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번째 마당(6/21-7/13, 호주 아들레이드에서 피어난 에스페란토의 향기)
약 두 달 동안의 행복했던 호주 최남단 태즈마니아주의 여행을
마치고 아들레이드로 향하는 길이 꽤나 성가시다.
새파란 숫처녀같은 순수함으로 우릴 맞을 것 같았던 저가
항공사 버진블루가 배! 째라 부부의 속을 박박 긁는다.
짐으로 부치는 수하물에도 돈을 요구하고 심지어는 기내의
오렌지 쥬스 한 잔에도 계산서를 발행한다.
이건 뭐 완전히 뒤통수 맞는 기분...
싼 게 달리 싼 게 아니구먼...이렇게 뜯어내고 저렇게 충당해
나가는 것이 순박한 처녀가 아니고 산전수전 다 겪은 속물 같다.
거기에다 1시간 30분이나 멜버른 공항에서 연착하는 불상사로
심통 밥통이 부글부글 끓는다.
아니, 안개도 없고 날씨도 이렇게 화창하고 좋은데...
C C...도데체 뭔 일이래...
(궁시렁 궁시렁....중얼중얼...붉으락 푸르락)
호주 본토 아들레이드의 브리지워터로 초대한 우프 호스트는
조지이다. 배! 째라 부부는 조지가 남자인줄 알고 이메일에
미스터 조지라고 꼬박꼬박 존칭을 적어 보냈다. 알고 보니
조지가 부인, 더크가 남편, 자라는 11살 난 아들이다. 카라가
이들을 한꺼번에 ‘헬로~떡 조지 자라’ 하고 성질 급하게
부를 때마다 뒤집어지는 로자의 웃음소리에 세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같이 싱글거린다.

성명들도 참으로 거시기한 게 이름만 들어도 재미있어
배! 째라 부부 매일 매일 자지러진다. 독일 출신의 번역가 더크와
남미계의 강인한 인상을 갖고 있는 조지는 연하남 연상녀 커플로
보인다. 조지가 정원에서 삽질하고 있어도 연하의 잘생긴 남편은
두 손 바지 주머니에 꾹 찔러 넣고 멀뚱거리며 쳐다보기만 한 채
같이 거들 생각도 않는다.
자고로 동양이든 서양이든 미남 남편 데리고 사는 일이 참으로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 같구먼...
돈 못 벌어와도, 하는 모양새가 아니꼽고 치사해도 꾹 참고
살아야 하고, 손톱에 때가 낄까봐 절절거리는 모습도
사랑스럽게, 멋있게 보아야하니 말이다.
아~ 로자는 정말 다행이다. 연하의 미남과 같이 안 살아서~~
이런 꼬락서니를 보면 복통 터져서 삼신 할매 주신 명줄
부여잡고 살아갈 수나 있을까...
11살의 자라는 아빠의 훤칠한 모습을 닮은 귀엽고 잘 생긴
소년이다. 장래 희망이 쉐프(요리 명인)와 훌륭한 축구선수가
꿈이라는 그는 스페인 축구단의 열렬 팬이면서 월드컵 우승도
스페인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명랑한 이 소년도
엄마 조지의 잔소리에는 풀이 죽어 단숨에 하던 놀이도 멈추고
제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신세가 된다.
앙알 앙알거리는 조지의 지친 목소리에는 철부지 남편을
대신하여 자라가 가장으로 우뚝 성장하여주길 희망하는 것처럼
들린다. 낯선 땅에서 만난 이들에 대해 배! 째라 부부의 상상력이
오지랖이 넘게 설쳐대는 것인가?
얼키설키 엉크러진 가시 많은 불랙베리 나무를 베어낸 그 자리에
심은 유칼리나무와 이름 모를 과실수들이 싹이 나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갈 때 쯤이면 이 부부의 희망 자라의 키도 부쩍부쩍
자라나서 이들과 함께 값진 결실을 맺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친절한 에스페란티스토 산도르가 사는 아들레이드는 호주 남부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의 주도(州道)로서 현 호주 최초
여성총리 줄리아 길라드가 자라난 곳이다. 영국 웨일즈
태생으로서 어린 시절 폐렴에 시달리던 그녀의 건강을 위해
따뜻한 곳으로 옮겨 오기로 결정한 곳이 바로 이곳 이라고 한다.

인구 110만으로 호주에서 5번째로 큰 해안도시 아들레이드는
사계절이 비교적 온화한 곳으로서 토렌스강을 중심으로
북아들레이드와 남아들레이드로 나뉜다. 길게 뻗은
킹스윌리암스 스트리트를 사이에 두고 북아들레이드는 유럽풍의
고풍스런 석조 건물들이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서 있는
반면 남아들레이드는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되고 파격적인 건물과
문화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와 고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곳에서 만난
에스페란티스토들과의 만남과 교류는 에스페란토라는 용어의
어원과도 같은 희망 그 자체였다.
본의 아니게 하루 일찍 도착한 아들레이드의 중앙역에서 만난
산도르의 상쾌한 미소가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지난 1년 동안 한국에 교환교수로 와 있었던 산도르와 카라는
이미 막역한 사이로서 이국땅에서 이산가족 상봉하듯
뜨거운 포옹으로 반가움을 대신 한다.
빅토리아 스퀘어 가든역에서 공짜 시티써클 버스를 타고
산로르의 장모님 패트 여사댁으로 향하는 발길이 마냥 신난다.
약15분 후에 내린 곳은 멋드러진 나무들이 얼마나 상당 하길래
역 이름도 굳우드(goodwood)이다.

