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체제를 넘어,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에 맞서서 (김명인)

문화관련 글들(ktp) 2007/06/12 23:49
 

6월민주항쟁20년기념 대토론회



주최 및 주관 :

공동 기획 및 진행 : 문화단체



            다시 민중을 부른다

     - 87년 체제를 넘어,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에 맞서서


  김명인 (인하대 교수, 「황해문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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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이후 20년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저 20년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주최측에서도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각별한 토론의 장’이라고 했듯이 지난 20년이라는 시간이 그 20년 전의 뜨거웠던 기억에 비추어 볼 때, 본질적으로 ‘불만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지금보다 분명히 더 가난했고 더 억압받았지만 지금보다는 행복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도 행복하지 않다. 우리가 함께 지향했던 아름다운 민주적 공동체는 간데없고 대신 상품물신과 악무한의 경쟁과 승자독식의 이데올로기와 삶 전체의 자본화/식민화로 들끓는 시장의 정글만이 눈앞에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프라이팬에서 탈출했다 싶었더니 화덕 속으로 뛰어든 셈이다. 이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의 시대에도 희망은 있는가? 이 글은 그것을 묻는 글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나의 전공분야인 문학의 문제이고 나아가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 글은 지난 20년이 어떻게 이런 오늘날의 삶의 황폐화를 낳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고, 지금과 다른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모색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거칠게 묻고 대답하는 글이 될 것이다.



1. 그 2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1) 작은 혁명 뒤의 큰 반동


1987년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이 혁명적 변화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해를 계기로 해서 권위주의가 혁파되고 정권교체의 길이 열렸으며 반민주악법들이 개폐되고 과거청산이 시작되는 등 정치적 민주화가 획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물론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적 문화가 자리 잡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계급계층운동들이 시민권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것을 우리는 ‘민주화 혹은 문민화의 성취’로서 드높이 기렸고 이제 한국사회는 비로서 근대적 민주국가로서의 기본 골격을 갖추었다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일국적 감각에 익숙해 있던 우리는 그 배후에 작동하고 있던 더 큰 세계사적 반동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정착과정으로 알고 있던 지난 20년은 사실은 ‘신자유주의 세계체제’가 남한사회에 관철된 과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70년대 오일쇼크 이후로 자기운동의 결정적 위협을 감지한 세계자본은 자본의 유동성을 전 세계적 규모에서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이제까지 자본의 논리가 가 닿지 않던 공공부문 등 사회 전 영역을 상품화하는 새로운 노선을 개발하고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그것이 80년대의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며 제3세계의 민주화 도미노이고 남한에서 독재자 박정희의 퇴출이었다.

결국 박정희의 죽음과 1980년 신군부의 집권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가 수행한 남한 사회의 재편성과정이었으며 6월항쟁의 ‘성공’과 곧 이은 1987년 대선에서의 신군부잔재의 집권과정은 곧 군부독재의 형식으로는 자기 논리를 관철할 수 없었던 지배블록의 2차 재편성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로써 지배블록은 민주주의를 정치영역으로 제한하고 민주세력을 분열시켰으며 헤게모니적 지배를 확립하여 기득권을 보다 공고히 할 수 있었다.

