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여덟 번째 마당-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 (원주민 전통풍물시장 오스발도, 꼬차까치 편 2011. 2/24-2/28)

엄마~우리 같이 살아요..엄마 엄마...앙앙앙 엄마 없이는 못산단 말이야...엉엉엉 엄마 엄마 가지마...미워 미워...꺼이꺼이... 얘야, 저 아지매가 맛난 것들이랑 실컷 줄꺼야... 말 잘 듣고 배불리 먹으면서 튼실하게 잘 자라다오... 착하지...우리 애기..흑흑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돼지 모자(母子) 이별로 피눈물이 뿌려진다. 인간이나 가축이나 똑같은 헤어짐의 아픔을 온 몸으로, 억센 저항으로 버팅겨 보지만 맥없이 돌아서야 하는 검은 돼지의 애 간장을 녹이는 이별가가 아침 공기를 세차게 가른다. 2011년 2월 26일, 없는 것 빼고 있을 것은 다 있는 에콰도르의 북부 지방 오타발로(Otavalo)의 전통풍물시장은 새벽 4시 가축시장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다.

닭, 소, 돼지, 알파카 심지어는 뱀까지 등장하는 전통 풍물 가축시장에서는 식전 댓바람부터 울어대는 어린 가축들의 애끓는 소리가 여행객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한바탕 울고 불고 생난리를 겪고 난 후 새 주인이 쓰다듬어 주는 따뜻한 손길에 안심해 하면서도 연신 엄마 돼지를 찾아 그 작고 여린 눈길을 여기저기 돌린다. 가축이기 이전에 이들도 똑같은 생명을 가지고, 감정을 가진 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중생임을 새삼 느끼면서... 만해의 말씀처럼 만날 때 이미 헤어짐을 염려해야 하는 것을 아기 돼지는 듣도 보도 못한 채 그저 엄마의 흔적을 찾아 동그랗게 말린 짧은 꼬리 요리 조리 흔들며 불안한 심사를 표현한다.

매주 토요일 7일장으로 열리는 오타발로 전통풍물시장에는 이곳 원주민들의 전통인 남녀노소들이 머리를 세 가닥으로 길게길게 땋고 선조들이 전해 준 기법들을 적용한 다양하고 멋진 상품으로 변신한 많은 물건들을 펼쳐 논다.

알파카털로 짠 편직물에, 희디 흰 브라우스, 정열적인 색채가 돋보이는 미술작품들,
손으로 일일이 조립하고 즉석에서 만드는 악세사리, 막 고인돌에서 발굴해 온 듯한 인형들... 튼튼한 마직으로 만든 안락한 해먹에, 세련미와 유머가 넘치는 도자기 작품들,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명작, 멋들어진 모자 등등... 시몬볼리바르 광장에서부터 중앙로를 관통하는 시내 요지 곳곳에 신나는 풍물시장이 하루 종일 열린다.

누렁이, 얼룩이, 거무튀튀한 동네 변견들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신바람내며 떼 지어 몰려 다니고, 호호 깔깔 남녀 청소년들은 물 세례에, 헤어 스프레이 뿌리면서 관심있는 이성에게 애정을 표시하고...
지글지글 돼지 껍데기는 동글동글 말리면서 노릇노릇 익어가고...왁자지껄...
가난한 살림살이의 조그만 좌판들이지만 알록달록 원색적인 흥겨운 시장에
웃음꽃이 펄펄 피어난다.

흥정은 기본이요, 거침없이 할인도 할 줄 아는 이곳 원주민들의 온화한 표정 때문에 깎아 달라 떼를 썼지만 괜히 미안하고, 빳빳한 지폐를 쓰고도 아깝지 않다.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원주민 전통이 살아있는 풍물 시장이 끝나면 오타발로 중앙로에는 강렬한 미국 팝송이 신식 젊은이들을 불러 모은다. 디스코 열풍이 지금 남미를 강타 중인지 가는 곳 마다 마이클 잭슨과 존 트라볼타와 보니 타일러 등등 디스코 열풍의 주역들이 이곳을 달군다.

오타발로에서 시내 버스로 약 30분이면 도착하는 꼬따까치( Cotacachi)는 꾸이꼬차라는 거대한 화산 호수( Laguna del Cuicocha)로 유명한 곳이다.
마치 백두산 천지를 보는 듯 고요한 적막에 쌓인 이곳을 향해 가는 곳곳 마다 솜사탕 처럼 뭉게 뭉게 걸려 있는 둥근 구름들이 너무 예쁘다. 너무도 착한 버스 가격(오타발로에서 꼬따까치까지 1인당 0.25센트)에도 즐거웠지만 이곳 꼬따까치 시내에서 만나는 가죽 시장은 미국 여행자들마저 인정하는 세련되고 질 좋은 가족 제품들로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검은색, 흰색 빨강은 기본이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 무지개빛 가죽 제품을 감상하는 것도 색다르다. 가방, 모자, 롱코트, 자켓, 신발 등등 가죽의 다양한 변신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지난해 경찰들이 봉급 인상을 요구하며 대통령을 납치했던 오싹한 외신 하나로 에콰도르라는 나라와 사람들을 오해했다면 큰 실수인 이곳은 짚푸른 녹음이 산하를 뒤 덮은 싱싱함이 살아있고 사람들의 수줍은 미소와 마주보지 못하는 순한 눈빛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적도의 나라라고, 과격한 국민들이라는 오해를 안고 이 나라를 그냥 지나쳤다면 정말 땅을 치고 후회했을 곳이다. 미안해, 초록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순박한 나라 에콰도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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