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운동의 살핌과 고찰 그리고 새로움

문화관련글발 2006/11/30 17:14
 

문화운동의 살핌과 고찰 그리고 새로움

                                 

                                                안 종 수 (희망비젼)


  문화를 놓고  개념상의 문제에 매달리는 것들을 피하면서 좀 더 포괄적이면서도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문화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지 다루고자 노력 하였다. 물론 주류 강단학자들이 논문의 주제로 다루어져 왔던 기계론적이고 분류학적인 것은 될 수 있으면 피하면서 상황들에 대한 조사를 위주로 문제점과 아울러 작게나마 대안적인 제시로서 현재적 시점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현대사회를 살면서 손쉽게 타국의 공연예술을 손쉽게 볼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과  문화들이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관람하고 향유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손쉬운 이동권의 확보와 공연을 위한 부대시설들이 만들어 지면서  해마다 수많은 타국의 공연예술들을 볼 수 가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 면에서 보면 커다란 국제적 행사들이 문화를 동반하여 수도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이러한 문화의 향유가 극히 부분적이고 다양성을 상실한 채  문화적 접촉( Cultural contact)에 머물러 있었고 그것이 문화적 관계(Cultural relation)의 차원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에1) 대한 현대 사회에서 문화라고 이름 불리는 것에 대한 올바른 선행적 고찰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해체되어지고 잡종화(hybrid) 되고 있다.  기존의 문화운동, 문화 예술적 행태들이 급속히 파괴되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들로 접합 되고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전환되어 이전의 민족적이고 계급적인 문화운동에서 도시, 생태계, 반권위주의, 반체제, 여성해방, 반인종주의, 소수민족, 성적 소수집단, 지역적, 등으로 다양화 되면서 정치화적인 면과 저항과 투쟁의 조건들을 만들어 나가면서 이들은 사회적 관계들과 직접적으로 융합되어 새로운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도시 환경을 포함하는 생태학 혹은 환경운동과 인간의 정체성을 위한 젠더(성)의 영역에서 파생되는 페미니즘운동 및 성적소수자운동, 연령, 인종, 언어, 지역에 따라 정의되는 사람들의 동등한 대우를 위해 투쟁하는 인권운동과 반전반핵운동,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비롯한 직접 행동 평화운동,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분배의 '대안적' 또는 '공동체적' 양식을 옹호하거나 추구하는 운동, 교육 제도 전반을 부정하는 대안 교육운동 등으로 더욱 세분화 되면서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 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운동들의 특징들을 살펴보면 작은 개별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작게는 국내적으로 크게는 국제적으로 탈 중심화를 시도하고 수많은 정보의 교환을 통해 연대의 폭들을 넓혀 나간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의 작은 단체를 보더라도 혼자서 모든 것을 수행하는 단체들은 거의 없다. 과거의 협의체, 연합체의 결합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한 결합이 수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모든 형태의 결합 속에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무한한 상상력의 공유 속에 만들어 지는 문화적 실천들이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현재 국제 사회는 문화와 무역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인 국제법적 강제력을 가지고 있는 ‘문화다양성 협약’의 체결을 위해 노력 중이다. 문화다양성 협약은 한국의 스크린쿼터제와 같은 각국의 현실에 맞는 다양한 문화정책을 보장함으로써 주권국가의  문화발전을 증진하고 서로의 문화를 침해하지 않는 문화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협약이다. 2005년 10월 제 3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다양성 협약 체결, 발효하기 위해 적극 노력 한 이래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이러한 ‘문화 다양성 협약’이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괴물 속에는 미국식 문화의 일방적인 세계화만이 존재하게 된다. 이것은 문화의 다양성을 파괴하면서 문화의 획일화를 가져오고 종속적인 구조 속에 일 국내 문화산업의 파괴를 수반한다. 이러한 문제를 가장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항한 국가가 유럽 국가들이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프랑스는 ‘문화 다양성’이라는 개념을 국제무대에서 더 큰 설득력을 갖고 더 많은 지지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이념의 필요성에 의해 1999년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카트린 트로트만 (Catherine Trautman)이 제안하여 현재의 프랑스 문화전략으로 자리 잡았으며 2001년 10월 유네스코에서 ‘ 문화 다양성에 대한 국제선언2) 이 정식화 되었다.


