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네 번째 마당- 달콤 살벌한 마추피추 길 (비 오는 날의 공포 특급 마추피추 행, 2011. 2/7-2/8)
아~ 너무한 당신, 마추피추(Machu Picchu)!!
그대를 보러 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 오싹할 줄은 꿈에도몰랐어요.
지금은 돌아와 거울 앞에 서 있어도 그대만 생각하면가슴이 쿵쾅거리고, 애꿎은 방광이 팽창하면서, 모든 이성이 마비되어 버린답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오금이 저려서, 죽기 살기로 민방공 훈련도 아니고,
지진 대피 훈련도 아닌 낙석 도망 훈련은 너무도 끔찍 했답니다. 90도 각도 깎아지른 산위에서 떨어지는 크고 작은 돌멩이가 저승사자와 동기동창 뻘 되는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비오는 날 의기양양 차를 타고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이 목숨 두 서너 개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죽고 싶어 환장하지 않은 이상은 비가 많이 오는 이곳 여름날, 당신과의 황홀한 미팅을 즐기러 갈 때는 삼신 할매께 고래 심줄 보다 더 질긴 명줄꾸러미라도 얻어서 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답니다. 살벌 달콤한 그대, 마추피추여!!

2011년 2월 7일 오전 8시 옛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Cusco)를 출발한 벤츠가 각국에서 온 15명을 태우고 1시간 30분 만에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이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휴게소에서 가벼운 아침을 대신하고 저 멀리 솜사탕처럼 펼쳐놓은 하얀 구름을 헤치고 달리는 흥분과 설레임이 지금까지는 근두운 타고 싱글거리는 손오공 같은 기분이다. 기암절벽 위에 짙은 초록의 키 작은 잔디와 연두색 사각의평야가 노랑꽃들과 어우러져 싱그러운 녹색 양탄자라도 깔아놓은 것같다. 굽이굽이, 요리조리, 빙글뱅글, 뱀처럼 구불거리는 길을 겁도 없이 봉고차들이 쌩쌩 달린다. 해발 고도 3,000m가 넘는 산을 두 개나 타고 넘어야 한다는 말에 모두 잠시 재잘거림을 멈춘다.

창밖을 내다보면 깎아지른 절벽에 오싹 살벌하나, 하늘을 보면 구름 위를 달리는 것 같아 황홀 달콤하기만 하다. 그러나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직선의 차도가 그립다. 험난한 곡선의 길을 타고 오후 1시 45분에
도착한 곳(도보로 산타 테레사 도착 약 20분 전 정도의 거리)에서는
커다란 불도저가 길을 막고 있다.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룰루랄라 관광객들은 잽싸게 차에서 내려와 하늘 위에 부웅~뜬 기분을 만끽한다. 그 와중에도 카라를 비롯한 애연가들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듯이 뭉게뭉게 담배 연기를 구름 앞에서 자랑한다. 상황을 보아하니 연일 내리는 비 때문에 무너져 내린 낙석으로 유실 된 도로를 복구하기 위해 불도저가 무거운 몸을 돌려가며 끙끙 일을 하고 있다. 연신 산 위에서는 크고 작은 돌멩이가 쉼 없이 쏟아져 내린다. 소리마저도 오싹하게 스샤샥.... 20분을 기다리고 30분을 기다려도 흐르는 돌들은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 쌓이는 돌덩이로 어느새 도로 위가 수북하다. 이제야 분위기 파악이 된 듯 순식간에 15명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감돈다. 모두들 차에서 내려 저 떨어지는 낙석 밑을 후다닥 건너가야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그러지 않고서는 여기서모든 마추피추 방문 일정을 포기하고 다시 쿠스코로 돌아가는 방법 밖에는 없다.

모두 다 예서 멈출 수는 없다고 주섬주섬 자신의 짐들을짊어지고 길을 나선다. 눈 짐작으로 보아하니 약 4-5m만 잽싸게 휘익 건너만 가면 모든 일이 다 잘 마무리 될 것 같다.

이 까짓 것 쯤이야 우습게 건너가지 않을까 하는 방심에 경고라도 보내 듯 칠레에서 온 여대생이 건너는 순간에 사람 머리통 3-4배 만한 커다란 돌덩이가 그녀의 바로 코앞으로 떨어졌다. 순간 모두 혼비백산...엄마야~ 사람 살려 라는 말도 채 못하고 그냥 넋 놓고 주저앉아버린 그녀... 천만다행으로 큰 사고 없이 마무리 된 일이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긴장과 공포의 특급 실화를 체험한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난 후 걸어서 도착한 산타 테레사(Santa Terresa)는 해발 고도 1,540m의 지역으로 다행히 고산증을 크게 느끼지는 않는다. 점심 식사 후 이곳의 다른 차를 이용하여 오후 4시 40분에 드디어 마추피추 진입 지역 Intiwatana에 도착하였다.(휴~) 야호~이제는 고생 끝 행복 시작만이 우릴 기다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쪼잔한 사기와 거짓말이 난무하는 페루의 곳곳...정말 밉다. 처절한 산 속의 방황이 지금 또 다시 펼쳐진다. 우리와 함께 하기로 한 관광 가이더는 무슨 이유인지 산타테레사에 홀로 남고 우리에게는 지도 한 장 달랑 주면서 여기서부터철길을 따라 약 2시간만 가면 우리가 오늘 저녁을 보내게 될 호스탈(Hostal)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이 말하는 한 두 시간은 절대 사실이아니라는 것... 녹슨 철길 따라 게릴라 훈련도 아니고 해병대 극기 훈련도아니고... 나 원 참...세상 태어나서 물 한 병에 의지하여 산길을 헤치고, 돌담을 낑낑 오르며, 울퉁불퉁 기차 길에 의지하여 걷는 것도 처음이다.