6공 정권의 뒤를 이어 등장한 문민정부는 민주개혁을 강도 높게 진행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OECD와 WTO에 가입하고, 국내적으로는 세계화-경쟁력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고 공동체주의의 해체와 시장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확산을 몰고 와 신자유주의 체제 정착을 위한 지반을 다졌다고 할 수 있다. 뒤 이은 국민의 정부는 IMF비상정권으로 출발하여 결국 경제민주주의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결국 정치적 민주주의조차도 불구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햇볕정책의 정착을 최대치적으로 삼고 있지만 이미 남북관계는 군사적 긴장을 통한 적대적 의존관계에서 교류협력을 통한 비적대적 의존관계 단계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현 참여정부는 국가사회발전의 장기적 전망 수립에 실패하고 지배블록과 구조적 타협과 표면적 갈등을 왕복하는 동안, 시장독재체제를 완성시키고 한미 FTA를 체결하는 등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밀어붙인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난 20년 한국사회는 부르주아민주혁명의 성취과정을 겪었다고 할 수 있으며 1987년은 부르주아민주혁명으로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형성된 부르주아민족국가는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에 의해 그 자주성과 자기결정력을 심각하게 상실하고 있어 사실상 해체될 운명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2)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6월항쟁의 준혁명적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급진주의자들이 기대한 것은 노동자계급의 본격적 변혁세력화였고 그해 7~8월에 전국에서 터져 나왔던 노동자들의 전면적인 투쟁은 그 기대를 현실로 만들어 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7~8월 투쟁은 혁명적 계급투쟁이 아니라 오랜 동안 최소한의 시민적 권리에서조차 소외되어 왔던 우리 노동자들의 기본권 요구투쟁이었고 성장한 한국자본은 호황이었던 데다가 그 정도의 요구를 들어줄 여유는 있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은 결국 부르주아 민주혁명에 포섭된 셈이었고 그것은 곧 한국 노동자계급의 자본에 대한 비적대적 의존관계의 본격화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6월항쟁의 함성이 잦아들고 그해 대선의 뼈아픈 좌절과 더불어 ‘운동권’이라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그 말은 곧 변혁운동 혹은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사람들이 대중으로부터 분리되어 타자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1988년부터 1991년 이른바 강경대정국에 이르기까지 우리 중의 일부는 극좌적 경향에 빠져 대중과 유리되고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은 그 반대로 과잉접수되어 청산주의의 유행을 몰고 온다. 그것은 명백한 하강기의 피로감이었다.

1990년대의 시대정신이라고 할만한 ‘개인’의 발견은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의미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70년대까지의 ‘국민’과 ‘80년대의 ’민중‘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으로부터의 이중의 탈출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 개인은 국민됨을 충분히 극복한 결과도 아니고 민중됨을 충분히 실현한 결과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과잉결정된 개인은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 속에서 단자화된 소비주체, 혹은 고독한 경쟁주체로서만 남게 된다.

그리고 90년대 이후 운동주체의 성격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민중운동, 변혁운동이 퇴조한 자리에 다양한 시민운동이 자리 잡았지만 그것은 변화된 헤게모니도 뒤흔들지 못했고 사회전체의 신자유주의적 보수화도 막아내지 못한 채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일쑤였고, 전반적으로 자본에 기생하게 된 노동운동 역시 1999년의 좌절을 고비로 혁명성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에 걸친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20년 전에 가졌던 인간해방에 대한 희망을 신자유주의의 주구가 되어버린 제도권 민주화세력들에게 도매금으로 팔아 넘겨버리고 대부분 개인의 영역 속으로, 신자유주의 경쟁체제 속으로 도피하고 투항해 들어갔다. 그 대열에도 합류할 수 없었던 민중들은 양극화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몰아붙여져서 불안과 공포의 그늘 속에서 떠돌게 되었다.



2.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


신자유주의 시장독재가 지배하는 사회는 자본 상호간의 견제 외에는 자본운동에 그 어떤 시간적 공간적 정치적 견제와 장애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이며, 자본이 운동하는 범주 안에 들어 있는 삶의 모든 영역을 상품화하고 모든 인간을 자본화하며 자본의 필요 아래 위계화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상품이 되지 못하는 삶의 영역, 자본화되지 않는(못 하는) 모든 인간은 사회 밖으로 내몰려 존재가 부정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극단적 양극화와 불평등, 경쟁주의는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의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다.

무엇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시장주의, 경쟁주의 논리가 우리 사회의 유일한 이데올로기이자 가치관으로 자리 잡아 다른 삶과 다른 생각의 선택을 제약하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에는 세 부류의 인간만이 존재한다. 하나는 일상과 의식 전부가 시장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철저히 시장적 인간, 일상은 시장규율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의식은 그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분열된 인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상과 의식 양면에서 시장규율에서 벗어나 있는 탈주적 인간이 그것이다. 그 세 부류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일정 시간의 노동과 사회적 기여를 제공하는 한 사회는 그에게 행복하게 살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장독재 사회는 그러한 가능성을 봉쇄한다. 개인적 가능성을 봉쇄할 뿐만 아니라 자본과 이윤이 매개되지 않는 공공의 가치와 상호주체적 연대의식의 사회적 확인과 실천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기까지 한다.(교육, 의료, 복지 등 공공영역의 게토화를 보라).