   문화 다양성 협약의 제1조 목적 조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문화표현의 다양성에 대한 보호와 증진, (b)정체성과 가치관, 의미의 전달 매체로서의 문화 상품과 서비스의 독특한 본성을 인정, (c)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의 보호와 촉진을 위한 적절한 방안과 문화정책의 채택과 개발 촉진, (d)여러 문화가 자유롭게 발달하고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체제를 제공, (e) 세계 각 국가들 사이에서 보다 광범위하고 균형 잡힌 문화교류를 보장하기 위해 각 문화와 문명 사이의 대화 장려, (f)문화적 표현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촉진시키고 국내적? 국제적 차원에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인식 증진, (e) 특히 개발도상에 있는 사회가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전 지구적 공동협력으로 국제적 협력과 연대의 강화 등을 규정하고 있다.


   현재 이러한 작업들은 유네스코가 주도적으로 ‘문화권’3)과 함께 국제담론으로 형성되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와 별도로  미국 중심의 문화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기구인 “세계문화 연대기구”(Coalition for Cultural Diversity)4) 역시 문화권의 정의를 국민-국가 간 문화 다양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현재 문화 다양성의 논의와 중요성이 활발하게 대두되고 있지만 글로벌화 된 현대사회에서의 거대 자본으로 만들어진 문화상품들이 독점적 경향5)이 점점 커지는 현실은 다양성의 논의에 대한 설득력을 감소시키는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감소의 요인을 몇 가지 살펴보면 모든 영역을 포괄한 특히 경제, 문화산업에 대한 부분에 있어 현실적으로 세계화의 파고 속에 특히 WTO 체제 하의 일반협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문화관련 산업을 놓고  자국의 문화산업의 보호, 대처가 각 나라별 사안으로 대두 되고 있고 제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럽사회에서는 역사적으로 그동안 문화적 공유와 경험이 문화 다양성의 필요적 사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에 비해 동아시아나 기타 여러 지역들에서 특수하게 나타나는 역사적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많은 논의와 연구가 수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를 놓고 세계는 지금 문화 역시 산업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보면서 그것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양한 문화 전략, 정책6)들을 수립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우선 바라보아야 할 것들이 정치. 경제적으로 국제적 관계에 대한 이해와 현재 좌파, 우파 학자들이 자고나면 이야기하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언급하여야 한다.


  세계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국내는 물론 유럽 사회 역시 대단히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이것은‘사회주의가 붕괴되었다’는 결과적 사건이 아니다. 붕괴가 오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또 붕괴된 것은 재건을 통해 복구될 수 있고 심지어 강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주의 재건의 가능성과 그 실제적 힘들을 우리는 지금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사회주의의 붕괴가 진행된 모습, 그 과정에서 드러난 사회주의의 실상, 사회주의와 프롤레타리아의 적대적 관계이다.


  1989년 천안문에서 시위대중은 공산당의 발포에 직면하며, 동독,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의 노동자들은 국경 너머로 탈주하고, 소련의 광산노동자들은 파업으로 사회주의 정부에 항거하며,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는 병사에게 꽃을 건네는 인간 띠에 의해 저지된다. 소련 해체 후 10년이 지난 지금 사회주의의 붕괴를 제국주의의 음모에 의해 설명하려는 시도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사회주의적 통치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거대한 민중저항을 빼놓고서 사회주의의 붕괴를 설명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사회주의는 붕괴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민중에 의해 거부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민중에게 더 나은 삶의 양식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이상 운동으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사회주의가 1935년경에서 1960년대 초까지 보여준 급속한 경제발전은 코뮨주의의 발전의 표현이 아니라 축적과 착취의 발전을 표현했다.   사회주의의 붕괴가 국가형태의 사멸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새로운 국가형태의 전 지구적 확산으로 연결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1945년 이후의 약 2~30년간에 걸친 세계사는 내포적 축적을 주도하는 국가(개입)주의의 여러 형태의 출현과 경합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주의적 통치의 동 유럽적 형태가 사회주의였다면 그것의 서구적 형태가 케인즈주의에 의해 지도되는 사회 민주주의적 복지국가였고 그것의 제3세계적 형태가 권위주의적 개발 국가로 표현 되었다. 이렇게 볼 때 냉전의 종식이란 국가주의적 축적의 위기, 다시 말해 국가주의적으로 분할된 지형에서의 내포적 축적의 한계와 위기를 표현한다.