마치 무당 빤쓰라도 입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패트 여사가 집을
비우는 날짜를 정확히 알아 맞추어서 이곳에 도착 한 것이다.
산도르의 놀란 음성만 들어도 이미 우리는 배! 째라 도사님이
되어 버린 것이다.
트레 스트랑가...(참말로 이상허데이...)
키엘 비 코니스 티안 팍톤?...
(집 비운단 사실 어찌 알았당가?...)
산도르의 궁금증도 잠시, 흥겨운 콧노래와 함께 도착한
패트 여사댁은 호주 정부가 은퇴자들에게 수여하는
공용주택이었다. 아담힌 붉은 벽돌의 2층집으로서,
1층에는 응접실과 주방, 세탁실, 화장실, 2층에는 2개의 침실과
서재와 욕실 등이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맑고 화창한 햇빛
만큼이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아파트이다.
빛과 소금같은 이곳에서 우리는 2주 동안 호주에서
제2의 신혼 같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냉장고에 가득한
식료품들이며, 거실 가득 쌓여있는 비디오, DVD, 서적들이
우리의 늘그막한 신혼을 더욱 향기롭게 해준다.
입에 귀에 걸린 채 배! 째라 부부만의 늘어진 아들레이드의
여행 또한 행운의 여신이 보내주는 선물로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두 손을 맞잡는다.
지난 5월 멜버른에서 만났던 당찬 신혼부부 박하와 호호센을
이곳 산도르의 공동체 보금자리 ‘셀리 후(Seli Hoo)’에서
또 다시 만난다. 이왕 한국인들이 5명 (한명은 한국 유학생)이나
모여 있으니 한국의 밤 행사를 갖자고 산도르가 제안한다.
한국음식과 춤과 음악이 흐르는 조그마한 페스티벌을 갖기로
결정한 이상 우리l의 먹거리 준비와 양반춤 연습을 해야하는데...
늘어지게 게으름 피우던 시간이 새삼 근심스럽게 다가온다.
산도르와 함께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애니가 토요일 오전에
한국의 아름다운 춤을 이곳 주민들께도 구경 시켜주자는 말에
흔쾌히 찬성!
토요일(7월 3일) 직거래 장터가 클래어랜스 파크 커뮤니티 센터
(Clarence Park Community Centre) 대강당에서 열린다.
유기농을 사고 파는 친환경적인 행사의 서막을 알리는 공연이다.
한껏 단장한 양반춤과 흥겨운 아리랑이 울려 퍼진다.
연방 뷰티풀을 날려주는 이들은 이미 예술을 아는 멋쟁이들이다.

저녁에는 김밥과 된장국, 비빔밥의 향기로운 냄새와 함께
익어가는 박하의 랩과 로자의 양반부채가 휘늘어진
신록만큼이나 신선한 즐거움을 전해주기 위해 부산하다.
이왕 시작한 발걸음 다음 주 아들레이드 대학
영어교육원(ELS)에서 한 번 더 우리의 공연을 주문한다.
콤프레네블레!!(물론이고 말고요!!) 동서양의 청년들과 교수들의
아낌없는 박수와 관심 속에 우리의 속전속결 공연이 3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나날이 개선되고 발전하고 있다고 산도르가
한마디 더 거든다. 벌써 우리 춤에 대한 안목이 생겼나봐...
오는 8월 루마니아공연과 10월 스페인 공연을 위한 전초전이라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한 획을 그어가는 심정으로 힘껏 부채를
펼친다.
산도르가 처가의 집안 행사로 호주 북부 다아윈으로 떠나고
난 후 우리의 친절한 안내인을 자청한 에스페란티스토는
트레블 스틸과 그의 아내 카트야이다.
그는 세계에스페란토협회(UEA)사무총장을 지냈으며,
수많은 에스페란토와 영문 저작들로 인해 호주에서는
유명한 에스페란티스토이다.
더구나 호주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영화
‘폭풍의 소년(Storm boy)'에 에스페란토 자막을 첨가하는
방법으로 수많은 초보 에스페란토에게 흥미를 전해주었다.
카트야의 또랑또랑한 에스페란토 발음만큼이나
걸출한 두 에스페란티스토 부부는 향기로운 금슬을 자랑하면서
정성스런 식사준비와 함께 우리를 빼어난 아들레이드의
서남부의 명소로 인도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중남미 아루바 섬(네덜란드령)에서 태어난 인드라니라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에스페란티스토가
아들레이드 북부를 구경 시켜주어서 아들레이드의 유명한
명소를 다 둘러 보는 행운을 누렸다.

오는 2011년은 아들레이드에 에스페란토가 보급된지 10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100년이란 오랜 세월만큼이나 견디고 이겨낸
호주 아들레이드 에스페란티스토들의 헌신과 애정에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를 보내면서 성공적인 대회를 기원한다.