어떻게 하면 이 점점 더 우리를 죄어오는 신자유주의적 시장독재의 압제와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는 삶의 자기결정권을 회복하고 상호부조와 연대의식에 기초한 삶의 공공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는 자본과 시장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진보라 불리든 아니든 우리가 처한 현상태(status quo)를 넘어서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이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 과제들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과제는 신자유주의가 현재로서는 근대자본주의가 고안해 낸 가장 최신의 전 지구적 착취기계라는 점에서 대단히 전면적인 접근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근대 이후에 대한 사유를 요구하는 세계-지구 전체가 당면한 보편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한국사회의 근대성의 성취와 극복이라는 이중과제와 관련된 특수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국적-근대적 과제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체제는 이미 지난 20년의 역사과정이 보여주었듯이 근대적 부르주아민족국가의 형성과 해체를 동시적으로 수행하면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장자유화가 선행되어야 하고 시장 자유화는 제도화된 정치적 민주주의를 상당한 필요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지금의 제도적 민주화는 신자유주의 체제 수립의 부산물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민주화 과정은 한국적 민주화의 오랜 전제조건들인 식민지유제 청산, 친일청산을 포함한 과거사 규명, 냉전이데올로기와 극우적 광기의 청산, 근대적 기본권의 법적・제도적 보장 등을 수반하게 되고 이는 곧 합리적인 근대적 시민사회 수립에 주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런 과정은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사회적 여건 마련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자기 영역 확장에 필요하다면 낡은 이데올로기 대립이나 적대적 분단체제조차도 얼마든지 붕괴시킬 용의와 힘이 있는 체제이다.(사이프러스의 예)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는 우리의 근대프로젝트가 강력한 민족국가의 형성이라는 지향을 갖는 것과는 상충한다. 민족적 국가적 장벽과 양립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프로젝트는 자본운동의 유동성이 작동하는 모든 공간의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균질화시키고 그 고유성을 해체한다. 더군다나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서 신자유주의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한국의 경우 그 균질화는 경향적으로 미국화로 이어진다. 한미 FTA의 체결은 바로 그 균질화-미국화 프로젝트의 구조적 정착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의 부르주아 민주혁명이 근대적 민족국가의 성취와 함께 사실상 해체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민족주의를 혐오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민족국가적 자기 결정력의 해체는 반가운 일일지도 모르나, 그것이 미국화를 매개로 한 해체라는 점도 큰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민족국가의 자주성은 여전히 유효한 매개가 되는 것이며, 더군다나 분단극복의 과정을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의 포섭으로부터 벗어나는 세계사적 기회로 삼는 기획이 가능하다면 ‘민족적 자주성’이라는 것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관건적 중요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지구적-탈근대적 과제들>


현재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지구적 움직임들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지만 반자본주의적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강력한 탈근대적-근대비판적 경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근대기획인가 탈근대기획인가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자본주의의 폐절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지닌 정통 맑시즘, 맑스-레닌주의의 중앙집권주의가 지닌 근대적 성격을 넘어서 노동계급 범주를 확대하고 탈집중화된 다중의 자율・자치에 무게를 두는 비정통 맑시즘, 상호부조와 자율자치, 진정한 평등에 무게를 두는 각종의 아나키즘, 근대적 인간중심주의를 역전시켜 지구적 생명론을 내세우는 환경・생태주의, 근대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체로 파악하여 그 동시적 극복을 꾀하는 근본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반신자유주의 투쟁 속에서 탈이데올로기, 탈권위주의의 공간정치학을 실현해 나가는 사파티즘 등은 공히 탈근대적 사유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로부터 삶의 자유를 지키려는 이 모든 움직임들이 원하는 것은 자본의 이름이 되었건, 이성의 이름이 되었건, 국가와 민족의 이름이 되었건, 조직과 당파의 이름이 되었건, 종교의 이름이 되었건, 이데올로기의 이름이 되었건, 가부장의 이름이 되었건, 가족의 이름이 되었건 지구와 생명과 인간을 착취하고 끝없는 고갈과 파괴의 벼랑에 몰아넣는 그 어떤 개발도 성장도 발전도 ‘내 이름으로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운동들이 지향하는 과제들을 단순화하여 열거하자면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생산관계의 폐절, 삶의 탈상품화와 탈물신화의 실천, 가부장제와 그에 근거한 성별제도 해체, 근대적 국가-민족기구의 해체, 모든 중앙집권적 권력기관과 교육기관의 해체, 반환경-반지구적 생산/유통/소비구조의 청산 등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자본주의 이후의 삶을 상상하되 근대적 제도나 패러다임, 사유에 의존함 없이 상상하고, 다른 대안을 모색하되 단수의 대안, 단수의 세계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대안, 복수의 세계를 인정하고 그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기도 하다. 근대적 동일성의 세계를 벗어나 차이와 복수성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탈근대적 상상력과 운동적 실천들은 이미 1968년 혁명에서 태동하여 1999년 시애틀 WTO 반대시위를 계기로 세계적 규모로 확산되었고 그 이후 2000년 프라하 반 IMF 시위, 2001년 제노바 반 G8 시위, 2002년 워싱턴 반 IMF 시위, 2003년 칸쿤 반 WTO 시위, 2005년 홍콩 반 WTO 시위 등을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강력한 저항의 힘으로 발전되어 갔다.