  조지 부시가 ‘새로운 세계질서’(NWO) 속에 무역을 중심으로 WTO(세계무역기구), 초국적 금융 자본을 중심으로 IMF(국제통화기금)라는 기구를 통해 미국 중심의 패권적 지배를 강요하고 있지만  일국의 지배형태와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들이 만들어 지고 있으며 그것이 EU(유럽연합),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와 FTAA(미주자유미역협정, AFTA(아세안자유무역협정),MERCOSUR(남미남부공동시장)등의 지역을 기반으로 자유무역을 뛰어넘는 경제 통합7)의 실체로 나타난다. 현재 EU헌법 통과를 놓고 프랑스 등을 위주로 한 몇 유럽국가 국민들이 보여준 반대의 뜻은 처음에 유럽연합 탄생에 열열이 반응하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열망과 기대가 국민들에게 자리 잡아 있었는데 현재적 지점에서 각 국민들이 느끼고 반응하는 점들을 놓고 단순하게 평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보며 다각적으로 바라보고 연구되어야 한다.


  또한  그동안 UN의 합의 속에 그동안 세계 경찰국가를 자치하던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놓고 미국이 취했던 방식8)군사적 패권주의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정당성도 점점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엠마뉘엘 토드는 “미국이 제국의 수장으로서 맡는 이러한 역할에 대한 보상으로 받는 조공은 이 역할의 재생산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일본과 독일에서 주둔 미군의 주거와 식량을 공급받는 것 외에는 무기수출 소득이 있지만 그것은  무역수지 적자 액수를 메울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1000억 달러 이상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엔론사의 몰락의 사례가 그것의 운명의 전조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설명한다.”9) 그 운명이란 부의 갑작스런 ‘증발’이다.  그러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하여서도 신자유주의화를 통한 세계화 전략이다.  이것을 통해 세계의 부자들에게  더욱 집중된 잉여가치가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찾아 미국으로 몰려들게 만들거나 자국 내 잡아두려고 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미국이 선택한 신자유주의 강력한 파고가 본인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다.


  현재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단순히 문화 자체를 놓고  바라보는 것은 고전적 맑스주의자들이 맑스의 저작을 놓고 이론의 감성을 파묻고 논쟁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문화는 해체를 통한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적 양태들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바라보아야 하며 이것과 연관 되어 있는 정치, 경제 및 사회적 총체적 연관 관계 속에서 문화의 현재적 지점을 찾아야 한다.  나는 지금의 현실 문화운동 속에서의 문화운동이 아닌 르페브로가 지적 했듯이 일상성의 변화속의 도시라는 공간, 아나키 생태주의자인 북친이 말한 정치문화가 창출되고 경제의 연방화가 실현가능한 자치 도시주의이며 이것은 도시라는 공간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 일상성이 머무르고 활동하는 공간, 이러한 로칼리티적인 특성들을 어떻게 글로벌한 거대한 침략에 경쟁력의 상실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자신들만의 독특한 아이텐티티의 문화와 혼합된 하이브리드 문화를 만들어 낼 것 인가 이다. 국가가 만들어내고 기업의 홍보를 위한 후원아래 치러지는 올림픽과 월드컵은 국가들의 경쟁과 홍보를 위한 대리전을 띠고 있다. 이 기간에 세계는 하나가 아닌 각 국가, 민족, 대륙, 종교, 인종별로 분화되고 나눠진다. 국가는 이러한 애국주의를 교묘하게 국가주의로 끌고 가며 이용한 과거의 전례들은 너무나 많기에 여전히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그 문제점은 계속 될 것이다.  이 같은 국가의 대리전과 같은 세계축제가 아닌 진정으로 국가의 장벽을 넘을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문화만이 가능할 것이다. 21세기 문화를 어떻게 활용하고 만드느냐 따라 세계는 우리가 바라는 세계로 한 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국가의 개입은 필요 없으며 문화적 만남과 네트워크만이 존재 할 것이다. 현재의 문화적 현상 속에서  많은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국제 문화운동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러한 희망이 결실을 맺기 위해 무엇을 보강하고  준비 되어야 하는지  계속적인 대안들이 나와야 하지만 우선은  몇 가지를 제시 하려고 한다.

