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일곱 번째 마당-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 (키토의 적도박물관, 문화의 집, 과야사민 기념관 방문 편, 2011. 2/21-2/25)

싱크대의 물이 빙글 뱅글 돌지도 않고 그냥 바닥으로 쏴악~쏟아지고, 녹슨 못 위에 계란을 꼿꼿하게 세워 놓을 수도 있으나,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린 채 정신일도 하사불성, 아무리 반듯하게 걸으려 해도 갈지자 주정뱅이 품새로 비틀거리게 되는 세계 유일의 장소, 위도가 제로인 곳, 적도박물관(Museo de Sitio Intinan- 이곳은 사립)은 국가와 개인이 서로 개성 만발하게 운영한다.

사립박물관이 더욱 운치 있고 아기자기 실험을 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면, 국립 적도 박물관에서는 다양한 기념품들과 형형색색의 벽화 등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뭐니뭐니 해도 이곳(사립 적도 박물관)에 오는 사람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바로 이것!!

어느 여행자의 말대로 세계 7대 불가사의 반열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인디오들의 기념품,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얼굴 그대로를 축소해서
목에 걸고 다니는 목걸이(?)로 만드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 방식도 아니고, 포르말린에 보관하는 형식도 아닌 이목구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안면을 손상 않고 보존하는 방법은 지금껏 밝혀지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약 2-300년 전의 원주민 얼굴이 마치 인형처럼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끔찍 오싹하기도 하지만, 상당한 해부학 및 의학기술을 가지고 있음에 놀랍기도 하다. 스산하게 쏟아지는 보슬비와 축 늘어져 있는 보아뱀,
쫙쫙 찢겨진 동물 박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이곳의 광경은
한 편의 괴기 영화를 찍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지만,
남성들의 성기가 너무 거하게 커서 배 위로 끌어올려 단단히 묶어 놓고 활동했다는 과라니족의 마네킹을 보면 어느새 찡그렸던 이마가 절로 펴진다. 서로 비교 하느라고 방문하는 거의 모든 남자 관광객들의 손이 저절로 아래로 향한다.^^

한국식당 고향집 사장님의 푸근한 인정으로 따뜻해진 가슴을 안고 키토 시내 문화의 집(Casa de Cultura)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시작하는 에콰도르 전통 예술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산 블라스 광장( San Blas)옆에 위치한 호스탈 벨몬트(Velmont)의 너무도 착한 가격(한사람이 1박 6달러)에 감격할 새도 없이....

이름하여 JACCHIGUA, 90명의 무용가와 음악가, 2,800kg의 의상들이 등장한 에콰도르 민속 무용공연은 화려함과 유머가 넘치는 공연이었다. 유난히 모자를 형형색색 장식한 다양한 춤(The Hat Dance)과 사슴사냥춤(The Deer Hunt), 들판에서 첫눈에 반한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고, 성행위를 나눈 후 예쁜 애기가 탄생하는 춤 등을 향긋하게, 코믹하게, 때론 격렬하게 표현한다. 또한 요모조모 소품으로 활용되는 다양한 모자와 두툼하고 큼지막한 판초의 쓰임새가 결국은 사랑을 나누는 잠자리로 적나라하면서도 유쾌하게 표현된다.

리듬도 악기도 의상의 색깔도 거의 비슷한 안데스 산맥에 인접한 페루 볼리비아의 춤까지 한데 뭉뚱그려 놓은 것이 다문화, 다인종, 다언어를 가진 에콰도르 민속 문화로 승화된 점이 돋보였다. 일인당 30달러를 관람비용으로 지불하였지만, 거의 100여명에 달하는 출연진의 비 오 듯 흘리는 땀방울에 비하면 정말 미미한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박수~)

우리나라에 박수근 화백이 있다면 에콰도르에는 국민화가 겸 조각가인
오스왈도 과야사민(Oswaldo Guayasamin)이 있다. 1919년 원주민 아버지와 메스티소(스페인과 인디언 혼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 원주민의 고통과 한과 울분을 숱하게 경험한다.

그의 작품의 저변에는 기쁨보다는 슬픔을, 소망과 바램 보다는 극한 절망감을, 아픔을, 무언가를 절규하는 비탄에 빠진 눈빛과 뼈마디가 앙상한 손들이 많은 말들을 대신해 준다.

마치 에콰도르 판 게르니카를 연상케 하는 작품(Mural de La Miseria, 1969작)에서부터 예수의 죽음을 표현 한 피에타(PIETA', Avignon 원작)를
재해석해 놓은 작품, 칠레의 독재자 반 피노체트 운동까지를 그림으로 형상화 한다.
1963-1965년에 완성한 과야사민의 일그러진 자화상(AUTORETRATO)을 보노라면
그가 얼마나 현실에 대한 고발과 타협 않는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려 애썼는지
진실한 예술가의 고뇌가 느껴진다.

로이 리히텐스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우리나라 초강력 울트라 빵빵 재벌가 사모님의 취향 때문에 눈물도 어마어마한 돈으로 변신하였다면, 과야사민 작품 속의 피눈물들은 아직도 잠들지 못한 에콰도르 원주민들을 해원하는 참된 예술가가 바치는 비나리이리라.

“나는 신발이 없어서 울었다. 발이 없는 사내아이를 보기 전 까지는.” -과야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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