한국사회 역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민족-국가 내의 다양한 특수한 근대적 과제들이 존재하지만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추세에 급격하게 수렴되어 가면서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의 규정력이 점차 전면적인 것이 되어감에 따라 그 어떤 일국적 문제들도 세계적 차원의 반 신자유주의적 실천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는 단계에 돌입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역시 탈근대적 상상과 실천을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2) 조건들



<객관적 조건>


1997년 IMF 사태를 계기로 한국사회는 완전히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의 일부분이 되고 말았다. 박정희시대의 종언과 더불어 개방화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은 처음부터 희박하긴 했지만 그래도 잔존했던 생산-유통-소비-투자의 민족경제적 순환구조를 완전히 해체했을 뿐 아니라 금융자본의 절대 우위성을 바탕으로 한국자본주의의 일국적 운동논리를 와해시켜 나갔다. 민족경제, 혹은 국민경제라는 개념은 거의 소멸되다시피 하였고 한국경제는 초국적 자본이 운동하는 한 말단부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경제의 국적이 사라지면서 일국적 차원의 국민경제 경영은 불가능해 졌고 그에 따라 생산과 유통, 소비와 투자부문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국가의 보호와 배려가 필요한 고용과 분배 부문 역시 오로지 시장의 논리에 내맡겨지게 되었다. ‘국민’의 기본적 생존권인 일할 권리, 굶지 않을 권리의 충족은 국가가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시장의 성장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장논리에서 고용과 분배는 설 자리가 없다. 성장에 필요한 만큼만 고용하고 시장수요를 유지하는 만큼만 분배하면 되기 때문이다. 항상 착취속도는 분배속도를 초과하게 마련이어서 고용과 분배는 항상적 결핍상태에 놓인다. 고용과 분배는 개인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시장을 키우는 것밖에 없다.

한때 동북아지역의 미국패권주의의 교두보로서 한-미-일 삼각경제구도에 의해 장기적 안정을 보장받았던 한국경제이지만 이제 미국이건 일본이건 한국은 세계적 자본각축이 일어나는 하나의 지역시장에 불과하고 미국은 자국 출신의 초국적 자본이나 자국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만큼만 시장으로서의 한국지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한국은 미국자본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특권적인 경제적, 경제외적 기득권이 살아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 등의 영향력에서 한국시장을 독점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한미 FTA의 한 본질이다. 분단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결국 이제는 동북아지역에서의 미국자본의 이익이라는 관점에 의해 우선적으로 그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유지되는 한, 분단의 극복은 결국 한반도의 미국화, 미국자본의 한반도에서의 우월적 지위의 반영구적 보장이라는 최종 목표와 일치될 때 비로소 가능해 질 것이다. 미국은 현재의 긴장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얻는 이득보다 그것을 해소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크다는 것을 확신할 때에만 분단체제의 변화를 용인할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확립과정이 우리에게 좀처럼 위기로 실감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제도로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정착이나 분단체제의 극복 혹은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수십 년 동안의 오랜 과제들과 그다지 상충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어 불가피하거나 긴요한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주체적 조건>