 


새롭게 거듭나기


문화 2.0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웹2.0이라는 온라인 용어가 오프라인에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웹2.0의 기본정신이라 할 수 있는, 참여-개방-공유의 특성 때문이다. 이러한 웹2.0이라는 마케팅적인 용어는 비즈니스2.0과 미디어2.0이라는 용어를 불러 오고 있으며 이제 문화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의미의 문화2.0이라는 용어로 다가갔으면 한다.


참여와 공유와 개방은  단체나 조직에서 상시적으로 말해오고 있지만 현재 정치조직을 비롯하여 NGO 조직이나 기타 시민 단체조차도  표방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은 자체 홈페이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에서와 같이, 사적 이익 혹은 조직의 이익 혹은 국가의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서는 참여만을 요구할 뿐 공유하거나 개방은 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일방적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단체와 조직은 오직  홍보와 참여를 유도하기만 하였지, 참여를 이끌어내는 정보-자원-서비스 등을 공유하거나 개방하지 않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참여와 공유, 개방의 정신을 철저히 단체나 조직들이 온라인에서 실현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태그, 트래픽, RSS 기능이 지원 안되는 홈페이지는 과감하게 폐기 처분 되어야 한다. 그리고 조직 간의 네트워크가 아닌 개인들의 네트워크가 가능한 홈페이지로 전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단체나 조직의 이름이 과감히 버려지거나, 아니면 그러한 목적과 홍보들이 뒤에 가려져 있거나 독점을 포기할 때 거듭 날 것이라 본다.   또한 이러한 문화2.0운동을 전개하고 문화적 지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전투적인 문화2.0 블로거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롭게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문화 활동가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활동가라고 생각하면 단순히 운동권에서 활동 했던 활동가들을 생각한다.  이 안에는 문화 활동가들도 포함 되어 있다.  과거 권의주의 정권에 대항했던 운동권의 활동가들이 대다수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많은 부분은 아니지만 권력화 되었음을 볼 수 있다. 권의주의 권력에 대항이 스스로의 권력화를 초래하고 조직이 분산적 권력을 이야기 한다지만 자율적인 틀이 아닌 기계론적이고 다양성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자기 안의 다양성만을 이야기 하였다.  조직적 틀 안에서의 토론 속에 이견을 달리하는 분파의 비판을 용납이 되지 않았으며 포옹력의 수용을 이야기 하면서 의견의 갈라치기는 언제나 존재 되어 왔다.  운동권 문화 활동가의 경우 이러한 치열한 사투의 중심에서는 벗어나 있었지만 권력화의 부분은 개인과 단체에 있어 문화 운동권내에 더 많이 존재 하였고 나중에는 그 권위적인 권력화의 부분이 급속히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되어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바둥거리는 모습으로 상업적 표피를 쓰고 대중 앞에 나타나곤 했다. 

‘플렝 뚜아 치윗’(pleng puea chiwit)이란 ‘삶을 위한 노래’라는 1970년대 태국의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발생한 이데올로기와 연관된 음악 장르 이다. 우리나라의 같은 시기 운동권을 중심으로 한 ‘민중가요’가 될 것이다.  그 당시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했던,  당시 사회적 현상에서 기존의 주류문화의 반대편에서 서서 치열하게 만들어진 민중예술들이 2000년대를 넘어 오면서 상업화의 전면에서 자본과 손을 잡고 박제화 되었다.  태국의 제도권 내에서 커다란 부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문화 형성에 일정정도 권력화 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서 오는 문화의 파급효과는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시대의 상황은 그 시대의 맞는 운동적 요소들을 만들어내고 형성해 간다.  과거 운동권에 몸담고 있었던  활동가들이  현재 시점에서  똑같은 실천적 활동을 한다든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이론적으로는 과거의 이론을 가지고 있으면서 활동상의 배어 있는 권위적이고 권력적인 내재성으로 인해 활력적인 활동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하지만 그동안의 축적된 경험을 가지고 이전과 다른 사유의 폭의 확장과 변화된 정세 속에서 연대의 고리를 만들어 간다면 새롭게 형성되는 문화운동 내에서도 그들의 활동은 새로울 것이다.  