발에서는 열불이 나고,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고, 가끔 들리는 이상한 굉음소리, 우리들 옆으로 흐르는 성난 물소리가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 것만 같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물은 다 마셔서 없고, 별들마저 다 잠들었는지 앞 사람의 뒷통수도 안 보이는 칠흙 같은 어둠 따라 점점 분주해지는 발길들...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불빛... 오직 서로 꼬옥 잡은 두 손에 의지하며 어둠을 헤쳐 나간다. 20대 글로벌 청춘들의 혈기왕성 모험 길에 50대의 철딱서니 없는 두 양반이 따라 나섰으니, 숏다리인 로자로서는 롱다리의 그들 보조에 맞추기가 진땀이 난다.
아니, 왜 자꾸 이런 심한 여행을 하는데? 모험이고 도전이고 난 이젠 정말 싫어... 원래 이런 것이 아니잖아? 기차타고 그냥 슬슬 마추피추 다녀오는 것 아니었어? 왜, 굳이 이런 고생을 비싼 돈 주고 사서 하는데? 난 특공대원도 게릴라도 되기 싫다고... 아들 처럼 신병 훈련이라도 받겠다는거야?... 징징...앙알 앙알..
로자의 푸념과 불평에도 아랑곳 않고 씩씩하게 걷는 카라의등짝에서도 연신 땀이 흐르고, 젊은 청춘들도 헥헥거리며 혀를 뽑아내고, 시커먼 어둠이 유령처럼 나타날 때 쯤 우리의 호스탈이 불빛과 함께 다가왔다. 녹슨 철길 따라 어두운 산속을 헤맨 지 거의 3시간 만에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하였다.(휴~)

저녁 식사 후 맥주라도 한잔 하자는 칠레 대학생들의 청을뿌리치고 돌아오자 마자 골아 떨어진 잠이 채 익기도 전에 방문을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났다. 걸어서 마추피추를 올라가는 사람들은 새벽 4시 30분에 출발해야하고 버스를 타고 가는 우리는 5시에 준비를 완료해야 한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 소리가 찬란한 마추피추에서의 일출을보러 온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준다. 마추피추로 올라가는 버스 티켓(두 사람이 48솔)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행렬이 길게 서 있다. 비는 속절없이 내리고 이미 버스 비용을 지불한 우리로서는 다시 한번 지불해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기분이 상한다. 자잘하게 사기치고, 너무 자주 말을 바꾸고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관광객 상대로 영업하는 사람들, 일종의 삐끼) 때문에 김이 팍팍 센다.

2011년 2월 8일 화요일 새벽 6시, 비 맞으며 줄서서 기다린 지 1시간 만에 표를 사고 마추피추로 향한다. 비 오는 여름날에는 함부로 사람들의 범접을 허락지 않겠다는듯이 마추피추를 둘러싼 안개가 신비함과 경외감을 안겨준다. 이 높디높은 곳까지 어떻게 저렇게 많은 돌덩이들을 운반하고, 조립하고 견고하게 건축했는지 의문과 놀라움이 많은 사람들을 오게만드나보다.