최근 한 신문은 여론조사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경제, 외교 부문에서는 보수적이면서 인권, 복지 부문에서는 진보적인 경향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인권 복지는 확대되어야 하지만 한편으로 개방과 성장은 필요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성장제일주의가 곧 복지의 확대와는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 국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치 엘리트에서부터 자칭 진보인사들까지 모두가 한편으로는 분배정의와 복지를 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성장동력 발굴론, 사회 전 부문 경쟁력 강화론, 개방 불가피론 등을 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시장독재에 대항하는 주체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착종된 현실인식의 일반화는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수구세력이건 언필칭 진보세력이건 신자유주의 논리에 들려 ‘성장동력’, ‘경쟁력’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한, 현재의 제도 정치세력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동력’과 경쟁력 있는 대안논리를 찾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가 아닐 수 없다. 정당정치의 복원을 주요한 정치적 과제로 내세우는 견해들이 있지만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압도적 우위 속에서 근본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투표행동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는 제도정치권의 각축 속에서 과연 얼마나 변혁적인 정치역량의 형성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한국의 시민사회운동 영역들과 노동계급운동 영역들에게도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주류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광범한 이데올로기적・제도적 유착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제도정치권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사회운동 영역과 노동계급운동 영역에서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감염과 투항, 그리고 민주화 이후 운동의 준 국가기구화와 관료화, 자기 재생산을 위한 보수화, 대중으로부터의 고립현상은 두드러진 현상들이다. 이를테면 ‘지속가능한 개발’ 이데올로기 같은 것은 그 타락상의 좋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계급운동의 개량화와 동반성장론 등 자본에 대한 의존성 강화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그보다 하위주체들-비정규직 노동자들, 농민들, 도시빈민들, 이민자들, 실업자들, 기타 각종의 소수자들의 경우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체제의 최하부에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리면서 때로는 노골적 타자화와 식민화의 대상으로, 때로는 무책임한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무정한 세계의 바다 속에서 부침하면서 아무런 조직도 대변세력도 없이 맨몸으로 이 체제에 맞서고 있는 형편이다.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사회의 정체성 혼란은 더더구나 문제적이다. 나 스스로도 참여한 바 있는 ‘선진대안론’ 같은 것은 현재 한국 지식인 사회가 얼마나 그 본래의 변혁성을 잃고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라는 블랙홀에 무비판적으로, 또는 패배주의적으로 휘감겨 들어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실례이다.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이제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를 용인하는가 거부하는가를 경계선으로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3. 어떻게 해야 하는가--신민중연합의 모색


이상과 같은 주・객관적 조건 속에서 앞서 밝힌 당면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한 정치사회적 대안을 여기서 마련하는 것은 다분히 공상적일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제안으로서 나의 생각을 밝혀두고자 한다.

올해는 대선이 있고 내년에는 곧 총선이 뒤따른다. 이번 대선의 중요성이 많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 중요성에 비추어 결과는 전혀 희망적일 것 같지 않다. 총선의 경우도 현재로서는 보수화된 정치판의 지역 따먹기 놀이를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정치권은 나름의 과제를 가지고 있고 그 과제나마 이행할 수 있으면 다행일 것이다. 이를테면 아직 충분히 성취되지 못한 제도적 민주주의의 완수, 남북한 긴장완화와 협력 및 평화체제 구축, 과거 유제들의 청산 등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과제들을 수행하는 일에 제도정치권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민족적 자주성과 자결주의에 기초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파고에 저항하는 정치적 주체의 가능성과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베네수엘라나 컬럼비아, 브라질 등 남미에서의 선거혁명과 그 이후의 전개과정은 좋은 시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적 대항주체들에 의한 광범하고도 열정적인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보다 강력하게 일어서면서 그것이 제도정치와 결합되는 과정을 겪어야 하며 그것은 현재 한국의 정당정치 구조의 근본적 변혁을 또한 전제로서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시민사회운동 영역들과 노동계급운동 영역들의 분발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상황인데 그 첫 걸음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시장독재 체제에 대한 결연한 투쟁의지와 친시장세력과의 이데올로기적・제도적 단절이 무엇보다 먼저 요구된다. 이것은 사회운동 각부문에 공히 요구되는 것으로 예컨대 ‘지속가능성 이데올로기’ 등과의 단절과 투쟁, 기업기부금 의존으로부터의 단절, 신자유주의적 국가 프로젝트 참여와 준국가기구화의 거부 등이 그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보다 아래쪽으로 눈을 돌려 비참한 소외와 주변화, 타자화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회적 하위주체들과 실천적으로 결합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노동계급운동은 800만 비정규직의 생존권 문제를 최우선의 과제로 설정하지 않는다면 이제 더 이상 그 진보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양극화의 급격한 진전에 따라 중산층의 하향분해와 빈곤층의 궁핍화가 급격하게 진행함에 따라 형성되고 있는 사회적 박탈계층들을 통칭하여 70~80년대적 의미의 ‘생존권에 기반한 민중’으로 재호명하자는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우석훈, 87년 이후 20년, 민중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는가?) 이런 맥락의 민중 재호명에 원칙적으로 공감하면서 나는 반신자유주의 투쟁 주체의 구성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맥락에서 민중개념을 다시 복원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80년대까지의 민중론에서 민중개념은 사회적 존재태의 개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능태의 개념이기도 했다. 흔히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넓은 의미의 생산대중을 아우르는 포괄적 존재개념이면서도 분단된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가능적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호명된 바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급진적 사회주의 기획에서 내세운 노동자계급 당파성론에 의해 민중론 혹은 민중주체론은 소부르주아적 담론으로 매도・폐기되어 버렸으며 90년대 초반 사회주의적 변혁운동 일반의 급격한 쇠퇴와 더불어 노동자계급 당파성론과 동반 소멸해 버리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민중개념은 시민개념으로 대체되었고 다시 2000년대 이후에는 서구 탈근대 담론들의 수입과 더불어 소수자론, 하위주체(서발턴)론, 다중론 등에 가려 오랫동안 낡은 개념으로 버림받아 온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의 전면화함에 따라 시민운동, 노동운동이 그 한계를 노정하고 정체성 위기를 맞게 되고 중산층의 급격한 양극분해 등 시민사회의 동요와 붕괴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안정된 근대시민사회의 존재를 전제하는 소수자 개념이나, 탈식민주의론의 담론적 구성물로서 적극적인 사회적 저항성을 내포하지 못하는 하위주체 개념, 혹은 지나치게 확장된 다중 개념 등은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에 대항하는 보다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주체 개념으로는 부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민중개념의 귀환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발생한다.