현재의 시대적 상황에 맞는 활동가들은 주위에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과거 문화 운동권 활동가들이 아닌 새판을 짜야 한다.  꽃다지라는 문화운동권에서 아직도 유명한 노래패가 있다.  이들에게 나오는 노래들은 언제나 같은 분위기의 노래이다. 이들에게 다른 형태의 노래를 요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노래를 부를 것이고 자신들의 노래를 좋아하는 대중들과 소통을 통해 사랑을 받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보석이 되어 남아 있거나 해체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그래도 이들이 제도권에 몸담고 있는 더 권력화 되고 보수화 된, 새로운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집단들 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다른 대안적 요소들이 있다면 처음부터 새롭게 판을 짜야 한다.  이것은 현재 정치, 경제 사회적 지형 속에 문화로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변화이다. 과거의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다. 하지만 스스로는 변화하지 않으면서 현재의 운동적 방식이나 문화적 양태들이 변했다고 하면서 권위와 권력으로서 그것들을 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지점은 다른 새로운 문화적 형태들을 만들어 내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다.  문화는 그 만큼 수많은 욕망의 기호화 속에 창출되고 대안적인 것들을 만들어 내는 힘을 내포하고 있다.  삶의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이 문화라고 생각 했을 때  주위를 보게 되면 문화적 순수성을 지니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이러한 사람들이 경험적인 부족이 있을 수 있지만 문화에 대한 애정에 있어서 부족한 것은 없다고 본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론가들에 의해 정립된 이론과 베테랑 운동가들이 아니다.  일반적인 대다수의 사람들이 활력적으로 할 수 있는 이론적인 공유와 현재의 시대적 상황과 맞는 일반적인 활동가들이 필요한 것이다.


   

국가의 틀을 뛰어넘는 국제 문화운동의 시작은 온라인의 시작으로 부터


 이제는 국경이라는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자본주의 틀 내에 민족국가들이 지역적 국가 연합체나 초국적 기업들에 의해 절합 되고 국경을 뛰어넘어 자본은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세계화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막연함 보다는 이것을 어떻게 글로컬하게 만들 것인가에 문화적 힘을 모아야 한다. 거대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글로벌한 문화시장의 형성에 자폭이 아닌 이러한 거대자본과 맞설 수 있는 국제적 연대와 힘을 모아야 한다.

문화 다양성을 침해하는 요소들에 반대하고 문화적 가치 확산을 위한 교류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이와 관련된 민간 네트워크를 지원 강화 하며 양적으로 증대 시켜야 하며 새로운 질의 주체성을 획득하여야 한다.


  운동적 요소로 문화운동 속에서 파생되어져 나온 것에 대한 고찰과 경계의 구분이 조금은 애매 하지만 비운동적 요소들에게서 만들어 지는 다른 형태의 문화, 새로운 형태의 문화들을 문화 운동적, 비운동적 시각에 맞추어서 다양한 시도에 주목해야 한다.

얼마 전 실버라이닝이라는 랩그룹이 국제 에스페란토 한중일 세미나에 참석하러 북경에 가면서 천안문 광장에서 재미있으라고 찍은 랩을 노래하는 동영상을 중국의 에스페란티스토가 유티브에 올려놓았더니 프랑스의 음반제작사에서 6대륙 에스페란토 랩퍼들이 참여하는 에스페란토 프로젝트 음반을 제작하자는 연락이 와서 현재 제작 중에 있다.  이처럼 개인들이 올린 개인 동영상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세상이 왔다.  이것은 텍스트화 된 개인의 글뿐만 아니라 동영상이 인터넷의 검색을 통해 네트워킹 되고 있다.  블로그를 활용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기에 인터넷의 광장을 통해 모든 것이 모이고 흩어지게 된다.  초창기인터넷 사용자들은  인터넷의 참여와 공유의 정신에 열광하였다.  그 열광이 식어가는 즈음에 블로그 혁명이 일어나고 현재 국내에 개인 블로그나 홈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1,000만명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이제는 자신의 블로그나 홈피를 스스로 관리하기도 벅찰 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신속하게 개인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홍수는 무엇이 진짜 정보이고 쓰레기인지 구분조차 못하고 있다.  다음이나 네이버의 포탈업체들의 테두리에 한정되어 있는 카페 동우회들은 과감하게 그 틀에서 나와서 새롭게 문화2.0의 네트워크 동우회로 만들어져야 한다.  한정된 방문자를 깰 수 있는, 쉽게 검색이 가능하고 그것이 국내뿐만 아닌 국제적 네트워킹이 가능한 틀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시작은 온라인에서 시작 될 것이다.