수직의 높다란 산자락에 걸린 안개로 엮어 만든 카페트를타고 백호와 청룡을 거느린 산신령님이 나타나 엄히 호령할 것같다.
악랄한 스페인 정복자들도 찾아내지 못한 공중 도시를 코 큰 어느 미국인(하이램 빙엄 교수)이 찾아내는 바람에, 1911년 7월 이후 맘껏 조용히 정신 통일하여 도를 닦지 못하고 있다고... 새벽, 아침 한낮 할 것 없이 개떼처럼 몰려오는 불온한 중생들땜에... 백호도 청룡도 정서가 불안하고 산신령님도 절로 늙을 판이라고...
하루 입장객 3,000명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 하지만, 연일 내리는 이곳의 여름날(12, 1, 2월)의 세찬 비바람으로 언덕도 구릉도, 레고 블록처럼 쌓아진 건축물들도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늙은 봉오리라는 뜻의 마추피추는 페루 남부 쿠스코시의 북서쪽 우루밤바(Urbamba)계곡에 있는 잉카제국의 산실로서 남위 13도 09분 23초, 서경 72도 32분 34초, 해발 2,433m에 위치해 있다. 험난한 산과 절벽, 밀림에 가려져서 밑에서는 볼 수가 없고 오직 공중에서만 확인 할 수 있다하여 공중도시라 불리는마추피추는 약 2,000년 전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으며, 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이것을 세운 잉카인들이 어느날 갑자기 왜 사라졌는지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고 있다한다.
태양의 신전, 해시계, 산비탈위의 계단식 밭, 콘돌 모양의 바위, 피라미드 등 약 1만 여 명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마추피추는 스페인의 정복자들의 손이 닿지 않은 유일한 잉카 유적지로 현재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흐렸다 개었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런 마추피추와 이별을 고하고 내려오는 길에는 배! 째라 부부 둘만이 용감무쌍한 발걸음을 옮긴다. 두 번 다시 이러한 특별한 추억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발가락에물집이 잡히도록 걸어 내려왔다. 한 시간만이면 충분하다는 그들의 생활화 된 거짓말에 또 한번 속으면서...
어디선가 검둥개가 짠하고 나타나 우리의 길을 안내한다. 버스가 오르내리는 길을 피해 산속의 돌계단을 이용하라는듯, 처음 보는 검둥개가 우리가 올 때 까지 기다렸다가, 우리가 보이면 다시 조금 앞장서서 간다. 신통방통하게도 이 녀석에게 물 한 모금, 소시지 한 개 던져 준적도 없는데 우릴 위해 기꺼이 개 발에 땀나도록 안전하게 우리의 길잡이가되어준다. 너무 고마워서 함께 기념사진이라도 찍으려 하면 엉덩이를 쌩하게 돌려 다시 저만큼 냉큼 앞장서서 가버린다. 쩨쩨하게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보다 이 녀석이 훨씬 믿음직하고 멋지다^^ 경이로운 마추피추와 검둥개의 호의로 즐거워진 기분도 잠시, 오후 1시 30분 기차를 탄지 1시간 20분 만에 어제 오싹했던 그 도로에 이웃한 산타마리아에 도착했다.

연신 도로 복구 차량과 일손들이 넘쳐나도 거대한 자연의 성난 몸부림 앞에서는 모두다 어찌 못하고 손을 놓아 버린다. 산타 마리아(Santa Maria)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후 3시 55분 혼비백산 했던 어제 그 도로에 도착하였다. 여전히 불도저가 길을 막고 있지만 낙석의 빈도와 강도는더해만 간다. 모두가 근심스런 얼굴로 입을 다문 채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산속의 어둠은 너무 빨리 찾아오고 더불어 공포의 빛은 더욱역력하고.. 저 낙석의 떨어지는 길을 죽기 살기로 건너갈 것인지 말것인지...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고... 무대뽀 우리의 운전사는 뭘 믿고 그러는지 막 밀어 부친다. 꽝 꽝!! 사정없이 떨어지는 돌덩이가 우리의 차 옆구리를 강타했다. 벼락이 떨어지는 듯 한 무시무시한 괴성이 뒷 자석에 앉은 독일인 커플을 공포에 울게 만들었다. 부들부들 떨며 담배를 피는 독일인 커플의 한마디가 모든사실을 간결 정확하게 집약해 준다.

크레이지!!(미쳤어~) 이런 계절에 이런 여행을 선택한 우리도 미쳤고... 이런 위험한 도로를 강력히 봉쇄도 않고 그냥 쓱싹 넘어가는 페루 도로공사도 미쳤고... 온갖 술수로 관광객들을 요리조리 유혹하는 여행사들도 다미쳤어...
빨리 빨리!!(라피도, 라피도...스페인어)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두 다 폭격을 피해 달아나는병사들처럼 짐 꾸러미 가슴에 안고 후다닥 뛰어 내리는데 군기가 꽉든 신병들도 이보다는 더 빠르지 않으리라. 흙탕길을 질퍽이며, 퍽퍽 빠지는 무너진 도로를 헤치며 모두가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이를 악물고 그 길을 도망쳐나왔다.
타이어 펑크는 물론이요, 날씬했던 벤츠 옆구리가 찌그러져 처절했던 순간을 증명해준다. 공포 특급 낙석의 쓰나미는 연신 이어지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15명의 글로벌 이웃들은 새삼 생사고락을 함께 한 용사들처럼 진한 전우애를 느끼게한다.

짙은 안개를 헤치고, 흉기가 되어 떨어지는 돌덩이들을 피해 1박 2일간 마추피추를 오고 갔던 잊을 수 없는 여정은 인간 한계를 극복한 불가사의한 절경에 달콤하고 황홀한 기운을얻었지만, 혹독한 비바람으로 오만방자한 인간들의 무대뽀 호기심에 살벌한 경고를
던져주었던 한편의 공포 특급 실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