많은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지만 60년대에 탄생하여 70~80년대에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한 민중론, 민중개념은 단순히 노동자계급의 지도를 필요로 하는 통일전선의 구성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근대 부르주아사회와 세계체제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는, 풍부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그리고 신학적 함의까지도 지닌 이념형적 주체개념이었다. 이러한 7~80년대적 민중개념은 한국사회뿐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지구적 시장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지구상의 모든 지역의 인민들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개념으로 상당한 적합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실업자를 포함한 정규・비정규 노동자계급, 여성, 농민, 도시빈민, 이민자, 각종의 소수자 등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체제의 현재적・잠재적 희생자들이 민중의 이름으로 하나의 반신자유주의 ‘연합’을 이루어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에 전면적으로 또 세계적 규모로 저항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전망이고 희망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그 저항투쟁은 그 안에서 동원이 아닌 참여로, 중심화가 아닌 탈중심화로, 위계화가 아닌 평등화로, 동일성이 아닌 차이의 힘으로, 자기가 존재하고 생활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남의 논리가 아닌 자기 삶의 논리와 요구에 의해, 그러면서도 긴밀한 네트워크적 연대를 통해 전개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 신자유주의 시장독재 체제가 강요하는 획일적인 자본과 상품논리를 넘어서 민중의 자기결정권의 회복이라는 본원적 민주주의 원리를 회복하고 점점 사멸해 가는 지구환경을 살려내는 전면적인 근대극복 운동으로 확산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4. 민중문화운동의 새로운 전개를 위하여


90년대 이후 한국 문화에서 ‘운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다른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화 영역 역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범람 속에서 전부 생존을 위한, 혹은 상품적 변신을 위한 각개약진에 몰입하는 동안 파괴되어 가는 공동체의 문화적 생명력에 대하여, 마멸되어 가는 민중들의 삶에 대하여 공감과 연대의 움직임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민중의 문화유산은 상품화 코드에 적응하여 컨텐츠가 되었고 상품화되지 못하는 문화는 전부 폐기처분되어 갔다.

문학 역시 90년대를 통해 여지없이 공동체적 문제의식에서 유리되어 개인화의 길을 걸어갔으며 그것은 상업화와 긴밀하게 대응되었고 그것은 이내 사회적으로 문학적 자원의 고갈로 이어졌다. 신자유주의체제의 도래와 더불어 점차 사회적 문제들이 문학 속에 귀환해 들어왔지만 그것은 의식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증후적인 것이었다.

문학을 포함한 문화영역 역시 역동적 운동성을 회복하여 이 신자유주의 시장독재체제에 대한 문화주체들의 동시다발적이고 확산적인 저항이라는 민중연합적 투쟁 속에서 다시금 재정립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상품문화에 대항하여 민중문화 본연의 저항성과  창조성을 회복하고 그 민중적 소비와 유통구조를 다시금 창출해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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