문화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역시 온라인에서 새롭게 거듭나고 독점적인 방식이 아닌 오픈된 방식으로 새로운 문화운동의 전환으로 곧 만들어 지리라 기대한다.   

<참고문헌>----------------------------------
1) Urs Bitterli (우르스 비테를리) 스위스 역사학자

2) 참고로 미국은 당시 회원국이 아니었으며 1984년 유네스코에 탈퇴하여 2003년 다시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3) 문화권에 대한 학자들의 정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문화권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권리이면서 인권의 구체적인 실천영역(Halina Niec)
* 문화권은 문화유산이나 구체적인 사람들의 문화정체성, 문화발전을 보존하는 데 사용되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는 대중들의 권리로 간주 된다(Lyndel Prott)
* 문화권은 문화적 발전을 요구할 권리. 집단성의 권리(Rodolfo Stavenhagen)
* 문화권은 집단성의 권리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권리 (Elizabeth Evatt)
* 문화권은 보편성에 대한 욕망이라기보다는 다양성의 대한 욕망(Alice Tay)
4) 1998년 캐나다 퀘벡에서 시작, 세계 90여 개국 600여 문화단체가 소속된 연대기구로 문화예술을 자유무역의 대상으로 거래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 속에서,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지니지 못한 소수 문화를 보존하여 세계 문화다양성을 증진시키자는 목적으로 결성된 기구이다. 2004년 6월 서울에서 세계 57개국 400여 명의 문화전문가와 문화단체 대표들이 참석하여 대회를 진행하였다.
5) 영화산업에서 헐리우드 영화의 세계 영화시장 85% 장악, 디즈니 뮤지컬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를 보면 VIP나 R석을 기준으로 두 자녀를 둔 가족이 지불해야 할 돈은 40만~50만원 규모

7) 경제통합의 가장 큰 형태는 유럽연합이다.  지역화를 자유무역을 넘어 경제통합의 수준으로까지 진전시킨 지역화의 선진적 형태이다. 이것은 모든 회원국이 자국의 고유한 관세와 수출입제도를 완전히 철폐하고 역내의 관세와 수출입제도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1993년 11월에 창설된 유럽연합에는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뿐만 아니라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 10개의 중유럽 및 동유럽 국가들이 가입했거나 가입협상을 벌이고 있다. 또 유럽연합은 나프타 회원국인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여 2000년 7월 1일부터 동 협정을 발효시켰고 나프타 및 남미남부공동시장과도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모색함으로써 그 외연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8) 미국내 최대 무역 적자국이다.  이러한 불균등의 균열을 강력하게 막아 주는게 전 세계 금융자본이 미국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세계 부자들의 금융재산을 보호함으로써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자본은 국경이 없으며 이동과 융합이 현실화 되었다. 이것과 아울러 미국내 군수 독점자본의 이익과 석유 독점의 이익이 결부 되고 또한  유럽과 러시아의 정치 군사적 강력한 통제의 제동 장치의 지정학적인 위치와 자국 내에서 이루어지고 현상들을 타파하기 위하여 점점 패권주의 유혹에 이끌리도록 만드는 조건이다.

9) 엠마뉘엘 토드, 『제국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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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희망세상 2006/11/30 17:22 DELETE

    Subject: 문화운동의 살핌과 고찰 그리고 새로움

    문화운동의 살핌과 고찰 그리고 새로움 안 종 수 (희망비젼) 문화를 놓고 개념상의 문제에 매달리는 것들을 피하면서 좀 더 포괄적이면서도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문화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지 다루고자 노력 하였다. 물론 주류 강단학자들이 논문의 주제로 다루어져 왔던 기계론적이고 분류학적인 것은 될 수 있으면 피하면서 상황들에 대한 조사를 위주로 문제점과 아울러 작게나마 대안적인 제시로서 현재적 시점에서..
  1. artworld 2008/03/31 22:33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문화로 기자단입니다.
    희망세상 안종수님의 글이 ‘네티즌 문화정책’ 코너에 추천/등록 되었습니다.
    문화로는 올바른 문화 정착과 적극적인 문화정책 반영을 위해 열심히 뛰는 중입니다^^

    <문화로>는 각 문화단체 및 문화예술인,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문화예술 전문 정책 정당인 문화예술당을 후원하는 카페입니다. <문화로>는 우리 문화가 가야할 방향을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며, 여러분과 함께 바람직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문화로> cafe.daum.net/culture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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