 아내이기 이전에, 그저 가슴이 시퍼렇도록 외로움에 지치고 말라버린 이 시대 빈민가의 여자이다.


그러나 사랑을 줄 줄 알고 지킬 줄 아는 그 따뜻한 인간애는 높고 깊은 정신세계와 의식을 갖고 있다. 비록 못 배우고, 가진 것이 없어서 천대받는 며느리로 인정도 못 받은 짧은 두 번째 결혼은 공순이와 의사라는 격에 맞지 않는 도전이었지만 시댁으로부터 돌아서서 나올 때는 보란 듯이 당당하게 선언하고 거부하고 나올 줄 아는, 없던 베짱도 만들어낸 여자이고 어미이다.


이런 아줌마의 깡다구가 없다면 어떻게 내 몸으로 난 자식들도 아닌 죽은 친구 오은자의 자녀들인 소정, 소란과 여동생 필례 애인의 아들 봄이를 차마 저버리지 못하고 눈물처럼 선물처럼 이 애들을 거두어 들 일 수 있을까? 그래서 숭고한 모성의 위대함은 아니 어미의 강인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친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으로 기댈 진실한 감동을 준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존경받고 더 양심적으로 살아가려고 빈민가에서 봉사활동까지 자원했던 의사남편도 못 해 낸 것을 필순은 아주 간단하고도 단호하게 해낸다. 살아있는 생명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쌀 걱정 전기료 걱정에 잠 못드는 밤이 예전처럼 다시 돌아오겠지만 필순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어미의 암팡진 의지 앞에선 그것들은 이젠 슬픔도 고통도 아니다. 늘 언제까지 함께 있어주겠다는 큰 애 한수가 있어서, 의사남편 쏙 빼닮은 잘생긴 산이가 있어서, 친구의 아픈 흔적까지 간직하고 있는 소정, 소란이를 보면서, 몇 마디 말 말고는 고개만 끄덕이는 봄이를 보면서 필순은 모진 겨울을 이겨 나온 튼튼한 보리싹 처럼 이 아이들이 있기에 절망을 물리치고 새 희망으로 우릴 부른다.

“수수밭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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